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Mamma mia ⃰ !! 딸의 결혼

먼불빛
2023-03-2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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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의 제목처럼 정말 머~~~얼고도 가까운 존재, 원수인가 싶으면서도, 친구 같고, 친구인가 싶다가도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며 얽히는 그런 이상야릇, 복잡 미묘, 통제 불능의 관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내 안의 절대 타자. 딸은 그런 존재다.

 

싸우는데 이유는 없다. 그냥 5분만 같이 붙어있으면 사사건건 시시각각 그 모든 것이 싸워야 할 이유가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도 궁합이 있다고 했는데 딸과 나는 유독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격, 옷, 음식, 스타일, 취향 그 모든 것에서 우리는 어긋났다. 성격상 그녀는 빨랐고 단순 직선적이었지만, 나는 매사 느리고 신중했다. 나는 데면데면하고 냉정한 데 반해 딸은 언제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공감해주길 원했다. 이런 어긋남이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싸운 이유일 것이다. 나는 모든 자식의 문제가 부모 문제라는 걸 인정한다. 수많은 날을 두고 반성했지만, 언제나 부족한 건 엄마인 내 쪽이다.

 

 

디어마이프랜즈 드라마에서 엄마(고두심)과 딸(고현정)이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며 싸우는 장면 캡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즈 캡쳐)

 

 

비교적 자유분방한 딸은 학교나 직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엄마인 나와 떨어져 지낼 기회가 많았다. 물론 거기에는 서로의 충돌을 피해 보자는 이유도 없지 않았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한 번, 19살에 친구와 자취방을 얻으면서 한 번, 제주도로 취업하면서 한 번,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남친과 동거하겠다면서 한 번. 총 네 번에 마지막 한 번은 동거와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엄마인 나와의 동거에는 잠정적 마침표를 찍은 꼴이 되었다.

 

내가 딸과 심정적 분리를 하게 된 시기는 딸이 19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딸이 친구와 함께 자취하겠다고 했고, 친구의 엄마와 나도 의논한 끝에 흔쾌히 승낙했다. 멀리 지방에 사는 친구 엄마의 각별한 부탁도 있고 해서, 이사 당일 이것저것 필요한 살림 도구를 챙겨 일찍 도착한 자취방에는 이미 딸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딸은 심드렁하게 “엄마~ 나하고 친구들이랑 해도 되니까 엄마는 돈만 주고 가~” 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딸의 눈빛, 친구들의 분위기에서 내 역할은 짐과 돈만 던져주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직은 엄마의 품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는데 딸은 벌써 ‘엄마 없이 혼자 할 수 있다’고 내게 독립 선언을 한 꼴이다. 품 안에 있을 때나 자식이라더니. 뭔가 가장 애착하던 어떤 것을 갑자기 일시에 빼앗겨버린 듯한 서운함이 몰려왔다.

 

“응... 그래... 여기...” 하며 돈을 건넨 후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온 나는 조조 영화관을 찾아서 들어갔다. 눈물 콧물 쏙 뺀다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 내내 울고 또 울면서 마음을 달랬었다. 그렇다고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이 쉽게 끊어질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린 계속 끝없이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번 결혼식에서 전혀 울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그때 이미 너를 보냈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단다. 딸아….’

 

 

뭐가 그리 쉬울까?

 

 

그렇게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냈던 딸이 집 밖에서의 개고생을 두어 번 겪더니 아예 집으로 들어왔다. 한 번씩 집을 들고 날 때마다 딸은 달라졌다. 송곳처럼 뾰족하던 태도가 조금씩 누그러졌고 나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서른이 넘도록 한집에 있을 때는 이제 진짜 독립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잔소리에도 꿈쩍을 않던 딸이 절친으로부터 소개팅을 받은 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말 외출이 늘고, 외박이 잦아지더니 몇 개월도 안 되어 급기야 나에게 남친과 동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체 니들은 너무 빠른 거 아니니?”

