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 아니, 가마솥!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나의 사업장이 넓혀졌다
몇 년 전에 사 놓고 나 혼자 가끔씩 튕겨보던 기타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헌데, 동천동 예술 플랫폼 꿈지락(꼼지락이 아님!)에 기타 강습이 생겼다.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아주 잘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던 ‘로망스’로 시작했다. 어느 강습 날 저녁, 연습실 앞 복도가 난리가 났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 것인지, 복도에서 물이 넘쳐 계단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다. 추운 날이긴 하였지만 계량기 동파(凍破)는 아니었다. 물이 새는 곳을 살펴보았다. 전기온수기를 쓰고 있었는데, 냉수 파이프를 온수기에 연결하여 물을 데워 사용하고 있었고, 온수 파이프는 그냥 잘려진 채로 있었다. 그 곳에서 물이 펑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랍쇼? 온수 파이프를 왜 이렇게 방치했지? 꿈지락 회원인 바람님이 내일 아침에 주인에게 전화해서 해결하겠다고 해도, 내게는 이미 기타 연습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계량기를 잠그고 여기 저기 조사를 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잘려진 온수 파이프밖에 다른 원인이 없다. 그런데 가만, 이것이 원인이라면 왜 지금에서야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지? 음...... 두께 15mm PB관을 썼으니, 일단 15A PB관 마개(전문용어는 ‘PB 메꾸라’)를 사서 잘린 곳을 막으면 된다. 다음 날, 바람님에게 “해결했나요?” 카톡을 날린다. 하루 종일 연락 중인데, 모두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살던 사람, 인테리어한 사람, 집주인, 전기온수기 설치한 사람 모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천 원 짜리 PB 메꾸라를 사서 간단히 해결했다. 내게는 별것 아닌데, 내가 미안할 정도로 너무 고마워들 한다.
이것으로 문탁에서 동천동까지 나의 사업장(?)이 ‘연장’되었다.
모른다?와 고맙다!
사실, 난 고장 난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여기저기에서 고치고 다닌다. 아들 놈이 학교 앞 원룸을 돌아다닐 때는 항상 하는 작업이 있었다. 냄새 잡는 일이다. 화장실과 싱크대 밑이 주범이다. 하수관은 통상 100mm PVC관을 쓰는데, 여기에 연결하는 싱크대 주름관은 이보다 작다. 이 주름관을 그냥 꼽아 놓으니, 당연히 접속 부위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이럴 때 쓰는 고무 소켓들이 있다. 그것으로 막고, 실리콘 처리해주면 끝이다. 집주인에게 얘기해보았자 백퍼센트 “모른다.”는 답을 듣게 되고, 재수 없으면 “이 전 학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핀잔까지 듣는다. 아들 놈 뒤에 입주하는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것이니, 걍 고쳐 놓는다.
짜증나는 점은 온수기나 싱크대를 설치하면서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그들,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 놓으면 되었을 터인데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일은 거기까지가 아니라고 강변할 일이 아니라 조금만 손을 내어주면 되는 일이다. 또한 이상한 점은 주인들은 대부분 “모른다.”고 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시설은 주인 소유이니 그들의 책임이 아닌가?
아빠 되기
웬만한 설비, 전기, 목공 일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취미이자 즐거움이지만, 처음에는 책임감으로 시작했다. 1994년 공동육아 어린이집 1호를 연남동에 만들 때였다. 40여명의 아이들과 10여명의 교사들이 생활해야 하고 마당이 있는 집이어야 하니, 커다란 단독주택을 얻어야 했다. 어린이집으로 사용할 것이니 좋은 집은 구하지 못한다. 30~40년 오래된 집을 얻을 수 있었다. 가정집을 어린이집 용도로 바꾸는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도, 오래된 집이니 여기 저기 예상치 못한 변경사항이 나온다. 상수도, 하수도, 전기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리할 것이 자주 생긴다. 아빠들을 중심으로 이를 해결하는 전담 모임인 ‘시설조’를 꾸렸다. 헌데, 이 인간들이 나를 ‘시설짱’으로 추대(!)하였고, 그 뒤로 터전의 수리는 나의 책임이 되었다. 나의 직업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말이다.
그런데 웬걸? 예상과는 다르게, 수리하는 일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문제(원인)를 파악하고, 그 결과들을 예측해보며 해결방안을 생각하고, 필요한 물품과 장비를 구해서 수리하면(풀면) 된다. 처음 해보는 일은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단골 철물점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적절한 부속과 작업방식을 배워서 실행하면 된다. 요즈음은 유튜브가 있어서 아주 좋다. 인터넷으로 찾은 문자화된 해결방법은, 부속이나 시행하는 방법에 요상한 일본어가 섞인 전문(?) 용어가 나오기도 하여 대략난감 일 때가 많다. 그런데, 유튜브는 동영상으로 실물을 보여 주며, 시연으로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 비용은 ‘좋아요’나 ‘구독’을 꾹 눌러 주기만 하면 된다.
