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달] 25번째 3월호 다시보기

일리치약국
2024-04-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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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vol. 25
 
‘건강 한달’은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일리치약국의 뉴스레터입니다. 공간은 작지만, 이야기는 넘치는 일리치약국의 ‘우당탕탕’ 성장스토리를 전해드립니다. ‘건강 한달’을 당신의 상비약으로 체크해주세요.
 
contents
고사를 지냈습니다! | 세 번의 깊은 숨 
약국 옆 책방 | 일리치약국의 밑줄 | 나무 위에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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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를 지냈습니다!

 

 

  고사를 지내야 할까?

  공동체는 여러 일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또 생겨난다. 자누리생활건강, 길쌈방, 이어가게, 주술밥상, 청년협동조합 길드다, 쿠키무이, 일리치약국과 용기네가게 등등 우리 공동체에도 참 여러 일들이 생겼고 더러 사라졌다. 올해 들어 새로운 일이 출발했다. 2월 15일, ‘로이, 기쁨이 되는 차’(이후 로이약차)의 개업식 겸 고사가 있었다. 사업자등록증 상 개업일은 작년 12월 26일이지만 날이 좀 따뜻해지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고사를 지내자고 문탁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로이약차 스텝들은 무슨 고사씩이나? 하는 생각이었다. 떡 해서 함께 먹고 간단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번거롭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사업이 잘되기를 빌고 싶은 마음에 고사를 하기로 했다.

 

  공동체에 들어와 3번 정도 고사에 참여했다. 청년협동조합 길드다와 쿠키무이 오픈 때는 축하해주러 갔고 일리치약국과 용기네가게 오픈 때는 약국의 주체로 참여했다. 이번이 4번째 고사였다. 길드다 오픈 때 동물권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나무로 돼지머리를 만들어 고사를 지냈다. 나무 돼지머리는 이후로 고사를 지낼 때마다 귀하게 쓰인다. 이번 고사상에도 어김없이 나무 돼지머리를 올렸다. 거기에 로이약차의 제품들, 친한 목수가 제작해 준 작은 나무 간판, 꽃꽂이 수업에서 온 꽃바구니들, 친구가 선물한 과일과 떡이 올라가니 그럴싸한 하이브리드적인 고사상이 되었다.

 

  전통적인 규칙을 벗어난 고사상을 차려놓고 우리는 절을 했다. 이런 고사상이라도 괜찮은 걸까? 고사를 지내는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새삼스럽게 이런 물음이 내 속에서 일어났다. 고사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기운은 없어지고 복은 오도록 집안에서 섬기는 신에게 올리는 제사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 사전적 의미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로이약차를 시작하는 나의 마음에는 약차가 잘 팔리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풍요로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고사는 나쁜 기운을 없애고 복을 비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그 풍요로움은 그저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나쁜 기운이 그저 생긴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살풀이를 했다

  고사 때 축문을 읽는 순서가 있었다. 공동체 연장자 가마솥 선생님께서 고사 전날 목욕재계하고 정성스럽게 붓으로 쓴 축문을 직접 읽어주셨다.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축문을 들었다. 특히 살풀이 대목은 유쾌하면서도 가슴에 와 콕콕 박혔다. “이 말 달라 저 말 옮겨 동네방네 불란살(不亂煞), 보냈는데 못 받았다 도적(盜賊) 난다 실물(失物)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사장없는 상하관계살, 나는 좋아 성격 몰라 상처 받는 MBTI살, 자그만 일 생채기내는 이웃지간 훼살살, 하는 일이 산더민데 책 보고 싶은 가방끈살, 아침까지 좋았는데 점심 먹고 눕고 싶은 찌부둥살, 오늘은 괜히 먼 산 보고 싶은 왠지모를살”.

 

  고사의 제사장이 특별히 살풀이에 넣어달라 주문했다는 ‘훼살살’. 고사를 통해 없앨 수 있다면 가장 없애고 싶은 나쁜 기운이다. 공동체에 여러 사람이 모여 복닥거리다 보면 별일 아닌 일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작은 공동체지만 그 안에서도 이해관계가 갈릴 때가 있다. 그 이해관계라는 것도 실상 마음이 풀리면 별것 아닌데 마음이 꽁하면 첨예해질 수 있다. 일리치약국과 같은 공간을 나누어 쓰는 에코실험실 친구들과도 소음 문제나 공간 문제 등으로 인상을 찌푸린 적이 종종 있었다. 로이약차와도 공간을 쉐어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공간 활용이 필요해졌다. 함께 모여 논의했지만 다르게 이해한 부분도 있어서 실랑이가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지고 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축하해주기 위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모인 친구들의 얼굴을 본다. 그들이 전하는 덕담을 듣는다. 서운함은 사라지고 가슴속 깊이 고마운 마음이 솟는다. 몸을 낮춰 절을 하면서 살들이 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좁아터진 내 속 때문에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함께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을 텐데…. 친구들과 나의 본심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문은 불에 태워져 공중에서 재가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창밖에는 서설(瑞雪)이 내리고 있었다.

