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해방> 끝났어요. 이런 소감을 나눴어요.

문탁
2023-08-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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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6시반에서 7시20분까지 줌으로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을 읽었습니다. 재미나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일요일에는 각자 글을 써와서 발표하면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거 여기에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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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을 읽고   / 천유상

 

 

 

1. 나는 채식을 할 수 있을까?

 

“다른 동물 고기를 먹는 깊숙이 뿌리박힌 습관을 깨버릴지 아니면 자신이 내린 도덕적 논의의 결과에 따라 살고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지 선택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논의를 멈추어 버린다. ” (352쪽. 「동물 해방」. 피터 싱어)

 

 

‘과연 내가 채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할 때 대부분 고기집 아니면 생선 요리집을 간다. 맛있다는 이유이지만 사실 그것이 정말 맛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맛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채소만으로 요리를 할 줄 잘 모른다. 나물 무침이나 샐러드와 같은 채소 요리는 나에게 손이 많이 가는 요리처럼 느껴지고 샐러드와 같은 생채소를 나는 잘 먹지 못한다. 고기는 그냥 굽기만 하면 되니까 손이 많이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퇴근하고 난 후 저녁 식사를 차려야 할 때 그냥 ‘손쉽게’ (손이 많이 가지 않기에 시간도 단축되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는 이유로) 고기를 구워서 먹곤 한다. 공장식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의 동물에 대한 잔인한 학대는 모르지 않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영화 ‘옥자’(봉준호)와 같은 매체를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했다. 문제는 인식의 전환은 있었지만 이것이 실제적 삶에서의 ‘태도’ 변화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그리고 나도, 고기의 부드러움이나 감칠맛을 논하며 육식에 대한 불편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집어던져 버렸다. 책에서 ‘양심에 부담이 생겨 책임감을 느낄 어떤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욕구’ (368쪽)를 지적한 부분에 많이 공감이 갔다. 알고 있지만 굳이 들쳐내 보고 싶지는 않은. 고기집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 - 나의 체감상 고기집은 예전보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을 보면서 ‘도대체 이 많은 고기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일부러 안한다는 것이 더 맞다).

 

「동물 해방」 책을 읽고 있은 지난 일주일, 어느날 저녁 식사 준비로 고기를 꺼내 들었다. 예전에 사서 냉동해 둔 고기였는데. 잠시 먹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고, 해동하는 과정에서 피비린내가 유난히 비릿하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 피비린내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했다. 나의 한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로 정했다고 한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차근차근 고기와 멀어질 수 있을까.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2. 의문점: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

 

피터 싱어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유로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을 구분하는 종차별주의에 대한 논리적 반박으로 ‘지적’ 능력이 동물보다 낮다고 여겨지는 ‘유아, 지적 장애인, 반사회적 정신질환자,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403쪽) 이 동물이 가질 수 없는 어떤 존엄성 또는 가치가 있는가? 라며 되묻는다. ’영구적이고 심각한 결함을 가진 인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조금 의아한 지점이었다. 쾌고 감수 능력을 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내세웠지만 인간 안에서도 ’지적‘ 능력으로 인간을 구분짓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사용한 그의 논거의 본질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건인가? 혹은 내가 ’그래도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다분히 종차별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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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 박서영

 

 