짐짓 언짢은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결혼 보단 동거가 낫지 싶었다.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서로 만날 수 있는 시간대가 늦은 밤밖에 없고, 더 이상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다닐 체력도 안 되고 힘이 드니 서울에 있는 남친의 집에서 함께 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좋고, 결혼해도 괜찮을 정도의 사람이며, 동거하면서 천천히 지켜보고 결혼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인 나는 이렇게 빨리 결정할 문제인가? 얘들은 뭐가 왜 이리 쉽지?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만가지 염려와 걱정이 앞섰지만 나는 노파심을 접고 동거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서른 중반이 넘는 딸년을 붙잡고 피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그리고도 잔소리.

“술버릇 잘 봐야 해”

“엄마, 오빠 술 한잔도 못 마셔”

“아…. 그래...”

“많이 싸워 봐야 해”

“그래? 싸움이 안 되던데…. 오빠가 감정 고저가 거의 없는 사람이야.”

“흥…. 무슨 얼어 죽을 ‘오빠’는….‘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돈 씀씀이도 잘 지켜보고, 집안일은 잘해? 당연히 분담은 하는 거지?”

“엄마 한번 만나볼래?”

“아니 됐거든, 니네 연애에 엮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1년이라는 기한을 이야기하며 그 이전에는 보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딸은 왜 1년이야? 물었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왜 1년이라고 했을까? 그냥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관계에 신중을 기하기 위한 잠정적 유보 기간, 딸이 겪어내야 할 사람과 시간에 불필요하게 엮이지 않으면서도 잘 지켜볼 수 있는 그런 거리를 갖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내가 동거하는 것도 아닌데 참…. 딸과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는 어렵다.

 

 

평범한 결혼식

 

 

해가 바뀌고 코비드-19가 서서히 진압되기 시작하자, 결혼 이야기는 상대방 부모님으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철 지난 옷을 갖다 놓고는 며칠 쉬어 가고 하는 식이었다. 가끔 보는 관계가 나쁠 리 없다. 어느 때보다 애틋하기도 했고, 우리의 대화 시간이 늘어났다 흐흐. 5분 정도면 말다툼이 시작돼 서로 휑하니 돌아 각자 방으로 가고는 했는데, 웬일인지 딸은 나와 있을 때보다 한결 안정되고, 편안해 보였다. 평소에 내가 보지 못했던 딸의 모습이었다. 딸은 나와는 다르게 아이를 무척 좋아했고,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그리고 단출한 식구보다는 대가족 속에서 북적대며 살기를 갈구했다. 정말 종자가 달라도 너무 다른 종자다.

 

‘결혼’을 반대하는 나의 시선을 딸에게서 거두어야만 했다. ‘어쨌든 여전히 결혼’인 딸을 위해 나는 동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딸의 남친을 보아야 했다. 첫인상은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강단 있어 보였다. 묻는 말에 구김 없이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 성품도 밝고 무던해 보였다. 서로 잘 어울렸다. 딸에게서 보였던 안정감이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직관만으로 무엇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딸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이럴 때 딸은 ‘그냥 좋다고 하면 될 것을’ 이지만 나는 ‘음…. 글쎄’ 거나 ‘나쁘지 않아’이다. 우리는 이래서 싸운다.

 

상대방(사돈) 또한 지극히 평범한 집안이라 아주 노멀한 결혼식을 원했다. 모든 준비는 두 사람이 적정선에서 합의한 대로 따르기로 했고, 일체의 혼수라던가 답례, 이바지 등등은 생략하자고 상견례에서 이야기가 되었다. 상견례, 사돈, 사위. 장모…. 세상 낯선 인간관계가 맺어졌다.

 

나는 결혼 비용을 굳이 소비하느니, 둘이 살 집을 좀 더 넓히길 바랐지만, 딸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로망’을 따라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했다. 멋지고 우아한 드레스, 웨딩 카펫, 그리고 새로운 일가의 탄생 같은 것들. 여전히 굳건해 보이는 결혼제도, 약간의 형식이 젊은 세대에 맞춰 변형되었을 뿐 결혼 시장은 더욱 커지고 거대해 보였다. 딸의 결혼 준비를 위해 찾아간 강남의 결혼 컨설팅 업체는 놀랍게도 박람회 광장처럼 펼쳐진 대규모 공간에 책상마다 커플들이 상담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소위 결혼 패키지 상품인 ‘스‧드‧메’를 둘러싼 웨딩플래너들과 결혼 커플들의 각축장. 결혼 커플을 보기 힘들다는 말은 거짓말 같았다. 이렇게 많은 젊은 커플들이 여전히 결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 출처: pixabay)