수리하고 나면 엄마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나오지 않던 수돗물이 콸콸 나온다든지, 어두컴컴한 곳이 환하게 밝혀지면 저절로 “와~”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이 분위기를 위해서 수리 후 처음 스위치 켜는 일은 엄마들이 하게 한다. 흐흐흐.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진다. 집안일은 청소와 분리수거밖에 하지 않는데, 저절로 능력 있는 남편, 자상한 아빠가 된다. 뭔가 사내다운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은 성(性) 구분 없이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는 시대가 왔지만, 그때는 그랬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문탁에서 대대적인 전기 공사가 필요한 일이 생겼다. 전기 사용량을 고려하여 차단기와 전선을 바꾸고 배선 작업을 새로 해야 하는 일이다. 나 혼자 해도 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니 무아를 불렀다. 그의 업(業)은 전기공사이다. 나는 보조를 자처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작업해 나갔다. 그런데, 답답했다. 이미 차단기를 내렸으니 전선에 전기가 흐르지 않을 터, 그런데도 그는 기존의 전선마다 전기가 흐르는 지를 테스터기로 체크하면서 작업하는 것이었다.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첫 날 토요일은 걍 그러려니 했지만, 둘째 날 일요일은 좀 짜증이 났다. 오늘까지 끝을 내야 내일 출근할 것 아닌가. “차단기 내렸으니까, 걍 하면 안 돼?” 정색하고 물었다. “안돼요. 특히 오래된 전선을 대체하는 작업은 예상 못한 곳에서 전기가 통할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사고예요.” 그도 그의 묵직한 저음으로 정색하고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 장갑을 끼고 있다. 아! 무언가 뒤통수를 친다. 그랬다. 이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도 이렇게 조심하는데, 할 줄 안다고 까불거린 나는 철없는 아마추어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아마추어리즘이 문탁에서 크게 사고 친 적이 있다. 어느 해, 베란다에서 야채를 키우기로 하였다. 이사철이 되면 아파트 앞에 멀쩡한 장롱들이 버려 진다. 주워 와서 화단을 만들었다. 물이 문제였다. 창문 넘어 물을 나르는 일은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였다. 부엌 싱크대 밑에 수도꼭지를 달아서 그곳에서 물 호스를 연결하여 베란다까지 끌어다 놓았다. 호스 끝에 샤워기까지 달아 놓으니 아주 좋았다. 하지만 나는 수도꼭지에서 호스를 연결한 부위가 좀 걱정이 되었다. 연결부위가 빠지지 않게 철물클립으로 단단히 묶어 놓았지만, 수도꼭지가 열린 상태에서 베란다 샤워기를 닫아 놓으면 수압으로 호스가 빠질 수도 있다. 공사 후 게시판에 사용법을 길게 적어 놓았지만, 누가 숙지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수도꼭지는 싱크대 밑에 있어서 열고 닫는 것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수도꼭지가 그곳에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호스가 수도꼭지에서 빠져 밤새 콸콸 쏟아진 수돗물은 문탁 강의실이란 강의실을 죄다 철퍽거리게 만들었다. 장판부터 전기판넬까지 모두 교체하였다. 비용이 꽤 들었을 것이다. 넉넉지 못한 문탁에서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작업을 할 때면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안전하게 작업하고, 튼튼하게 고치는 것을 우선한다. 문탁이 키운 수리공이랄까? 흐흐흐. 가끔 어머님은 내게 “신 서방은 꼼꼼하게 하긴 하는데, 그렇게 해서 밥 먹고 살지는 못하겠어.....”하신다. 간단한 작업으로 보이는데, 반나절이 걸리니 답답하신 게다. 난 ‘성실시공’, ‘준법시공’이라서 그런다고 말씀 드린다. 답답하기는 마눌님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종종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라고 핀잔을 준다. 나는 ‘유비무환’(有備無患,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할 것이 없음)으로 되받는다.
헌집 줄께 새집 다오.
며느리가 순주 녀석 장남감을 ‘당근’에서 곧잘 구매한다. 필요 없는 장남감을 돌려쓰는 일이니 아주 좋은 일이다. 가끔은 기능이 불완전하거나 작동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일단 뜯는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이니 고장의 원인은 대부분 부속 간에 접촉 불량이다. 이런 경우는 쉽게 고쳐진다. 은퇴하고 시간도 많은데, 아이들 장난감 수리점이나 열까? 값은 장남감이 작동될 때 ‘헤~’하는 아이의 웃음 한 조각, 기분 내키면 내 볼에 뽀뽀해주면 될 것이다. 좋은데? 그런데, 장난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장난감이 PCB 기판으로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나에게 맡기면 고치는 것보다 못 고쳐서 우는 아이만 생길 것 같다.
