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60, 정년이라는 해고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운운하며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긴박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났고, 요행일지라도 그 빈곤율 안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이외에 달리 세울 만한 노후 계획이라는 것이 내게는 없다. 생각하면 숨 막히는 일이지만 70을 훌쩍 넘길 때까지 허리 휘는 일이라도 찾아 먹고 살아간다면 그건 오히려 다행이지 않을까.
이리저리 검색하고, 관련 사이트를 뒤져봐도 화~악 당기는 일이라던가, 아, 요거다 하는 일을 찾기는 어려웠다. 모든 것이 결국 돈 문제인 것 같고, 가방끈 탓인 것도 같고,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건 저래서 힘들고 특별한 재주도 잘하는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참 애매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생전 써보지 않았던 몸 쓰는 일을 쉽게 볼 수도 없다. 내가 청소나 홀 서비스, 주방 설거지, 김밥이라도 썰어야겠다고 이야기하면 내 주변 사람 모두가 이구성동으로 생각도 말라며 말린다. 하루 만에 초주검이 되어 뻗거나 한바탕 그릇을 엎질러 깨뜨리고 쫓겨날 거라며 놀려댄다. 맞다, ‘아냐, 할 수 있어!’라고 응수할 자신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년이 없는 숙련도 높은 기술을 배웠어야 했나... 무엇 하나 만만한 것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이란 이처럼 나 같이 애매한 중고령자에겐 냉정한 현실만 생생히 보여줄 뿐이다. 결국 ‘어찌어찌 닥치는 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노라’하는 무계획, 무대책, 막무가내, 헝그리정신밖에 없지 싶었다. 여태껏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게 가장 믿을만한 계획 아닐까?
누구도 내게 정년을 앞두고 뭐할 거냐, 계획이 있냐고 묻지 않길 바랐다. 내가 생각해도 무대책, 막무가내 정신은 한심해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 지금 희망이 뭐냐고 묻는다면 63세부터 국민연금이라는 걸 받는다는 거다.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국민연금과 노인 기초연금까지 받을 요량이니 어쨌거나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희망이랄까. 그건 ‘10억’에 대적할만한 나의 유일한 노후 대책이다. ‘10억’이라는 귀신 씨나락 같은 말은 이리도 나를 궁핍한 상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체로 정년퇴직을 맞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프리덤을 외칠까. 전원생활을 꿈꿀까. 인생 2막을 찾고 있을까. 전전긍긍 나처럼 먹고사니즘을 고민하고 있을까. 나는 한 번도 내 맘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붐 세대 중에 이런 곤한 말년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도 나처럼(한심해서) 안으로 숨는 걸까? TV와 신문 통계에 잡히는 빈곤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언제나 드러나는 건 무엇이든 성공한 쪽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중에 <건축탐구 집>을 보면 집이라는 로망을 실현하는 저들이 부럽다가도 50대, 60대에 저렇게 땅을 사고 자기 집을 지을 동안 나는 뭐했는지 싶고, 애쓰며 살아온 나의 족적들이 너무 가볍고 보잘것없어지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꺼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년 연장, 땡큐!?
이런 진퇴양난의 숙제를 앞에 둔 재작년, 그러니까 2021년 1월 초 국장이 나를 불렀다. ‘정년 연장’에 대한 의사를 물어왔고, 운영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년 연장? 실은 나의 검색 키워드 1위가 ‘정년 연장’이었고, 구글 알리미가 보내준 ‘정년 연장’ 관련 콘텐츠들은 기술 숙련도가 높은 기능직 외에 아직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먼저 제안해주다니 의외였다. 그러나 그 순간 이걸 고마워하며 덥석 받아야 하나, 끔찍하게 여겨야 하나 망설여졌다. 정년 이후 특별한 계획도 대책도 없는 상황이니, 연장된다면 당연히 ‘땡큐’여야 하는데, 사실 내 나이가 오십하고도 아홉수에 접어들면서 하루 8시간 노동을 견디는 일이 점점 지겹고 힘들어졌다. 원인을 따지자면 복합적이겠지만, 나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노화 현상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늙어서도 이력서를 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쪽이 훨씬 더 끔찍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양가감정, 좋은 데 끔찍한, 이 마음을 누가 이해할까?
