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무사
2023-03-3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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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뽀] 나는 임수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3.3.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뻐국뻐국~~ 00하세요. 00~~ "

아침밥이 준비되었음을 뜻하는 기계음이 들려오자 임수가 놀라며 물었다.

"오잉? 저 소리 뭐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뭐? 저 소리 첨 들었어? 전기밥솥에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소리잖아. 나는 3년째 듣고 있는데..."

"난 처음듣는 것 같오."

"뭣이라 -.-"

 

2명만 같이 살아도 공동체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 김하나, 황선우 작가는 "2명만 되어도 공동체다." 라고 말한다. 임수와 함께 생활하면서 이 말의 찐 의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나는 외동이다. 것두 성 감별 낙태가 공공연한 비밀이던 시절, 귀하디 귀했던 '무남독녀 외동'. 당연지사 자라오면서 먹는 것에 욕심낼 필요가 없었고 옆에서 부대끼는 사람 역시 없었다. 직장 초 특수했던 공동생활을 제외하면 죽~ '혼자' 살아온 셈이다. 그랬으니, 길게는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다. 3년 전 함께 살 결심을 하고 합을 맞춰볼 요량으로 잠시 임수의 숙소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작은 거실 겸 주방이 있고, 방이 2칸인 집이었다. 큰방에서 잠을 자고 공부를 했다. 작은방에는 옷장과 냉장고 등 나머지 짐들이 있었다. 거실에는 2인용 식탁과 이케아 시그니처 의자가 놓여 있던, 아늑한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둘이 지내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없음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임수는 '혼자있고 싶을 땐 인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함께 마련한 지금의 주거공간에는 임수의 배려가 눈에 띈다. 거실에는 책장과 테이블이 있다. 맞은편에는 좀 가벼운 독서와 영화 시청에 최적인 1인용 리클라이너(L사, 강추!) 두 개가 놓여 있다. 큰방에는 전용 욕실이 달려 있고, 작은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이 있다. 임수가 쓰는 방이다. 전용 욕실이지만 샤워 공간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내 루틴은 임수의 수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 방에서 임수는 책상, 옷장, 침대를 끌어안고 오밀조밀 살고 있다. 가장 큰방이지만, 또 가구가 가장 많은 방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배치다. 나는 올해 3월 1일 대한백수만세를 외치며 퇴사했다. 앞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을 나에게 별도의 공부방을 확보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방 2개를 침실과 공부방으로 각각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3년 후 쯤엔 임수도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때는 방 배치를 다시 해볼수도 있겠다. 큰방에 기숙사방처럼 침대 2개를 들여놓고 작은방을 하나씩 공부방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생활 공동체의 '업무' 분장

 

요즘들어 공동생활의 민낯은 생활노동의 배분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인 이상도 공동체인만큼 생활노동 배분도 그야말로 '업무' 분장인셈. '난 화장실 청소 하나는 기가막히게 해', '나는 화장실 청소만 빼놓고 잘하는데. 어쩜~'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갓생 종목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천생연분이겠지만, 세상일이 그럴리가!

 

 

합을 맞춰보았던 기간동안 임수는 요리솜씨를 한껏 뽐냈다. 된장콩나물국, 무국, 무나물볶음, 피자토스트, 핫케이크, 각종 파스타, 시금치 프리타타 등 내가 평소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거나 만들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맛볼 수 있었다. 음식만들기를 즐기지 않는 나는 '임수한테 주쉐프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겠어. 흐흐흐' 하며 머릿 속으로 사심 가득한 업무분장을 끝냈더랬다.

 

임수는 주쉐프와 식(물)집사 직분을 맡고 설거지, 기타 주방 관리, 요리 보조 등 부쉐프, 청소, 세탁, 쓰레기 처리 등은 내가 하게 되었다. '좀 기우나?' 싶었지만, 세상만사가 칼로 딱 나눠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먹고사니즘 중 '먹고'에 좀 더 방점을 두자 나머지 문제는 사소하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거슬러 올라가기는 어려워도 달려 내려오기는 수월한 법. 그 외 보이지 않는 연결 노동들도 슬금슬금 내 몫으로 흘러내렸고, 점차 임수가 만드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외식이 잦아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증거물 1호

 

