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59년생 서른살

가마솥
2023-01-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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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두번째 은퇴

 

 중소기업 연합회 회장이 “내일 저녁 시간을 비워 달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예상이 된다. 올해, 2020년. 호적나이로 만 60세이다. 이 곳은 경기도와 산업자원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수탁기관이다. 센터장은 그들의 인사권(?)으로 지명 받은 사람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나도 그랬다. 인사철인데, 자기가 추천했노라고 생색내며 전화하는 놈들이 없다. 연임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담당 후배에게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은 시쳇말로 ‘가오’ 빠지는 것, 조용히 내가 정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랫배에서 무언가가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해? 이 놈들이 나를 이렇게 취급하는 거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동지는 어디 가고!’ 등등. 워워워...... 진정하자, 진정해. 예우하며 직접 듣는다고 바뀔 것인가? 어떻게 통지하든, 어떤 이유로든, 계약해지는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며칠 전 한차례 책상을 가볍게 하였으니 별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했다. A4용지 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시원 섭섭. 딱 그런 기분이다. 돈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니 “야호! 이제야 해방이다!” 해야 하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헛헛한 기분이 올라온다. 필요한 사람들은 이미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데도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명함철을 버리지 못하고 박스에 담는 나를 발견한다. 뭐, 이 정도는 기념품으로 하지. 혹시 알어? 또 필요하게 될지...... 일일이 악수하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였지만, 많은 직원들이 아쉬워하며 배웅 나오는 것을 위안 삼아 사무실을 나섰다. 작은 박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나를 졸졸 따라 나오는 몇몇 직원들 모습이, 꼭 ‘유골함’을 따라 가는 장례행렬 같다. 짜식들, 박스나 들어 줄 것이지.

 

사실 난 이번이 두 번째 은퇴이다. 지금 이곳에서 센터장으로 일하기 전에, 그가 市長인 도시의 산하기관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8년을 일하고, 2018년 8월에 공식적으로(?) 은퇴하였다. 직장에서는 그를 따라 경기도로 영전해 갈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니 은퇴가 아닌 퇴임이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은퇴이었다. 마눌님의 호출에 따라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은퇴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 준 것이다. 은퇴를 주장한 것은 '고맙게도' 마눌님이었다.

 

 2010년부터 그와 함께 일한 ‘어공’의 포지션은 참으로 애매하였다. 원래 사기업에서 그 분야에서 25년을 일한 전문성을 선택하였으니 본연의 업무 처리는 별것 없었다. 문제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하여 정무적인 일을 해야 할 때이다. 이 일은 철저히 Give & Take 논리이었고, 무조건 상대방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성사되는 일이다. 그런 일, 소위 ‘특명’을 받으면 내 안에 우글거리고 있는 새로운 ‘자아’들이 튀어 나왔고, 그 때문에 나 스스로 놀라곤 하였다. 또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잠재태로서의 즐거운 ‘애벌레 자아’가 아니라, 전문가와 정치인 사이에서 ‘나’를 선택해야 하는 흔들리는 ‘자아’를 발견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는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전문성을 갖춘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마눌님은 ‘당신은 정치인은 절대 못 되니, 그만 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소는 누가 키우고? 라며 일축하였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그 스트레스는 달콤한 것의 댓가일지도 모른다. 사실, 주어진 예산을 바르게 집행하는 ‘어공’의 일은 돈을 벌어야 하는 사기업의 스트레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시민운동 할 때에는 그렇게 철옹성 같던 행정력이 전화 한 통화로 움직여지는 권력의 맛은 통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두 번 시장선거에서 승리하였고, 나는 네 번이나 연임하여 8년을 그와 함께 하였다.

