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몸, 글쓰기] 2차 모임 후기_홍승은 작가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소영
2024-04-2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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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모임 책으로 홍승은 작가님의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를 읽고 나눴다. 88년생인 저자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삶을 비추어 읽고 쓰는, 그리고 글쓰기 모임의 경험과 쓰기의 팁을 담고 있다. 즉, 책 제목처럼 글쓰기를 독려하는 책이다. 특히 당신이 소수자와 여성이라면... 더더욱.

저자의 첫 책인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어보면 더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았을 거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책은 글쓰기가 중심이다 보니, 여기서 언급하는 저자의 경험이(이혼 가정, 낙태, 폭력적인 남자 등) 희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전작을 함께 읽어보면 더 입체적으로 알 수 있을 거 같다.

여하튼, '말하기 어려운 것'을 말하는 책이었고, '말하기 어려운 걸, 쓰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쓰기’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에세이를 쓰는 것에 대해, 그리고 에세이스트들의 글쓰기와 밥벌이로 흘러갔고, 집필 노동자로 이어졌다. 대략 나온 이야기들을 덩어리째로 적어보면 이렇다. 

 

- 책을 통해 글쓰기(출판)의 의미? 힘? 같은 걸 얻었다. 책을 낼 만큼 나의 이야기가 특별할 게 있을까? 이런 의구심도 들었었다. 그런데 은퇴나 사회적 활동을 접고 사적 존재로 남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의문도 있었다. 과연 트라우마와 상처 등을 쓰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글쓰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글이 다듬어지는 만큼 해방적인 측면이 있고,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어도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신체가 되어 간다. 사건을 맥락으로 연결하고 자기의 감정에 관해 썼으면, 자기의 감정에 관해서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건 그 사건 자체를 어느 정도 객관화시키는 거니까. 객관화시킨다고 하는 건 구조와 맥락 속에 자신의 사건을 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페미니스트적 글쓰기가 된다.

(그럼 우리가 지향하는 건 바로 이런 글쓰기일까?)

 

-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필요하고 치유의 역할도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것은 자기 자아에서 벗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홍승은 작가님처럼 집필 노동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드러내야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글이 팔려야 될 텐데. 그랬을 때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그것이 미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개발을 해야 할 테다. 결국은 독특함, 자기 취향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계속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좋은 걸까? 밥벌이가 되면 어쩔 수 없는 걸까. 

 

-글이 (소재, 주제, 정서?등)반복되는 문제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 아닐 수 있다. 예전처럼 작가의 정체성이 아닌 노동자의 정체성을 더 많이 가지게 된, 지금의 새로운 일군의 글쟁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통해서 ‘얼마나’ 보편적인 걸 날카롭게 쓸 수 있을까,가 핵심일 테다. 더군다나 작가가 아닌 노동자라면 계속 뭔가를 생산해야 하는데, 더 소모적이지 되지 않을까. 새로운 장이 열렸고 앞으로 10년 정도 유행하다가 (이런 류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글쓰기가) 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은 확실히 확대되고 있다. 이게 정말 어느 길로 갈지 지켜봐야 한다.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의 이론이나 담론을 구성하는 게, 윗세대 페미니스트와는 다르다. 상처가 있는 친구들은 심리 상담 같은, 훨씬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기를 했다. 활동가들이 자기 돌봄을 못 하고 상처가 깊고 분열적이니까. 예전에는 자아를 돌본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엄청나게 소진되었다. 그래서 (일찍이 미국 여성학과에서 시작된 방식?) 상담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글은 공적으로 쓰는데, 지금 2030에 와서는 수렴되었다. 자신의 상처를 프로그램이나 심리적 맥락 속에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이슬아님 홍승은님 장일호님 등이 프런트에서 서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라는 에세이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 활동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활동이기도 하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정치적 활동이자 노동인 것. 그리고 그들이 더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은 속단할 필요가 없다. 두고 봐야 한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2030여성 글쓰기의 선두에 있는 분들에 대한 대단함과 멋짐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다. 🙂 

모임 말미에 문탁쌤께서 가볍게 물으셨는데,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쓰는 쪽으로 한발씩 가까이 가고 있는 거야? 아직 모르는 거야?”

넷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 못했다. ^ ^; 

 

우리는 왜 글을 쓰고 책을 내야 할까? 더욱이 이 글쓰기의 방향은 몸, 강박, 이혼, 동거, 더 이상 직진은 없을 거 같은 사회생활 등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니 더 각자에게는 이 대답이 중요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번 모임에서 우리의 가장 높은 허들은 바로 이 이유 자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책을 통해 이 질문이 더 정면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본다. 그래도 작은 도약이 아닐까? 🙂

 

 

다음 책은,

최현숙 작가님의 산문집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입니다! 

 

 

댓글 3
  • 2024-04-28 10:12

    한발짝씩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사옵나이다^^
    바쁜 와중에 정성스러운 후기, 소영쌤 고맙습니다.