 

   함께 모이자!

  문탁 선생님은 A4 용지 한 장에 걸쳐 써온 긴 축사를 했다. 지난 14년 동안 공동체 내의 수많은 크고 작은 실험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다고 하셨다. 또 내부의 이질성과 트러블들이 지혜와 창조와 생성의 역량으로 만들어지길 희망한다고 덧붙이셨다. 힘들지만 사이좋게 지내자는 말씀이었다. 공동체를 세 개의 단위(문탁네트워크,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에코실험실 파지사유)로 운영하는 실험을 시작하는 시기와 코로나 시기가 맞물렸다. 그나마 매년 열리던 축제마저 사라져 모두가 모일 일들이 점점 줄었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오해들이 좀 쌓인 것 같다. 이를 의식한 축사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좋은 일들만 생길 수 없다는 것이 기본값일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주기적으로 한 장소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고 떠들며 나쁜 일은 털고 좋을 일을 도모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실패, 이질성, 트러블 등은 그런 기회를 틈타 어떤 의미로든 정리가 되어야 그저 나쁜 기운으로 남지 않고 또 다른 일들을 도모하는 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사를 지내고 나서 알았다. 공동체는 함께 하는 리추얼을 통해 다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고사는 천신과 지신에 올린 제사였다. 즉 우주 만물을 향한 의례였던 거다. 최근 카렌 암스트롱의 『성스러운 자연』을 읽고 있는데, 사람들은 제의라는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적 장치를 통해 자연의 힘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연의 힘은 모두를 하나의 종합된 전체로 끌어들인다. 그 때문에 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 물체도 나름의 생명을 갖고 모두 똑같은 존재 양식에 참여하여 서로 영향을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자기중심적이며 제한된 세계관 속에 갇힌 자신을 자기로부터 끄집어내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엑스타시스’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얽혀 살면서도 위험할 정도로 서로 소외된 상태인 오늘날에는 자신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나무 돼지머리를 올린 하이브리드적 고사상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한 것 같다. 고사를 지내면서 우리 또한 좁은 자기의 경계를 넘어 더 확장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교하게 고사를 계획하며 마음을 쓰고 제사장이 되어 진행해 주신 자누리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이다. 공부하는 공동체여서일까? 공동체의 연장자들이 꼰대력보다는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고 돌보고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공동체에서 열 살이나 나이를 더한 나도 이제 좀 ‘어른’답게 변모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함께 모여 얼굴 보고 이야기할 일들을 더 만들어야겠다. 우선 여기저기 더 기웃거려보려고 한다. 문탁네트워크에서 하는 세미나에, 에코실험실 파지사유에서 하는 강의에 신청 댓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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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깊은 숨
 

  예쁜 언니를 따라 수련을 시작한 나는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 언니들은 몸매와 얼굴만 이쁜 것이 아니라 근력도 좋았고 유연성도 좋았고 그래서 체력도 좋았다. 그 중 아무것도 장착하지 않은 나는 실패의 쓴 맛만 맛보고 있었다. 요가의 힘든 점을 꼽으라 하면 첫 번째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아사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몸이 굉장히 아프다는 것이다. 요가 입문 시절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첫 번째였다. 한 번의 수련 시간 동안 수리야나마스테(태양경배 자세)는 약 5~6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반년이 넘도록 기본 아사나가 되지 않았다. 모든 동작이 어려웠지만 차투랑가 단다아사나(플랭크)-우르드바무카 스바나아사나(업독)-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다운독)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배와 팔, 다리가 힘이 없어 어깨로만 버티다보니 어깨와 목주변에 부상이 자주 생겼다. 침을 맞아가며 매트 위에 섰지만 부상에 대한 기억은 그 아사나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었다. 플랭크 이전부터 아플 수 있다는 걱정이 올라왔고 그 아픔에 대한 기억은 몸을 더 굳게 만들어 그 동작을 하지 않고 넘기거나 흉내만 내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수련을 이어갈수록 자신감보다 해도 안된다 패배감이 짙어졌다. 그만해야 되나?

 

  그만둘 이유도 있었지만 그만두지 못할 이유도 있었다. 아사나의 흐름을 따라가진 못했지만 팔뚝과 뱃살이 약간은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언니들이 입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레깅스 요가복을 구입했다. 새 요가복을 입으려면 요가 클래스를 중지할 수 없었다. 내친 김에 요기니라면 필수인 개인 매트를 장만했다. 그것도 비싼 것으로다. 비싼 요가 매트는 펴영~~~생 쓸 수 있는 것이라 굵은 소금으로 매트를 박박 문지른 후 약 두 시간쯤 절인 다음 헹구어 사용해야 한다. 이 복잡한 과정을 모두 마치니 나이키 모델 같은 프로페셔널 요기니가 된 듯했다. 새 매트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수련하는 기분,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를 할 때 손이 밀리지 않는 느낌, 다른 사람의 땀 냄새가 아니라 나의 땀 냄새가 베인 매트 위에서의 사바아사나를 할 때의 편안함. 몇 달 동안 그 기분을 즐겼다. 아이템 발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버티게 했다. 더 할 수 있을까?