 

 2018년 12월, 남들처럼 은퇴 기념여행을 떠났다. 해외출장으로는 가보지 않은 곳을 선택했다. 쿠바. 쿠바인들의 삶은 우리네 60년대 사회의 모습이었다. 체 게바라가 살아있으면 달랐을까? 책을 통해서 그려 보았던 쿠바를 현장에서 보니, 사회주의 정치만을 고집하며 사람들을 배고프게 하는 쿠바 정치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념은 무엇이고, 정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시선은 차창 밖의 경치를 보고 있지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곤 하였다. 문자 한통이 날아 왔다. 경기도에 들어간 후배이다. ㅇㅇ센터장의 자리가 났는데 형님이 제일 적합하다는 것이다. 여행 중이니 나중에 답을 하겠다고 하고는 바로 다음 날 승낙하는 답신을 보냈다. 바로 다음 날! 참나...... 내가 생각해도 찜찜하다. 식구들에게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잖어? 하지만, 지난 서너 달 동안 나의 마음은 좀 애매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 “요즘 뭐해?”하는 대답으로 “은퇴하고 논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고, “쉬고 있다.”고 얼버무리고 있던 터이었다. 은퇴? 왠지, 뒷방 늙은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식구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나는 은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덤덤한데, ‘아버지, 재취업 축하드려요~~~’하는 사위놈의 문자에 기분이 묘했다. 재‘취업’이라......

 

 

 

 

은퇴하면 귀촌이나 하지

 

2009년부터 성산동에서 공동육아로 만난 친구들과 반백년 기념으로 ‘은퇴 후 모여살기’를 준비하였다. 그 결과가 평창 방림면에 만든 꽃숲마을이다. 스무 가구를 목표로 출발하여 2017년도 기준으로 16가구가 집을 지었고, 현재는 대부분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 한 날 한 시에 동시에 은퇴하는 것도 아니고, 3가구만이 상주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무언가 함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원래 계획하였던 ‘은퇴 후 모여 살기’는 요원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센터장의 임기만료가 불 보듯 뻔한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은퇴 후 평창에서의 삶을 어떻게든 그려 보았다. 은퇴하기 몇 년 전부터 책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유투브도 열어 보았다. 주로 귀촌관련 사례들이다. 온라인 수업도 들었다. 그럴수록 평창은,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하여 심도 있게 논의한 후에 그에 적합한 장소를 구한 것은 아니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지만, 스콧 니어링처럼 강의하며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도 없고, TV 속 자연인처럼 채집하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 집과 관련된 안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하여 주말마다 평창에 갔다. 태양광을 설치하고, 데크를 깔고, 나무를 심고, 화단을 만들고, 낮은 울타리를 치고, 경계의 흙이 쏠리지 않게 토낭를 두르고 등등. 언제든 들어와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었다. 당분간 상주할 수는 없으니, 원격조종이 가능한 IOT도 설치하였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그것은 나의 취미이기도 하였지만, 비용만 지불하면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수 있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시골 생활에 대비하는 훈련과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읍내 만물가게에 들어가 작업할 물품들을 고르는데, 사장님이 묻는다. “얼마나 되었우?” “?”. “평창에 집지은 지 얼마나 되었냐구?” “아 예, 한 1년 쫌 넘었습니다.” “흠......보통 3~4년 가요.” “예 ?” “처음에 이사 와서 집 주변도 가꾸고, 큰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이것저것 심어 보기도 하고..... 한 3년은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요. 그러다가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면서 한 두 해 더 있다가 결국, 도시로 다시 나가더라고.”

 

정확했다. 한 3년쯤 지나니, 집주변 공간이 빠르게 정리 정돈이 된다. 그와 비례해서 무언가 계획하고, 연구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완성된 모습을 그려보며 엔돌핀이 팍팍 도는 그런 감흥이 나지 않는다. 더욱이 나이를 먹었는지, 울타리 작업한다고 바위에 삼십여 개의 앙카볼트 작업을 하였더니 팔꿈치에 골프 엘보우가 왔다. 골프는 안하기로 마음먹고 골프세트를 통째로 친구놈에게 주어 버렸는데, 테니스 엘보우도 아니고 ‘골프’ 엘보우라니...... 그러고 보니, 마당에서 작업 좀 하면 다음 날 아침, 뻑뻑한 손가락 관절들이 모두 ‘나 여기 있오’하고 알린다. 농사? 원래 농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귀농(歸農)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지, 도시사람이 은퇴 후 한 번도 안 해본 농사를?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농사를 지어보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문제, ‘그럼, 여기서 뭐하고 살지?’하는 질문까지 겹치니 평창 가는 발길이 뜸해진다. 나도 다른 집들처럼 세컨드 하우스로 평창집을 사용하게 되었다. 남 몰래 은퇴를 준비하였다고 자부하였건만, 실행할 수 없으니 전혀 준비하지 않은 것과 같다. ‘남 몰래’ 답답한 상태가 되었다.

