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마라 맛 말고 심심한 맛, 명상

오영
2024-05-09 23:20
226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얻은 양 기뻤던 모양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모든 괴로움이 전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바깥 조건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었다. 하여 잠시라도 숨 쉴 공간이, 피난처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명상은 내게 말 그대로 숨 쉴 공간이 되어주었다. 한 호흡이라도 알아차리려고 마음을 모으는 동안 만큼은 그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있는 그대로 온전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필 명상에 대한 덕심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처음엔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작년에 비해 조금 나아진 경제 사정 때문에 몸도, 마음도 느슨해졌나 싶기도 했지만 사실 긴가민가했다. 다만 작년 말까지 여러 상황들이 체감 상 ‘강!강!강!’의 연속이었으므로 일시적인 외부 조건의 변화로 인한 과도기인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공부와 명상 덕분에 훨씬 차분하고 담담해진 일상에 만족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쉽게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확실성의 유혹에 빠지다

 

 그런 변화가 느껴진 시점을 되짚어 보니, 공교롭게도 작년 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던 일을 그만 둔 즈음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보니 한결 살만했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행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만 돌아가던 비행기 엔진 중 하나가 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공부든, 명상이든, 일상에서든 그만한 집중력이 발휘되었고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가 곧 채워지는 듯 했다.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서 생긴 슬픔 만큼이나 그에 버금가는 기쁨도, 성취감도 생생하고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만들던 대상이 사라지자 그처럼 순환하던 에너지의 역동성도, 그 총량도 줄어든 것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고통에도 중독이 된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니 점차 동굴 속으로 도피할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모든 것이 가파른 골짜기 끝에 이르러 점차 완만해진 물길처럼 잔잔해졌다.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일상의 변화에 따라 명상도 그렇게 달라지고 있었다. 신혼의 격정적인 밀월기간이 자연스럽게 평범한 일상으로 이어지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놓친 것 같은 찜찜함이 내내 달라붙었던 것은 왜일까?

 

 

 올해 불교학교에서 읽은 마뚜라나의 <앎의 나무>에 따르면, 습관처럼 다시 ‘확실성의 유혹’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모 아니면 도, 그 양 극단 중 한 곳에 확실성의 닻을 내리고 안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런 욕심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 어느 쪽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우왕좌왕 할 수밖에. 부처님도 양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를 걸으라고 하셨는데 나는 꾸준히 그 길을 걷는 대신 ‘중도’라는 푯말을 어딘가에 단단히 꽂고 그 땅을 파려는 형국이었다.

 

 

 마뚜라나는 이 같은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확실성을 찾아 양극단을 오가는 대신 그 얽힘에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즉 자신의 구조적 역동성과 환경이 맺는 상호 관계를 잘 보라고.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에서 서로를 그리고 있는 두 손의 관계처럼 끊임없이 얽히며 변화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앎이라고 말이다. 부처님 역시 무상한 변화의 흐름과 그 연기적 조건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젠 마라맛 말고 심심한 맛

 

 그 어디에도 정답이 없고 안전하게 매달려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자주 잊곤 한다. 그래서 때로 헷갈린다. 명상 경험 역시 모든 무상한 것들처럼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때론 거칠고 빠르게, 때로는 매우 고요히 흘러간다는 것을. 변하는 것을 부여잡고 지키려는 마음이 곧 자만이다. 자만은 자꾸 돌아보고 의심하고 채우고 쌓아두려고 한다. 무상한 흐름과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앞서 달라진 상황에서 생겨난 느낌을 붙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곧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고 내 것이다’라고 붙드는 순간, 동시에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시야를 좁게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명상자리로 돌아가는 것 뿐.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명상을 이제 더는 안전한 도피처로 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명상 경험이 일상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 에셔의 그림 속 두 손처럼 일상과 명상 역시 서로 다르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어느 손이, 어느 손을 그리고 있는 지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중도는 그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걷고 있는 그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닐까. 떠나온 그 자리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미 길의 풍경이 달라졌고 함께 걷는 이들도, 나도, 세상도 변했기 때문이다. 명상에 대한 덕심이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흐르는 물과 같아서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꾸준히 나아가는 수밖에! 때로는 흔들리고 헷갈리고 그래서 실망하고 슬퍼하기도 하겠지만 일어난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가르침을 깨어 알아차리는 한, 길은 이어질 것이다.

 

과거에는 마라 맛 같이 자극적인 맛도 제법 즐기곤 했다. 하지만 맵부심을 부리던 시절은 지나갔고 그에 대한 추억도 부질없다. 명상도 그런 것 같다. 평양 냉면 같이 심심한 맛의 깊이를 천천히 음미하며 즐길 때가 되었다.

 

 

 

 

  오영

 

작년에 불교공부와 명상을 시작한 덕분에 서두르지 않는 삶, 천천히 읽고 쓰며 명상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더불어 올 한해 명상동아리 활동으로 조금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명상하기를 소망한다.