사진출처: Unsplash의krakenimages
국장도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나이도 있고, 마냥 일할 수는 없을 테니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공백 구간을 잘 계산해서 언제까지 일할 건지 날짜를 꼼꼼히 따져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라는 충고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역시 젊은 총기 좋아).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따져가며 두드린 결과 2024년 6월까지는 더 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 최소 3년 6개월을 더 견뎌야 하는구나. 어림잡아 3년 정도 더 일하면 그래도 노후 걱정을 좀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연히 불안해하면서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지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이 뭐 할 거냐고 물어도 할 말이 생기니까 말이다. 이제 나의 임무는 앞으로의 3년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니까.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견뎌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며 국장에게 정년 연장을 하겠노라고, 3년 정도는 더 일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세상일 참 우습다. 스포츠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끝까지 조바심치며 잘 지켜봐야 했던 것일까? 정년 연장을 제안받은 그해, 11월 어느 날, 갑자기 국장이 또 나를 호출했다. 국장은 A4용지에 인쇄된 사회복지시설 보조금 인건비 사용 관련 지침을 내게 내밀며 ‘우리가 정년 연장 사례가 없다 보니, 이걸 놓쳤어’ 하며 설명했다. 결론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60세가 정년이고 정년 이후는 정부 보조금으로 인건비 지급이 불가하다는 얘기였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어쩌구... 이건 안된다고 봐야 해’(지침에 적시된 내용은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하며 공무원 정년 연장이 되기 전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아뿔싸~ 300일 동안 믿었던 정년 연장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국장도 난처해했고,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정작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알았어, 내가 정년퇴직할게~ 안 그래도 갈등이 많았어. 차라리 잘됐어, 나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게 괴로웠어~”.
심정 같아서는 당장 연차를 쓰고 어디론가 꺼져버리고 싶었다. 총기 있게 굴던 국장이 원망스러웠다. 뭐야 날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책임지라고 대거리 질이라도 해야 하나? 정년 연장이 될 것이라 믿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하루하루 견디는 게 고역 같았다. 몸의 노화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오후만 되면 나른해지며, 무기력해졌다. 그럼에도 보약을 지어 먹고 총명탕도 지어 먹으며 버텨야 한다고, 애써 다독이며 견뎌왔는데, 이건 정년퇴직이 아니라 마치 정년 해고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일하는 게 힘들고 싫었는데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시원하지 않아? 했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 노후 계획이 통째 날아갔는데 어쩌지? 했다가, 몸을 생각하면 잘 됐지, 뭐, 했다가 그놈의 ‘노후 준비’ 생각하면 ‘젠장!’ 했다가, 이 이상하고 복잡 미묘한 마음, 누가 이해할까?
그래도 그놈의 ‘이성’이라는 걸 찾아야 했다. 서로 좋자고 했다가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내 마음속에서는 비록 천둥 벼락이 칠지라도 나는 나의 ‘이성’이 시키는 대로 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일에 더 집중이 잘 되었다고나 할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짝 밀어놓았던 60 이후의 생이 내 품에 다시 와락 안긴 느낌! ‘정년 연장에 기대지 마, 네가 피 터지게 짊어지고 고민해야 할 몫이야, 편히 갈 생각은 마!!’ 운명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다시 정년 연장이 아닌 정년퇴직을 해야 했다. 이 모두가 정년퇴직을 앞둔 1년 동안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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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몸의 발견
2022년 6월. 나의 퇴임식은 소소하고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새로운 출발을 응원받으며, 정년 퇴직자 1호가 되었다. 내 기분은 그저 덤덤하고 밋밋했으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연공 서열도 장기근속도 아니고, 특별한 공로도 없었으니 명예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퇴임식을 치르고도 나는 1주일이나 더 일을 마무리한 후 마침내 소속도, 일도 없는 ‘잉여의 몸’이 되었다.