나는 육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복잡하게 조미한 음식도 선호하지 않는다. 원재료에 살짝 간을 한 정도의 담백한 음식들을 좋아한다. 겨울보다 무더운 여름을 더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름에는 채소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질적으로 찬 음식을 잘 먹지 못하여 겨울에는 생야채와 과일을 먹기 힘들다. 어릴 때 고기반찬이 올라오면 문득, 이 고기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었을 텐데 지금은 죽어서 내 앞에 놓여있네 라는 생각이 들어 먹기를 주저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으레 먹을 때는 그런 생각 말라고 어른들이 채근하곤 했다. 접시에서 잘게 썰어진 채로 꿈틀거리는 산 낙지를 처음 보았을 때 비명을 질러 써빙하는 사장님을 놀라게 했던 적도 기억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에 걸쳐 채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후, 나는 스스로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지 오래이다.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먹는 것과 종차별주의 시각에서 육식을 반대한다. 내 생각은 저자와 좀 다르다. 나는 먹거리를 구하는데 있어 미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선택하지 않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식동물들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사냥하지 않는다. 사냥을 할 때도 쾌고 지수의 정도에 따라 사냥 대상을 가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잡식인 우리 인간들이 식재료화 할 수 있는 것들은 무한히 많다. 그것 들 중 무엇을 기준으로 먹거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가 먼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채식을 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실천적 문제이다. 채식을 하기 위해서는 생활 전반을 바꾸어야 한다. 빵, 과자, 각종 소스 등 우리의 먹거리 전반에는 동물성 재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들을 모두 중단하고 스스로 새로운 식단을 구성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나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예전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있던 중에 어쩔 수 없이 물티슈를 사용했을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신세계를 경험한 듯 너무나 편리했다. 그 때 나는 내 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기준은 두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채식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처럼 채소 위주로 먹으면서 간간이 섭취하는 동물성 식품까지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면서 나를 통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동물해방은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대량생산 체계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생산체계를 바꾸면 생산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상류층만이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므로 먹거리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는 점을 지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의식주에 있어 물질적 불평등은 이미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주택 평수, 각종 명품 제품들, 이름도 낯선 값비싼 식재료들, 소비재에 있어 이미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데 유독 육식에 대해서만 평등해야 할까. 또 하나는 동물해방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종차별 주의와 쾌고 지수가 식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기술했듯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확인되지 않는 대상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식물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길만이 동물을 해방하고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제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유일한 방법일까. 단순한 인간의 호기심에서 자행되는 불필요한 동물실험들, 인간의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잔인한 방법으로 사육되는(아니 기계처럼 생산되는) 가축 사육을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바꾸어 나갈 수는 없을까.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동물과 인간이 상생하는 길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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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잘 키운 고기를 먹기는 어려운 일일까? / 코투

 

 

일주일 동안, 아침 짬을 내어,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을 읽자,는 문탁 샘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작년 가을 서문만 읽고 책꽂이에 꽂아둔 같은 제목의 책이 생각났다. 지금이아니면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몰라. 게다가 그때는 마침 일주일간의 휴가기간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주저없이 신청했다. 이 책은 작년 여름에 은퇴한, 고기를 먹지 않는, 어쩌다 그와 식사를 하게 될 때마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얼버무린, 한쪽 귀가들리지 않는, 동료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문탁 샘이 제안한, 돌아가면서 한 챕터씩을 5~10분 안에 윤독하며 읽는 것은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무조건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도 책만 읽으면 돼서 부담이 없었다. 짬을 내어 읽자고 했지만, 어떤 날은 한 장을 읽는데 하루 종일이 걸리기도 했다. 이제 책을 다 읽은 내 마음은, 가볍기보다는 사실 좀 무겁다.

 

피터 싱어는 인간 평등-인종 평등, 성평등, 장애인 평등-의 토태가 되는 도덕적 기준을 인간 아닌 동물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종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 (자기와 다른 종인) 동물을 그렇게 학대하는 것은,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대하는 것이나 남성이 여성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당장에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논거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나는 (피터 싱어와 달리)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런 쾌고 감수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2장과 3장의 내용이었다. 그동안 공장형 축사 및 동물 실험의 문제에 대해 영화나 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간이 얼마나 동물들을 잔혹하게 다루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다양한 동물들의 고통에 찬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정말 읽기 괴로웠다. 싱어는 이런 동물들의 비참함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잔인한 동물 실험이나 이런 공장식 가축생산 등의 현실을 주변에 널리 알리기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채식주의자가 되자고 강하게 설득한다. 채식주의는 일종의 불매운동이다. 소비자가 부드럽고 맛있는 고기를 값싸게 구입하길 원하는 한 생산자들은 이런 공장식 축산 관행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쩜 이 책을 읽은 후 채식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어머니께서 염소 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나가 염소탕을 같이 먹고 왔다. 어머니는 지난 겨울 코로나로 인한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나오셨다. 의사는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으니 잘 드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집 고기는 부드러워, 다른 집 고기는 질긴데...” 이렇게 말하며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 곁에서 나도 불편한 마음으로 먹었다. 그런데, 피터 싱어도 긍정한 그러나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 ‘정말 건강하게 잘 키운 고기를 먹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들은 어른들의 얘기는 이랬다. 뜨거운 물 마당에 함부로 버리지 마라, 수채 구멍에 사는 벌레 죽을라. 오늘 소가 일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지쳤을텐데, 돌아가는 길에 짐까지 무거우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러니 그의 짐을 좀 덜어서 우리가 지고 가자. 이런 마음이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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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을 읽고 따라 나오는 질문들/요요

