장미를 찾아서

시소
2024-03-23 22:04
47

                                                                                                         장미를 찾아서

 

 

이른 아침 업무를 위해 출근을 서두른다. 매번 ‘여유를 가져야지. 천천히 하자’라고 되뇌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밀려있는 업무가 생각나 마음이 바빠진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키자마자  전투적인 자세로 업무 모드로 들어간다. 뒤따라 출근한 J는 화분에 물을 주고 환기를 시키고 밤새 별 일 없는지 사무실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니다.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일찍 출근 한다면 J는 화분을 가꾸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 아무도 없을 때 집중 하기 위해 일찍 출근한 내 입장에서는 순간 불편한 감정이 올라 왔다가도  J처럼 여유롭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삶에서 주된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으며 그러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P42) J의 본업은 세무사이고 부업은 사무실 환경 지킴이다. 그는 부업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일하는 중간 중간 J는 우리에게 “자스민 꽃이 피었네. 와서 꽃 좀 봐요.”라고 하며 나무들의 근황을 들려주고 나무에 직장 동료의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쉼표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J의 일상은 말썽꾸러기 와이프로 인해 하루하루가 스펙다클하다. 그는 화분에서 쉼을 얻고 우리는 그에게서 쉼을 찾는다.

얼마 전 사무실 동료들과 의정부 ‘살림 가게’에서 진행한 구근 심기(화분 만들기)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수선화와 철죽을 심은 정원에 각자 이름을 붙여주고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새봄이 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집 베란다에 화분이 많이 있는데 바쁘게 움직이다가 베란다를 보면 쉬어가게 된다. 바쁜 일상을 멈추는 쉼같은 거다”라는 애기였다. 나에게 있어 화분은 내가 정기적으로 물을 주어야 하는 일거리 인 것이지 위안이나 쉼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못했다. 책임이 따르는 화분보다 꽃꽂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꽃이 최상의 선물이 되는 것은 절화가 즐거움을 줄 뿐 달리 아무 효용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로 그 사실이 선물을 주는 행위의 비효율성과 너그러움을 가장 잘 담아내는 것이다.(p32) 내가 화분과 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이 문구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 정애씨는 현재 84세이다. 말썽쟁이 큰딸 때문에 속상하고 이혼한 작은 딸이 애달파 눈물 짖다 가도 언제 그랬나는 듯이 안방에 들어가서 노래방기기를 켜고 노래를 부른다. 좀 전까지 식탁에서 눈물 콧물 빼며 울어서 다른 식구들을 돌림병처럼 울게 만들고는 정작 자신은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 본적이 있다. “엄마는 노래가 그렇게 좋아? ” 정애씨의 대답은 “응.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 고민이 없어져. 그래서 난 노래를 해” 정애씨에게 노래는 인생의 쉼표 같은 것이다.

 

오웰에게 장미가 있다면 J에게는 가꾸는 화분이 있고 정애 씨는 노래가 있다. 나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레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를 읽으며 이 의문점이 생겼다. 나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일상을 살다가 눈길이 가고 걸음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을 해본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내발로 땅을 차고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의 감각을 좋아한다. 그럼 나에게 걷기는 장미같은 것일까? 오웰은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돈도 수고도 별로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만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당신이 선악간에 행한 다른 어떤일이 갖는 가시적 효과보다도 훨씬 오래갈 것이다. (P18) 이다 라고 하는데 나의 장미는 고작 나 혼자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에 나는 부끄러워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화원에 가서 화분을 사고 책상에 올려놓았다. 관심을 덜 받아도 오래 살 수 있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화분이라 물을 주는 것을 잊어도 괜찮을 것 같다. J의 화분 가꾸기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 듯이 나의 화분 키우기도 나에게 쉼을 주어 주변에 좋은 기운을 주었으면 좋겠다.

 

 

 

댓글 5
  • 2024-03-24 00:03

    작년 평비글 워크샵 때도 그렇고 늘 주변을 챙기고 돌보는 것이 시소님 체질이라 생각했는데..
    일하랴 가족들 챙기랴, 지인들 챙기랴 늘 분주하셨군요?
    새로 산 화분이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가 시소님의 쉼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 2024-03-24 01:54

    오웰의 장미가 시소샘한테는 휴식으로 읽혔군요~ J의 화분과 시소샘의 화분이 누군가에도 휴식이 되길 저도 바래보고 싶어요

  • 2024-03-24 21:47

    책임이 따르는 식물보다 화병에 꽂는 꽂꽂이를 좋아한다는 말에 평소 샘의 성품이 드러난 것 같아요
    주위를 잘 챙기고 타인을 배려하는 샘.. 식물에게까지 나눠줄 배려와 책임감이 고갈 되었을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번에 구입한 화분을 통해 책임과 배려보다 그것을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고 기뻐하는
    친구가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샘의 글쓰기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같이 공부했었던 친구로서 꼭 말해주고 싶어요.

  • 2024-03-25 22:58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이미 좋은 기운 뿜뿜하고 계시는 듯…. 첫시간에 환하고 유쾨하게 웃던 선생님 때문에 제가 쫌 낯을 덜 가렸고 편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미 같은 역할 하셨어요..ㅎㅎ 그런데 선생님 첫째딸이세요? 막내딸이세요? 아님 둘째딸이신가요? ㅋㅋ

  • 2024-03-27 15:42

    "우리 엄마 정애씨는 현재 84세이다. 말썽쟁이 큰딸 때문에 속상하고 이혼한 작은 딸이 애달파 눈물 짖다 가도 언제 그랬나는 듯이 안방에 들어가서 노래방기기를 켜고 노래를 부른다. 좀 전까지 식탁에서 눈물 콧물 빼며 울어서 다른 식구들을 돌림병처럼 울게 만들고는 정작 자신은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 본적이 있다. “엄마는 노래가 그렇게 좋아? ” 정애씨의 대답은 “응.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근심 고민이 없어져. 그래서 난 노래를 해” 정애씨에게 노래는 인생의 쉼표 같은 것이다."

    이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시소님의 글에는 엄마는 여자주인공급으로 등장하셨는데, 주로 '먹는 일' '해먹이는 일'과 연관되어 언급되었어요. 이번 글에서 '노래'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처음 등장했고, 그 모습이 좀더 시소님 어머니를 '느낌있게' 와닿게 하는 것 같아요. 앞부분의 여유와 능청스러움, 자연스러움이 꿈틀이님 얘기하신 것처럼 '성장'의 측면이라면, 마무리 부분에서 뭔가 조급함이 느껴져요. 좀더 여유있고 능청스럽게 마무리까지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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