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7회차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 6~7장

박지원
2024-05-08 06:34
85
  1. 요요샘의 불교 강의
  • 사문 싯다르타를 붓다로 만든 그 깨달음은 사성제, 즉, 고집멸도로 정리된다. 인생은 苦이고, 는 집착에서 비롯되며, 와 집착이 멸한 열반에 이르는 길은, 중도/연기에 있다는 것이다. 중도는 사문과의 차별점이, 연기법은 브라만교와의 차별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중도/팔정도는 고통도 희열도 아닌 평정의 상태를 목표하면서 사문의 극단적인 고행 역시 참된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무상무아의 연기법은 아트만을 부정하면서도 연속성의 세계관을 펼친다.

** 중도에서 ‘중’은 ‘가운데’, ‘적당함’의 의미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치우침의 잘못으로부터 벗어난 ‘바른’의 뜻이며, 연기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바른’의 뜻이다.

  • 독립된 개체란 없으며 모든 현상은 관계/연결 속에서 나타난다는 연기법에 기반한 불교의 인간론과 죽음론은 오온의 결합과 해체로 풀이된다. 오온=색(물질), 수(느낌), 상(인지·지각), 행(의지), 식(의식·판단). 여기에서 포인트는 ‘나’라는 것의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온의 구성체에 불과하며, 죽음은 내가 겪는 것이 아니라 오온이 흩어지는 것이다. 윤회는 재생연결식/재생의식, 바왕가/잠재의식 등등으로 명명된 다양한 의식의 흐름과 물질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고 - 아트만이 윤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저 까르마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 , 열반은 모든 식vinnana이 멈춘 상태, 윤회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 따라서 영혼, 아트만과 같은 고정불변의 경험 주체/개체에 등치되는 ‘나’는 허상이 된다. 苦를 벗어나 열반에 드는 길은 선정/명상을 통해 욕계를 떠나 색계(욕망이 사라진 물질세계)와 무색계(물질마저도 사라진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 책이 기초하는 테라바다(상좌부)/남방불교/소승불교는 초기불교 전통에 따라 각자의 깨달음/열반을 목표로 하는 반면, 북방불교/대승불교의 승가는 중생구제를 위해 무여열반을 유보한다. 아미타불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중생들이 ‘나무 아미타불(아미타불에 귀의합니다)’ 염불하는 것만으로도 극락정토에 갈 수 있도록 하는 대자비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힌두교의 바티 신앙과 결합한 아미타불 신앙처럼 티벳불교도 사자의 영혼을 돕는 기존 전통과 결합한 형태로 볼 수 있다.

** ‘대승불교’, ‘소승불교’라는 명칭은 기존 승가에 대한 비판에서 형성된 북방불교가 자신은 높이고 상대는 무시하는 태도에서 붙여진 것이다. 일종의 P/C(Political Correctness) 위반으로 봐도 될 것인가..?

2. 無의 개념을 극한으로 밀어부치는 연기와 영혼/윤회에 대한 논의

  • ‘나’의 실체, ‘영혼’의 실체, ‘아트만(참나)’의 실체,…, 결국, 실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연속/흐름만 있을 뿐이라는 연기법에서 그 연속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대체로 식vinnana을 곧 파동, 에너지, 정보의 흐름 등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활성도 0에 물질, 100에 기억을 놓는 베르그송도 또 소환됐다. 연기의 설명이 양자역학과 상통한다는 점은, 양자역학 자체의 경이로움과는 별개로 - 나 역시 윤경샘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에 항상 엄청난 경이로움을 느낀다 - , 언제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최신最新의 과학과 호환되는 최고最古의 지혜. 윤회와 열반에 대한 여러 표현과 설명이 순전히 상상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럼에도 절대로 온전히 그려낼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아주 쿨하게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종교의 바로 그 전문성 때문에 접근하기가 참 쉽지 않다. 신의 존재와 교리에 대해 뜨겁게 논쟁하게 만들지언정 ‘믿음’이라는 쉬운 방편을 알파와 오메가로 제시하는 기독교와 비교할 때, 불교는 반反종교적 내지 탈종교적이다. 구원은 신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나를 구원해야한다면, 깨달아야 한다면, 과연 내게 그럴 의향이 있는가. 무아까지 나아가고 싶은 열망이 있는가. 
  • ‘무아’에서 ‘아’가 ego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는 그 극한의 밀어붙임은 어떤 연유인가. 이와 관련해 아트만 상정의 문제점이 논의됐다. 아트만이 궁극적 실재이자 윤회의 주체면서 윤회의 끝이라면 현생은 뭐가 됐든 스쳐지나가는 것일 뿐이므로 현재의 삶에 별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막말로, 막 산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고 아트만 개념에 대한 수정, 보완의 필요성이 대두됐을 것이다. 무아/열반도 아트만처럼 궁극에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아트만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볼 수 있는가. 아트만(참나) 개념은 연속성(윤회)을 개체(나)의 단위에서 생각하게끔 만들면서 - 즉, 내가 연속된다고 믿게 만들면서 - 나를 윤회의 고리 안에 가두기 쉽지만, 무아는 ‘나’라는 것이 없으므로 ‘나의 연속’도 없음을 촉구한다. 삶의 일회성이 인식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망했어도 지금 나는 이번 생에서 해결을 볼 수 밖에 없다, 다음 생의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건가. 아무튼 김영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는 ‘윤회의 윤리화’라는 불교의 공적은 이런 식으로 성립되지 싶다. ‘나의 연속’이란 없다는 견지에서, 티벳불교의 환생 개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윤회/죽음에 대한 상상력으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달라이 라마를 어떻게 뽑을 것인지가 핵심이 되는 모습에서 정치와 종교(영적인 문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을 다시 느끼셨다는 의견이 있었다.
  • 요요샘이 말씀하신 일본 불교의 지장보살신앙(지장보살의 천도역할)과 낙태 이슈, 보다 정확히는 ‘언제부터가 생명이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샘도 어려우셨다는데, 헤투, 미즈코, 미코엔 등의 개념 이해는 차후 도모하기로 하고. 불교에서 의식 그리고 물질에서 의식으로까지의 연결에 대해서도 얼마나 정교하게 들여다 보는지 다시 기대하게 되는 한편 ‘이 높은 진입장벽을 어쩐다’하는 미리-포기 모드가 작동한다. 천도제에서 시작된, 영원히 답도 없고 효용도 없을 것 같은 ‘언제부터가 생명이냐’ 논쟁. 정말 그럴까. 생명을 무엇이라 규정하고 어떻게 확인하는지는 대척점에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와 짝지어질 수 밖에 없다. 죽음에 대한 논의는 그래서 살고자 하는 논의가 된다. 살고자 하는 논의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하고 어떻게 살지 답을 구하게 한다. 무상, 무아에서 ‘무’는 생명과 죽음을 연결짓는 초월로 읽어야 마땅하다. 적멸은 엔트로피와 네겐트로피의 평형으로 꽉찬 여백, ‘비상태의 상태’다. 여기에 허무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3. Zen(일본 선불교)과 무사도와 가미카제