 

 

피터싱어의 동물해방에 대한 일관된 논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쾌고감수능력이 있는 존재는 이익/이해관계?(interests)을 가질 수 있고, 이 이익이 도덕적 지위의 근거가 된다. 즉 동물은 재산이나 소유물, 혹은 인간을 위한 먹을거리나 실험대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고,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면 마땅히 인간과 동등하게 이익을 고려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익의 충돌이 생길 때 피터싱어의 판단근거는 인간의 입장이나 동물의 입장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어떤 선택이 고통을 최소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 그것을 피터싱어는 ‘종차별주의를 피하는 중도적 입장(57)’이라고 표현한다. 무엇이 고통을 최소화하는 중도적 선택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피터싱어의 입장에 따르자면 선택의 결과를 생각해보라는 것일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 미래에 대한 예측일 뿐이지 않는가?)

 

@@피터싱어는 생명의 가치에 경중이 있다는 판단의 문제는 고통의 최소화라는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다.(59) 인간과 동물 중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정상인의 목숨을 우선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종차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정상인이 갖추고 있는 특징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 정상인이 갖는 특징을 갖추지 못한 지적 장애인의 경우 동물보다 언제나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지적 장애인은 동물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은 장애인 차별주의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종차별주의(speciesism)는 동물해방에서 가장 중요한 슬로건으로 등장한다. 종차별주의는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인간중심주의로 바꿀 수 있다.(다른 종이 자신을 우선시하는 차별주의가 아니라 인간이 다른 동물에 대해 갖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터싱어는 모든 존재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존재론적 평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가 아니냐가 판단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식물이나 하등동물 그리고 생명이 아닌 자연물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 입장은 다소 곤혹스럽다. 가령 버섯과 같은 균류를 생각해보자. 균류가 고통을 느끼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균류가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분해)를 생각해보면 고통을 느끼는가 아닌가의 여부로 이익을 갖는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이 옳을까?

 

@@나는 채식주의가 중요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실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페스코 베지테리안이 된 후 생태적 감수성과 모든 종류의 살생과 인간중심적 태도에 더 민감해지고 깨어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어제 식구들과 함께 갑각류를 먹었는데, 주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면의 갈등이 심각했다. 결국 나는 종차별주의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채식주의의 확대가 식물성 기름에 대한 요구의 증가와 아마존 우림의 파괴를 촉진하고 있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채식주의가 채식주의적 미각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될 때 그것은 미식으로서의 육식주의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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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맞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 문탁

 

 

 

 

1.나에게 동물이란?

 

나는 동물 없는 곳에서 자랐다. 서울 중구에서 나고 자란 아스팔트 키드가 야생동물을 만날 길은 없었으며,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개’는 예외였다. 우리 집은 ‘개’를 키웠는데, 당시에는 이웃들도 대부분 ‘개’를 키웠다. (이에 비해 고양이를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리고 그 ‘개’는 딱히 지금의 ‘애완동물’이라는 말에도 혹은 ‘반려동물’이라는 말에도 잘 들어맞지는 않는, 그런 존재였다. 묶여 있었고(산책 같은 것을 시킨 기억은 없다.) 집을 지키는 것이 주 업무였고, 인간이 먹다 남은 밥을 먹었지만, ‘학대’ 받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개를 좋아했다. 우리 집 개의 이름은 ‘쎈’이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세상은 바뀌어 어느 집(=아파트)에서나 눈이 동그란, 귀가 쫑긋한, 인형처럼 작고 예쁜, 못난이 인형처럼 귀여운, 강아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맨날 강아지 타령이었다. 난 단호하게 ‘안된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손 많이 가는 그 강아지를 누가 밥 주고 똥 치우고 산책시키냐 말이다. 난 내 새끼도 버거웠다.