요리는 커녕 임수는 점점 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출근길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실 테이블 위에 쓰레기(마스크, 핫팩 , 칫솔 포장지 등)를 휙~ 버리고 가기 일쑤고 싱크대 위에는 포장지를 자를 때 썼을 날 벌어진 가위와 비닐 조각, 생약 봉지 등이 널부러져 있었다. 굳이 궁금하지 않은 임수의 동선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새 마스크를 쓰고 핫팩을 하나 꺼냈군. 회사 칫솔모가 마모됐나보군. 오늘은 무슨 생약을 드셨나?' 상대적으로 빨리 퇴근한다는 죄(?)로 임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출근길 임수가 벌인 사투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도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말을 꺼내기엔 너무 자잘하여 '그냥 내가 하고 말자'며 정리했지만, 소리없이 역치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었나보다. 잔소리는 늘어갔다.(다들 알겠지만, 사실 가족 구성원의 잔소리는 대체로 잔소리가 아니다!!) 몇번이나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분리배출 품목과 빨랫감은 베란다에'를 강조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나는 붕괴됐고, 급기야 (톡으로) 폭발했다.

 

"난 임수 당신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 백수 라이프는 당신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한 시간들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물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배분된 것 외에 더 많은 생활노동을 할 수는 있겠죠. 그치만 그것은 내 호의이지 의무가 아닙니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일들은 10초, 20초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전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세요."

"죄송해요. 퇴근하고 정리하려고 했는데...할 말이 없네요."

 

'프로성찰러' 임수는 이번에도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에효~ 맘 약해지게...' 그래도 안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사정변경의 원칙

 

민법에는 '사정변경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계약 체결당시의 사회적 사정이 변경되면 계약은 그 구속력을 잃는다는 원칙이다.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① 계약당시 예상하지 않았던 것 ② 현저한 변경일 것 ③ 계약 당사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실무에서는 계약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소극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정화와 임수의 관계는 결혼(특정 성별 간의 혼인만 인정한다!)이나 생활동반자(아직 법적 근거가 없다!)와 같은 '법적 계약' 관계가 아니다. 그러니 민법상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는 더더욱 없다. 그렇더라도 예상치못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거나 그 사정이 일방 혹은 쌍방의 책임있는 사유로 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기존의 생활노동 배분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사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은 재배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더욱이 우리가 '법적 관계'가 아닌 이상 그 사정에는 더 다양한 상황이 포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수는, 함께 살기 시작한 즈음에는 반짝 식상 기운이 들어왔었고 직장 일도 그리 바쁘지 않았던 덕분에 잘 먹고 살았었는데, 올초부터는 몰려드는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고 했다. 식상 기운도 식상해진 지금, 임수는 거의 요리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 일이 잘 풀려서 컨디션 좋은 금요일 저녁에 가끔 파스타를 만드는 정도다. 이마저도 토요일 오전 2023 양생 프로젝트 세미나를 시작하면서는 세미나 준비를 다 하지못했다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우리의 먹고사니즘은 이렇게 공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오픈 포부대로 앎과 삶이 함께 가고 있으니 매우 뿌듯하다.(-.-)

 

그렇다고 주쉐프가 아예 개점휴업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2달에 한 번 정도 채소수프(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 한 달>12월호 '방구석 레시피' 참고)와 멸치볶음* 을 만들어서 두고 두고 먹는 루틴은 유지되고 있다. (이 두 가지 음식은 내 소울푸드여서 늘 감사히 맛있게 감탄하며 먹고 있다. 감탄과 감사의 표시는 내 평소의 데시벨이나 반응정도에 비해 유별나게 크고 화려하게 하는 편이다!!)

 

* <멸치볶음> 간단 레시피

잔멸치 300g, 마늘, 들기름, 간장을 넣고 볶아 짭조름하게 만든다. 매일 새벽 산책을 마친 후 갓지은 밥에 들기름 한스푼, 멸치볶음 한스푼을 넣고 비벼 김에 싸서 먹고 있다. 3년 째 먹고 있는데, 질리지 않고 맛있다.

 

희생과 호의 사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한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성 역할의 비대칭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가사노동은 그러한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내가 다니던 극남초 직장의 동료들은 갓 결혼한 남성 후배들에게 설거지나 청소를 대충하는 전략을 귀뜸했다. 아내에게 꾸지람을 듣긴 하지만, 그렇게 대충하고 나면 웬만큼 급하지 않고서야 시키지 않는다며.