  • 모두 저자가 무사도와 가미카제를 선불교Zen에 연관지은 점 - 그것도 상당히 낭만적인 시각으로 - 을 상당히 불편하게 느낀 듯 하다. 나도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가 실소까지 나왔던 게 생각난다. 서구인의 일본에 대한 이 대책없는 신비주의, 동경, 미화를 한국인이라서 유독 소화를 못하겠는 점도 있겠지만, 타자는 죽음까지도 타자화된다는 사실을 짚어보게 된다. <국화와 칼>의 연장이라는 오리엔탈리즘 비판으로 끝내기에 앞서, 우리가 따져보고 있는 죽음의 문제가 나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안되겠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 가족들의 죽음을 계기로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상실을 겪고 또 겪는 것에 불과했던 게 아닌지 성찰해본다. 근래에 이모의 난소암 4기 소식을 들었다. 엄마와 같은 나이, 같은 암, 같은 몸 상태. 지난 열흘 동안 이모의 난소암에 사로잡혀 나의 생활은 아무 것도 영위하지 못했다. 다시 공부하고 고민하고 연락질을 해대고 방법들을 강구하면서 엄마는 살리지 못했지만 이모는 꼭 살려보자는 의지를 그 짧은 기간에 무슨 신념마냥 활활 불태웠던 것 같다. 그리고 정작 이모의 자식들은 나같이 하지 않는 사실에 너무 놀랐고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이모 죽음의 주권은 이모와 그 가족들한테 있다는 것과 그들의 최선과 선택이 나의 최선과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나의 열성이 그들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멋대로의 월권 그만하고 그들을 존중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나의 일상에 복귀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나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나의 삶과 통합될 때 상실과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4. 결론이 주는 감동과 허탈함 - ‘희생’의 급발진

  • 결론은 죽음에 바치는, 과학으로 쓰여진 레퀴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장엄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허탈감을 느낀 건 느닷없이 전개된 ‘희생’ 강의 탓이다. 앞에서 다룬 종교들을 관통하고 아우르는 화두로서 희생을 논하거나 희생을 기준으로 종교들을 비교분석하여 정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의 내용전개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갑툭튀가 돼버린 결론부분의 ‘희생’론은 자체로는 썩 훌륭한 텍스트였지만 우리가 여러 종교들을 살펴본 취지에 물음표를 던지고만다.
  •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키워드, 핵심적인 이미지이다. 책에 따르면 이슬람교에선 희생 개념이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아 보이고, 불교 역시 마찬가지인데 굳이 대응되는 개념을 찾자면 ‘보시’가 아니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구인인 저자는 서구인 독자들만을 상정하고 이 책을 썼겠거니,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체험한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는 느낌, 진리를 향한 서로 다른 종교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연상하며 책에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결과는 각론들의 한 권 묶음 같은 느낌이다. 이는 아쉬운 대목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종교들 사이의 연결고리와 상호보완 가능성을 찾는 작업은 독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일 수도 있겠다.

 

댓글 4
  • 2024-05-08 11:33

    아! 이모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사이 지원샘이 많이 힘드셨겠구나, 짐작만 해봅니다.
    후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왜 공부하는지, 차분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2024-05-08 15:03

    시간이 지나서 다 까먹고 있었는데, 지원샘 후기 덕분에 다시 상기되고 정리되네요. 고맙습니다

  • 2024-05-09 11:15

    마지막 세미나 참석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밀도 높은 후기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11 15:55

    2주 놀다(!) 보니 그간 세미나 했던 내용들이 머리에서 싸악 사라지고 있었는데, 지원샘 꼼꼼한 후기 덕에 잠들어 있던 기억 세포가 깨어나는 거 같습니다. 세미나 내용에 지원샘의 경험, 날카로운 해석까지 더해져 정말 내용이 풍부한 후기네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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