 

수유너머 시절의 어느 날, 대학 강의를 하고 온 친구 한 명이 씩씩댔다. 학생 중 한 명이 “개를 끌고”^^ 강의실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 대학 캠퍼스에서는 반려/애완동물을 데리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강아지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세대이니 영화 <내 마음의 풍경> 속 전도연이 동생을 업고 등교하듯, 그렇게 동생인 강아지를 데리고 학교에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다 같이 입에 거품을 품고 ‘동물의 오이디푸스화’(들뢰즈) 현상에 대해 분개하곤 했다.

 

다시 세월이 지났고 나는 문탁에 있다. 그러고 어느 날 ‘동물권’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들려왔다. 2016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동물권’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황윤 감독을 비례대표 1번으로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중요도와 대중적 설득력 양 측면에서 동물권이라는 아젠다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2017년에 미국에 갔을 때 들른 뉴욕의 독립서점에서는 한 코너 전체가 동물권 관련 책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동물권’은 그곳에서는 이미 ‘힙’한 아젠다였다. 함께 갔던 후배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 공리주의적인 저작이라고 알려줬다.

 

결정적인 모멘트는 몇 년 후, ‘직접행동 DxE’의 활동을 소개한 홍은전의 칼럼이었다. 그녀 역시 2020년경 동물권과 만나면서 두 번째 세계관의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매우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동물, 청년, 여성, 장애가 교차하는 가장 퀴어한 영역이었다. 새로운 저항과 해방의 잠재력이 그곳에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새벽이 생추어리>도 알게 되었고, 작년엔 비인간 동물 탐구를 위한 <어바웃 식물>/ <어바웃 동물> 세미나를 열었고, 올해 초엔 ‘페스코’를 선언했다.

 

 

 

2. 음, 이래서 <동물해방>이 바이블이구나!

 

그간 <동물해방>을 읽지 않았던 것은 바빠서이기도 했지만, 뉴욕 책방에서 들은, 그것이 공리주의적 텍스트라는 정보 때문이기도 했다. 읽을 것도 많은데 굳이 공리주의자의 책을? 하지만 역시 ‘고전’은 직접 읽어야 한다! 이 책은 내 선입견에 비해 훨씬 중요한 책이었다. 1975년에 나온 이 책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양 차원에서 상당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론적인 측면. 그의 동물에 대한 논의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동물보호(복리)가 아니라 도덕철학의 차원의 동물해방이다. 동물에 대한 차별과 학대는 당연한가? 근거가 무엇인가?  혹시 당연하지 않다면? 즉 인간과 동물이 평등하다면? 그렇다면 동물에 대한 차별과 학대(종차별주의)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바로 동물해방이다!

 

싱어의 논리를 좇아가보자. 가장 먼저 그는 ‘평등’이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할 때, 어떤 점에서 평등한 것일까?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언어를 쓴다는 이유로? 그렇다면 이성을 상실했거나 아직 언어를 쓰지 못하는 유아, 지적장애인, 치매 노인 등 한계상황(marginal)의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학대하거나 다른 이성/언어적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해도 되는가? 어떤 점에서는 그들보다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개, 돼지 등이 지능이 더 높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가장자리 논증(argument from marginal cases)’이다.) 

 

피터 싱어는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cription)이다.”(p33) 라고 한다. 그리고 벤담을 따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유무”가 그들이 평등한 배려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한다. 어떤 존재가 쾌고감수능력을 가진다면, 그 점에서 모든 존재는 동등하다. 동물도 쾌고감수능력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당연히 그렇다!), 인간과 동등한 존재이다.