 

평창 방림면 꽃숲마을 조감도

 

 

어쨌든 집에서 나온다

 

한 놈은 매일 도서관에 간단다. 또 한 놈은 동네 근처 산인 광교산, 청계산을 매일 올라 다니고. 특이하게도 한 놈은 정장을 입고 작은 방으로 출근을 한단다. 미친 놈. 은퇴를 하였어도 스스로 무언가에 매어 있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이 좋아서 산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면 몰라도, 죽으면 항상 누워있을 산인데, 왜 벌써 못가서 안달인지...... 혀를 끌끌 찼다. 헌데, 정작 나는 점점 소파에 앉아서 TV보는 시간이 늘고 있었다. 손흥민의 게임은 당일도 보고, 재방송도 보고, 하이라이트도 보면, 그의 EPL 모든 경기를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소파에 앉던 자세도 점점 눕고 있었고, 그 시간에 비례해서 허리도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마눌님이 “이제 그만 움직여 보시죠?“한다. 센터장을 그만 둔 이후 정말로(!) 은퇴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삼식(三食)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지하실에 묶어놓고 있던 자전거를 청소했다. 엉덩이 받침이 있는 자전거 복장에 헬멧, 선글라스까지 챙겨서 쓰고 탄천으로 나갔다. 슬슬 패달을 밟아 보니 바람이 뺨을 살살 스치는 게 상쾌하다. 내친 김에 한강까지 나아갔다. 평일인데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룹지어서 씽씽 속도를 내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떤 이는 뽕짝을 틀어 놓고 달렸다. 꼴불견. 성수대교 쪽으로 가다가 너무 무리하나 싶어서,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맙소사! 죽는 줄 알았다. 멍청한 놈. 생각이 없었다. 탄천은 당연히 하류인 한강 쪽으로 흐른다. 그러니 한강 쪽으로 갈 때에는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되어서 룰루랄라 내려갔던 것이다. 그럼, 올라 올 때는? 오후 맞바람까지 불어서 힘들기가 배가(倍加)되었다. 이것도 매일 하기에는 재미없어 보인다. 하기야 매일 자전거 타는 것이나 할 일없이 산에 가는 것이나 ‘집을 나간다’는 측면에서 똑같다. 그런데 가만,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은퇴해도 매일 집에서 나가야 하지? 속에서 무언가 부글거린다.

 

 

59년생 서른 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첫 번째 칸에 주저앉았다. 이곳이 우리 집에서 제일 시원하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하기가 좋은 곳이다. 치매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건강하신 장모님과 태어날 손주 녀석을 돌보면서 이렇게 내 생의 마지막, 노년을 보내는 것인가 하는 상념에 빠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전면에 커다란 족자가 걸려 있다. 사실, 족자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십년 전에 이 집을 지은 기념으로 장인어른이 써주신 것이다. 약간 흘려 쓰셔서 몇 글자는 못 읽는다. 검색해본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벽란도판상시(碧瀾渡 板上詩)이다.

 

 

登眺江樓日(등조강루일) 강루에 올라서 구경하는 날

奔馳宦路年(분치환로년) 벼슬길에 헤매는 시절이라오

何當伴鷗鷺(하당반구로) 어느 때 갈매기와 무리를 지어

歸釣碧山前(귀조벽산전) 저 산 앞에 돌아가 고기를 낚을꼬.

 

 

