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죽음 5회] 아빠의 아빠가 됐다

권경덕
2022-10-16 21:04
343

시민으로서의 돌봄

-아빠의 아빠가 됐다』(조기현 외, 이매진, 2019년)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출간 되자마자 한 번, 독서 모임에서 한 번, 그리고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또 한 번.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책을 다시 읽으니 그 당시의 내가 떠오르고, 그 때와 달라진 지금의 내가 낯설어진다.

 

조기현은 나의 동료였다. 우리는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어슬렁 반상회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취영화>라는 스마트폰 단편영화 제작 모임을, 나는 <아무튼, 책읽기>라는 독서 모임을 진행했다. 그는 학교 밖에서 철학과 비평을 공부하는 독립 연구자였고, 영화와 글쓰기로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창작자였다. 그리고 치매 아버지를 돌보는 시민이자 영케어러(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코올·약물 의존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18살 미만 아동 또는 젊은 사람을 일컫는 말)였다.

 

그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내가 책 모임을 진행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쓰는 사람이라서, 또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다는 이유로 종종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강사 뒷풀이 자리에서 그는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거의 쓰긴 했는데 힘들어 죽겠다며, 글쓰기의 어려움과 마감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몇 달 후에 책이 출간되었고, 제목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였다.

 

“아버지가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를 짊어졌다는 것, 그게 내게 커다란 뭔가가 됐다.” (89쪽)

 

이 책은 한 청년이 자신을 압도하는 보호자로서의 삶과 현실을 느닷없이 마주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조기현은 자신의 이야기가 자식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역할(효도)을 수행하는 기특한 청년의 서사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아버지와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시민과 시민으로 새롭게 관계 맺으려 했고, 자신이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가 사회적, 신체적 약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으로서의 돌봄 속에서 아버지를 다르게 성찰했고, 모든 세대가 돌봄을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싶어 했다.

 

어슬렁 반상회 사업이 종료되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그의 소식을 찾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시민으로서의 돌봄을 사유하고 실천하며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한겨레신문에 <조기현의 '몫'>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최근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영케어러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모아 두 번째 책을 냈다. 제목은 <새파란 돌봄>이다.

 

지금 나의 처지를 생각해본다. 작년부터 나는 다시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고, 1인분의 삶도 온전히 책임지지 못한다는 생각에 종종 무기력했다. 동시에 집 밖을 유랑하듯 여기 저기 쏘다니고 가족주의 바깥의 다양한 현장에 참여하며 활기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하며 마을 단위의 여러 활동과 실험을 목격하고, 홈리스행동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며 학생들과 홈리스 주거권을 고민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이 생추어리에 가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이의 밥과 물을 챙겨준다. 이런 부분적이고 산만하고 돈이 안 되는 나의 활동은 시민으로서의 돌봄과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자식이 아니라 창의적인 연결망 안에서 친척을 만들자’( 『트러블과 함께하기』, 마농지, 2021)는 해러웨이의 선언은 내가 종종 되뇌이는 말이다. 나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차이를 횡단하여 연대를 달성하자’는 출처 모를 말이 적혀있다. 지금 나의 연결망은 창의적이기 보다는 충동적인 것 같고, 나의 횡단은 연대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희소식이 있다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라는 관념을 믿지 않게 된 것이고, 누구든 누구에게 의존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럼, 나의 무기력과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나는 얹혀산다기 보다는, 더 큰 연결망 속에서의 상호의존성을 내면화하고 더 나은 시민으로서의 삶을 구성하기 위해 부모님 집의 방 한 칸을 잠시 점거한 것이다. 나는 산만하게 쏘다닌다기 보다는, 창의적인 연결망 안에서 더 많은 친척을 만들고 연대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생각한 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조기현을 포함한 영케어러들과도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시민으로서의 돌봄 역시 이 연결망과 무관하지 않다면 말이다.

 

 

댓글 6
  • 2022-10-17 08:58

     연대 속에 ‘돌봄’을 더 확장시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22-10-18 01:18

      확장된 돌봄! 계속 고민해보겠습니다~:)

  • 2022-10-17 09:37

    먼저 ,누구든 누구에게 의존할수 있다는 믿음에 

    의존하고 싶어요. 

    시민으로서의 돌봄이 촘촘해진다면,

    좀 더 가벼이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겠지요? 

    경덕님 글 감사합니다.

     

     

    • 2022-10-18 01:21

      촘촘한 돌봄이란 말이 와닿아요. 가벼이 손 내밀고 손 잡기!

