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말하며 사는

현민
2023-03-16 10:43
268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말하며 사는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기분

 

독일에 산지 네달이 되었다. 마냥 놀러 온 외국인이기엔 가본 데가 좀 많고, 로컬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안 해본 게 많은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면 간판에 있는 광고 문장 정도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에 이따금씩 기뻐하며 지냈다. 인터네셔널 셰어하우스에 사느라 영어는 더 늘었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한국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할 때, 어려운 한국어 단어들은 종종 까먹는다. 어느 날에는 내가 발을 걸치는 언어들 중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슬퍼하다가, 번역가의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보며 지낸다.

 

모국어를 영어로 Mother tongue이라고 하듯이, 혀가 기억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는 일은 고난하다. 바닥이 없는 땅에 집을 짓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한다. 틀리며 감각을 얻는 것이 불가피하다. 같은 뜻을 전하고 싶어도 나의 모국어로 문장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이 언어로 문장을 이루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때는 문장을 읽고 이 말들이 각각 무슨 뜻인지는 알아도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코스가 끝날 때 쯤에는 반에 앉아있는 수강생 모두가 자신이 다음 단계로 가도 괜찮을지 의심에 가득 차 있다. 공부를 더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를 마구마구 싫어하며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조금 깨닫게 된다. 나만 이 번뇌를 겪는 건 아니구나 하고. 언어는 수학이 아니고 과학이 아니다. 이 레벨을 완전히 정복해야 다음 레벨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어는 반복하며 확장해나가는 일이다. 도대체 이것들이 왜 이렇게 작용하며,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데도 쓰는가 의구심이 팡팡 들 때는 나의 독일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해준 말을 떠올린다. ‘It’s no logic.’ 그래, 이유가 없단다. 수많은 표와 규칙들로 이해해 볼 만한 커리큘럼을 만들어 놨지만, 언어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까 가끔은 의심하지 말고 조금 멍청해져야 한다. 세상에 모든 것들이 입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왜인지 마음에 되게 좋은 위안이 된다. 배운다는 건 멈추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그래서 안멈춰 보려고 공부하면서

선인장도 보고, 새로 사온 차도 마시고, 오렌지 먹으려다가 잊어버리고,

빵 먹다가 남기고, 감기걸려서 약먹고, 맥주도 마시던

책상의 흔적

 

 

말하지 못해 슬픈 사람들

 

요새 나는 10살의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고 내가 라현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한국에서 금방 와 국제 학교를 가야 한다. 라현이 살았던 서울의 대치동은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영어 어린이집을 다니고 한국어를 초등학교 입학 후 과외 붙여서 배우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그를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영어를 하거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명예감와 어떤 모욕감을 주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나와 그의 엄마의 가장 큰 목표는 그가 영어를 싫어하지만 않게 만들기였다.

 

라현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매일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아침에 일어나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그 집에 가 밥을 얻어먹고 그를 가르쳤다. 그리고 학교 가기 전 마지막 수업 날, 나는 라현에게 학교에 가면 필요할 만한 말을 한국어로 써오라는 숙제를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번역해보기로 했다. 우리 반이 어디야? 사물함 어디 있어? 무엇을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돼? 숙제가 뭐야? ... 이어 라현이 준비해온 질문에는 나는 영어를 잘 못해.’가 있었다. 그냥 쉽게 알려주면 될 걸 나는 그 애가 영어로 말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속상해져 아무 말을 시작했다. 너가 영어를 잘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너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걔네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생각해봐라 ... 마지막에는 내가 라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게 너무 확실해져서 그냥 이 문장을 알려주었다. I’m not good at english. 내 영어가 그렇게 좋진 않아.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진 않아.

 

집에 오는 버스에 타 내가 라현에게 그런 말들을 자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건 곧 내가 나에게 하는 주문 같은 거였다. 나에게는 말을 못해 수치스러운 순간이 매일매일 찾아와 그랬나보다. 한국에서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수치스러웠던 날이 더 많았는데 말이다. 라현에게 더 말해주고 싶었다.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러움의 영역이 아니라고. 네가 영어를 못해 부끄럽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참 조그맣다고. 네가 내 혼란스러운 말들을 들어주었듯이 나도 네 말을 들어줄 수 있다고.