벽란도(碧瀾渡)에 있는 벽란정(碧瀾亭)에서, 고려말 조선초 격동기의 학자이자 정치인인 권근이 벼슬길의 아슬아슬함을 떠나 초야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살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87년 대기업에 들어가 직업을 가진 이래,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고민하고 싸웠다. 직원들 말처럼 ‘바보같이’ 손해도 많이 보았고. 마지막 10년 동안도 ‘어공’으로 보내며, 사방에 널려있는 진흙탕 구덩이들에 용케 빠지지 않을 정도로 행동하였다. 그들과 한배를 타기 싫어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나를 지켰다. 그러니, 눈 매서운 후배들이 형님으로 예우하면서 뒷방으로 밀어내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오늘, 그림으로 걸려 있던 이 족자가 나의 욕망을 꺼내 보여준다. 권근(權近)과는 다르게 나는 벼슬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 동안 어정쩡하게 하루를 보낸 것은, 혹여 ‘그의 대선 캠프에서 불러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랬다. 지금은 소를 키우지 않아도 되는데, 마음은 짭짤한 권력의 달콤함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은퇴의 변(辯)으로 “앞으로는 선택을 구하는 삶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삶으로 살겠다.”며 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놓은 나인데, 부끄러웠다. 어디든 일단 집을 나서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을 뱅뱅 도는 나도 은퇴가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 ‘이제 그만 움직여 보자.’ 앉은 채로 핸드폰을 꺼내서 그와 관련된 밴드를 탈퇴하고, 카톡방을 나오고, 텔레그램 방들을 폭파하고 나서, 관련된 전화번호들을 모두 지웠다. 후 ~~~~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으로 80은 산다고 보면, 앞으로 남은 20년을 뭐하고 살까? 늙지 않았다고 혹은 늙지 않겠다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지혜로운 60대이라면 여기 저기 좋은 말을 해주고 다니면 좋겠지만 어림도 없다. 하기야, 그 동안 쌓은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추억을 먹고 사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살까?’가 아닌, ‘어떻게 살까?’라고 질문해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오늘 즐거운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기로 하였다. 그 동안 미뤄 놓았던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버킷 리스트? 그런 것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 것은 목표를 세우고 나의 현재를 미래에 미뤄 놓는 그 동안의 삶과 비슷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도래하는 미래를 지금 여기서 맞이하는, 현재를 살아 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 30년 동안 했던 돈 벌기 위한 공부와는 다른, 사람 사는 공부로 새로운 20년을 시작해 본다.

 

36년 전 사회 초년생일 때 가졌던 두려움과 기대, 그 상반된 떨림을 살려 내어 ‘59년생’이 아닌 ’서른 살’로 출발 해보자. 20년 뒤에 생(生)을 은퇴할 때에는 한 번의 은퇴로도 만족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댓글 9
  • 2023-01-16 16:25

    가마솥님의 서른살을 응원합니다~

  • 2023-01-16 16:44

    가마솥님의 글을 읽으니 꼰대와 어른의 차이를 알겠네요 ~ ㅎㅎ
    서른살의 공부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2023-01-16 18:29

    우와 가마솥쌤과 함께 공부해보고 싶어요..!!!

  • 2023-01-16 19:00

    가마솥님~~ 사람 사는 공부, 응원합니다~~~

  • 2023-01-16 19:06

    그렇다. 가마솥의 누룽지는 아직 끓고 있다.
    한 20년은 더 불을 지펴야 맛 볼수 있는 누룽지.
    그 가마솥은 그만큼 단단했다.

  • 2023-01-16 23:15

    가마솥님의 글을 읽는데, 왠지 드라마 인트로가 시작하는 느낌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상상이 되네요^^
    앞으로 주인공이 어떤 삶을 펼칠지 기대가됩니다~ㅎ

  • 2023-01-17 00:02

    새로운 공부 20년!! 멋져요~

  • 2023-01-17 13:06

    와~ 60갑자를 돌아오신 ‘59년생 서른살’님의 사주가 매우 궁금해집니다.(루보살~~~제가 운띄웠으니 하반기에 공략!)

    가마솥님과 함께 하는 20년 공부. 기대됩니다^^

  • 2023-01-18 17:42

    정말 솔직한 글이네요… . 응원합니다!!

