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키워드로 읽는 생태적 죽음 - 4주차 후기

도라지
2024-02-03 23:07
281

세 번째 키워드 : 좋은 시체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케이틀린 도티

 

 

"현대 일본에서는 전문 직업인들이 상업적인 장례식을 준비하고 마련하고 지휘하여, 유가족은 오직 돈만 내면 된다." (p.163)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작년 아버지 상을 치르며 나 또한 그랬으니까. 상조 회사의 금액별 상품은 관부터 수의, 입관 용품, 유골함까지 모든 것을 꼼꼼하게 다 갖추고 있다. 유가족은 예를 다하여 좋은 상품(비싼 상품?)을 골라 결제하면 장례 치르는 내내 손에 물 한방울 묻힐 일이 없다. 장례기간 동안 여러번 의문이 들긴 했었다. 하지만 장례에 대해 아는 건 1도 없으니 장례 지도사가 하라는 대로 할 뿐. 심지어 아버지 잘 부탁드린다며 수시로 봉투까지 공손히 바치기까지 했었다.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시신을 대하는 색다른 방식을 보기 위해 각 대륙의 여러 나라를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하고 이 책을 썼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외 화장,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의 '망자의 날' 행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인간 부패 연구소,  스페인의 장의사, 일본의 죽음 관련 풍습, 볼리비아의 '냐티타' 축제, 파르시교도의 독수리 장례, 티베트의 '천장'이다.

 

아버지를 상조회사에 전달하듯 맡겨 장례를 치르고 후회가 많았던 나에게 인도네시아 타나토라자의 마네네 의식과 일본의 라스텔은 죽은자를 산자들의 세상에서 빨리 지워버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인상 깊었다.

 

타나토라자에서는 죽음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갈라놓지 않았다. 죽음은 견고한 경계가 아니라 넘나들 수 있는 경계. 그들은 죽은지 여러해가 된 가족(미라 상태임)과 함께 지내고 밤이 되면 재워준다. 토라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애니미즘적 사고에는 자연계의 모든 존재 심지어 산자와 망자의 사이에도 경계가 없다. 토라자의 '마네네'의식은 가족의 시신을 관에서 꺼내 목욕시키고 새옷을 입혀주는 전통 행사다. 일종의 제사의식이 아닐까 싶다. 이런 공동체 문화를 접하고 자라면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도 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살아서 함께였고 죽어서도 함께 산다.

 

나는 아버지가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으시고도 한참 동안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었다. 죽은 사람은 싸늘하게 식는다고 들었던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이송 차량이 올 때 까지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아직 온기가 남은 아버지를 차가운 병원 안치실로 보내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토라자 사람들이 가족의 시신과 함께 지내는 모습이 애틋하고 살짝 부럽기까지 했다.

 

일본의 요코하마의 '라스텔'은 시신을 위한 호텔이다. 라스텔에는 유족들이 망자와 함께 머물수 있는 객실이 있다.

 

"...재빨리 시체를 멀리 가져가버리면 유가족이 죽음을 곰곰이 바라볼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든요"(p.173)

 

"그들은 고인이 된 어머니를 화장로 속으로 그냥 사라지게 두지 않는다. 어머니와 함께 앉아서, 어머니에게, 그러니까 그 시신에게 그동안 어머니로 있어준 것에 고마움을 전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는 것이다."(p.174)

 

현재 장례문화에서 도시인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라스텔 같은 장소가 아닐까? 낯설고 의식적인 규범을 벗어나 살았던 방식으로 편안하게 고인과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이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멕시코의 망자의 날 행사가 픽사 애니매이션 '코코'의 배경이었다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다.  또한 티벳의 '천장'은 화장을 할 나무도 매장할 땅도 부족해서였다는 것도 흥미롭게 새로 알게 된 점이다.

