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60, 정년이라는 해고

먼불빛
2023-01-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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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나의 60세는 정년퇴직으로 시작되었다. 나이 첫 자리의 5가 6으로 바뀐다는 건 남다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젊다’에서 ‘늙다’의 경계로 넘어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전환기 일 수밖에 없다. 나이 60에 정년퇴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사는 게 바빠 아무 준비 없이 덜컥 맞은 나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무리 준비 없이 맞았다 해도 고민이 없었겠는가? 대책이랄 게 없었으므로 계획적 노력은 하지 못했지만 60세, 정년퇴직, 수입 끝, 노후 30년 시작, 그 단어의 무게감은 나를 충분히 짓누르고도 남았다. 내가 정년퇴직을 한 건 2022년 6월이다. 그러나 나의 정년퇴직 이야기는 지금(2023년 1월)으로부터 약 2년 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묻지 마, 노후 계획!

 

 

 ‘은퇴 후 30년 노후 자금 10억’이란 말을 액면가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억~ 소리가 날 만큼 두려움을 주기는 충분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태생이 흙수저인 내게 60줄 나이에 들어선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미래였고, 백 세 시대 재앙의 서막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목덜미에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노후 준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마세요~’ 운운하며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긴박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났고, 요행일지라도 그 빈곤율 안에 내가 포함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이외에 달리 세울 만한 노후 계획이라는 것이 내게는 없다. 생각하면 숨 막히는 일이지만 70을 훌쩍 넘길 때까지 허리 휘는 일이라도 찾아 먹고 살아간다면 그건 오히려 다행이지 않을까.

 

 

 

 

 

 

이리저리 검색하고, 관련 사이트를 뒤져봐도 화~악 당기는 일이라던가, 아, 요거다 하는 일을 찾기는 어려웠다. 모든 것이 결국 돈 문제인 것 같고, 가방끈 탓인 것도 같고, 이건 이래서 어렵고, 저건 저래서 힘들고 특별한 재주도 잘하는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참 애매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생전 써보지 않았던 몸 쓰는 일을 쉽게 볼 수도 없다. 내가 청소나 홀 서비스, 주방 설거지, 김밥이라도 썰어야겠다고 이야기하면 내 주변 사람 모두가 이구성동으로 생각도 말라며 말린다. 하루 만에 초주검이 되어 뻗거나 한바탕 그릇을 엎질러 깨뜨리고 쫓겨날 거라며 놀려댄다. 맞다, ‘아냐, 할 수 있어!’라고 응수할 자신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년이 없는 숙련도 높은 기술을 배웠어야 했나... 무엇 하나 만만한 것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이란 이처럼 나 같이 애매한 중고령자에겐 냉정한 현실만 생생히 보여줄 뿐이다. 결국 ‘어찌어찌 닥치는 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노라’하는 무계획, 무대책, 막무가내, 헝그리정신밖에 없지 싶었다. 여태껏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게 가장 믿을만한 계획 아닐까?

 

 

누구도 내게 정년을 앞두고 뭐할 거냐, 계획이 있냐고 묻지 않길 바랐다. 내가 생각해도 무대책, 막무가내 정신은 한심해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 지금 희망이 뭐냐고 묻는다면 63세부터 국민연금이라는 걸 받는다는 거다. 국가 부도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국민연금과 노인 기초연금까지 받을 요량이니 어쨌거나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희망이랄까. 그건 ‘10억’에 대적할만한 나의 유일한 노후 대책이다. ‘10억’이라는 귀신 씨나락 같은 말은 이리도 나를 궁핍한 상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체로 정년퇴직을 맞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프리덤을 외칠까. 전원생활을 꿈꿀까. 인생 2막을 찾고 있을까. 전전긍긍 나처럼 먹고사니즘을 고민하고 있을까. 나는 한 번도 내 맘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붐 세대 중에 이런 곤한 말년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들도 나처럼(한심해서) 안으로 숨는 걸까? TV와 신문 통계에 잡히는 빈곤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언제나 드러나는 건 무엇이든 성공한 쪽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좋아했던 TV 프로그램 중에 <건축탐구 집>을 보면 집이라는 로망을 실현하는 저들이 부럽다가도 50대, 60대에 저렇게 땅을 사고 자기 집을 지을 동안 나는 뭐했는지 싶고, 애쓰며 살아온 나의 족적들이 너무 가볍고 보잘것없어지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꺼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년 연장, 땡큐!?