문탁의 나이듦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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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5.12 조회 339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88세의 늙고 병든 어머니   50대 후반 혹은 60대가 되면 누구나 부모님 돌봄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54세 되던 해 돌아가셨고, 이제 60이 된 나에게는 88세의 어머니가 남아계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10년 차 파킨슨병 환자로 심장의 가동률은 33%(의사 말로는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함), 신장도 이미 한쪽은 기능을 잃었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에겐가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이다. 특히 작년 12월 또다시 심장이 안 좋은 데다 신부전이 재발하였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극적으로 회복하셨다. 현재는 엄마가 5년간 지속해서 다녔던 주간보호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 대기 중이며, 엄마를 보살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계신다.           엄마는 원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2017년) 봄부터 동생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 엄마의 병원과 수많은 약 수발을 혼자 감당하면서 주 보호자 노릇을 했다. 그 6년 동안에도 엄마는 각종의 검사와 입원, 퇴원을 반복했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몇 번, 동생의 속을 꽤나 끓게 했다. 말이 쉽지 ‘6년간 엄마의 돌봄’이라는 이 간단한 단어 조합 안에는 엄청나게 복잡한 감정과 노동과 고통이 퇴적층처럼 촘촘히 쌓여...
먼불빛 2023.05.11 조회 22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가마솥 2023.05.03 조회 267
인문약방 에세이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손은희       “예나 지금이나 집안일은 대개 여성의 역할로 여겨진다.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이 집안일은 차츰 간병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도 이어진다. 집안일이 생애 말기 돌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대다수 한국인이 집에서 임종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집에서 주로 여성(할머니, 어머니, 며느리, 아내, 딸 등)이 환자를 위해 이 집안일을 도맡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부터 생애 말기 돌봄은 성별 분업에 기반했고, 집안에 고립되어 있었다. 공적 돌봄과 복지의 공백은 개인(가족)의 ‘도리’, ‘효’, ‘천성’,‘사랑’과 같은 언어와 실천으로 메워졌다.” (『각자도사 사회』 23쪽)       1. 엄마, 나 대를 이어 돌봄   할아버지는 75살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뇌출혈로 3개월 정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집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어서 매일 매일 할아버지 병간호를 맏며느리인 엄마가 도맡아 하셨다.   그 후 시골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동안 엄마는 이 삼일에 한번꼴로 반찬, 청소 등 집안 일을 해주러 가시곤 했고, 할머니는 몸이 안좋으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장기간 머물다가 가시곤 했다. 그렇게 생활하시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다치시면서 요양병원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그때 연세가 80세 정도셨다. 요양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아예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요양병원 침대에서 17년 동안 사시다가 100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표현하셨지만 엄마와 아빠도 연세가 드셔서 모실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 20년 동안 할머니의 자손 7남매는...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지현       1. “연고를 바르면 피부병은 금방 사라지겠지”   5년 전쯤 피부병을 앓은 적이 있다. 작은 기포 같은 게 주로 손과 발, 다리에 올라왔고 무척 간지러웠다. 당시 제주 한 달 살이를 마칠 즈음이었는데 숙소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혹시 진드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종합병원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았다.   연고를 바르면 바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던 피부병은 어찌 된 일인지 점점 심해졌다. 열심히 검색해서 ‘한포진’이라는 피부병과 비슷한 증상이라는 건 알아냈지만 그렇다고 내 증상과 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기포 같은 게 점점 커지고 급기야 진물이 흘러서 손과 발을 쓸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걸어 다닐 수 없어서 두문불출해야 했고 당시 여름이었는데 샤워도 할 수 없었다.             종합병원에 간 걸 후회하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니 의뢰서를 갖고 종합병원에 가서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현타가 왔다. 계속 이대로 따라가다가는 더 큰 부작용에 시달릴까 두려웠다. 피부병을 피부에 난 무엇으로만 보고 그냥 피부 차원에서 손쉽게, 빠르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결국 종합병원이 아닌 한의원에 갔고 3개월 동안의 한약과 침 치료, 채식으로 호전되었다.   이번 시즌에 읽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후쿠오카 신이치는 유전공학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자가...
문탁 2023.05.03 조회 19
인문약방 에세이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김은영         1. 갱년기, 일상을 변화시키다   재작년 가을, 관절마다 통증이 올라오고 무엇을 먹어도 반드시 체하고 수면제로도 잠들지 못하는 힘겨운 일주일을 보낸 것이 시작이었다. 몸의 이상 증상들이 생겨날 때가 코로나 시국이라 그 대중적인 그 바이러스가 내게도 오는 것인가, 라는 합리적 의심으로 검사를 받았고, 이후에는 내가 겪는 증상으로 점칠 수 있는 모든 중병들을 추측하며 폭풍 검색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먹지 않았으면 좋을 음식과 하지 않으면 좋았을 모든 생활 방식들을 후회하며 그것들이 합성되어 몸으로 발현되는 것인가도 의심하며 겨울을 보냈었다. 최종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몸 안에 특별한 염증 반응은 없다는 판단 아래 진맥과 진단을 거친 후에야, 너의 몸은 갱년기를 통과 중이고 그동안 몸을 조절하던 기운들이 변화하고 있어 이런 증상들이 오는 것이니 이 시기를 잘 지나가게끔 도와줄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는 친절한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갱년기의 몸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몸의 통증과 변화들은 계속되었다. 