 

2022년 뉴워커 X 두잇서베이 공동 설문조사 결과 인포그래픽

 

어쩌다보니, 일을 하는 회사원 임수, 집에 있는 백수 정화에게 배분된 가사노동은 '성별'만 제외한다면 가부장제 안에서의 편향된 성별 분업 구조와 닮아있었다. '정상' 가족과 달리 '성별'의 문제를 비껴간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의 가사노동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걸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상호호혜나 돌봄의 의미를 인용해야 하나? 지금으로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ㅎㅎ

 

함께 산다는 것이, 일방만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된 또는 자발적) 희생이든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역할 분담에 익숙해져서든 간에 말이다. '본투비 가사노동 일잘러'는 없다. 그래야 한다고 여겨져온 사회인식과 이를 가능케한 제도와 규범, 그리고 관심 부족만이 있을 뿐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놀이용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 탑처럼 쌓아 올리는 구조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카드의 두께가 매우 얇고 가운데가 비어있는 엉성한 구조라 무너지기 쉽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나 불안정한 계획 등을 말할 때 쓰인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우리가 겪은 '업무분장' 불균형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정화는 '포커페이스' 유지에 실패했다. '야호~ 더이상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사심만 그득했던 나머지 생활노동의 종류와 양, 빈도, 난이도, 소요시간, 우선순위 등을 고려하여 리스트화하지 않았다. 둘째, '있어빌리티'의 함정에 빠졌다. 각자의 역량을 숨김없이 밝히고 '고평가'된 부분이 있다면 거품을 제거했어야 했다. 셋째, '사정변경의 원칙'을 고려하지 않았다. 각자의 생애주기, 라이프 일정에 따른 변경가능성, 건강, 감정상태, 기운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재조정하는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예측과 소통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가는 '공존의 기술'이 부족했다.

 

"관계는 노동이기도, 함께 살기의 감각,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 관계노동이 요구된다. 공존의 기술은 타자와 연결되고 서로에게 결속되면서 획득하는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122쪽

 

어떠한 관계든, 그것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정상' 관계든 아니든 간에 찐 다른 인간 두 마리는 사심의 동상이몽 속에 있다. 구체적 돌봄없이 있는 척, 잘하는 척, 위하는 척 포장으로만 세운 '하우스 오브 카드'는 결코 '스위트홈'이라는 허상조차도 될 수 없다.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들은 주말에 가사도우미를 부르거나, '어지르기 대마왕' 황선우 작가가 상대적으로 집안일을 많이 하는 김하나 작가 통장에 추가 비용을 입금하는 것으로 해결하면서, '돈을 쓰라!'고 일갈한다. 돈을 쓰는 방법도 '공존의 기술'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좀 다르게 조율해보고 싶다.

 

 

도량 단위부터 다른 두 인간

 

양간인 임수와 음간인 정화는 도량 단위부터 다르게 받아들인다. 정확한 설명없는 '소금 한 스푼'이 임수한테는 1T이지만, 정화에게는 1t이다. 정화가 삶은 계란의 맛이 밍밍했던 이유가 있었다. 1남1녀인 임수는 늘 2살 터울 오빠와 처절한 음식 쟁탈전을 치뤄왔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통닭 각 1마리씩을 사주시면서부터 그나마 휴전이 유지됐다고. 그래서 임수의 식사 속도는 빠른 편이다. 천천히 오래 먹는 정화에게는 매우 불리한 전선이다. 그래서일까? 이대로는 못먹고 살겠다 싶었는지 내 식사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적자생존' 진화의 법칙이 단기간에 속성으로 몸에 새겨졌다. 이제는 '스페셜' 음식을 먹을 때면 양의 배분에 신경을 쓴다. '정임합목 동물의 왕국'에 잠시나마 찾아온 평화가 반갑다.

 

영국 BBC 방송 <메이팅 게임>

 

(톡으로) 폭발 사건이 있은 이후, '프로성찰러' 임수는 한결 조심하는 모습이다. 쓰레기를 여기 저기 방치하는 것은 확실히 나아졌고, 내 호의를 당연하게 인식하지 않고 감사함을 표현하려 애쓴다. 우리는 서로 참을 수 없는 것, 정말 하기 싫은 것들을 식별해내는 것부터 다시 해보고 있다. 연재가 끝나는 연말 즈음엔 '하우스 오브 카드'가 '하우스 오브 나무' 정도는 되어 있으려나? 우리 하우스 이름에 걸맞게 말이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봄의 정원(feat. 살구나무, 산수유나무)

Special Thanks To

이 에피소드를 몸소 만들어 주고, 연재까지 허락해준 임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ㅎㅎ

(우리 임수가 참 품이 넓습니다. 여러분~~!)