 

라현이가 말하고 싶었던 문장들

 

 

말 말 좋은 말

 

그나저나 나는 왜 이렇게 말이 하고 싶을까?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이 적어지면 말을 못해 슬펐던 날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네 덕에 얼마나 기뻤는지, 내가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상세하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단단히 있어 그렇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대한 기대가 앞으로도 나를 계속 말하게 만들 것이다. 정확한 질문과 적당한 이해를 받았을 때의 벅찬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집에는 12명의 사람들이 산다. 우리의 여권상의 국적을 나열해보자면 두명의 독일인, 독일과 헝가리 이중국적인, 두명의 인도인, 두명의 터키인, 세명의 코스타리카인, 그리스인 그리고 한국인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우리들의 친구들이 드나든다. 어느 날 두명의 터키인이 창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도 담배를 피려고 창가에 앉았다.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그들이 내게 물어봤다. ‘우리 잠시 터키어로 얘기해도 괜찮아?’ 나는 순간 엄청나게 당황해 온 몸짓을 다 써서 당연히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당황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무리 중 비한국어 사용자가 있으면 일단 한국어로 얘기했고, 무리 중 한명이 도맡아 그에게 통역을 해주는 정도였다. 이들은 내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 내가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부탁했다. 나에게는 이 마음이 아주 생소하고 커다랗게 느껴졌다. 집에 있을 때는 종종 이런 경우가 많았다. 독일인들끼리 독일어로 얘기하다가도 비 독일어 사용자가 입장하면 영어로 바꾸어 말했다. 그들이 나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경청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의 한국친구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데, 우리가 같이 자라며 서로를 겪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가장 정확한 질문을 해줄 수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맞고 틀린지, 또 나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이 타인들이 나와 얼마나 다르고 비슷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너를 존중한다는 건 뭘까? 같이 산다는 건 뭘까? 오랫동안 너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 우리가 결국 같이 살고 있다는 거는 머리로 알았지만, 어떻게 존중하고 어떻게 같이 살까는 미지수였다. 영영 하나의 답으로는 귀결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상하게도 이 미지의 순간에서 나는, 말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첫번째 공간이 된다.

 

종종 읽기 너무 어려운 책을 만나면 작가 탓을 한다. 내가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걸 너무 어렵게 쓴 작가 탓이라고. 독자로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읽지 않아도 되는 글이 필요한 순간이 종종 있다. 전하고 싶은 바를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삶을 살아갈수록 깨닫게 된다. 내가 말을 못해서 슬픈 날에는 언어가 말의 뜻을 전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만을 되새겨본다. 미안해 혹은 사랑해 혹은 고마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말들이 이렇게나 짧고 간단한데도 커다란 깊이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몇 개의 말들로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 최선이겠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오가는 식탁

이야기가 듣고 싶으면 들어주고, 듣기 귀찮으면 듣지 않는 공간

사진 뒤에 6명이 더 있다

와우

 

댓글 9
  • 2023-03-16 15:09

    현민, 멋지구나.
    그런 상황을 느끼는 부분이 어쩌면 살면서
    꼭 필요한 건 아닌지 싶네요.
    다른 것도 그런 게 많지만, 특히
    말을 말이라 말하는 순간
    우리는 말을 더이상 말이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어떨까?

    멋지다. 현민. 그리고 12명의 친구들.

  • 2023-03-16 19:06

    잘 읽었어요~ 저도 최근에 베트남에 다녀오면서 일주일 동안 영어를 써볼 기회가 있었어요.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어떤 언어를 쓸까?', '이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지?' 등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오히려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둘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한국말 같았으면 '이걸 어떻게 완곡하게 거절하지?' 한참 생각하고 둘러둘러 말했을 것을 영어로는 어떻게든 직설적인 단어를 내뱉어서라도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다른 언어권 사람들은 제가 그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직설적인 말에도 별로 악의를 느끼지 않았던 거 같아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나서 적어봤어요ㅎㅎ

    • 2023-03-16 19:23

      +꼭 부정적인 것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도 괜히 멋쩍은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 가는 대신 "I love you(ㅋㅋ)" 같이 직설적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 말이 더 강렬하고 내 마음이 숨김없이 잘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말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말을 못하는 것 답답한 일이긴 하지만요...! 꼭 단점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 나름의 장점도 있지 않나 저는 생각해요. 언어의 장벽을 구성원들이 모두 인지하고 있기에 상대의 태도가 불편해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상대방을 서둘러 판단하고 한정짓는 대신, '내가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지.', '내가 모르는 맥락이 있는 걸 거야.'하고 타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댓글 수정이 안돼서 답글로 또 달아요...)

