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최종 에세이

윤아
2023-12-02 23:12
58

평범한 여자들의 비범한 글쓰기 시즌3/ 20231202/ 윤아

 

각자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2019)를 읽고

 

1.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앰개시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9편의 단편이 느슨하게 연결된 소설집이다. 이탈리아의 바닷가나, 시카고가 배경인 작품도 있지만, 이야기의 발원지는 모두 앰개시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과 고통과 수치를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대체로 선량하고, 조금씩 악의적이며, 어찌할 수 없이 미숙한, 무엇보다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풍차」 패티가 말했듯이 너나없이 엉망이고 모두들 불완전하다.

각각의 상처와 고통의 근원은 다양하다. 2차 대전에 참전한 켄 바턴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한 찰리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인물들도 있고, 에이블과 도티처럼 대형 쓰레기통을 뒤져먹을 정도의 심각한 가난을 경험한 이들도 있다. 가난에 더해 가정폭력까지 겪었던 루시 남매들도 있고, 패티 자매들처럼 어머니의 외도로 갑작스럽게 가정이 해체되면서 상처를 갖게 된 경우도 있다. 애니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동성애자 아버지가 겪는 혼란으로 수치감을 내면화하며 자라기도 한다.

이들을 보는 타인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쉽게 평가하고, 은근한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때문에 아이들은 이중의 타격을 입고 수치감을 내면화한다. 이 감각은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도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가가 된 루시나 사업가로 성공한 에이블 같이, 상황이 완전히 바뀐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동생」에서 루시는 옛집을 찾아왔다가 공황발작을 일으키고, 「선물」의 주인공 에이블은 맥락 없이 솟아오르는 수치심을 어찌할 수가 없다. 에이블은 그 감각을 마치 사지가 절단 된 후에도 그것이 있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환각지’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각각의 삶 속에서 그 해묵은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인물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소설집의 묘미는 아마도 이들의 대응방식의 차이를 살피는 것에 있을 것이다. 「계시」의 토미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고난을 꿋꿋하게 헤치며 살아내고,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피트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인물도 있다. 「풍차」의 패티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슬픔이 타인을 이해하는 발판이 된다. 같은 자매인 「금간」의 린다의 경우와는 정 반대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갖게 되었을 두려움 때문에 범죄를 묵인한다.

물론 이 소설들이 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분법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가장 선량해 보이는 토미도 고립되어 사는 피트를 찾아갈 때의 진심은 다시는 찾아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패티도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학생에게 ‘너는 쓰레기’라는 말을 던지는 것으로 대응한다. 인물들의 태도는 너무나 복잡해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나누어지지가 않는다.

 

2.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마음에 밟히는 인물이 있다. 「도티의 민박집」에 나오는 셸리 스몰이다. 첫 토론에서 나는 그녀가 이 책에 나오는 최악의 인물이라고 말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셸리 스몰은 비루하고 못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녀야말로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몰부인은 남편과 함께 도티의 민박집에서 3박 4일을 묵고 간 손님이다. 부인이 전화해 스몰부부로 예약을 했고, 당일에 얼굴에 짜증을 묻어 나는 거구의 남자가 민박집에 들어와 닥터 리처드 스몰로 예약했다고 말한다. 그 뒤에 아주 마르고 전반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스몰부인이 서 있었다. 도티는 접객업을 오래 한 사람의 직관으로 스몰부부를 간파한다. 도티가 보기에 의사인 스몰씨는 이제는 늙었고, 자신이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고, 부인 셸리 스몰은 불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에게 징징거리며 무시당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런 스몰부인을 보는 도티는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연민을 품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긴 했지만 이혼했기에 저 꼴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셸리 스몰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민박집 주인에게 쏟아낸다. 그녀가 남편에게 강력하게 말해 호숫가 별장을 매입해 리모델링 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친절하게 대해준 애니라는 여자(물론 애니는 다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다.)에게 배신당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셸리 스몰은 민박집 주인 도티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도티는 어린시절 극심하게 가난했다. 그런 도티에게 어떠한 가난도 경험해보지 않은 인상을 주는 셸리의 불행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도티는 자신이 어린시절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꺼내 먹은 경험에 대해 말한다면? 스몰부인 부류의 사람들은 지금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도티나 에이블 같은 사람은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것이고, 여전히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 마땅하다고 여길 거라고 생각한다. 도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의 오빠인 에이블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에이블의 아내는 남편의 가난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한다.

도티는 이 문제가 ‘계급이 포함된 문화’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라며, 셸리 스몰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존재인 듯 말하도록 키워졌을 것이고, 오로지 관심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때문에 스몰부인은 도티가 웃음을 참는 것을 눈치 채고도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못한다. 셸리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불만, 즉 지금껏 삶이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같지 않았다는 불만 때문에 고통 받는 여자이고, 자신이 지은 화려한 별장만큼이나 욕구가 큰 여자다. 그녀는 자기 허영이 공격당할 때 눈물을 흘린다.