 

 

어쨌든 딸은 결혼했다. 모든 준비는 당사자 둘이 하면 되었다. 그 옛날 결혼식처럼 정신없이 혼수 준비에 바쁘거나 집안이 북적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청첩장도 온라인으로 돌렸고, 내가 한 일은 가까운 친구, 친지에게 전화 몇 통 돌리는 것과 결혼식 당일날 메이컵과 입을 옷 정도를 신경 쓰는 것이 다였다. 식에 초청할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자주 만날 일이 없는 4촌은 이제 친척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 문화는 결혼 당사자 친구들의 청첩장 모임이 중요한 관례처럼 보였다. 청첩장을 주기 위한 시간 투자와 음식비용이 만만찮았다고 했고, 삼십몇 년간의 자기 인간관계의 점수를 매기게 되더라는 말을 했다. 우리 때는 결혼식 전날 함을 팔기 위해 신랑 친구들과 흥정하며 실랑이하던 풍습이 있었는데(음…. 이게 언제 적 얘기인가...). 청첩장 모임 이것도 MZ들의 결혼 신풍속도 중 하나일까? 결혼식 사회는 딸의 절친이 씩씩하게 진행했고, 딸은 혼자 음악에 맞춰 입장했다. 둘이 작성한 성혼 선언을 읽었고, 바깥사돈이 축사를 유쾌하게 했다. 노래를 전혀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삑사리를 내며 축가를 불러댔다. 사위가 내게 큰절을 올렸는데, 보통은 엄마들이, 가끔 아버지들까지 눈시울을 적시던데 나는 울지 않았다. 딸도 울지 않았는데, 사위가 울었다.

 

 

모녀가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딸의 결혼은 노년기에 접어든 내게 닥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그동안 딸은 내 인생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이유이자 삶의 동력이었다. 이제 주민등록등본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해방감과 안도감이, 한편으로는 쓸쓸함이 교차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딸의 결혼은 뭔가 마침표를 찍었다기보다는 또 다른 시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그 많은 엄마들이 갔던 길, 딸의 경력 단절을 염려하며 대신 아이를 봐주고, 살림해주면서 그렇게 노년을 보내버리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물론 딸에게 나는 아이를 전적으로 봐줄 생각도 없고, 그리고 내 노후를 기댈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여전히 일 가정 양립이 어려운 시대, 허둥댈지도 모르는 딸을 내가 과연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혹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운명의 장난 같은 일들이 내 딸만 피해 가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엄마로서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이제 혼자 살아가야 할 시대, 내 노년을 나는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며칠 전 모처럼 집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딸은 또 달라져 보였다.

“다음 생에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뭐야? 이 반성 모드는? 나 또 태어나야 해?”

“아니 갚아주고 싶어서지..ㅎㅎㅎ”

아니 왜 다음 생일까? 이생은 망했다는 건가? 하긴 모녀지간이 아니면 그 지난한 우여곡절의 관계를 어떻게 짐작하며 헤아릴 수 있을까. 앞으로도 우리 모녀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엮일 것이다. 하지만 엮일 때 엮이더라도 이 질긴 모녀 관계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서로의 삶 안으로 미끄러져 허우적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내가 잘 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내가 계획하고 있는 ‘나의 노년 프로젝트’를 딸에게 이야기해야겠다. 나의 이름으로 살고,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나의 언어로 말하는 그런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프로젝트. 그래서 딸에게 말하리라. 우리는 이제 주어진 역할로서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생을 살아 보자고 말이다. 만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고, 내가 잘 서고자 하는 나의 노년이 딸에게도 좋은 기운으로 가 닿았으면 좋겠다.

 

“다 잘될 것이다, 그리고 다 잘될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 방식 또한 다 잘될 것이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파커 J. 파머/247p. 노리치의 줄리안이라는 중세 영국의 여성 은수자가 쓴 <신성한 사랑의 계시>에서 인용)

댓글 14
  • 2023-03-27 19:39

    딸의 결혼식을 치르며 이런 느낌이셨군요^^ 큰일 치르셨네요!

