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일파만파(一波萬波)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24년) 리뷰 1.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국민주권’,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이런 개념들이 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생각했다. ‘계엄령’, ‘군부 쿠데타’, ‘독재’. 이런 단어들은 즉각적으로 ‘반(反)민주주의’로 연결됐다. ‘12.3 내란’ 이후엔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라는 반문이 든다.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은 자동으로 법적 처리가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2024년 정당별 의석수는 여당(국민의 힘) 108석, 야당 192석(더민주+더민주연합 175, 조국혁신당 12, 개혁혁신당 3, 새로운미래 1, 진보당 1)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회의원 재적의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에서 찬성표가 8표 이상은 나와야 했다. 1차 투표 불성립 후 일주일간 피를 말리며 여당의 이탈표가 몇 표가 나올 것인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2차 투표에선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탄핵이 가결되었고, 여당에서는 당론에 반하는 23표의 이탈자가 나왔다. 이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곧 나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123일 만인 2025년 4월 4일에 인용 판결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대행인 총리의 헌볍재판관 임명 거부와 헌법재판소의 선고기일이 지연되면서 향후 전망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났다. 8인의 헌법재판관들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따져보며, 탄핵이 인용될 수 있는 6인의 찬성표가 나올 수 있을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법원은 그간의 관행을 깨고 구속일자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피고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24년) 리뷰 1.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국민주권’,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이런 개념들이 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생각했다. ‘계엄령’, ‘군부 쿠데타’, ‘독재’. 이런 단어들은 즉각적으로 ‘반(反)민주주의’로 연결됐다. ‘12.3 내란’ 이후엔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라는 반문이 든다.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은 자동으로 법적 처리가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2024년 정당별 의석수는 여당(국민의 힘) 108석, 야당 192석(더민주+더민주연합 175, 조국혁신당 12, 개혁혁신당 3, 새로운미래 1, 진보당 1)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회의원 재적의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에서 찬성표가 8표 이상은 나와야 했다. 1차 투표 불성립 후 일주일간 피를 말리며 여당의 이탈표가 몇 표가 나올 것인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2차 투표에선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탄핵이 가결되었고, 여당에서는 당론에 반하는 23표의 이탈자가 나왔다. 이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곧 나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123일 만인 2025년 4월 4일에 인용 판결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대행인 총리의 헌볍재판관 임명 거부와 헌법재판소의 선고기일이 지연되면서 향후 전망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났다. 8인의 헌법재판관들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따져보며, 탄핵이 인용될 수 있는 6인의 찬성표가 나올 수 있을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법원은 그간의 관행을 깨고 구속일자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피고인...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 ‘침묵’이 아닐까 싶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날 것처럼 조용한 공간 같지만, 도서관은 의외로 시끄럽다. 실제로 일본 기후에 있는 시립도서관 ‘모두의 숲 미디어 코스모스’는 시민들이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도서관이 시끄럽다고 말한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다. 민원 제기나 이용자들 간의 불화와 다툼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이용자들 덕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여기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코믹, 액션, 범죄 등 장르도 다양하다. 오늘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가볼까 한다. 책을 감추다 도서관에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창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상호대차 도서 목록을 뽑는다. 전날 신청된 상호대차 도서들을 찾아, 이용자가 수령을 요청한 도서관으로 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들을 순회하는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가방을 꾸리려면 서둘러야 한다. 신청한 도서를 찾지 못하면 마음이 몹시 급해진다. 책을 못 찾는 건 대부분 둘 중 하나의 경우다. 책이 조금 잘 못 꽂혔거나, 아주 잘 못 꽂혔거나. 전날 눈이 빠지도록 배열을 맞췄는데, 도대체 누가 이 따위로 책을 꽂아놓은 거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서관의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이용자들. 배가 규칙을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직원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용자들은 본인이 잠시 뽑아서 본 책은...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 ‘침묵’이 아닐까 싶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날 것처럼 조용한 공간 같지만, 도서관은 의외로 시끄럽다. 실제로 일본 기후에 있는 시립도서관 ‘모두의 숲 미디어 코스모스’는 시민들이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도서관이 시끄럽다고 말한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다. 민원 제기나 이용자들 간의 불화와 다툼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이용자들 덕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여기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코믹, 액션, 범죄 등 장르도 다양하다. 오늘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가볼까 한다. 책을 감추다 도서관에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창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상호대차 도서 목록을 뽑는다. 전날 신청된 상호대차 도서들을 찾아, 이용자가 수령을 요청한 도서관으로 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들을 순회하는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가방을 꾸리려면 서둘러야 한다. 신청한 도서를 찾지 못하면 마음이 몹시 급해진다. 책을 못 찾는 건 대부분 둘 중 하나의 경우다. 책이 조금 잘 못 꽂혔거나, 아주 잘 못 꽂혔거나. 전날 눈이 빠지도록 배열을 맞췄는데, 도대체 누가 이 따위로 책을 꽂아놓은 거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서관의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이용자들. 배가 규칙을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직원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용자들은 본인이 잠시 뽑아서 본 책은...
아스퍼거는 귀여워
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
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