 

두 번째,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이론적인 접근보다 훨씬 감명받은 부분은 이 책이 갖는 실천적인 소구력이다. 실험동물과 가축이 어떤 대우를 받는가를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폭로하고 있는 2장(실험동물)과 3장(공장식 축산)은, 그리고 우리가 채식이라는 간단한 실천을 통해 동물과 생태계 전체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가를 논한 4장은, 이 책이 1975년에 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선구적이다. 안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면, 조금은 달라진다.

 

나는 이제 여기 나오는 이야기를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은 새삼 인상적이었다. 산란닭의 최악의 고문이 산란과정이라는 것, 둥지가 아닌 배터리 케이지에서 알을 낳는 행위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똥을 누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이야기(p204), 그리고 우리가 송아지 고기를 먹고 1파운드의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는 송아지가 21파운드의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공장식 축산은 ‘거꾸로 작동되는 단백질 공장’이라는 점(p287), 무엇보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소 목초지로 사용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개척하고” 있고, 그 나라의 빈곤층이 아니라 선진국 중산층 식탁에 고기를 올리기 위해 “지난 25년 동안 중앙아메리카 열대우림의 거의 절반이 파괴”되었는데, 지구상의 동식물종의 90%가 적도 부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목초지의 개발은 대규모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293)은 여전히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팠다. 우리는 이 더위를 겪어도 싸다.

 

 

3. 2023년, 다시 동물권에 대한 몇가지 질문들

 

동물권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꽤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문학계간지에서도 철학계간지에서도 과학잡지에서도 동물권을 특집으로 내고 있다. 나에게는 지금 세 가지 정도가 계속 고민거리이다.

 

첫째, 동물권과 장애운동을 교차적으로 생각하기

피터 싱어의 논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가장자리 논증’이다. 수나우라 테일러 등 장애운동가들은 비장애중심주의가 동물옹호운동에서 더 지독한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가장 일반적인 주장 중 하나는 인지 능력에 대한 비장애중심주의적 전제들로 구축되어 있다”(<짐을 끄는 짐승들>, p134)고 말한다. 그녀가 인용한 자폐 성향의 동물운동가 대니얼 샬로먼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담론의 신경 전형적 편견을 비판했는데, 이 편견은 동물권 내의 비장애중심주의를 영속화할 뿐 아니라 실제로 종차별주의도 강화한다. 역시 그녀가 인용한 철학자 리시아 칼슨도 가장자리논증을 지적장애에 대한 ‘철학적 착취’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종차별에 반대하고 비인간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정의하기 위해 지적장애인의 사례를 굳이 언급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동물의 이해관계가 ‘중증 지적 장애인’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수나우라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과 지적장애인을 비교하는 주장들은 특정한 ‘도덕적 판단과 직결된’ 신경전형적인 인간 능력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두 집단 모두에게 해롭다는 더욱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모든 종들을 위한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면서, 지적장애인을 돌보기 때문에 동물도 돌봐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해선 안 된다. 이런 사고 노선은 비장애중심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그것은 도덕 가치의 척도로 인간을 중심에 놓는 일이며 암묵적으로 지적장애의 가치를 폄하하고 그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9)

 

둘째, 채식 문제이다. 더 정확하게는 채식의 인식론적, 계급적 문제이다.

난 피터 싱어가 말한 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 단순한 실천만으로도 동물에 대한 잔혹한 처우를 멈추고, 더불어 생태 위기의 많은 부분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머물렀던 뉴욕 퀸즈 지역의 유색인들은 거의 햄버거를 먹고 있으며, 반면에 맨해튼 브라이언 파크에서 점심을 먹는 백인 대부분은 샐러드를 먹고 있었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른다. 뉴욕에서 노을 진 강가에서의 반려견과의 산책, 요가, 채식, 영성은 계열을 이루고 있고, 이것은 명백히 계급적인 것이었다.

또한 (여기서부터는 11월에 강의할 내용의 스포일러이다^^) 플럼우드는 <악어의 눈>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은 기본적으로 “다른 존재의 먹이로 존재하지만, 서구의 인간우월주의 문화는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먹이사슬 내에 위치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함으로써 인간의 생태적 체현을 부정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07) 그러면서 <육식의 성정치>로 유명한 캐롤 애덤스의 주장을 ‘존재론적 완전 채식주의’로 비판한다. 그녀의 말을 좀 인용해보자.

