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몸, 글쓰기] 1차 모임 후기_ 장일호의 <슬픔의 방문>을 읽고

김은영
2024-03-20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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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경험은 닮아있다

오랜 만에 술술 읽히는 글을 읽다 보니 어느 새 책의 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글 안에 담겨 있는 경험들이 너무나 친숙해서,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작가의 소개글에도, 나무위키 검색에서도 그의 나이는 찾을 수 없었지만 글 안의 정보들로 추정컨대 나와는 십 여 년의 차이가 있음을 알겠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 이외에도 우리의 다름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것들을 친밀하게 덮을 만큼 그와 나의 경험은 닮아 있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대학이라는 문을 용케 통과했고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현재는 이 사회와 세상의 부조리함을 적어도 모른 척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광의의 합의가 되는 정도의 지금의 '나'가 되기까지, 여성들이 거쳐야 하는 경험치가 따로 있는 듯이 말이다. 각자의 자리에 살아가면서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지하철의 장애인 시위에 무엇을 연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강남역 사건을 '절대' 하나의 사건을 여기지 못하며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나이듦과 죽음을 고민하는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어서 익숙하고 친숙했나 보다. 

작가가 읽은 텍스트와 그의 삶의 경험이 명랑하면서도 묵직하게 넘나들며 책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이제는 나의 감상을 정리하여 세미나에서 뭐라도 꺼내 놓아야 할 차례인데 이 찝찝하게 까슬거리는 감정은 무엇일까. 결국 정리되지 않은 채로 세미나에 들어간다. 함께 이야기 하다 보면 이 정체의 실마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2. 텍스트에서 길어내고 싶은 것

역시나 다들, 이 책을 뜨겁게 읽어 왔다. 일단 너무 잘 쓴 글이며, 자신의 경험을 신파조가 아니면서 읽은 텍스트와 잘 어울리게 쓴 글이라는 것. 현재 내 고민과 닿아있는 문제들을 너무 잘 써줘서 정말 읽기를 잘 했다는 격한 공감의 말들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 나는 이 글들이 아주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았노라, 그런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라는 애매한 말들을 기어코 뱉었다. 그리고 후기를 쓰기 위해 애쓰는 이 시간까지도 여전히 돌이켜 생각해 내고 있다. 작가의 삶의 경험이 절대 낯설지 않고,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도 얼추 가까운데, 이 책을 정말 잘 읽었다라고 상쾌하게 말해지지 않을까.

나는 작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세계들에 대한 확신, 기준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개인적 '선언'들이 불편한 것 같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갈아넣는 방식들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 것도 질문이 든다, 대체 왜?! 지금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 그것을 위해 내 몸을 쓰는 방식이 잘하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과 주저함으로 탐구하는 자세, 그것이 왜 보이지 않지? 그리고 작가가 마주했던 경험들을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물론 그 이름은 작가가 그 경험들에 공감하고 있는 자세라는 것을 안다.  

악어에게 잡혀먹을 뻔한 경험을 인간도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으로 전환한 발 플럼우드처럼, 넝마주이를 이 세상의 분해를 담당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후지하라 다쓰이처럼, 인간이 죽어 시체가 되는 과정을 자연에 기꺼이 퇴비가 되는 것으로 해석하게 하는 케이틀린 도티처럼, 그렇게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확 꺾어버리는 그런 것을 기대했었나 보다.

 

3. 에세이라는 글쓰기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글쓰기의 시작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사주를 배워도, 주역을 배워도 내 인생의 이야기를 빌어 그것들을 풀어내라고 해서 지나온 시간들을 애써 끌어내어 글을 썼다. 나를 드러내고, 새롭게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기운을 채워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특히 작년에는 세 개의 글을 써내느라 안간힘을 썼던 것이 어떤 통과의례를 거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앞으로도 소소한 세미나에서 그와 같은 글쓰기를 나누며 공부를 해나갈 것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완전 동의. 하지만 그런 동기가 아닐 때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많은 여성들이 소소한 온라인 창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축적하고, 글방을 통해 글쓰기 수업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글이 책으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삶이 글로 표현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글쓰기가 우리를 연결하는 소통의 길이 될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의 경험이 위로를 넘어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  에세이가 범람하는 시대에 또 하나의 책이 기획된다면 적어도 어떤 기준은 넘어서야 할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섣부른 결론은 내리지 않고 우리는 다음의 책을 선택했다.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이다. 작가가 건네는 글쓰기의 권유는 어떤 의미일지, 일단 읽고 이야기하는 걸로.

댓글 5
  • 2024-03-20 08:39

    전 이번 모임에서 은영샘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이 책 너무 좋았거든요. ㅋㅋㅋ

    그런데 은영샘이
    "왜, 병에 걸렸는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죠?"
    "에세이류가 정말 내 삶을 바꾸는 강렬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는 걸까요?"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읽고 쓰는지, 우리가 쓴다면 무엇을 왜 써야 하는지... 생각거리가 더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 2024-03-20 09:12

    화요일은 넘기지 않아야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새벽에 겨우 끝을 내었습니다. 후기 쓰기 너무 힘듭니다. 세미나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싶은데, 지영쌤처럼 녹화라도 해야 하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고. 결국 저의 개인적 감상이 되지는 않은지 고민고민하다 일단 올렸습니다.