  • 2024-04-28 13:49

    바쁜 와중에도 꼼꼼하게 지난 시간을 복기해 볼 수 있는 후기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영샘.
    저는 문제의식 내지는 의견을 구조화(정식화?)하는 소질이 없는지, 지난 시간도 문제제기를 하는 의견들을 듣고서야,,, ‘그런가?’ ‘그렇기도 하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굳이 고백을 하자면, 별 생각없이 시작한 모임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왜 스스로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거나, 회피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했다면,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생애 전환기를 조금은 다른 태도로 겪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요. 그래서 문탁샘께서 여성의 삶은 좀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이 모임을 제안하셨을때 별 생각없이 ’네‘라고 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렴풋이 글을 써볼 기회가 생기는 건가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고요.
    두번째 시간에 앉아있을 때까지도 제가 별 생각이 없더라고요. 끝나고나서 이전보다는 좀더 진지하게(본격적으로?) ’내가 뭘 쓰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영샘 후기를 읽으니, 문탁샘의 질문이 있었군요.ㅎㅎ 아마도 그로부터 시작된 진지함일 수 있겠네요.
    연배가 저보다 한참 아래인 저자의 얘기들은, 지금의 저에게는 ’굳이 이제와서 그런 것들을 들추며 얘기해야 하나?‘라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문탁샘께서는 굳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저도 ’굳이‘파에 가까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이 왜 그것을 쓸까’라는 면에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자신들의 문제(적 상황)에 대해 스스로 쓴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 내겐 ‘수치’였던, 그것들을 꺼내, 젊은 친구들은 쓰고 있더라고요. 용감하고 가치있게 느껴집니다. 물론 우리도 그 시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말하고 행동했다고 생각하고요. 저자는 그 기반 위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한계(경계)를 깨고 있고, 깨고 나가기 위해 모두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이먹은 지금의 내 문제는 내가 쓸 수 있겠구나, 싶긴 합니다. 나이먹은 저에게 ‘한계’라고 얘기하는 것들에게 대해, 왜 한계냐고, 정말 기존의 길밖에 없냐고, 나 자신 외에 내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에 최소한 질문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데 그 방법에서 글쓰기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 맞아?’라는 질문이 저에게 남았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 횡설수설 ㅋㅋ. 지난 후기 때와 그닥 다르지도 않고, 그저 다른 문장으로 썼을 뿐 ㅠ. 이럴 때는 근거없는 무한긍정이 약이죠 ㅋㅋ. 다음 책이 재미있다고 하니, 기대하며..이만

  • 2024-05-01 10:55

    소영쌤 후기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정작 댓글은 늦었습니다.
    진도는 안 나가는데, 2주 동안 푸코, 푸코, 푸코만 생각하다 보니 소영쌤 글을 찬찬히 살펴볼 여유를 내지 못했네요.

    역시, 후기는 이렇게 써야 이미 지나고 없어진 그 때의 시간들이 복기가 되는군요.
    저는 이번 세미나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더랬습니다.
    그동안 에세이에 대한 복잡한 마음과 질문과 오해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굳이 왜, (그게 어떤 형태이든) 드러내야 할까에 대한 질문(불만은 아님!)과
    이 정도의 개인사는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불특정 대다수에게 나를 드러내어서 오해와 선입견, 혹은 공격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여성인데, 에세이는 너무 여성적이지 않은가,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절대 공감하면서도, 너무 여성적 글쓰기는 지양하고 싶은, 쓰고 있자니 부끄럽네요.
    그런 편협한 마음에서 나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일은 자의식 과잉이나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일이 될 위험이 있다는 발언에
    문탁쌤의 일갈, 그건 다른 장르의 글들도 마찬가지이며, 굳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특히 2-30대 여성 에세이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지평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지켜볼 일이다 라며
    쌤이 분석하는 여성 작가군의 패러다임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그렇지, 소설도 철학도 과학책도 모두모두 다양한 수준의 글과 작가들이 있는데
    굳이 에세이에 이런 잣대를 들이댔을까요?
    여전히 작가의 글은 아카데믹한 것이어야 할 것 같고, 사적인 자기와는 거리를 둬야 할 것 같다는 편견과
    내가 드러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타인의 사적인 것도 직면하기가 두려워서인 것 같습니다.
    자신과의 거리두기는 필요하지만, 그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게 구분이 가능한가)과 상관 없는 분야이고
    나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 장에서는 그 거리두기의 다양한 공부와 함께 가장 사적이거나 공적인 것(경계를 지을 수 있나) 어디쯤을 기꺼이 내보일 수 있는 게
    글쓰기의 당위가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이렇게 정리하게 된 데에는 우리가 다음에 읽을 책인 최현숙 작가의 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에세이는 작가의 내밀한 개인사를 내보이지만 자신을 향한 분명한 거리두기가 느껴졌고,
    저는 그분의 이야기가 고민해왔던 문제를 정리하는 일에 필요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더 많은 에세이를 읽고, 찾아서 읽고, 함께 읽어야 하는 것이지요.

    저의 결론은 푸코, 푸코, 푸코 하던 와중에 소영쌤의 후기와 최현숙님의 글(비록 몇 장 안 읽었지만)이 단비 같은 존재였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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