 

댓글 12
  • 2023-03-31 01:56

    같이 사는 일은 '치열한' 일이네!! 나도 치열하게 살아야지~

  • 2023-03-31 07:08

    읽는 내내 웃기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뭔 일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

  • 2023-03-31 09:04

    이 글을 읽는데 어디선가 오디오가 들려오는 듯하네용 ㅋㅋ. 그래도 두 사람 현명하시네요. 불편함을 얘기하고 또 듣기 위해 귀와 마음을 여시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은 거 같습니다. 하우스 오브 나무 응원합니다~~~~^^

  • 2023-03-31 09:25

    으하하하하하 너무 웃겨요. 같이 사는 것의 99%는 가사분담 문제죠...! 앞으로도 치열하게 싸우시기를!!

  • 2023-03-31 11:14

    아하하~~~ 제가 일지에 관성있는 사람이라 입 꽉 다물고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잔소리)해" 복화술을 하는 편인데~ㅎㅎ
    연재에 턱하니 저의 만행이 까발려지니 참 부끄럽네요^^;;;; 사실 댓글도 나중에 달려했는데.
    백만 가지 변명 거리가 머릿속에서 풀가동하지만... 사실 맞습니다. 제가 좀 한 번에 치우려고 눈을 꼭 감아요. 안 보이기도 하지만 못 본척하기도 해요^^;;;;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거죠. 그래도 반성은 빠른 편이라 빠르게 시정조치합니다. 유통기한이 쫌 짧아서 그렇지만..^^;;
    그래서 늘 정화에게 감사합니다.

    ps. 아.. 저 증거물 1호... 사진을 찍었을 줄이야, 역시 우리집 수사반장^^;;

  • 2023-03-31 11:28

    ㅋㅋㅋㅋㅋㅋ 사진 찍는 무사의 포즈가 루틴의 댓글로 확 떠오름~~~~ ㅋㅋㅋㅋㅋㅋ

  • 2023-03-31 16:34

    사정변경의 원칙이 잘못했네. 죄가 제일 커~~ㅋㅋㅋ

  • 2023-03-31 17:09

    ㅋㅋㅋ 너무 우껴...
    나무 한그루 잘 키우려면, 화창한 봄날만이 아니라, 소쩍새 울고, 천둥번개 치고, 땡볕 이글이글 타오르는 날도 있어야겠쥬~ ㅋㅋㅋ

  • 2023-03-31 23:10

    ㅎㅎㅎ 넘나 재미있네요~봄의 정원도 멋지고요!

    저도 초반에 집에 있는 시간 길다고 집안일 더 한다고 생각하니 화딱지가 나서, 지금은 저 혼자살 때보다는 약~간 더 하는 정도로 불공평하다 느끼지 않는 정도만 해요. 짝꿍 방은 청소기 들어갈 틈도 없어 문 닫고 아예 안 건드림. 저희는 어느 정도 집안일 목록화하는 것은 필요했고, 누가 집안일 하든 그때그때 서로에게 카톡으로라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좋더라고요. 청소기.설거지.빨래 완료! 요래

    아무쪼록 두 분만의 공존의 기술 소통하며 갈고 닦아 나가시며 계속 이야기도 들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D

  • 2023-04-01 11:00

    일단.. 민법과 증여론까지 읽고 강의하러 나갑니다. ㅋㅋ 너무 재밌어요.

  • 2023-04-05 10:11

    갓지은 밥에 멸치볶음 "비벼'먹는 궁합을 알고 계셨군여! 엄지척!

  • 2023-04-16 16:16

    '너어~ 자꾸 이렇게 하면 다음 달 연재에 쓸거야!' 하는 협박?
    호신용 글쓰기인가요ㅋㅋㅋ 다음 글쓰기에 독자 반응이 중요하겠어요 :]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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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07:33 | 조회 128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남어진
2024.05.10 | 조회 199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87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350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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