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8주차 (<보이지않는가슴-돌봄경제학> 1차시)는 발제/메모 올려주세요

문탁
2023-04-06 15:55
315

1.<동자동 사람들>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겸목과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석사논문을 보면 아카데미에도 약간의 희망을 품게 됩니다. 하하

세미나 때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책의 부제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가 아주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이버가 모스를 재독해하면서 강조했던 것처럼, 아담 스미스적 인간, 자기이익(interest)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허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은 자기이익과 그것에 근거한 합리적 교환을 넘어 재화와 감정, 돌봄을 주고 받습니다.  '동자동', 즉 힐튼호텔 옆 쪽방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가족의 통제적 돌봄,  시장잔여적인 시혜,  관료적이고 행정적 복지지 서비스를 넘어(뚫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상호돌봄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내부 '추방'(착취가 아니라)의 장소인 '동자동'에서의 그 상호돌봄은 구조적으로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즉 그들이 지적장애인이고, 수급자이며(평균 72.8%가 수급자), 무연고자이며, 평균 59.7세의 건강약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동자동'에서는 상호돌봄이 자기를 파괴하는 형식 (범죄에 연루된다거나, 빚을 떠안게 된다거나, 내부와 외부를 갈라치기 한다거나, 조직화가 될 수 없다거나)으로 귀결됩니다. 돌봄이 없는 게 아니라 돌봄이 실패하는 거죠. 

 

그래서 맘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저자는 섣부르게 대안을 찾지 말고 오히려 동자동의 구조적 돌봄실패가, 오늘 나의 여기서의 평안한 일상을 유지하는 토대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말합니다.  르권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다시 읽어야 할 시간입니다. 

 

 

 

 

 

2.  여성주의 경제학 혹은 돌봄 경제학

 

  1)  이제 우리는 낸시 폴브레의 <Invisible heart>를 읽습니다.  어떤 맥락 속에 있는지 일단 다시 확인해봅시다. 우리의 첫 텍스트 <돌봄선언>에는 "돌보는 경제"라는 챕터가 있었습니다. 그걸 다시 한번 돌이켜볼까요?

 

"돌보는 경제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가장 먼저 경제를 우리가 서로 돌볼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으로 다시 정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돌봄요구의 다양성과 이 요구들이 충족되는 방식의 다양성, 즉 시장 거래뿐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세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의 다양성을 전제하고 포용한다. 앞에서 논의했듯이 우리는 '자유시장'이 인간 경제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공격적으로 확장되도록 밀어붙이는 신자유주의를 멈춰야 한다.

돌보는 경제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또 시장 확장에 대한 신자유주의 의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경제를 오로지 시장현상 하나로 축 소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도 반대된다.

이 두가지 관점 모두 똑같이 환원적 가정에 관해 책임이 있다. 우리는 돌봄이 실제로 구성 원칙이고, '보편적 돌봄'이 근본 모델인 사회에 경제를 재정립하기 위해 경제의 본질과 범주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J.K. 깁슨 그레이엄, 앤 페티포, 낸시 폴브레, 리안 아이슬러, 케이트 래워스와 여성 예산그룹에 속한 경제학자들을 이어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국가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활동을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 안에서 생각하는 다른 경제적 비전을 주장한다. 이러한 경제는 곧 살아 있는 세계의 생태계 일부로 이해된다." (<돌봄선언>, p136)

 

돌봄선언의 돌보는 경제편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옵시다.

 

 