  • 2023-03-17 16:36

    이번 글 잘 읽었어요~~앞의 두 편보다 더 좋은데 그 이유가 뭘까? 현민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는 걸까?

  • 2023-03-19 08:11

    생각해보면 모두다 한국어를 쓰는 곳에서도 단 하나의 언어만 있는 건 아니구나..
    말할 수 없는 자와 말할 수 있는 자들, 그리고 들을 수 있는 자와 들을 수 없는 자들,
    사람들처럼 말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말을 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현민이의 글을 읽으며 새삼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 생각하게 하는 글을 써주어서 고마워~

  • 2023-03-19 11:41

    독일어를 배우고 영어를 가르치고 인터네셔널 하우스에서 이질적인 언어들과 만나는 그곳의 분위기가 신기하고, 왠지 좀 부럽고,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져요. 말이 통하거나 통하지 않는 순간에 부끄러움, 슬픔, 벅찬 기분, 경청의 느낌, 존중,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마음을 헤아리는 현민에게 좋은 이야기의 조건을 배웁니다.

    (근데, 매일 한국어를 사용하는데도 종종 단어가 생각이 안나면 어떡하죠..? ㅠ..ㅠ)

  • 2023-03-20 20:19

    그러던 중 그들이 내게 물어봤다. ‘우리 잠시 터키어로 얘기해도 괜찮아?'
    :와... 이런 감수성은 웬만해선 배우기 쉽지 않겠네, 근데 현민을 그걸 자주 접하고 있다니~ 그렇구나 좋겠네, 다름을 서로 보살피는 한 컷 같어^^

  • 2023-03-24 16:02

    해외영업할 때 알게 됐는데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못알아듣는 언어로 자기들끼리 얘기하지 않는 게 예의더라구요. 첨에 이 매너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나에겐 없는 감각이구나 싶었었죠. ㅎ
    다른 언어로 얘기할 땐 좀 더 솔직해진다는 느낌도 있어요. ㅋ