 

책의 마지막에 케이틀린 도티의 고백도 흥미롭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천장이라는 것을 발견한 뒤로, 나는 죽고 나서 남겨질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짐승에 의한 매장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인간적인 시체 처리 방법인 것 같다. 그런 매장은 새로운 의례를 제공하여, 죽음이라는 현실과 이 행성에서 우리가 진정 있어야 할 곳에 한층 더 가까워지도록 할 것이다."

 

의외였다. 나는 그가 발랄한 시체로 친구들과 머물기를 바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ㅎㅎ

 

4회에 걸쳐 문탁쌤의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자료들로 구성된 강의와 살아있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 의문을 던져준 텍스트들 덕에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남편과 서로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걱정마! 내가 잘 죽여줄게!"라고. 이 말은 "잘 죽도록 보살펴줄게~"이며 "네 시체를 잘 처리해줄게~"도 된다. 과연 누가 먼저 드러누울지는 모르지만 서로를 위해 잘 늙다가 죽을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들으며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친구들이 원한다면 앞마당 어디에 잘 묻어줄까? 라는.

누구는 왕벚 밑에 누구는 목련 밑에 누구는 자두나무 밑에...나무들은 무럭 무럭 잘 자랄 테지.

아! 그런데 내가 먼저 죽을 수도!ㅎㅎ

 

(강의를 듣는 동안 발효 음식에 꽂혔다. 최근엔 '가자미 식혜'를 만들었다.  분해의 맛! 상당히 매력 있다. 시체에 엿기름을?  죄송합니다~)

 

 

댓글 5
  • 2024-02-05 08:10

    도라지샘, 잊지 않고 후기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강좌의 마지막 후기는 잘 안 올라오더라구요.
    덕분에 다시 한번 홈피에 "강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저도 강의 준비하면서, 자료 찾으면서, 정리가 다시 한번 되었습니다.

  • 2024-02-05 18:48

    생산보다 분해에 초점을 두는 애니미즘적 유물론,
    고래 사체에 공동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체들,
    두개골을 모아 보살피는 사람들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생태적 죽음이 시체와 유물론적으로 관계맺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린 마굴리스가 말한 '물질의 윤회'도 떠오르고요.
    도라지샘 불교 학교 에세이도 생각났어요. 남겨진 유품과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윤회하는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뭉클했습니다..

    '시체를 퇴비로 만들기'에서는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아 미라로 발견되는 동물들 생각이 났어요.
    살처분으로 매립된 존재들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를 언젠가는 가까이서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탁샘의 강의를 들으며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강의 덕분에 매주 죽음이 성큼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어요. (오싹하면서도 자유로워지는ㅋ).
    열정적인 강의 감사드리고, 언젠가 이어질 강의도 기대할게요!^^

  • 2024-02-05 23:24

    도라지 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과의 이별 과정을 연결해주셔서, 현실의 문제는 참 간단치 않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됩니다.
    이 강좌를 들으며 제일 먼저 '화장'이 반환경적이라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깔끔하게 태워 재만 남기는 화장은 나름 쿨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음에 대해서 정말 1도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됐습니다. 인간도 누군가의 먹이라는 사실. 발 플럼우드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이기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두번째 충격. 이건 적잖은 걸 넘어 콕 집어 표현할 수 없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위에서 마지막 시간은 죽음, 그 이후를 대하는 현실적 대안들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사후 나는 어떤 방식으로 먹혀야 할지, 다소 아스트랄한 시간을 통해 삶과 죽음은 또 그렇게 분리할 수 없음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좋은 강좌 열어주신 문탁 샘 고맙습니다.

  • 2024-02-06 16:27

    시체에서 분해로~~~다시 가자미식혜로 ㅋㅋㅋㅋ 이런 맥락은 어떻게 이어질까요? ㅋㅋㅋ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4-02-06 23:13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기억이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4강의를 통해 '죽음' 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지금 여기에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악어의 눈' 을 통해서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이었습니다. 매 강의 정말 풍부한 예시로 설명해주신 문탁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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