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 <감정의 문화정치> 6,7장 후기 - '사랑(감정)'은 움직이는 거야

라겸
2024-03-24 15:50
562

아메드 책은(도) 어려웠다. 이해 할 만하면 무수히 덧붙여지는 '정교한' 설명들은 반증인지 부가설명인지 헷갈릴만큼  치밀해서 조금이라도 정신줄을 느슨히 잡으면 다시 지나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만 했다. 

 

   하여 들을 만큼 들었고 알 만큼 안다고 다들 생각하는 '사랑(6장)'에 대해 아메드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다. 그러나 아메드는 사랑이 도대체 뭐냐, 사랑의 힘을 아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며,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는 주류 사회가 구분하는 사랑의 이분법에서 비롯되는 문제, 그리하여 우리가 일반적(혹은 정치적)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한다고 말할 때의 그 사랑이 작동되는 '은밀한' 작동 방식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라 말한다. 아메드가 의미하는 감정은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생성하는 일종의 '정치적인 효과'로서의 감정이니 말이다.

 

   먼저 아메드는 프로이트 모델이 구분하고 있는 '자기에 대한 사랑'과 '대상에 대한 사랑'이 과연 정말 서로 다른 사랑이 맞냐고 질문한다. 이러한 구분은 이성애를 '차이'(나 아닌 다른 대상)를 사랑하는 제법 멋진 사랑으로 이상화하고, 동성애는 '동일성'(자기애적 애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찌질하고 위험한 사랑으로 강등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자기가 '닮고 싶은' 자아 이상을 향한 자기애적 사랑이나 '나 아닌' 이상적 대상을 사랑하는 소유로서의 사랑 모두 결국은, '이상화'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랑은 결국, 사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실은 '대상을 지닌 나르시시트'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이상을 향한 사랑이라는 이 감정은  나와 닮았다고 이미 간주된 '집단(예를 들어 '국가')을 향한 사랑으로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 즉 이상적인 대상을 향하는 개개인들의 '자아 이상'이 하나의 동일한 대상으로 뭉쳐질 때 '집단(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새삼 탄생되는 것처럼)'에 대한 이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집단을 향한 사랑이 내가 준 그 사랑을 되돌려받지 못하면 못할 수록 더 강력해진다는 것. 그래서 그 사랑을 지속시키는 데는 방해꾼이 '꼭' 필요하게 된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구 우익집단의 이주반대 담론이나 민족주의 확산은 이렇게 국가를 사랑(감정)의 대상으로 이상화한 특정한 몸들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효과'그 자체이다.

 

   하여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타자를 사랑하자는 '다문화적인 사랑'이라는 현상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사랑은 나와 닮은 집단을 향하기도 하지만 나와 닮지 않은 집단을 사랑하(해야하)는 윤리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아메드는 지금 우리(서구)의 다문화적 사랑은 '조건'의 사랑이라 단언한다. 예를 들어 서방은 911테러 이후 다문화주의가 안보를 위협하는 형상으로 간주되면서,  타자들에게 자기애적인 종족적 사랑을 버리고 지금 합류하려는 공동체의 이상, 즉 차이의 사랑을 따라야 한다고 강제한다. 그리고 이는 다문화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는 애초부터 그 이상 유지에 필요한 '방해 요소'로 남을 수 있게 은밀하게 작동되는 투자를 감춘다.

 

   결국, 아메드가 '사랑'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는' 사랑의 정치이다. 자신을 '이상화'하는 사랑이 타자(동성애, 이주자, 인종)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우리 모두 사이좋게 사랑하자는 다문화적 모토는 그 타자가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이상)을 만들어 내어, 타자를 자신들의 상처와 국가 방해의 기호로 격하시키는 일로 이어지는 방식이 '아닌' 사랑의 정치 말이다.

 

   이어지는 '퀴어 느낌(7장)'은 이렇게 이상적인 사랑으로 승화된 '이성애'가 전 지구적 정치를 이성애 각본으로 묶어내는 과정 속에서 '퀴어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양상을 분석한다. 강제적 이성애 각본(규범)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퀴어의 몸들이 침범당했던 '불편함'과 '슬픔', 그리고 오히려 그로 인한 '즐거움' 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저그런 스토리텔링에 불과하다. 이성애가 규범이 되는 세상에서 동성애가 차별받는 '평범한(?)'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아메드는 이성애 각본이란 단지 섹스의 상대가 이성이냐 동성이냐를 강제하는 문제를 넘은, 모든 가족 의례와 공적, 사적 영역에 깊숙히 자리한 일종의 거대 규범이라 말한다. 하여 바로 이런 이유로 퀴어 이론은 단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성애 규범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규범에 맞서는 일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성애 결혼을 지지하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메드는 이것이 적법한 퀴어와 비적법한 퀴어라는 위계를 발생시키며 오히려 현재 이성애 체제로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딜레마적 문제라 지적한다.  이성애적 규범에 적당히 흡수되는 '동화'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이성애 각본을 따르지 않는 '위반‘을 선택할지의 문제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떤 퀴어는 규범에 맞설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일 수 있고, 어떤 퀴어는 이성애 규범이 지배하는 공간에 가까이 있음으로서 이성애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기에 결국, 동화냐 위반이냐는 '선택'이 아니라 상황적 '결과'일 뿐이다.