  • 2022-10-17 13:39

    창의적인 연결망 안에서 상호의존하는 삶!!! 기억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2-10-18 01:24

      지금 제 상황을 돌아보고 돌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_)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 필수)
글쓰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알림]
[알림] 12월 29일(목) 저녁 7시반 - 기린 북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인문약방 | 2022.12.23 | 조회 251
인문약방 2022.12.23 251
[알림]
[알림] 기린님의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얏호!! (4)
문탁 | 2022.11.26 | 조회 406
문탁 2022.11.26 406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6회] 죽은 자의 집 청소 (2)
모로 | 2022.10.19 | 조회 284
모로 2022.10.19 284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5회] 아빠의 아빠가 됐다 (6)
권경덕 | 2022.10.16 | 조회 343
권경덕 2022.10.16 343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4회]자유죽음 (6)
김윤경 | 2022.10.13 | 조회 294
김윤경 2022.10.13 294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3회] 아미쿠스 모르티스 (6)
요요 | 2022.10.10 | 조회 316
요요 2022.10.10 316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2회] 고맙습니다 (5)
황재숙 | 2022.10.06 | 조회 291
황재숙 2022.10.06 291
[알림]
[알림] [리뷰 오브 죽음 1회] 작별일기 (5)
봄날 | 2022.10.03 | 조회 390
봄날 2022.10.03 390
[알림]
[알림] 리플레이 사주명리 누드글쓰기 ③ - 계수 겸목편 (1)
겸목 | 2022.07.06 | 조회 420
겸목 2022.07.06 420
[알림]
[알림] 리플레이 사주명리 누드글쓰기 ② - 경금 기린편
기린 | 2022.07.05 | 조회 356
기린 2022.07.05 356
[알림]
[알림] 리플레이 사주명리 누드글쓰기 ① - 계수 둥글레편
둥글레 | 2022.07.04 | 조회 530
둥글레 2022.07.04 530
[알림]
[알림] 북드라망 제2회 한뼘리뷰대회...알려드려요^^
문탁 | 2022.04.08 | 조회 237
문탁 2022.04.08 237
[알림]
[알림] 경축!! 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한달> 1호가 3월1일 발간되었습니다 (3)
문탁 | 2022.03.01 | 조회 504
문탁 2022.03.01 504
[알림]
[알림] 일리치약국 1주년 기념 산행 (10)
일리치약국 | 2022.02.15 | 조회 713
일리치약국 2022.02.15 713
[알림]
[알림] <어바웃 식물> 첫 세미나(1월10일/월) 안내 -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3)
문탁 | 2021.12.22 | 조회 550
문탁 2021.12.22 550
[알림]
[알림] 인문약방이 코디하는 도협 <길위의인문학> 무료강좌를 알려드려요
인문약방 | 2021.10.27 | 조회 561
인문약방 2021.10.27 561
[알림]
[알림] <특강취소공지>일리치약국에 놀러와-갱년기편 고미숙샘 특강관련
기린 | 2021.10.18 | 조회 531
기린 2021.10.18 531
[알림]
[알림] 신간 소개 - <이반 일리치 강의> (이희경 지음)가 나왔습니다 (6)
인문약방 | 2021.10.09 | 조회 726
인문약방 2021.10.09 726
[알림]
[알림] 일리치약국에놀러와-갱년기편 세미나 공지합니다 (2)
문탁 | 2021.09.24 | 조회 754
문탁 2021.09.24 754
[알림]
[알림] 4월3일(토)2시 둥글레<人, 文,藥 이 있는 인문약방>북콘서트
인문약방 | 2021.03.22 | 조회 850
인문약방 2021.03.22 850
[알림]
[알림] 경축!!! 둥글레 새책, <사람(人)과 글(文)과 약(藥)이 있는 인문약방>이 나왔어요 (11)
인문약방 | 2021.02.18 | 조회 1044
인문약방 2021.02.18 1044
[알림]
[알림] 지금까지 이런 CF는 없었다!! - 인문약방 2020 S/S편 (3)
문탁 | 2020.05.19 | 조회 956
문탁 2020.05.19 956
[알림]
[알림] 팟캐스트 <인문약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야홋!!
문탁 | 2020.03.14 | 조회 1054
문탁 2020.03.14 1054
[알림]
[알림] <인문약방>활동 시작합니다 (3)
인문약방 | 2020.01.17 | 조회 1359
인문약방 2020.01.17 1359
[모집]
[모집] <내 방에서 만나는 일상의 인문학> 유튜브 강좌 소개 (1)
일리치약국 | 2022.11.29 | 조회 237
일리치약국 2022.11.29 237
[모집]
[모집] <내 방에서 만나는 일상의 인문학> 줌무료강좌 신청하세요
인문약방 | 2022.11.08 | 조회 895