 

이런 진퇴양난의 숙제를 앞에 둔 재작년, 그러니까 2021년 1월 초 국장이 나를 불렀다. ‘정년 연장’에 대한 의사를 물어왔고, 운영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년 연장? 실은 나의 검색 키워드 1위가 ‘정년 연장’이었고, 구글 알리미가 보내준 ‘정년 연장’ 관련 콘텐츠들은 기술 숙련도가 높은 기능직 외에 아직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먼저 제안해주다니 의외였다. 그러나 그 순간 이걸 고마워하며 덥석 받아야 하나, 끔찍하게 여겨야 하나 망설여졌다. 정년 이후 특별한 계획도 대책도 없는 상황이니, 연장된다면 당연히 ‘땡큐’여야 하는데, 사실 내 나이가 오십하고도 아홉수에 접어들면서 하루 8시간 노동을 견디는 일이 점점 지겹고 힘들어졌다. 원인을 따지자면 복합적이겠지만, 나이에서 오는 여러 가지 노화 현상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늙어서도 이력서를 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쪽이 훨씬 더 끔찍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상한 양가감정, 좋은 데 끔찍한, 이 마음을 누가 이해할까?

 

 

사진출처: Unsplashkrakenimages

 

 

 

국장도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나이도 있고, 마냥 일할 수는 없을 테니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공백 구간을 잘 계산해서 언제까지 일할 건지 날짜를 꼼꼼히 따져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라는 충고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역시 젊은 총기 좋아).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따져가며 두드린 결과 2024년 6월까지는 더 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 최소 3년 6개월을 더 견뎌야 하는구나. 어림잡아 3년 정도 더 일하면 그래도 노후 걱정을 좀 덜 해도 되지 않을까? 충분하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연히 불안해하면서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지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이 뭐 할 거냐고 물어도 할 말이 생기니까 말이다. 이제 나의 임무는 앞으로의 3년을 잘 견뎌내는 것이다. 늘 그래왔듯,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니까.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견뎌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며 국장에게 정년 연장을 하겠노라고, 3년 정도는 더 일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세상일 참 우습다. 스포츠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끝까지 조바심치며 잘 지켜봐야 했던 것일까? 정년 연장을 제안받은 그해, 11월 어느 날, 갑자기 국장이 또 나를 호출했다. 국장은 A4용지에 인쇄된 사회복지시설 보조금 인건비 사용 관련 지침을 내게 내밀며 ‘우리가 정년 연장 사례가 없다 보니, 이걸 놓쳤어’ 하며 설명했다. 결론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는 60세가 정년이고 정년 이후는 정부 보조금으로 인건비 지급이 불가하다는 얘기였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어쩌구... 이건 안된다고 봐야 해’(지침에 적시된 내용은 실현 불가능해 보였다) 하며 공무원 정년 연장이 되기 전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아뿔싸~ 300일 동안 믿었던 정년 연장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국장도 난처해했고,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정작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알았어, 내가 정년퇴직할게~ 안 그래도 갈등이 많았어. 차라리 잘됐어, 나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게 괴로웠어~”.

 

심정 같아서는 당장 연차를 쓰고 어디론가 꺼져버리고 싶었다. 총기 있게 굴던 국장이 원망스러웠다. 뭐야 날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책임지라고 대거리 질이라도 해야 하나? 정년 연장이 될 것이라 믿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하루하루 견디는 게 고역 같았다. 몸의 노화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오후만 되면 나른해지며, 무기력해졌다. 그럼에도 보약을 지어 먹고 총명탕도 지어 먹으며 버텨야 한다고, 애써 다독이며 견뎌왔는데, 이건 정년퇴직이 아니라 마치 정년 해고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일하는 게 힘들고 싫었는데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시원하지 않아? 했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내 노후 계획이 통째 날아갔는데 어쩌지? 했다가, 몸을 생각하면 잘 됐지, 뭐, 했다가 그놈의 ‘노후 준비’ 생각하면 ‘젠장!’ 했다가, 이 이상하고 복잡 미묘한 마음, 누가 이해할까?