댓글 6
  • 2024-05-10 08:52

    '붙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곧 사라졌을 것', '중도는 그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걷고 있는 그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것'
    이 문구들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그렇다면 마라맛도 사라지게 내버려두면서 잠시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ㅎㅎ 마라탕을 좋아하는 일인으로서...

  • 2024-05-12 17:54

    오늘은 명상이 어떻게 경험될까? 하는 기대는 늘 있어요. 전에는 기대에 못미치면 속상해하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그냥 그날의 명상 자체를 기대하게 된 것 같네요.

    허나. 가끔은 마라도 좋지요~ㅎ^^

  • 2024-05-12 21:33

    저는 올해 활동가 친구들이 데리고 간 비건 식당에서 마라탕을 처음 먹어봤는데
    채수로 끓였는데도 엄청 자극적이고,,, 근데 맛나더라고요ㅎㅎ
    스트레스 받으면 자극적인 맛을 찾을 때가 있어요. 저도 심심한 맛의 깊이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영샘의 명상 덕질기 3탄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4-05-13 11:30

    " 떠나온 그 자리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미 길의 풍경이 달라졌고 함께 걷는 이들도, 나도, 세상도 변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라임이 오늘 아침 제 마음으로 여여히 흘러들어오네요~~ 걸을 때 마다 달라지는 세계... 명상이 주는 깨달음이군요^^

  • 2024-05-15 20:33

    쌤 명상 글을 읽는데 전부 마라탕 이야기.. 인데 저도 ㅋㅋㅋ 마라탕 먹고 싶...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눈에 띄는 마뚜라나 사랑! ㅎㅎ
    일상의 잔잔함을 즐겨야 한다면서도 요새 지겨워서 온몸이 뒤틀리는데 어째요. 명상에 빨리 입문해야 할텐데요.. 흑 ㅜ

  • 2024-05-20 08:20

    착각이 성장을 가져온다..... 최근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이에요. 알지 못하고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알게 되는 것이 있다는 부분이었는데, 오영님의 덕질도 순항중이시네요!!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아버지의 미수연   지난달에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아버지의 88세 미수연을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뵌 후 2년 만에 만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 인사 후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말씀하실 때는 청산유수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80이 되면 무덤 속에 누운 이나 살아있는 이나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내년이면 90이니 오래 살았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때때로 아버지의 심경을 적어 놓은 메모가 들어있다.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사는 낙이 없다. 빨리 죽고 싶다.”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이 좋아 보일 때도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아버지의 평소 정조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에는 우울감도 포함된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큰아들이 옆에 살아서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아침에 오고 저녁에도 와서 챙긴다.”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자식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버지 집에서 지내온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 큰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는 것은 그래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허세일까, 아니면 자식들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렇다고...
    아버지의 미수연   지난달에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아버지의 88세 미수연을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뵌 후 2년 만에 만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 인사 후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말씀하실 때는 청산유수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80이 되면 무덤 속에 누운 이나 살아있는 이나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내년이면 90이니 오래 살았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때때로 아버지의 심경을 적어 놓은 메모가 들어있다.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사는 낙이 없다. 빨리 죽고 싶다.”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이 좋아 보일 때도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아버지의 평소 정조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에는 우울감도 포함된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큰아들이 옆에 살아서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아침에 오고 저녁에도 와서 챙긴다.”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자식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버지 집에서 지내온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 큰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는 것은 그래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허세일까, 아니면 자식들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렇다고...
요요
2024.05.27 | 조회 201
아스퍼거는 귀여워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서로 딱 마주친 그때.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그날부터 감자 입덕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한다. “호옥시... 우리 아이가 천재?” 누구나 에겐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아이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첫 뒤집기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싶다. 태어나서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꼬물거리고, 울고, 웃었다. 그때는 손가락만 쥐었다 펴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뒤집기라니!! 혼자서 뒤집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가 없다. “우리가 아이가 뒤집었어요.” 동네방네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1~2개월이 뭐라고, 인터넷에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 왜 뒤집기를 안 할까요’부터 ‘6개월인데 벌써 일어나 앉았어요’까지....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서로 딱 마주친 그때.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그날부터 감자 입덕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한다. “호옥시... 우리 아이가 천재?” 누구나 에겐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아이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첫 뒤집기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싶다. 태어나서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꼬물거리고, 울고, 웃었다. 그때는 손가락만 쥐었다 펴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뒤집기라니!! 혼자서 뒤집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가 없다. “우리가 아이가 뒤집었어요.” 동네방네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1~2개월이 뭐라고, 인터넷에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 왜 뒤집기를 안 할까요’부터 ‘6개월인데 벌써 일어나 앉았어요’까지....
모로
2024.05.25 | 조회 199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가마솥
2024.05.25 | 조회 169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현민
2024.05.24 | 조회 15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김윤경~단순삶
2024.05.20 | 조회 25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