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차 후기] 규범화 제재

윤해정
2024-04-14 19:56
130

작년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다. 그때 만난 부랑자법과 기계제 대공업의 공장 이야기를 <감시와 처벌>을 읽으면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다.(그만큼 제가 무지했다는...그런데 마르크스가 그토록 감정적으로 토해내는 이야기를 푸코는 참으로 차분하고 세련되고 조리있게 말하네요.) 규율은 법이 아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당연하게 지키며 사는 것은 그것이 일상 구석구석에 교묘하게 침입해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석구석, 교묘하게, 침입, 강제력. 이게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규율이 그렇게 작동한다고 해서 왜 강제력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규율이 사용하는 교정의 방법 중 규범화 제재(normalizing judgement)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우선 나누어지고 측정되는 개인으로부터 축적되는 정보는 그 자체로 정상(normal), 혹은 규범(norm)을 규정한다. 그런데 그 정보에는 굉장히 세세하고 무한히 많은 종류의 것들이 있다. 개인의 키, 몸무게, 외모 등의 신체, 성격이나 성향, 타인과의 관계, 가족구성 등 개인으로부터 모은 정보의 평균, 혹은 개인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 제시되는 수많은 항목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구석구석'이 의미하는 바이다. 사회의 각종 기구에 존재하는 미시적 상벌제도는 이러한 규범과 개인을 끊임없이 비교하여 처벌하거나 상을 줌으로써 개인이 정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정한다. 규율 기구가 이렇게 개인의 일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인데 이건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다. 너 좋으라고, 너 잘 되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 얻을 수 있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말을 잘 들어야 할까. 이걸 고민하게 만드니, 참으로 교묘하다. 하지만 규율은 지키지 않는다고 사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으니 사실 '반드시' 지켜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규율의 기구에서(가정과 가족도 물론 그 예외가 아니다) 오랫동안 훈련받으면 규범화한 신체가 되고 만다. 그 신체로 생각하면 규율이 제시하는 것들이 자명한 자연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진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규율은 강제성을 가진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법적인 강제성도 없는 것이라면,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따르는 것이 규율이라면 그냥 내가 따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무언가를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런데 행동을 하는 나의 신체, 이 신체가 문제이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규율이 내 몸에 입력한대로 움직이니 말이다. 아무리 다르게 행동하면 된다고 생각해도 행동의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은 규율이 입력한 코드이다. 생각과 신체가 조금씩 조금씩 톱니바퀴에서 벗어나도록 끊임없이 공부하면 될까. 가만, 근면하게 공부해서 이런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도 규율이 나에게 입력해준 것 아니던가.

댓글 1
  • 2024-04-19 16:21

    ㅎㅎㅎ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감시와 처벌> 읽기 입니다.
    생각과 몸(신체)을 분리할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생각대로 몸이 안 움직여준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도.
    저는 '기본적인 윤리마저 부정(?)하라는 건가?, 그건 아닌데 내가 너무 앞서가나?, 도대체 무슨 말이지?' 하는 생각에 머릿 속이 아주 복잡하더라고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어떤 것(삶의 기준이랄까)이 윤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걷어차버려야 한단 건가? 뭐라는 거야? 싶은 거죠. 그래서 저는 또 '윤리'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또 각 잡고 공부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늪에 빠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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