  • 2023-03-27 20:59

    ‘나는 그때 이미 너를 보냈고,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단다. 딸아….’요 부분에서 찡했어요~예상밖에 사위가 울었다는 대목도 재미있었고요,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갈 두 여성의 앞날도 응원하게 됩니다~!

  • 2023-03-28 08:26

    애쓰셨네요. 공감가는 대목이 많은걸 보니 먼불빛님과 같은 시대 사는게 맞군요~~
    노년 프로젝트 다 잘되기를요^^

  • 2023-03-28 09:01

    '그래. 결혼보다는 동거가 낫지 싶다' ㅎㅎ

    가족의 구성에 대한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으면...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바라봅니다.

    늘 응원합니다. 먼불빛샘^^

  • 2023-03-28 09:28

    뭉클울컥 하며 읽게 되네요
    먼불빛샘 애쓰셨고 또 응원합니다!
    다음글도 설레며 기다려요^^

  • 2023-03-28 10:03

    10년 전 저 결혼할 때, 엄마한테 통보만 하고 제 맘대로 다 했을 때 엄마의 난처해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ㅎㅎ
    딸 입장에선 꽤나 파격적인 결혼식 (혼자 입장, 여사친의 사회, 혼수, 답례 생략 등)을 했다고 생각했을텐데 먼불빛샘 눈엔 오히려 다른 면에서 거대해보였다는 것도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자식 입장에서 바라본 부모 이야기는 많은데 부모 입장에서 하는 성인이 된 자식과의 이야기, 소중합니다. 뭉클하게 읽었어요. 계속 기다릴게요!!

  • 2023-03-28 12:35

    모든것이 다른 딸, 공감받기를 바라는딸과
    데면데면한 엄마~. 공감을 넘어 동감입니다^^.
    결혼시키며 오간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며
    새로운 장으로 넘어간것 같아요~.
    축하드리며, 노년의 프로젝트도 잘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 2023-03-28 17:48

    뵌적은 없지만... 와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세요? 글이 너무 재밌고 생생하고 썜도 멋지시고. 앞으로 글만 쓰시며 지내셔도 내내 바쁘실 것 같아요. 글 많이 쓰시면 좋겠어요. 계속 잘 읽겠습니다^^

  • 2023-03-29 05:56

    먼불빛님^^ 이멀고도 가까운 모녀 관계~~ ㅋ 팔십 중반을 넘어가는 저의 모친이 떠오르는 군요^^ 먼불빛님의 노년프로젝트를 응원합니다~~

  • 2023-03-29 22:06

    집을 들고 날 때마다 딸이 달라졌다는 부분에서 울컥했습니다. 딸을 바라보는 먼불빛님의 눈빛에서 저희 어머니가 생각난 건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함께 살게 된 칠십대 후반이 되신 어머니를 보며 엄마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이제 제가 하게 됩니다. 아마도 노년 프로젝트에 언제나 딸은 연대자 중 한 명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4-05 22:47

    물흐르듯 흐르는 샘의 이야기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질긴 모녀 관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먼불빛님은 질색이시려나요? ㅎ) 제 엄마도 제가 결혼하셨을 때 먼불빛님과 같은 마음이셨으려나..생각도 들고요.

  • 2023-04-08 23:45

    글을 읽으며 서로 다른 성향의 두분이 서로 용신 관계일 수 있겠다라 생각이드네요~^^;;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모녀의 관계가 재미있네요~~

  • 2023-04-12 20:26

    이리 글을 맛깔라게 잘 쓰시다니요.. 먼불빛님의 책 출판을 고대해봅니다.~~

  • 2023-05-08 23:49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따님이 굉장히 똑순이일 듯합니다. 오죽하면 동거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좋은 남자를 골랐을 거라고 믿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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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5.12 조회 339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조회 22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가마솥 2023.05.03 조회 26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5.03 조회 19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문탁 2023.05.02 조회 147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문탁 2023.05.02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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