  • 2024-03-20 11:43

    은영쌤, 후기 넘 좋아요. 질문에서 멈추지 않고 더 밀고 나가신 글. 새벽녁 고민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써주셔서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왜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써야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마지막 문단에 강렬하게 꽂힙니다. 계속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날 책을 읽고 급격하게 내적으로 쇠약한 상태가 된 여러 이유가 있었겠으나, 며칠 뒤 떠오른 연유에서 저 역시 슬픔이란 단어에서 온 파장이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 이 모든 것이 슬픔으로 귀결될꺼란 은영 쌤 질문을 들으니, 저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의 공감을 하게 됩니다.

    책의 1부를 읽고 써두었었던 글을 공유하며, 저 역시 짧은 후기 남길게요.

    ———
    시사인 기자 장일호씨가 쓴 <슬픔의 방문>을 읽다가, 1부의 끝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의 뒤를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기조에 공감이 잘 되지 않기도 했었기에.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글들이 나는 늘 불편했다. 그것이 요구되는 사회이기에 넘쳐나는 비슷한 방식의 글들. 이 책도 그런걸까 싶었는데, 근데 나란 사람은 어쩌면 그게 너무 없는 것은 아닌가 싶어, 행간을 잘 살펴보기로 한다.

    "나를 시사IN기자로 뽑겠다고 고집한 당시 편집국장이 '좋았다'고 했던 자기소개서 역시 그의 문장에 빚졌다. 나는 김애란의 단편 <영원한 화자>의 문장을 인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썼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물리적으로 빚진 관계'와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장들이 펼쳐진다.
    자신을 구성하는 관계들에서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주어진 관계 위에, 자신이 자라면서 일군 관계 배치들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엄마 그리고 작가 김애란이란 관계 지형 속에서 구성된 자신.

    그리고
    '내가 가장 잘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말.

    그 말.
    어쩌면
    그녀 삶의 조건에서는 필요한 방향이고 태도이자 다짐이겠단 생각을 해본다.

    '물리적으로 빚진 관계' 속에서 들여다보는 엄마.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칼자국>, 김애란

    물리적으로 빚진 관계는 그렇게 물리적으로 보낸 시간, 내 오장육부를 관통하면서 알알이 만들어진다.
    내가 만들어지는 실제적인 조건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군가 바뀌어야 할 문제도 아닌 것.

    그런 양가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란 결론에, 나는 다른 결론을 내려보고 싶단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이다'란
    문장이 내 경우에는 아주 잘 소화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2024-03-20 14:44

    은영샘! 후기 감사해요. 후기는 이렇게 쓰는 거군요! 🙂

    각자 이야기의 결이 달라서 더 풍성한 시간이었어요.
    문탁샘이 말씀하셨던 새로 나타나고 있는 여성 집단 -읽고 쓰는 여성들의 탄생-이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카테고리를 묶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2030대의 여성들 이야기도 급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요즘 글쓰기가 혼종적이다. 이런 말씀도 떠오르네요. (역시 문탁샘 말씀)
    영상물도 넷플릭스 등등이 등장하면서 형식 면에서 무척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는데, 글쓰기도 더더욱 그렇게 될 거 같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 같고.

    아직 ‘여성의 몸’에 대한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서히 알아가겠죠!!! 아무튼, 그 첫 시작으로 ‘슬픔의 방문(장일호 작가님)’은 참 좋았습니다.

  • 2024-03-21 00:07

    은영샘~ 늘 후기 쓰기가 어렵다 하시는데, 이렇게 쓰시니 그렇죠 ㅎㅎ 은영샘이 안 쓰셨으면 클날뻔 했네요. ^^;; 글구 저, 이건 녹음 안 합니다 ㅎㅎ

    저자가 글을 잘 쓰더라고요. 책도 많이 읽고. 구석구석 전부 동의가 되는 건 아니었어요, 저도. 뒤로 갈수록 특히. 저는, 저의 경험이 책으로 나오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측면에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모임 때도 말씀드렸지만, 무엇에 기대어 쓰지?라는 생각을 주로 했더랬습니다. 이런저런 말씀 나누실 때, 20대도 참여해 '세대별 무엇'이 드러날 수 있어도 좋겠다는, 글쓰기 보다 책 기획을 머릿 속으로 하고 있었네요 ㅋㅋ.

    50대 여성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50대에 인생이 막막해질 줄이야... 저는 길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책을 많이 안 읽어서인지 모르지만, 참고할만한 게 없었어요. 의학적(?) 접근이나 건강요법이나 활기차게 사는법, 이런거 말고는. 책 뿐 아니고 뭐든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성의 몸은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는 문탁샘 말씀에 끌렸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감이 잡히는 건 아니니, 다음 책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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