2) 원칙적으로 낸시 폴브레는 소위 가사노동 논쟁 혹은 재생산노동 논쟁이라고 불렸던 오래된 여성주의 논쟁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성주의 경제학 내부에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였다가 최근에는 탈식민과 포스트구조주의의 포지션으로 선회하였다는 폴브레  뿐만 아니라, 깁슨&그레엄처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여성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입장에서 해체하려는 시도도 있고(아래, <그따위 자본주의는 끝났다>),  자율주의 운동진영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나 실비아 페데리치 등의 논의(이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도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굳이 드리는 이유는 어제 김도현 샘의 강의에서 권리로서의 노동권이라거나 공공시민노동같은 개념이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샘은 장애학은 일종의 여성학과 같은 위상학적 지위를 같는다고 하셨는데, 사실  페미니즘에서의 가사노동 혹은 재생산노동은 아주 초창기부터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복잡한 논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단 당연히 자유주의 페미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가사노동 혹은 재생산노동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또 지금 갈무리출판사에서 열심히 번역하는 자율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재생산노동과 관련된 논점들도 있고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20,30대에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과  페미니즘의 재생산노동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그런데 이때만 해도 저는, 얼치기 맑스주의자로서 어쨌든 '가치이론' 속에서 재생산노동을 개념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ㅠ)

40대에는 모스와 폴라니를 공부하고 (총체적 급부체계, 살림살이경제) 문탁에서 '마을 경제'라는 개념을 담론화하려 애썼던 것 같아요.(협동조합 정신의 마을작업장, 지역화폐, 기본소득 실험 등)

 

그런데 어쩌다보니 이제 돌고돌아 다시 '돌봄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재생산노동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네요. 크하하

그리고 장애학 쪽에서는  '공공시민노동',  '권리중심의 노동'...뭐 이런 개념을 휙 던지는군요. ㅋㅋㅋㅋ

 

지금 제 머리 속이 몹시 복잡합니다만,   어쨌든 읽어봅시다^^

 

 

이번 발제는 루틴님과 먼불빛님이네요. 메모는 A조입니다.

 

 

댓글 9
  • 2023-04-07 09:48

    네 저는 1부 <돌봄경제학>을 읽을 땐 참 좋았습니다. 도서관 책인뎅 밑줄도 팍팍 그어가며 뚝딱 1부를 읽었는뎅
    2부 <좋은 정부> <보모 국가>들어서서는 글 읽는 속도가 잘 안 나가고 이해도 안되고 그러더라구요. ㅎㅎ
    여튼 질문은 70쪽 "돌봄 노동에만 종사하는 개인은 자기의 노동의 산물을 통제하지 않는다. " 이 문장에 대해 더 애기를 하고 싶어요. 잘 이해가 안됐거든요.
    이어지는 문장에서 "노동 과정에서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는 종류의 경험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노동의 산물의 통제는 효율성과 관련된 것 같기도 하고요.
    또 86쪽 "어떤 면에서 여성성이라는 규범은 니체가 '노예근성'이라고 경시해 버렸던 배제의 전통을 반영한다." 이 말도 잘 이해가 안돼요.

    또 읽으면서 낸시의 공감과 영의 공감의 차이는 무엇일까? 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진도에서 저에게 응원의 글이 되었던 부분은 (89-90쪽)
    "타인을 친절하게 돕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이로움을 만들어 내어 넓게 퍼져 나가게 만든다."(89쪽)
    "좋은 행위가 가져온 효과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범위로 퍼져 나갈 때 그 효과를 다 거두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동체는 그런 효과들을 다 거두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90쪽) 입니다.
    제가 지금 마을에서 하려는 일이 어떤 류의 돌봄인지 저도 잘 모르겠고 그것이 돌봄이긴 한가 싶기도 하고
    그 활동을 하며 어떤 효과와 이로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미숙하고 거친 소울을 지닌 제가 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일단 '동네에서 동네사람과 놀아보자' 취지의 목표는 이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ㅎㅎ
    그럼 저는 또 마을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을 수행하려 나가봐야 해서 휘리릭 ^^

  • 2023-04-07 14:07

    (138쪽)
    “처음으로 국가와 가족을 본질적으로 대비한 사람은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이론가 알바 뮈르달이다. 그녀는 국가가 의료, 교육, 사회 안전망, 은퇴 후 보장 등을 제공함으로써 가족 약화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웨덴과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는 한발 앞서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뮈르달은 사회가 기꺼이 그 책임을 맡을 것이라고 지나치게 지나치게 낙관했다 또한 복지 국가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과대평가 했는데 정치적 관료주의 관성이 효율성을 저해할 수도 있음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본적이 주장은 맞다. 복지 국가는 가족이 확대된 것이다.”
    에서 복지 국가의 효율성을 저해한 정치적 관료주의 관성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 2023-04-07 18:23