  • 2023-03-24 20:06

    괜찮아~ 는 정말 근사하고 쉽고 깊은 말 같아요.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 필수)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3.3.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예)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여성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공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뻐국뻐국~~ 00하세요. 00~~ " 아침밥이 준비되었음을 뜻하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임수가 놀라며 물었다. "오잉? 저 소리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뭐? 저 소리 첨 들었어? 전기밥솥에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소리잖아. 나는 3년째 듣고 있는데..." "난 처음듣는 것 같오." "뭣이라 -.-"   2명만 같이 살아도 공동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2명만 되어도 공동체다." 라고 말한다. 임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말의 찐 의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외동이다. 것두 성 감별 낙태가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 귀하디 귀했던 '무남독녀 외동'. 당연지사 자라오면서 먹는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 역시 없었다. 직장 초 특수했던 공동생활을 제외하면 죽~ '혼자' 살아온 셈이다. 그랬으니, 길게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3년 전 함께 살 결심을 하고 합을 맞춰볼 요량으로 잠시 임수의 숙소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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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00:30 조회 5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그 쪽’으로 가는 길       새벽이생추어리에 가면 새벽이와 잔디 뿐만 아니라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한다. 식사를 준비하며 고구마, 비트, 호박, 보리, 서리태, 시금치 등의 식재료를 손질하고, 물그릇에 미강을 넣고 손으로 휘휘 저어 섞어준다. 새벽이와 잔디의 분비물이 묻은 밥그릇과 물그릇을 설거지하다 보면 물이 옷에 튀고, 덩굴 잎을 채취하느라 잎 사이를 헤집다 보면 씨앗이 옷에 달라붙고, 진흙 위를 걷다 보면 흙탕물이 바지에 묻어 얼룩이 진다. 돌봄을 마치고 나면 내 몸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작은 아지트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더운 여름 날 돌봄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이 내 몸에 들러붙는다. 나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갖 존재들과 긴밀해진다. 그 존재들이 땀샘을 통해 내 몸 밖으로 나온 노폐물과 섞이고 반응하면 특유의 냄새가 만들어진다. 돌봄 후 귀갓길 지하철에서 하차하려고 일어난 줄 알았던 내 옆자리 사람이, 나와 멀리 떨어진 좌석으로 이동(피신)해서 앉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땀으로 젖은 셔츠를 살짝 들어 코에 가져다 대었더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때 나는 부끄러움보다는 어떤 사이-존재(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로서 새로운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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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3.20 조회 328
현민의 독국유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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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3.03.16 조회 268
기린의 걷다보면
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수에 나선 물소리길    대동강 물도 녹으며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다. 물소리길의 강물도 다 녹았을까.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을 골랐다. 양평 주변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인데 총 여섯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고, 경의중앙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작년 1월에 걸었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동행을 찾았다. 인문약방 프로그램 <일욜엔양생>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은영님, 나와 이름이 같다.   죽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아신역까지 두 시간, 검색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 경의중앙선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낸다고 5분씩 대기하는 역이 몇 개나 되었다. 30분 지각,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은영님을 만났다. 우수라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아신역을 나서니 부슬부슬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비오다 오후 맑음이란 일기예보에 우산은 챙겼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우산을 든 손이 시렸다. 장갑은 안 챙겼다. 방수가 되는 등산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낀 은영님은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같이 세미나를 했을 때도 누가 뭔가 필요해서 찾는가 하면 어느 새 챙겨 내놓던 은영님이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좀 신기했다.     <은영님도 나도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
은영들, 물소리길을 걷다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수에 나선 물소리길    대동강 물도 녹으며 봄이 온다는 우수(雨水)다. 물소리길의 강물도 다 녹았을까. 그래서 양평 물소리길을 골랐다. 양평 주변을 흐르는 강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인데 총 여섯 개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고, 경의중앙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재작년 1월에 걸었을 때는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동행을 찾았다. 인문약방 프로그램 <일욜엔양생>에서 함께 공부했던 조은영님, 나와 이름이 같다.   죽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해서 아신역까지 두 시간, 검색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 경의중앙선은 지나가는 기차를 보낸다고 5분씩 대기하는 역이 몇 개나 되었다. 30분 지각, 일찌감치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은영님을 만났다. 우수라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아신역을 나서니 부슬부슬 가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비오다 오후 맑음이란 일기예보에 우산은 챙겼다. 둘레길에 들어서니 우산을 든 손이 시렸다. 장갑은 안 챙겼다. 방수가 되는 등산점퍼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장갑을 낀 은영님은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같이 세미나를 했을 때도 누가 뭔가 필요해서 찾는가 하면 어느 새 챙겨 내놓던 은영님이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좀 신기했다.     <은영님도 나도 사진찍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서...