 

   하여 아메드는 '가족'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나 형용사로 명명하기를 제안한다. '무엇 무엇'이라 정의된 가족이 아닌, ‘무엇 무엇을 하는’  수행적인 의미의 가족 말이다.  ‘퀴어 가족’이라 함은 단지 동성애 가족이 아니다. 이는  '적법한' 가족이 아니라 (일반적 사회모델과 다르기에)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가족이다. 하여 이성애 각본에 동성애가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동화될 것이냐 저항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규범과 '어떻게' 다르게 살아내느냐의 문제다.

 

   이렇게  '퀴어 불편함'의 의미를 새롭게 제안하며, 더불어 아메드는 '퀴어 슬픔의 형태'도 새롭게 제안한다.  아메드가 보기에 퀴어 가족의 상실이 공적영역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휴머니즘의 언어에 기대거나 혹은 퀴어 집단의 상실로써 명명되는 일은 오히려 퀴어 슬픔이 국가적인 상실로 통합되는 일일 뿐이다.   하여 아메드가 제안하는 '슬픔의 퀴어한 형태'란, 상실을 겪은 이들이 슬퍼할 시간과 공간을 가지게 하는 일이며, 타자를 위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닌 타자를 '슬퍼하는 존재'로서 존중하고 지지하는 일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퀴어 느낌(감정)은 차별과 위계에 저항하는 부정적인 느낌밖에 없는 것일까. 그럴리 없다. 아메드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에서 퀴어 즐거움이 생성된다 강조한다. 그러나 아메드는 퀴어 즐거움이란 비재생산의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이성애의 질투를 유발하는 즐거움이 되어서는 안된다 말한다. 이는 기존의 주류 사회가 구축하는 '올바르고 적법한' 즐거움에 도전(저항)하는 '열린' 즐거움을 의미한다. 즉 퀴어 즐거움은 자신을 '확장'하고, 다른 이들을 향해 몸을 '열게 하는' 즐거움이다. 하여 퀴어 즐거움은 규범에서 자유롭고 초월적이고, 자본의 회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함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퀴어 즐거움은 즐거움을 통해 '모이고', 그것은 다시 권리를 찾는 운동으로 '이어지는'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아메드가 말하는 감정은 움직이고, 미끄러지고, 달라붙고, 끈적이는 어떤 것이 맞다.

 

댓글 6
  • 2024-03-24 18:29

    우와. 일목요연한 후기 덕분에 정리가 딱. 저는 흔적이 남은 몸이 움직인다는 대목이 쑤~욱 들어왔어요. 이 책이 제게 남긴 흔적입니다.

  • 2024-03-24 18:39

    우와! 정말 정리가 너무 잘돼서 머리에 쏙 들어와요! 우리 공부는 발제나 세미나가 아니라 후기쓰기로 남는 것 같아요! 삼세판이라고 세 번은 읽어야 정리가 되는 듯 해요. 라겸님 공사다망한데 쌈박하게 정리해주셔 감사해요~~

  • 2024-03-25 09:47

    빠름~빠름~후기 감솨합니다.
    저는 동일화와 이상화가 헤갈렸는뎅.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도 가물가물했어요.

    "그러나 자기가 '닮고 싶은' 자아 이상을 향한 자기애적 사랑이나 '나 아닌' 이상적 대상을 사랑하는 소유로서의 사랑 모두 결국은, '이상화'라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랑은 결국, 사랑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실은 '대상을 지닌 나르시시트'이다."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이해가 쏙~~
    쉽지 않은 아메드의 책을 그래도 다같이 읽어가며 여튼 이번주면 끝나네요.
    무슨 흔적이 남을지 매번 공부할때마다 의문이 남지만 그래도 공부는 계속 되는 것이 맞죠.ㅎㅎㅎㅎ
    계쏙 같이 탐구해봐용~

  • 2024-03-25 18:45

    꼼꼼한 후기를 통해서 또 한번 공부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프로이트의 동일화와 이상화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렇게 정리된 글을 읽으니 좀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아요. 책의 앞 부분들보다 저는 6,7장부터가 조금 더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사랑'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되는지에 대한 부분도 (제가 잘 이해를 했는지와는 별도로ㅜ)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집단 (즉 국가)에 대한 사랑이 보답받지 못할 때 그 사랑이 더 강력해진다는 부분은 아직도 약간 아리송합니다. 보통 투자를 한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그것을 회수하거나 뒤돌아서는 방법도 있기 마련인데 '왜 사랑은 더 강력해지는 것일까요?'- 투자를 했는데 그만큼 되돌려받지 못했다는 아까움 때문일까요?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겹쳐져 있기 때문일까요? (다만 국가는 투자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방해꾼)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이해가 됩니다!)

    • 2024-03-25 21:49

      사랑의 특성이 '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더 널 사랑할거야'가 되는건, 유상샘 말씀처럼 지금 '국가'곁을 떠나면 이제껏 내 투자가 가치없게 되는 상황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투자를 지속한다는 건, 이상을 미래로 연기함으로써 내 환상을 지속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인듯해요. 284~286

      • 2024-03-26 12:21

        오 이해가 되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환상을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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