도티는 스몰 부인의 고통이 그녀의 이름만큼이나 작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녀는 그날 밤 남편과 잠자리에서 민박집 주인을 상스럽게 모욕하고, 다음날 도티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품위가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해도 도티가 스몰부인의 잼에 침을 섞어서 줘야 했을까? 똑똑하고 통찰력 있는 인물로 보이는 민박집 주인 도티는 자신이 불가항력적으로 겪은 가난과 사람들의 멸시어린 시선으로 내장된 어떠한 앙심이 유복하게 자랐을 스몰부인에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도티도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수치감에서 완전하게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3

스몰부인이 안쓰러운 이유는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이 겪는 고통이 스몰부인의 고통과 유사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쟁은 아주 먼 이야기이고,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지도 않다. 물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먹고사는 문제로 괴로워하고 또 학대 받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롭다. 그것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내 욕구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입한 욕망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꾸는 청사진을 머릿속으로 그려놓고 현실이 그와 부합하지 않아 고통스럽다. 우리가 원하는 타인의 인정과 돈은 언제나 충분치가 않다.

도티는 스몰부인을 보며 예전에 하룻밤을 묵고 간 한 남성을 떠올린다. 그 남성은 고통을 겪고 있었고 그 고통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고통이었다. 그들은 몇 마디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의 고통을 짐작하고 위로한다. 타인의 고통은 그만한 깊이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그는 맑게 갠 얼굴로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떠난다. 그 남자는 다른 단편 「엄지치기 이론」의 주인공 찰리 매콜리다. 도티는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연결된다고 느껴지는 경험’과 ‘사람들에게 이용당한다고 느껴지는 경험’으로 나눈다. 스몰부인의 경우는 이용당했다고 느껴지는 경우이고, 찰리의 경우는 연결된다고 느낀 경우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셸리 스몰은 자신을 유쾌하게 반겨주던 호숫가 주민들이 그녀의 지하 1층 지상 4층의 화려한 별장이 호숫가 경관을 망쳐놓았다고 비난하자 자신은 법적인 바닥 면적을 지켰다고 항변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을 지저분한 뒷얘기로 해소하는 방식이 스몰부부의 유머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그녀가 격은 고통이 스스로 초래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그렇다.

그와는 반대로 찰리는 전쟁 중에 수행한 일에 대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늘 자신에게 사랑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염치없다고 생각하기에 신에게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찰리가 저지른 일은 실상 불가항력적인 것이었음에도 그렇게 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선량한 인물로 보이는 팔순이 넘은 토미는 말한다. “자책한다는 것, 음, 자책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해 미안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계속 인간이게 해주”(41쪽)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누구든 자신의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시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가 경험하는 세상에서,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여러 길을 다 걸어가 보면 좋으련만 이번 생에는 단 하나의 길만을 걸어가 볼 수 있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말해 본다한들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가 있을까? 아마도 우리가 이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완전한 벗어남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각자가 무한히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한계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4.

내가 셸리 스몰에게 관심이 간 것은 아마도 거의 대부분을 전업주부로 살아왔고 5년 전에 집을 지은 경험과 같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도티의 표현대로라면 산 죽음 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스몰부부를 보면서, 나의 결혼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도티처럼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졌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들에게는 있는 용기와 능력이 나에게는 없기에 결혼생활을 꾸역꾸역 이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스몰 부인과 형식은 비슷해도 내용은 다르다. 그녀와는 다르게 집을 지은 후 오래지 않아 집 지을 때 겪었던 그 모든 어려움이 내 욕심에서 왔음을 깨달았다. 결혼생활은 어쩔 수 없이 시댁과 남편의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오랫동안 가족이란 전통적 습속에 매어 억울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생각했던 또는 평가하고 단정 지었던 많은 것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 내내 느낀 불만과 답답함은 우리 부부가 결혼에 대해 또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원하던 그림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또 각자를 사로잡고 있는 상처와 욕구가 달랐기에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달랐을 것이다.

물론 남편의 시대착오적 무지에 대해서는 덮어둘 생각도 없고, 너그럽게 다 이해한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그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가 다른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세계는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므로 무엇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래도 29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왔으니 그의 우주와 나의 우주에는 접점이 꽤 있었을 것이고, 그 지점이 어디였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서로의 우주가 겹쳐질 수도 있겠지만 육아와 같은 협력 사업이 거의 마무리되었으니 점점 더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놓아두고 흘러가는 대로 보는 일이 이제는 점점 더 편안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시대가 주입한 환상이나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상처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감정과 욕망을 가진 사람인지 좀 더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아직도 나는 나라는 사람의 작동원리에 대해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기본적 작동원리가 있다해도 그것을 안다해도 계속해서 변모해 나갈 것이기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인도 그러할 것이다. 3개월이면 온몸의 세포가 다른 것으로 교체되듯이 쉽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변화가 가능한 존재다. 고정된 자신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변화하는 생체 리듬과 맞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엇이든 살아있는 한 변해야 하는 것이고, 변치 않는다면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든 가능하다. 아무리 고약한 일이라도 세상에 모든 일은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내가 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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