 

“존재론적 완전채식주의는 인간이나 동물을 먹을 수 있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입장은 인간을 인간/자연 이원론의 일부인 ‘자연의 바깥’으로 대우하는 태도를 더욱 확고히 인정하고, 생태적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을 다시 개념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뤄지지 않게 방해합니다…. 존재론적 완전 채식주의의 보편성은 오히려 그 입장을 자민족 중심주의로 만들고, 특권적 ‘소비자’ 관점을 보편화하며, 현대 서구의 도시적 맥락이 아닌 다른 맥락은 무시하거나 서구의 맥락을 이상이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맥락을 사소하고 일탈적 ‘예외’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p203)

 

셋째, 반려동물 열풍

어제 조카가 집에 왔다. 할머니 드린다고 커다란 함박스테이크 두 덩이를 가지고 와서 할머니께 요리를 해드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집의 반려견의 세번째 생일이 곧 다가온다고, 생일이 돌아오면 그 커다란 개(골든 리트리버)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불면서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좀 망연자실이다. 고기를 먹으면서 반려견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아이러니에 대해. 그리고 반려견에 대한 지나친 의인화에 대해. 하지만 내가 새로 사귀는 친구들 대부분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늘 그런 내 생각이 편견이 아닌지 점검한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비인간- AI, 그리고 동물- 과 함께 사는 건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는데, 나는 여전히 그게 무엇인지 감도 못 잡고 갈팡질팡 중이다.

댓글 4
  • 2023-08-07 19:43

    일주일 책 한권을 읽을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마지막 소감을 나누면서 책을 읽으면서 몰랐거나 지나쳤던 부분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플럼우드 '악어의 눈'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 2023-08-09 11:13

    일주일간 책 한 권 읽는 짬 세미나 매력 있네요.
    책 줄거리를 따라가는 윤독도 흥미로웠습니다. 뜻밖에 매우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복습의 효과도 있고요.
    저는 아버지 돌봄주간에 했는데, 이런 특별주간이나 휴가기간, 혹은 셈한기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자주할 수는 없겠어요.^^

  • 2023-08-09 12:40

    동물해방을 위해 모두가 채식주의가 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미각을 쫒아 먹지 말자라는게 저의 입장이었는데요,
    책 읽은지 1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운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반찬 사러 갔다다가 장조림, 일미 볶음 등에서 손이 오므려지면서 버섯과 나물류 몇 가지만 골라 담아 왔답니다.
    막연히 아는거랑 실상을 마주하는 건 느낌이 확연히 다른거 같아요.
    실험실의 동물들, 사육장의 동물들이 아른거리니 한동안 고기 먹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ㅠㅠ

    말씀하신 존 롤스의 [정의론]도 좋고, 각 분야에서 바이블로 꼽히는 책들은 이번처럼 집중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론들도 주장들도 너무나 세분화 되어 있는 페미니즘 고전(?)도 보고 싶고요. (시몬느 보봐르 이후)
    이번처럼 단시간에 완독할 수 있는 세미나랑 여건이 맞으면 참석하고 싶습니다.

  • 2023-09-09 11:11

    덕분에 덕분에 젓가락 한 짝 걸쳐놓고 맛을 봤던 세미나였습니다.
    어쨌거나 어찌어찌 동물해방 책을 접한 게 제게는 또다른 전환점을 갖게 해준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대강 아는 것과 책을 보는 건 정말 다르네요.
    어찌 피터싱어는 그 시대에 이미 축산업의 세계를 다 꿰둟고 있었는지,
    물론 책에서 이야기했던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금 더 진전된 연구에 의해 다르다는 게 밝혀졌지만 말입니다.
    인간위주의 삶에서 동식물은 배경이고 환경이기만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근데 한편으론 자연계의 먹이피라미드를 놓고 보면 물론 거기에 인간은 없지만,
    그렇게 육식을 100퍼 차단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어쨌든 지금 지구 환경위기와 더불어 절대 한 사람의 취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슈이네요.
    식생활을 바꿔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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