아침에 눈꺼풀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부은 상태로 일어나서 저녁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여러 날을 그런 상태로 지내게 되거나, 가슴부터 목까지 타는 듯한 미세한 통증으로 불편한 날이 또 며칠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두근거리는 느낌이 갑자기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심장병이 의심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평소와 다름 없는 일과를 마치고 왔는데 갑자기 피곤해져 바로 자야만 하는 날도 있었다.   불쑥 찾아오는 몸의...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박정은       “존엄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틀, 생산가능인구의 증가가 노인 돌봄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출산이든 고출산이든 상관없이, 한국의 노인 돌봄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야 하는 주제다. 그 논의는 노인을 자유롭고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p43)       1.공적세계로 나오지 못하는 ‘집 안의 목소리’   어버이날을 맞아 시어른을 모시고 대구 근교로 나가 식사와 차를 먹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시어른에게 톡 쏘는 내 태도로 인해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한 며느리였지만 살면서 가부장제를 몸소 겪으며 자기방어를 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시아버지의 잔소리와 시어머니의 말을 다 들어야 될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바뀌지도 않는 시어른과 나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각자도사 사회>에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시민과의 연대’라는 개념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 죽으면 ‘좋은 죽음(혹은 자연사)’이고, 시설에서 죽으면 ‘나쁜 죽음(혹은 객사)’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은 집 그자체가 아니라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에 달려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집에서 죽어도 고립되어 죽을 수 있고 시설에서 죽어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있어야 되는 공적세계에 울려 퍼지는 ‘집 안의 목소리들’이 무엇일까?   집 안의 목소리들을 찾아보자.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있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의 인터뷰...
문탁 2023.05.03 조회 9
인문약방 에세이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김미정       남편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엄마는 자기 자신을 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한다”라는 말을 할 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엄마의 모순적인 측면 중 하나는, 헌신의 위대함을 믿으면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역시 지니고 있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견디지 못했다는 점이다. 엄마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진 속박과 궁핍에 맞서 나갔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p.47)       <아주 편안한 죽음>은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어머니의 죽어가는 과정과 환자를 대하는 가족과 의료진의 갈등을 위주로 글을 읽어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모습이 나와 엄마를 연상하게 했다. 어머니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던 보부아르. 보부아르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엄마는 기댈 수는 있지만 조금은 어려운 존재이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입원으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곁에 붙어있게 된다. 어머니의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p.26)를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차츰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뀐다. 보부아르가 어린 시절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 당시의 배경이나 환경에 비추어 다시 곱씹어 보니 이해될 만하다. 모녀간 단절되었던 대화를 다시 나누고,...
문탁 2023.05.03 조회 13
인문약방 에세이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해야   1.제대로 애도한다는 것   2016년 6월 30일. 난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올란도의 Pulse 퀴어 바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49명의 젊은이들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단일범에 의한 총격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푸에르토 리코 등 중남미 출신의 퀴어들이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29세의 오마르 마틴이라는 남성이었다. 처음엔 그가 IS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스스로 이슬람 과격주의를 신봉하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동성애 혐오자였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동기가 되어 Pulse를 택했는지 공식 수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모 행사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이들의 배경이 소개될 때 난 슬펐고 분노했다. 총격범을 원망했고 단죄했다. 나의 애도는 거기서 그쳤다. 올란도를 생각하면 지금도 찜찜하다. 소수자들이 겪는 폭력과 죽음에 잠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지나갔다. 난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었다.   애도(mourning)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행동(케임브리지 사전)’이다. 이 정의는 애도가 슬픔이란 특정한 감정과 연관된 사적인 사건임을 내포한다. 일부 사전에는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내가 애도를 이해한 방식과 비슷하다. 버틀러는 <<불확실 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에서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애도를 제시한다. 저자는 911 테러를 군사적 해법으로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고, 상실과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응은 우리가 애도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애도의...
문탁 2023.05.02 조회 147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문탁 2023.05.02 조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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