평창에 있는 ‘비데 일체형 변기’가 자주 고장이 난다. 보통 겨울에 물이 얼어서 내부의 플라스틱 통이 깨지거나 일부 기능이 안 되는 경우이다. 한 번은 전원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전원 입구의 접촉 불량일 소지가 크므로 내가 고칠 수도 있다. 뜯어보았다. 어랍쇼? 커다란 PCB판에 전원이 처음 들어가는 곳이 두툼하게 어셈블리로 되어 있다. 아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물건이니 누전방지용으로 그렇게 만든 모양이다. AS센터에 상황을 설명하고 파워 어셈블리 부속을 살 수 없느냐고 물었다. 당근! 없단다. 가까운 AS대리점을 연결시켜 주겠단다. 헉! 가장 가까운 곳이 강릉이다. 기사가 PCB 전체를 교체한다. 휴일 출장비 15만원에 부속 값 18만원을 요구한다. 속이 쓰려서 말을 건냈다. “이 어셈블리만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그렇게 할 줄 몰라요. 부속이 나오지도 않구요. PCB전체를 바꾸라고 지침이 되어 있어요.” 누구를 위한 지침인가! 소비자를? 절대 아니다! 기사가 가져가려는 PCB를 받아 놓았다. 고쳐서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릴 적 군산상고 야구 중계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들이 평상을 펴고 모여 앉아 중계방송을 듣고 있기도 하였지만, 거리마다 즐비한 전파사들이 라디오를 켜놓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전자기기들을 고치는 그 전파사들 말이다. 그런 전파사들이 싹 없어졌다. 제품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여러 기능들을 하나로 묶어 PCB기판에 때려 넣어서도 그렇겠지만, 부속 자체를 유통시키지 않는 이유가 핵심 원인일 것이다. 하기야 부품을 전파사에 배포는 고사하고 자체보유도 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적혀 있는 가전제품의 부품보유기간은 제품별로 5년~8년까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그 조항에 제조사가 부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감가상각하여 보상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후자를 선택한다. 헌집을 싸게 팔고 새집을 비싸게 사라는 이야기이다. 소비자는 비싸게 주고 산 TV가 일부 부속이 없어서 몇 년 못쓰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아픔을 겪는다.
‘수리권’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한겨레신문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2023-1-18일자 기사에서 ‘수리권’이라는 말을 소개한다. 말 그대로 ‘제품을 고쳐서 쓸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내가 바라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유럽연합과 미국을 중심으로는 논의가 활발하단다. 시민단체들이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수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도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환경부도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관련 내용을 담았단다. 다만 이와 관련된 법 조항은 2025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아직 해당 제품이나 관련 기준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해지지 않아 논의 초기 단계라는 것이다. 뭐야? 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수리하여 사용하려는 의지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에게 관련된 부품과 정보를 주어야 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자 생산자의 의무 아닌가! 사회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가만, 나에게 사회운동!이라...... 생업과는 전혀 다른 수리하는 일을 공동육아에서 몸으로 익힌 것처럼, 수리할 수 있는 권리를 생각해낸 것은 문탁에서 공부하며 새로운 눈이 생긴 것일까?
그나저나, 이제 문탁을 넘어서 꿈지락까지 진출했으니 나의 영역을 동네로 확장해볼까?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가마솥을 불러 주세요!
완벽하게 고치거나 완전히 못쓰게 되거나 확실히 결정해 드립니다!
옛날엔 동네에 전파사와 철물점이 있었고 거기 괜히 어슬렁거렸는데, 가마솥님 글 읽으니 그때가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얼마전 동네에서 작은 전파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웬만한 전자제품은 매뉴얼대로만 잘 사용하면 20년은 너끈한데, 부품이 없다며 다시 사게 만드는 자본주의 생산/소비 시스템에 수리권 운동으로 대항해볼 수 있겠어요^^
앞으로도 가가이버 가마솥님의 수리수리마수리를 기대합니다^^늘 안전 유의하셔요~
맥가이버, 순돌이 아빠, 그리고 가마솥
이들의 공통점은 손재주가 있다는 게 아니다.
다른 이들을 위한 마음에 있다.
그건 그와 작업을 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잘 읽었습니다~^^
제2의 인생으로 문탁을 넘어 동네 홍반장을 꿈꾸는 가마솥님의 아름다운 야망을 응원합니다.^^
뭐든 뚝딱뚝딱 잘 고치는 사람은 인기 있는 사람. 그러니까 마솥샘은 인기남!!! 헤헤
주방이나 파지사유 어디서건 문제가 생기면... 가마솥님 언제 나오시나.. 기다리는 1인^^ 샘의 수리권을 적극 응원합니다~~
수리권이라! 그럼 가마솥샘이 전파사 차리시면 좋겠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