 

그래도 그놈의 ‘이성’이라는 걸 찾아야 했다. 서로 좋자고 했다가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내 마음속에서는 비록 천둥 벼락이 칠지라도 나는 나의 ‘이성’이 시키는 대로 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일을 해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일에 더 집중이 잘 되었다고나 할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짝 밀어놓았던 60 이후의 생이 내 품에 다시 와락 안긴 느낌! ‘정년 연장에 기대지 마, 네가 피 터지게 짊어지고 고민해야 할 몫이야, 편히 갈 생각은 마!!’ 운명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다시 정년 연장이 아닌 정년퇴직을 해야 했다. 이 모두가 정년퇴직을 앞둔 1년 동안 생긴 일이다.

 

 

 

 

 

 

60세 몸의 발견

 

 2022년 6월. 나의 퇴임식은 소소하고 화기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새로운 출발을 응원받으며, 정년 퇴직자 1호가 되었다. 내 기분은 그저 덤덤하고 밋밋했으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연공 서열도 장기근속도 아니고, 특별한 공로도 없었으니 명예로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퇴임식을 치르고도 나는 1주일이나 더 일을 마무리한 후 마침내 소속도, 일도 없는 ‘잉여의 몸’이 되었다.

 

퇴직 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를 팽팽하게 지탱해주던 중심축이 사라지고, 온몸이 해체된 듯한 허한 기분이 들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텅 빈 시간도 낯설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당분간 이렇게 공백인 채로 보내고 싶었다. 아침 출근을 위해 10분 단위로 맞추어 놓은 알람들도 모두 해제해 버렸다. 정년퇴직을 축하한다는 꽃다발들로 어수선한 집 안을 정리하고, 고맙다는 인사 문자를 보내고, 일과 관련된 단체 대화방들을 정리했다.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색칠 게임을 내려받아 종일 해보았다. 하루가 너무 쉽게 가버렸다. 게임에 빠지면서도 불안했고, 뭔가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었다. 무용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나이 60에도 시간 낭비라는걸 해볼 수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일상적인 일을 일상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다시 요가를 시작했고, 매일 1만 보를 걷기 위해 늦은 시간 트랙에 나가기도 했다. 뭘 할 거냐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물론 앞일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나고 생각해보니 뭘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는 말이 더 솔직하겠다.

 

뭘 할래, 어떻게 살래? 라는 물음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늘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그러나 60줄에 들어서서 마주친 이 질문은 왜 다르게 느껴질까? 아마도 이전과는 다른 생애주기에 들어섰기 때문 아닐까. ‘나이 든 몸’이 되어 간다는 것. 내가 정년 연장과 퇴직을 둘러싸고 그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도 몸의 변화는 폭풍처럼 몰려왔지만, 마음은 전혀 따라가지 못하면서 그 ‘이상 복잡 미묘’한 상태를 겪은 것 아니겠는가. 바보처럼 보약을 먹고 총명탕을 먹으며(물론 이것도 필요하다)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다니, 노화가 회복될 현상은 아니지 않는가. 늙어간다는 이 존재론적 변화 앞에서 이제는 젊고 자유로웠던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질문하고 찾아야 한다. 나는 그런 60의 생과 마주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저 직관적으로 따라가고 있었을 뿐 의미 있는 질문이나 사유로 연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년퇴직의 긍정적인 점이라면 막연했던 60의 실체를 앞당겨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해야겠다.