    3장. 성공의 측정에서 저자는 여러 ‘지수’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덕 존스 지수, 다우 존스 지수, 돌리 존스 지수, 인간 개발지수, 와 다우지수까지. 이 중 와 다우지수에서 저자는 “나는 사회 치료사를 고용하여 각 사회의 와의 차이를 측정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고찰해 볼 것을 제안(p.123)”한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 치료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 어떤 직업을 말하는 것일까요?
    화합․일치․평화․하나됨의 윤리를 담고 있고 “성원들이 느끼는 가족애”를 기반으로 한다는 ‘와 다우지수’는 과연 측정은 가능할까요?
    저자의 상상력이 발동된 이야기는 아닌지 싶습니다.

  • 2023-04-08 00:20

    저는 4장. 보모국가에서 아래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52) ‘노인 세대가 전에 젊은 세대를 돌보았는냐에 상관없이 젊은이의 돈을 노인에게 재분배함으로써, 사회 보장 제도는 효과적으로 부모에게서 부모 아닌 사람에게로 자원을 재분배한다. 이것은 수당이 오직 임금과 거기서 떼는 세금에 기반을 두었거나 결혼에 기반을 두었지, 실제로 자식을 키우는 데 쏟은 시간과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 중 돈을 더 많이 번 사람의 소득이 같은 한, 아이를 셋 키운 부부나 아이가 없는 부부나 마찬가지의 은퇴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그동안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 돈, 에너지를 투자했고 그들은 자라서 노인 세대를 부양하는데 쓰일 세금을 낸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라는 것을 이런 사회보장제도의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얼마전, 어느 구청에서 출산지원금을 200만원으로 증액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출생률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는데 말이죠.

    또한 해당 장의 말미에서
    ‘문제 해결하는 돈이 들 것이고, 남성에게서 여성에게로,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서 부모에게로, 부자에게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자원의 재분배가 대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보모국가’를 언급하는데요,
    이전 정권에서 들었던 ‘포용국가’라는 단어도 떠올랐는데
    낸시 폴브레가 말하는 보모국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 2023-04-08 00:40

    '인간이 서로를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연구하는 경제학자'라는 낸시 폴브레의 자기 소개를 들으며, 경제란 이런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클 텐데, 그간 비시장적 경제를 경제지표에서 빼버리는 막대한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철저하게 부부 중심의 가족 중심의 일처럼 보이지만,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을 보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요즘이다. 부부가 시간과 돈과 애정을 들여 기른 아이는 오늘날 자기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세금을 내는 노동인력이 되고, 그들의 세금으로 부모 아닌 사람에게로 세금이 흘러드는 경제가 굴러가게 된다. 그러니 아이가 없는 부부나, 비혼이나 지금 출산, 육아, 보육복지에 내 세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자원이 대대적으로 재분배되는 '보모 국가'에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 낸시 폴브레는 낙관한다. 아니 낙관의 지표를 만들어내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 같다. 현재로서 질문은 없다. 더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로 돌봄의 공백이 발생하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돌봄의 구조 변화를 가져오는 조건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요즘 주변에서 부모님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부부가 각자의 부모는 각자가 책임지자는 주의가 대세라고 한다. 며느리에게 시부모의 간병을 강요하기보다는 직장 다니는 아들이 간병인을 구하든, 휴직을 하든 알아서 하는 것이 상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성별분업이 자연소멸하고 있는 것도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고 본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고, 돌봄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놓여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더 많은 사람이 돌봄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2023-04-08 03:04

    시간이 한참 흘렀네요. 이제야 발제문 올립니다 ㅠㅠ
    이시간에도 스탠드불을 밝히고 있을 먼불빛님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남깁니다.

    • 2023-04-08 08:58

      수정한 파일입니다.

  • 2023-04-08 07:31

    질문 모음

  • 2023-04-08 07:34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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