퇴직 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를 팽팽하게 지탱해주던 중심축이 사라지고, 온몸이 해체된 듯한 허한 기분이 들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텅 빈 시간도 낯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이렇게 공백인 채로 보내고 싶었다. 아침 출근을 위해 10분 단위로 맞추어 놓은 알람들도 모두 해제해 버렸다. 정년퇴직을 축하한다는 꽃다발들로 어수선한 집 안을 정리하고, 고맙다는 인사 문자를 보내고, 일과 관련된 단체 대화방들을 정리했다.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색칠 게임을 내려받아 종일 해보았다. 하루가 너무 쉽게 가버렸다. 게임에 빠지면서도 불안했고, 뭔가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었다. 무용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나이 60에도 시간 낭비라는걸 해볼 수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일상적인 일을 일상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다시 요가를 시작했고, 매일 1만 보를 걷기 위해 늦은 시간 트랙에 나가기도 했다. 뭘 할 거냐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물론 앞일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나고 생각해보니 뭘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는 말이 더 솔직하겠다.
뭘 할래, 어떻게 살래? 라는 물음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늘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그러나 60줄에 들어서서 마주친 이 질문은 왜 다르게 느껴질까? 아마도 이전과는 다른 생애주기에 들어섰기 때문 아닐까. ‘나이 든 몸’이 되어 간다는 것. 내가 정년 연장과 퇴직을 둘러싸고 그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도 몸의 변화는 폭풍처럼 몰려왔지만, 마음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 ‘이상 복잡 미묘’한 상태를 겪은 것 아니겠는가. 바보처럼 보약을 먹고 총명탕을 먹으며(물론 이것도 필요하다)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다니, 노화가 회복될 현상은 아니지 않는가. 늙어간다는 이 존재론적 변화 앞에서 이제는 젊고 자유로웠던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질문하고 찾아야 한다. 나는 그런 60의 생과 마주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저 직관적으로 따라가고 있었을 뿐 의미 있는 질문이나 사유로 연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의 긍정적인 점이라면 막연했던 60의 실체를 앞당겨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해야겠다.
출처: Unsplash의Aaron Burden
지금 내가 마주한 60+ 인생은 그 어느 때 보다 불안하다. 대위기처럼 느껴진다. ‘몸은 늙어가고 직업은 없다’ 이 문장 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절박한 나를 설명해준다. 맞다. 겁난다. 나도 내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잘 모르겠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분명 위로가 된다. 그런데 나는 생을 달리한 어느 여배우의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고 했던 말이 더 생각난다. 무슨 똥 품을 잡을 생각 따위는 없지만, 나는 돈이 없어도 나의 60+ 인생이 납작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말인데, 겁내지 않고 잘 반겨보려구. ‘절박함’은 나의 무기이고, 절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친구들은 나의 ‘힘’이다. 이 불안하고 미숙한 존재가 온갖 장르의 서스펜스가 넘칠 것 같은 나의 60+ 인생을 맞으며 외쳐본다.
오냐, 와라~ Welcome To다!! 60+! 맞짱 한번 떠보자!!
납짝하지 않은 60+ 기대해봅니다~
먼불빛님 글에 납작해지지 않고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겹쳐지네요^^
찐 가오로 무장하고 맞짱을 반기는 선생님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함께’ 해요! 맞짱뜨는 먼불빛님 응원합니다!
먼불빛님^^가오에 찬 시작으로 글쓰기를 사작한 것을 응원합니다~~~
먼불빛님글 팬입니다 역쉬하는 감탄과 공감의 가슴아픔이 동시에 ㅠㅠㅠ
정년퇴임시기에 겪는 복잡 미묘한감정이 텍스트로 와락~왔어요~ 매일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1인으로서, 먼불빛님의 글이 다른 감각들이 불러 일으켜졌어요~
오냐~~와라~~~맛짱~~~뜨실~~멈불빛샘의 하루하루를 응원합니다!!!!!!
와~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맞짱 뜨려는 패기와 글쓰기하는 마음과 행동 함께 있으니 납작해질 일 절대 없을 듯요! 다음 편을 기다립니다!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글을 이렇게나 잘 쓰시다니. 샘의 앞으로의 날이 궁금해지고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