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와 동적 평형 / 김은영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통증과 피곤함이 반복되면서 내 최대 관심사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상태로 깨어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몸을 많이 사용한 날에는 마사지와 스트레칭에 긴 시간 공을 들이고, 그날 다 못한 일이 있더라도 수면 시간은 반드시 지켜냈고, 나의 위장이 편하게 여기는 밥상 구성은 무엇인지 기억해서 그것 위주로 먹으려 애썼다. 난생 처음, 보약도 직접 챙겨 먹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걷는 걸음걸이도 새로 배워 익히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자세로 앉거나 서기 위해 애썼다. 대회에 나가기 위한 훈련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내 체력에 맞게 운동량을 채웠다.
이렇게 생활을 해 보니, 그동안은 내가 계확한 일을 실행하기 위해 몸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했으며, 특히 체력의 최대치를 쏟아내며 운동을 하는 습관도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은 것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 몸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한계치가 어느 정도일지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하나의 정답만이 아니라서, 매일 관찰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요구하지만 그 일이 나의 몸과 일상에 필요한 걸 알기에 지켜가려고 애쓰고 있다.
2. 갱년기,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전환기이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흰머리가 갑자기 많아졌을 때 노화의 시작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폐경기는 당연히 오는 것이고, 장거리 마라튼 대회를 나갈 수 있는 체력만 유지 된다면 외적인 변화 정도야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갱년기가 있었는 지도 모르게 지나갔다는 사람들의 사례에 나도 포함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갱년기를 지나면서 지금까지 내 몸이라고 여겼던 정보들이 전혀 쓸모 없어지고, 예측할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짜증스럽고 화가 나기도 했다. 혹여 노력이 부족해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인가 의심하며 무리한 일정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내 몸이 갱년기로 진입했음을 인정하고, 그 몸을 돌보면서 지내기로 결심했을 때의 솔직한 심정은, 나의 몸이 한 단계 훅 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혹은 노쇠해지고 낡은 몸이 되었다고도 표현했다. 그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진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져서 바로 며칠 전에 달렸던 거리를 뛰거나 헤엄칠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면 돌아오리라 여기면서 대회도 참석했는데, 결국 반은 뛰고 반은 걸어서 돌아왔다.
커피를 끊고, 빵과 과자를 끊고, 자체적으로 모든 대회 참석 금지를 내리고, 통증은 완화하고 몸의 기운은 보하는 약을 먹고, 거기에다 외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몸의 대사 작용이 훨씬 편안하게 진행되는 것을 느끼며 그 안에서 몸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간다. 그럼에도 불편한 통증들이 시작될 때도 있지만 대응하는 방법들을 빠르게 찾아서 잘 넘어가고 있다. 여전히 예전에 뛰었던 거리를 달릴 만큼의 체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가벼운 조깅은 할 수 있게 되었고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열심히 하다 보니 몸은 더 가볍고 유연해진 것 같다.
요즘은 지금 이 상태가 현재의 내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어떤 의심도 없다. 게다가 갱년기 전의 몸 보다 더 편안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때의 나와 달라진 것은 끊임없이 몸의 상태를 진단하고 조절하려 애쓰는 것과 인문학 공부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인데, 두 가지 다 갱년기를 통과하는 데 큰 축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갱년기를 ‘신체 기능 저하와 생식 기능 없어짐’의 노화 현상으로 규정짓지 않고, 삶의 변곡점이자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 해석하는 데 있어 강력한 아이디어로 작용한 것은 루돌프 쇤하이머의 ‘생명관’이다.
3.갱년기, 하나의 흐름이다
“즉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스템에 내구성과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 자체를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다시말해 흐름만이 생물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배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생물과 무생물 사이』후쿠오카 신이치, p146)
1930년대 후반,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기 전, 쇤하이머는 동위체 실험의 결과로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p143)이라는 새로운 생명관을 발견하게 된다. 생명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원자가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과정으로만 존재하며, 그 흐름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슈뢰딩거의 “모든 물리 현상에서 나타나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서 벗어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생명의 특질”(p145)이라는 불완전한 생명관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발견이다.
생명현상이 모두 물리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원자의 불규칙한 열운동과 엔트로피 증대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생명체가 오래도록 성장하고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엔트로피가 축적되는 속도보다 그것을 외부로 버리고 새로운 것을 재구축하는 시스템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즉 시스템의 흐름이 엔트로피 증대를 막아왔고, 그것만이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 되어온 것이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p146)
인간의 몸 안에도 동적 평형의 흐름이 당연히 존재하고, 언젠가 그 흐름이 감당하지 못하고 최대 엔트로피 상태가 될 때 죽음이 된다. 갱년기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들은 아마 그 흐름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경고일 것이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새겨듣고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사유하며 ‘균형 잡힌 시스템’을 어떻게 취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한다.
4. 갱년기, 인생 후반기를 위한 구원의 시기다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폐경기의 호르몬 변화가 인생의 후반기를 좀더 솔직하고, 충만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썼으며 심지어는 ‘구원의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야 할 때이며, 이 변화를 외면한다면 몸은 질병을 통해 경고하고,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이는 동적 평형과도 맞닿아 있다. 갱년기를 특정한 호르몬의 감소나 결핍이 오는 시기로 간주하며 질환, 병증, 치료, 증상 등의 단어와 바로 연결하는 해석은 동적 평형 흐름의 생명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이다. 설혹 갱년기와 어떤 병증이 연결되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지나간 시간 안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한 내적, 외적 매듭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발현되는 갱년기야 말로 그 문제를 풀어나갈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엔트로피 상태를 밖으로 보내고 새로운 삶을 위한 기운으로 채워 인생 후반기를 살아갈 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갱년기는 치료가 요구되는 질병이 아닌 정상적인 과정이며 전반기 인생을 잘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 후반기를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이 시기에 몸과 마음의 고비들을 겪게 되더라도 현재 자신의 몸을 인정하는 것을 기반으로 해야 변화의 흐름을 타고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