 

 

출처: Unsplash의Aaron Burden

출처: Unsplash의Aaron Burden

 

 

지금 내가 마주한 60+ 인생은 그 어느 때 보다 불안하다. 대위기처럼 느껴진다. ‘몸은 늙어가고 직업은 없다’ 이 문장 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절박한 나를 설명해준다. 맞다. 겁난다. 나도 내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잘 모르겠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분명 위로가 된다. 그런데 나는 생을 달리한 어느 여배우의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고 했던 말이 더 생각난다. 무슨 똥 품을 잡을 생각 따위는 없지만, 나는 돈이 없어도 나의 60+ 인생이 납작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말인데, 겁내지 않고 잘 반겨보려구. ‘절박함’은 나의 무기이고, 절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친구들은 나의 ‘힘’이다. 이 불안하고 미숙한 존재가 온갖 장르의 서스펜스가 넘칠 것 같은 나의 60+ 인생을 맞으며 외쳐본다.

오냐, 와라~ Welcome To다!! 60+! 맞짱 한번 떠보자!!

 

 

 

 

댓글 8
  • 2023-01-30 09:09

    납짝하지 않은 60+ 기대해봅니다~

  • 2023-01-30 09:31

    먼불빛님 글에 납작해지지 않고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겹쳐지네요^^
    찐 가오로 무장하고 맞짱을 반기는 선생님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 2023-01-30 09:51

    ‘함께’ 해요! 맞짱뜨는 먼불빛님 응원합니다!

  • 2023-01-30 11:05

    먼불빛님^^가오에 찬 시작으로 글쓰기를 사작한 것을 응원합니다~~~

  • 2023-01-30 16:40

    먼불빛님글 팬입니다 역쉬하는 감탄과 공감의 가슴아픔이 동시에 ㅠㅠㅠ

  • 2023-01-30 20:18

    정년퇴임시기에 겪는 복잡 미묘한감정이 텍스트로 와락~왔어요~ 매일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1인으로서, 먼불빛님의 글이 다른 감각들이 불러 일으켜졌어요~
    오냐~~와라~~~맛짱~~~뜨실~~멈불빛샘의 하루하루를 응원합니다!!!!!!

  • 2023-02-03 17:06

    와~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맞짱 뜨려는 패기와 글쓰기하는 마음과 행동 함께 있으니 납작해질 일 절대 없을 듯요! 다음 편을 기다립니다!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2-07 14:31

    글을 이렇게나 잘 쓰시다니. 샘의 앞으로의 날이 궁금해지고 기다려 집니다.!

문탁의 나이듦 리뷰
디어 마이 솔로 프렌즈!! -<에이징 솔로>(2023, 김희경)       1. 비혼 이야기가 없다!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기자, NGO 활동가, 문체부와 여가부의 관료를 두루 거치며 ‘순차적 N잡러’로 살아왔고, 결혼 경험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20년 차 솔로이다. 1967년생이니, 우리 공동체의 기린, 노라, 달팽이, 뚜버기 등과 동년배이다. 이력만 보자면 솔로이긴 해도 (우리와는 달리^^)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자 네임드 작가이다. 그런 그녀도 솔로여서 종종 열패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솔로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녀는 “남에게 폐 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 그리고 “나 하나쯤 건사할 역량”이 충분한 매우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어쩌다 솔로’가 되었지만 아마 특별한 결핍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어느 날 ‘에이징 솔로’의 ‘현타’가 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 뇌변병 장애로 인지증(치매)를 앓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불안이 몰려오더라. ‘나도 아버지 같은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나는 아버지처럼 대리해줄 자식도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되게 우울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봐도 사람이 죽을지는 선택하지 못하잖나. 완벽히 대비가 되는 일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됐던 것 같다” (김희경-김은형 대담, ‘중년의 혼자 삶에 대하여’, 2023년 4월22일, 한겨레 신문)   그러나 그녀에게 참고가 될만한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두 가지!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솔로여성의 담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중년’도 ‘솔로’도 ‘여성’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이너들이니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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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5.12 조회 338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조회 22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가마솥 2023.05.03 조회 26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5.03 조회 19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5.03 조회 8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문탁 2023.05.02 조회 147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문탁 2023.05.02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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