인문약방 2022.11.08 895
[모집]
[모집]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4회 죽음편 신청하세요 (67)
일리치약국 | 2022.09.12 | 조회 1817
일리치약국 2022.09.12 1817
[모집]
[모집] About 정독精讀 - 푸코 <자기해석학의 기원> / 5회 / zoom (12)
문탁 | 2022.09.11 | 조회 1348
문탁 2022.09.11 1348
[모집]
[모집] ***2022년 인문약방 강좌 - 사주명리 기초*** (13)
둥글레 | 2022.06.27 | 조회 1122
둥글레 2022.06.27 1122
[모집]
[모집] <어바웃 (비인간)동물> 세미나 (7회 ZOOM + 1회 화성습지탐방) /5월30일 시작 (17)
문탁 | 2022.04.25 | 조회 1340
문탁 2022.04.25 1340
[모집]
[모집] [일리치약국에 놀러와]3회 다이어트편 신청해주세요 (38)
일리치약국 | 2022.04.19 | 조회 1150
일리치약국 2022.04.19 1150
[모집]
[모집] [일리치약국책처방] - 고미숙의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2월10일시작/총3회) (25)
인문약방 | 2021.12.25 | 조회 1167
인문약방 2021.12.25 1167
[모집]
[모집] [인문약방한뼘세미나]- 어바웃 식물 (ZOOM) (32)
문탁 | 2021.12.07 | 조회 1650
문탁 2021.12.07 1650
[모집]
[모집] <일리치약국에 놀러와>2회 갱년기편 세미나 모집해요^^ 언릉 신청^^~~ (75)
일리치약국 | 2021.09.06 | 조회 1732
일리치약국 2021.09.06 1732
[마감]
[마감] About 정독精讀 - 푸코 <자기해석학의 기원> / 5회 / zoom (12)
문탁 | 2022.09.11 | 조회 1348
문탁 2022.09.11 1348
150
[2023 인문약방 양생캠프] 드디어 일주일 후로 다가왔습니다. (필독! 최종공지) (2)
문탁 | 2022.12.31 | 조회 208
문탁 2022.12.31 208
149
2023 사주명리 강좌 - 'MBTI보다 명리학' (15)
둥글레 | 2022.12.02 | 조회 958
둥글레 2022.12.02 958
148
[어바웃정독] <자기해석학의 기원> 세미나 후기,를 댓글로 달아주세요~ (7)
푸코푸코 | 2022.11.07 | 조회 191
푸코푸코 2022.11.07 191
147
<어바웃정독>-푸코<자기해석학의기원> 마지막 공지 -역시 질문은 올려야 (4)
문탁 | 2022.11.06 | 조회 202
문탁 2022.11.06 202
146
<어바웃정독>-푸코<자기해석학의기원>읽기 4차시 - 질문 올려주세요 (4)
문탁 | 2022.10.30 | 조회 177
문탁 2022.10.30 177
145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4회 죽음편> 4회 후기 (1)
겸목 | 2022.10.26 | 조회 132
겸목 2022.10.26 132
144
<어바웃정독>-푸코<자기해석학의기원>읽기 3차시 - 질문 올려주세요 (6)
문탁 | 2022.10.23 | 조회 167
문탁 2022.10.23 167
143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죽음편> 3회 후기 (1)
둥글레 | 2022.10.21 | 조회 127
둥글레 2022.10.21 127
142
<어바웃정독>-푸코<자기해석학의기원>읽기 2차시 - 질문 올려주세요 (6)
문탁 | 2022.10.14 | 조회 239
문탁 2022.10.14 239
141
<일리치 약국에 놀러와-죽음편> 2회 후기 (2)
윤슬 | 2022.10.13 | 조회 134
윤슬 2022.10.13 134
140
<일리치 약국에 놀러와-죽음편> 1회 후기 (1)
느티나무 | 2022.10.09 | 조회 155
느티나무 2022.10.09 155
139
<일리치약국에놀러와 3회-죽음편>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한다(우에노치즈코) 서평을 소개합니다
문탁 | 2022.10.09 | 조회 130
문탁 2022.10.09 130
138
<어바웃동물> 화성습지탐사 후기 (7)
Tess | 2022.07.19 | 조회 217
Tess 2022.07.19 217
137
<어바웃 비인간 세미나>줌 마지막 후기- 짐을 끄는 짐승들 두번째 시간 (3)
| 2022.07.16 | 조회 199
2022.07.16 199
136
<어바웃(비인간)동물> 필사 마지막 후기 - 서화필사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 (4)
김윤경 | 2022.07.13 | 조회 190
김윤경 2022.07.13 190
135
<어바웃 동물> 필사 후기_필사는 어딘가 습지와 닮아있었다. (3)
정의와미소 | 2022.07.09 | 조회 200
정의와미소 2022.07.09 200
134
<어바웃 동물> 짐을 끄는 짐승들 후기 (6회차) (5)
Tess | 2022.07.05 | 조회 150
Tess 2022.07.05 150
133
<어바웃 비인간 세미나> 필사후기 -습지주의자- (6)
| 2022.07.02 | 조회 159
2022.07.02 159
132
<어바웃 동물 5회차 후기> 물 속의 퀴어하고 정치적인 존재들 (6)
경덕 | 2022.06.28 | 조회 175
경덕 2022.06.28 175
131
<어바웃(비인간)동물>5회차 -물고기는 알고있다 (5부) (3)
문탁 | 2022.06.27 | 조회 189
문탁 2022.06.27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