기린 2023.03.05 조회 223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연지 3년이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3년을 잘 넘기면 그 다음 3년을 또 기약해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년의 마디를 기점으로 순환하듯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뭐든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고 아옹다옹 다툼도 많지만 더불어 아직 고착화되지 않은 역동성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다독이며 봄의 마디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이름의 연원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분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하우스 빼고는 정임합목, 양생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양생’은 요즘 인문약방에서 미는 단어인데 생명력 넘치는 삶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정임합목’은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음양오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성분이고 이들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열 가지 하늘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열 가지 기운 중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데, 무사는 음화(陰火)인 정화(丁)이고, 루틴은 양수(陽水)인 임수(壬)이다. 정화(丁)은 작지만 따뜻한 불이고 임수(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물이다. 정화(丁)와 임수(壬)은 섞이지...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인트로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연지 3년이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3년을 잘 넘기면 그 다음 3년을 또 기약해볼 수 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년의 마디를 기점으로 순환하듯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봄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뭐든 어설프고 시행착오도 많고 아옹다옹 다툼도 많지만 더불어 아직 고착화되지 않은 역동성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한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의 다양한 사건에 대해 정리하고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다독이며 봄의 마디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이름의 연원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면 대부분의 분들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한다. 하우스 빼고는 정임합목, 양생 모두 생소한 단어들이다. ‘양생’은 요즘 인문약방에서 미는 단어인데 생명력 넘치는 삶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정임합목’은 사주명리에서 말하는 자연의 이치 중 하나이다.   동양에서는 세상을 음양오행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성분이고 이들은 음양(陰陽)의 이치에 따라 열 가지 하늘의 기운을 만들어낸다. 사람도 열 가지 기운 중 하나로 표현될 수 있는데, 무사는 음화(陰火)인 정화(丁)이고, 루틴은 양수(陽水)인 임수(壬)이다. 정화(丁)은 작지만 따뜻한 불이고 임수(壬)는 거침없이 흘러가는 큰물이다. 정화(丁)와 임수(壬)은 섞이지...
루틴 2023.02.28 조회 353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우다다, 우다다       잔디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두번째 입주자다. 나는 잔디가 실험용 돼지로 키워지다가 새벽이생추어리에 입주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새생이(운영활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무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고은   새벽이는 2020년 여름 종돈장에서 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잔디는 언제 <새벽이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나요? 무모   잔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가을이었어요. 새벽이가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의약 회사에 있었던 실험 동물 돼지가 탈출하려다가 기구 같은 게 쓰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요. 병원에서 잔디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회사에 할당된 예산이 있었겠죠? 수술하고 나서도 빨리 회복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안락사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잔디가 <새벽이생추어리>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잔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2020년 가을, 겨울 동안 실내 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에 <새벽이생추어리>에 왔어요. 그때는 잔디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이빨도 더 많이 튼튼 해지고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 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무모 인터뷰 중                   돼지와 돼지   작년 7월에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 날의 잔디가 떠오른다. 하우스 문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우다다, 우다다       잔디는 새벽이생추어리의 두번째 입주자다. 나는 잔디가 실험용 돼지로 키워지다가 새벽이생추어리에 입주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새생이(운영활동가)로 오래 활동해온 무모의 목소리를 통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고은   새벽이는 2020년 여름 종돈장에서 오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잔디는 언제 <새벽이생추어리>에 오게 되었나요? 무모   잔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20년 가을이었어요. 새벽이가 다니던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의약 회사에 있었던 실험 동물 돼지가 탈출하려다가 기구 같은 게 쓰러져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고요. 병원에서 잔디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회사에 할당된 예산이 있었겠죠? 수술하고 나서도 빨리 회복이 안 되니까 병원에서 안락사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데려가 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잔디가 <새벽이생추어리>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잔디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2020년 가을, 겨울 동안 실내 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에 <새벽이생추어리>에 왔어요. 그때는 잔디도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이빨도 더 많이 튼튼 해지고 그랬던 상황이었어요.   - 김고은, 『함께 살 수 있을까』 무모 인터뷰 중                   돼지와 돼지   작년 7월에 처음 만난, 무더운 여름 날의 잔디가 떠오른다. 하우스 문을...
경덕 2023.02.20 조회 579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경계의 포용성     독일의 이모들   쿠키이모는 독일에 산다. 작년 나는 잠시 서점을 쉬고 여름을 쿠키이모 집에서 보냈다.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 머물러도 되는 곳에 갔던 것 같다. 이모와 첫 식사를 마친 후, 이모는 나에게 흡연 여부를 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맞담배를 피며 여름을 한 집에서 보냈다. 이모와 나는 술과 담배, 한국 음식과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 여름 동안 나는 어떤 감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적당함을 알아가는 기분. 과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이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 산 한국인 이모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대체로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국제결혼은 너무 힘들다고 하더니 곧 이어서 너도 독일인이랑 결혼하라는 말들을 했다. 그때는 음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어린데 결혼 얘기를 하시네... 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이모들은 모두 내 나이 때 결혼했고, 국제결혼이 그들 모두에게 삶의 큰 사건이었을 것 같다.   