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감정> 2회차 후기

김언희
2022-05-07 14:16
205

함께 모여 서로 바라보고, 얼굴을 맞댄채 이야기하고, 서로 몸을 부대끼기

 

가정의 달 5월이다.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자녀와 부모의 의미를 환기하고,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권장한다. 누군가는 이상적인 부모와 자녀의 역할을 진정성으로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의 정신을 아웃소싱의 방식으로 대신한다. 이도 저도 아닌 어느 누군가는 불편한 마음을 갖고 아예 가족을 외면하기도 할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 속 큰딸이 연애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연애가 어려운 계란 흰자 위 경기도민인 자신의 현실과 여전히 연애를 진정성으로 해내려 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를 국가의 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맥락이었었던 것 같다. 그런데, 5월 가정의 달에 부모와 자녀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을 보면, 마냥 기쁘게만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진 않다.

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언론 기사를 보면 부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현금이라고 하고, 어린이날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선물의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제 가족의 정성이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누군가 ‘나는 정성만 있으면 된다’를 마음으로만 해석한다면, 그 사랑은 금세 실망과 무관심으로 이해된다. 혹실드가 얼굴을 맞대고 몸을 부대끼며 함께 모여 서로 바라보고, 얼굴을 맞댄채 이야기하는 방법을 이야기 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자본의 방식으로 환원되지 않을 때 사랑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서 함께 만든 반찬으로 밥을 나누어 먹었던 일이 최근 몇 년간 거의 없었다. 혹실드가 말했던 몸을 부대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코로나 상황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되었고, 처음에 느꼈던 답답함과 불편함, 안타까움은 어느 순간부터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대면의 자리에는 모바일 통화, 문자, 줌과 같은 비대면 방식이 자리 잡았고, 어쩔 수 없이라도 하던 가족의 정성은 대부분 아웃소싱의 방법으로 대체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족은 잘 지내나요?’의 마지막을 스스륵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정성스럽다’라는 것이 주는 본질적 물음을 ‘정성스러운’ 공간 속에서 ‘진실되게’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스륵이 집을 짓는 과정을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린 집에서 모임의 멤버들이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했다. 따스한 햇살이 거실에 앉은 멤버들의 얼굴을 자세히 비춰줬기 때문인지, 확실히 문탁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와 다른 느낌을 가졌다. 아마 문탁에서는 공부가 사람보다 앞섰다면, 스스륵의 집에서는 공부보다 사람들이 더 중요한 곳이었던 것 같다.

혹실드의 다양한 사회문화 현상의 마지막이 ‘서로 함께하며 부대낀다’라는 결말로 마무리되어, 한편으로는 ‘겨우 이게 다야?’라는 질문했다. 그러나, 스스륵의 집이 주는 따뜻함 속에서 ‘이것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정의와 미소님이 말한 ‘사랑의 말과 따뜻함을 표현해내고’, 기린님이 ‘소외가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나마 해 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국가가 제도적으로 마련한 날이 괜히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우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가족의 정성을 나누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혹실드가 말하는 공감지도를 그리는 시작이 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댓글 4
  • 2022-05-07 18:29

    좋은 나들이였는데 후기로 재생해보니 좋네요^^ 저는 오늘 셈나 없는 토욜 오전을 딸이 같이 보자고 조르고 졸랐던 애니메이션 <메이의 새빨간 비밀> 봤어요. 이번 주말은 푸욱 퍼져볼랍니다~

  • 2022-05-09 07:53

    세미나 없는 주말^^ 저는 어머니이 최근 몇년 동안 서울 올 때마다 가고 싶다고 하셨던 남대문시장에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어머니와 나 사이에 '소외'가 발생하지 않도록 .... 아이고... 남대문시장 다녀왔습니다~~~ ㅋㅋ

  • 2022-05-09 11:03

    저도 아련하네요 비빔밥이 눈에 선하구요^^ 이번 주부터는 친정엄마가 집에 와게십니다. 공감지도 그려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감정의 시그널이 넘 많아 마구 엉키고 있습니다 하하

  • 2022-05-09 13:24

    언희님 후기 읽으니 그날의 햇살과 창밖 정원.산 풍경이 떠오릅니다^^ 세미나 없는 토요일 점심에 저는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과 밥한끼 했어요. 출장부페는 가성비는 좋은데 두 번은 먹기 싫은 맛이더군요. 스르륵님 댁에서 맛본 비빔밥과 두릅.돗나물이 훨씬 맛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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