 

  그만둬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를 번갈아 고민하다보니 요가가 즐거운 수련이 아닌 고행이 되어갔다. 워밍업 단계를 반년이 넘도록 버벅거리고 있다면 난이도 있는 자세는 언제 한단 말인가? 해도 되지 않는 것을 왜 난 붙잡고 있는 것일까? 징징거리는 푸념들이 머리 속에 한 가득 들어앉아 드러나고 있었을 터였다. 마침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웃카타아사나 버티기를 하고 있었다. 고통에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어 자세를 풀고 돌아오려 할 때, 요가 선생님의 티칭이 귀에 들렸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깊은 숨을 세 번만 쉬어보세요” 허벅지 안쪽은 이미 터질 것 같았지만 세 번 정도의 호흡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번의 숨을 쉬고 자세를 풀었다. 어제와 똑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한계를 넘은 것 같다는 뿌듯함이 동반되었기에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마음을 바꾸었다. 예쁜 언니는 저렇게 멋진 동작을 해내는데 나는 왜 이게 안되지?가 아니라, 이렇게 더딘데 언제쯤 멋진 동작을 할 수 있는거야?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만의 한계에 도달하면 깊은 숨을 세 번만 쉬어보자고.

 

  인생도 그렇지만 요가도 목표한 곳에서부터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아주 미세하게 알아채기 힘든 곳에서, 그것은 다가왔다. 여전히 매끄럽게 연결시고자 했던 세 개의 아사나는 어려웠다. 하지만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견상자세)에서 비라바드라아사나(전사자세)로 전환할 때, 다리가 복근의 힘으로 당겨져 매끈한 전사 자세가 완성되었다. 이제까진 다리는 무겁고 배에는 힘이 없어 다리가 배꼽까지 밖에 오지 않아 발을 몇 차례 떼어 앞으로 내밀곤 했었는데 말이다. 단 한 차례의 성공이라 여겼는데 반복해도 한 번에 다가오는 다리를 보면서 내 몸이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내가 기특해졌고 그렇게 나아가는 느낌에 내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의 작은 움직임들이 이어져 다른 아사나들도 조금 수월하게 해나가기 이르렀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원하는 세 개의 동작을 물 흐르듯 조용히 호흡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요가를 오래 했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이효리처럼 머리와 다리가 만나는 라자카포타가 돼? 올드보이의 유지태처럼 메뚜기 자세(간다베룬다)는 돼? 라고. 한마디로 어려운 고난도의 동작을 해내야만 요기니라 인정된다는 전제가 바탕이 되는 질문이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안된다고. 어느 순간부터 난이도 높은 아사나의 완성이 목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부단히, 애쓰며 시도하고 있다. 될 수 있는 만큼의 자세에서 세 번의 호흡을 카운팅하며. 이것이 요가 수련을 그만두지 않고 지속하는 나만의 노하우이다.

 

아사나(Asana)요가체위를 말한다. 또는 '요가 자세'이다. 인도어의 원뜻은 "앉는다" 좌법(坐法)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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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친구들
: 부천시 원미구 부일로 287*9 어울채 1층 (부천여고 앞)
 
  

   '책식점’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소떡소떡, 라볶이, 붕어빵 등이 다양한 음료와 함께 준비되어 있는 책방이다. 인근 초등학교 참새들의 방앗간! 북토크, 글쓰기모임 등 여느 책방에서 할 법한 프로그램도 진행하지만, 숨은 보석처럼 ‘스텐딩 코메디’ 공연이 열린다. 개그맨 전유성 덕후인 책방지기 잉어공주님의 알뜰살뜰한 매력이 돋보이는 유머러스하고 러블리한 공간이다. 자영업자는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살아남는다는 웃픈 사연을 나누고 돌아왔다.

 
by 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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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세미나를 위한 책을 ’읽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함께 읽는 방법’을 위한 여러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게 읽기에 대해 고민할수록 읽는 것은 책뿐만이 아니라 나이기도 하고 세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렸을 땐 같이 놀 친구가 없을 때나 책을 읽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놀 친구가 별로 없을 때도 책을 찾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책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다. 이런 변화가 싫지 않다. 오히려 참 든든하다! 아무래도 읽기를 통한 감응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by 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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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
바람을 품고있는 마당에 꼭 심어보고 싶은 나의 ‘핫립세이지!’
by 씀바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나무 위에 씀바귀>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해주신 씀바귀님과 구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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