이모들은 한국어로 말했지만 표준 한국어와는 발음이 달랐다. 독일어 단어들도 자주 섞여 있었다. 한국어를 아예 잊어 독일어만 쓰는 이모도 있었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경계의 포용성     독일의 이모들   쿠키이모는 독일에 산다. 작년 나는 잠시 서점을 쉬고 여름을 쿠키이모 집에서 보냈다.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 머물러도 되는 곳에 갔던 것 같다. 이모와 첫 식사를 마친 후, 이모는 나에게 흡연 여부를 물었고 그렇게 우리는 맞담배를 피며 여름을 한 집에서 보냈다. 이모와 나는 술과 담배, 한국 음식과 강아지를 좋아했다. 그 여름 동안 나는 어떤 감각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스스로의 적당함을 알아가는 기분. 과하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이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이곳에 오래 산 한국인 이모들을 종종 만났다. 그들은 대체로 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국제결혼은 너무 힘들다고 하더니 곧 이어서 너도 독일인이랑 결혼하라는 말들을 했다. 그때는 음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리고 내가 이렇게 어린데 결혼 얘기를 하시네... 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이모들은 모두 내 나이 때 결혼했고, 국제결혼이 그들 모두에게 삶의 큰 사건이었을 것 같다.   이모들은 한국어로 말했지만 표준 한국어와는 발음이 달랐다. 독일어 단어들도 자주 섞여 있었다. 한국어를 아예 잊어 독일어만 쓰는 이모도 있었다....
현민 2023.02.15 조회 282
요요의 월간명상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불교 공부도 철학 공부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10년은 불교세미나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철학공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명상일기를 쓰다   아침 명상 후에 명상 일기를 쓴다. 가끔씩 메모를 하다가 명상일기를 쓴 지 반년이 좀 넘었다. 명상일기와는 좀 다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 기록하는 것도 있다. 하나는 아버지 돌봄 일지다. 2년 전 어머니 병상일지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돌봄 일지가 되었다. 간혹 몸이 아플 때마다 기록하는 몸상태 일지도 있다.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없었던 긴장성 두통과 어깨 통증, 눈 뻑뻑함, 수면 패턴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써놓고 있다. 명상도, 아버지의 치매와 건강상태도, 내 몸의 컨디션도 기록을 들여다보면 변화추이를 알 수 있어서 나름 유용하다.             사실 나는 일기나 가계부 같은 사적인 비망록 남기기를 즐겨하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반추하는 회고형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도 어쩌다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 이외에는 거의 없다. 카메라나 캠코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기록과 보관에 무심한 것은 정도가 지나쳐 친한 친구들과의 몇 번의 해외...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불교 공부도 철학 공부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10년은 불교세미나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불교를 공부하는데 철학공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명상일기를 쓰다   아침 명상 후에 명상 일기를 쓴다. 가끔씩 메모를 하다가 명상일기를 쓴 지 반년이 좀 넘었다. 명상일기와는 좀 다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 기록하는 것도 있다. 하나는 아버지 돌봄 일지다. 2년 전 어머니 병상일지로 시작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돌봄 일지가 되었다. 간혹 몸이 아플 때마다 기록하는 몸상태 일지도 있다.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없었던 긴장성 두통과 어깨 통증, 눈 뻑뻑함, 수면 패턴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써놓고 있다. 명상도, 아버지의 치매와 건강상태도, 내 몸의 컨디션도 기록을 들여다보면 변화추이를 알 수 있어서 나름 유용하다.             사실 나는 일기나 가계부 같은 사적인 비망록 남기기를 즐겨하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반추하는 회고형 인간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도 어쩌다 다른 사람이 찍어 준 사진 이외에는 거의 없다. 카메라나 캠코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기록과 보관에 무심한 것은 정도가 지나쳐 친한 친구들과의 몇 번의 해외...
문탁 2023.02.10 조회 252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여곡절 무릎소동     무릎이 부어도    언제부턴가 한약 포장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쌍화탕을 한 팩씩 정렬하는 일을 즐겼다. 푸짐한 뱃살 때문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을 지나, 어쨌든 앉아지는 가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뱃살들이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아주 약간 얇아졌을 뿐이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무릎이 좀 더 삐걱댄 달까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아침, 샤워를 하다가 왼쪽 무릎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어있는 오른쪽 무릎을 발견했다. 당장 검색부터 했다. 무릎에 물이 찼다는 신호란다. 무릎의 염증이라는 진단과 물이 찼다는 표현 차이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몇 번을 읽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출근해서 오전 일과를 마무리 짓고 나니 12시쯤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슬그머니 약국을 나섰다. 침을 잘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 동네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를 가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고 침이 더 빨리 붓기를 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의사는 무릎 상태를 진단한 후 검색으로 읽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퇴행성이냐고 물었더니 진단으로 봐서는...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여곡절 무릎소동     무릎이 부어도    언제부턴가 한약 포장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쌍화탕을 한 팩씩 정렬하는 일을 즐겼다. 푸짐한 뱃살 때문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을 지나, 어쨌든 앉아지는 가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뱃살들이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아주 약간 얇아졌을 뿐이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무릎이 좀 더 삐걱댄 달까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아침, 샤워를 하다가 왼쪽 무릎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어있는 오른쪽 무릎을 발견했다. 당장 검색부터 했다. 무릎에 물이 찼다는 신호란다. 무릎의 염증이라는 진단과 물이 찼다는 표현 차이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몇 번을 읽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출근해서 오전 일과를 마무리 짓고 나니 12시쯤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슬그머니 약국을 나섰다. 침을 잘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 동네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를 가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고 침이 더 빨리 붓기를 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의사는 무릎 상태를 진단한 후 검색으로 읽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퇴행성이냐고 물었더니 진단으로 봐서는...
기린 2023.02.05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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