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에 도라지
  청명과 곡우가 있는 4월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 땅을 일구고 파종을 시작하는 때. 아직 텃밭에는 이렇다 할 작물이 없기에 이른 봄날 나무와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은 버릴 거 하나 없이 귀하고 맛나다. 발아로 분주한 깊은 산속에서 나는, 봄은 오는 게 아니라 나오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사월에는 눈이 내렸다. 청명은 맑을 청(淸)에 밝을 명(明), 맑고 밝은 봄날을 뜻한다. 양력으로 4월 5~6일이다. 도시에서는 문 밖에 자연을 멀게 느끼고 살았다. 체감하는 것은 계절의 급격한 변화 정도. 한 달 후 찍혀 나오는 전기세와 도시가스 요금으로 지난 계절의 삶이 녹록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회상하곤 했다. 하지만 산속에 일상은 자연에 촉각을 세우게 한다. 외국어 같았던 24절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지난 4월 13일에는 눈이 왔다. 청명을 지나면서 나물들이 바지런히 밝고 맑은 새순을 올리는 중에 내린 눈이라 눈 구경을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자연과 직거래하며 밥상을 꾸리는 산속 살림은 날씨와 매번 식탁 메뉴를 협상해야 한다. 물론 협상의 우위는 날씨가 차지한다. 그런데 4월에 눈은 반칙 아닌가? 남편은 나의 걱정에 “때 되면 다 올라온다~”라고 했고. 정말 때가 되니 차오른 땅의 기온과 출몰을 앞둔 새싹들의 기세는 눈을 녹이고 땅을 가르기 시작했다.       벗꽃 위에 눈이 내렸다.        머위 꽃이 물었다. “일 할 준비됐어?” 몇 해 전 늦은 봄날, 양지에서 작고...
  청명과 곡우가 있는 4월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 땅을 일구고 파종을 시작하는 때. 아직 텃밭에는 이렇다 할 작물이 없기에 이른 봄날 나무와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은 버릴 거 하나 없이 귀하고 맛나다. 발아로 분주한 깊은 산속에서 나는, 봄은 오는 게 아니라 나오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사월에는 눈이 내렸다. 청명은 맑을 청(淸)에 밝을 명(明), 맑고 밝은 봄날을 뜻한다. 양력으로 4월 5~6일이다. 도시에서는 문 밖에 자연을 멀게 느끼고 살았다. 체감하는 것은 계절의 급격한 변화 정도. 한 달 후 찍혀 나오는 전기세와 도시가스 요금으로 지난 계절의 삶이 녹록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회상하곤 했다. 하지만 산속에 일상은 자연에 촉각을 세우게 한다. 외국어 같았던 24절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지난 4월 13일에는 눈이 왔다. 청명을 지나면서 나물들이 바지런히 밝고 맑은 새순을 올리는 중에 내린 눈이라 눈 구경을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자연과 직거래하며 밥상을 꾸리는 산속 살림은 날씨와 매번 식탁 메뉴를 협상해야 한다. 물론 협상의 우위는 날씨가 차지한다. 그런데 4월에 눈은 반칙 아닌가? 남편은 나의 걱정에 “때 되면 다 올라온다~”라고 했고. 정말 때가 되니 차오른 땅의 기온과 출몰을 앞둔 새싹들의 기세는 눈을 녹이고 땅을 가르기 시작했다.       벗꽃 위에 눈이 내렸다.        머위 꽃이 물었다. “일 할 준비됐어?” 몇 해 전 늦은 봄날, 양지에서 작고...
도라지
2025.05.10 | 조회 338
감정의 일파만파(一波萬波)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24년) 리뷰       1.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국민주권’,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이런 개념들이 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생각했다. ‘계엄령’, ‘군부 쿠데타’, ‘독재’. 이런 단어들은 즉각적으로 ‘반(反)민주주의’로 연결됐다. ‘12.3 내란’ 이후엔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라는 반문이 든다.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은 자동으로 법적 처리가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2024년 정당별 의석수는 여당(국민의 힘) 108석, 야당 192석(더민주+더민주연합 175, 조국혁신당 12, 개혁혁신당 3, 새로운미래 1, 진보당 1)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회의원 재적의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에서 찬성표가 8표 이상은 나와야 했다. 1차 투표 불성립 후 일주일간 피를 말리며 여당의 이탈표가 몇 표가 나올 것인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2차 투표에선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탄핵이 가결되었고, 여당에서는 당론에 반하는 23표의 이탈자가 나왔다.   이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곧 나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123일 만인 2025년 4월 4일에 인용 판결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대행인 총리의 헌볍재판관 임명 거부와 헌법재판소의 선고기일이 지연되면서 향후 전망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났다. 8인의 헌법재판관들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따져보며, 탄핵이 인용될 수 있는 6인의 찬성표가 나올 수 있을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법원은 그간의 관행을 깨고 구속일자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피고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24년) 리뷰       1.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무엇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국민주권’,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이런 개념들이 민주주의의 골격이라고 생각했다. ‘계엄령’, ‘군부 쿠데타’, ‘독재’. 이런 단어들은 즉각적으로 ‘반(反)민주주의’로 연결됐다. ‘12.3 내란’ 이후엔 민주주의는 산수인가? 라는 반문이 든다.   불법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은 자동으로 법적 처리가 끝날 줄 알았다. 아니었다. 2024년 정당별 의석수는 여당(국민의 힘) 108석, 야당 192석(더민주+더민주연합 175, 조국혁신당 12, 개혁혁신당 3, 새로운미래 1, 진보당 1)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회의원 재적의 2/3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당에서 찬성표가 8표 이상은 나와야 했다. 1차 투표 불성립 후 일주일간 피를 말리며 여당의 이탈표가 몇 표가 나올 것인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2차 투표에선 찬성 204, 반대 85, 기권 3, 무효 8로 탄핵이 가결되었고, 여당에서는 당론에 반하는 23표의 이탈자가 나왔다.   이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곧 나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123일 만인 2025년 4월 4일에 인용 판결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대행인 총리의 헌볍재판관 임명 거부와 헌법재판소의 선고기일이 지연되면서 향후 전망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났다. 8인의 헌법재판관들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따져보며, 탄핵이 인용될 수 있는 6인의 찬성표가 나올 수 있을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애를 태웠다.   법원은 그간의 관행을 깨고 구속일자를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피고인...
겸목
2025.05.06 | 조회 365
양선생 명랑분투기
6학년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2월에 6학년만 연속으로 14년을 담임하신 선생님의 연수를 듣게 되었다. 와! 교사가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경지구나 하는 감탄과 존경이 일어났다. 어떻게 아이들을 바라볼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그리고 왜 이것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14년간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교육과정은 예술작품 같았다.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교사로서 겪는 고민을 정면으로 뚫어내 자신만의 독보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선생님은 자신이 새롭게 구성한 교육과정과 수업자료를 공개하셨다. 그중 수업에 가장 접목해보고 싶은 부분은 민주적인 교실 만들기 프로젝트로 교실 안에서 실현하는 삼권분립이었다. 어떤 교실을 만들어가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학급 의회, 학급 자치회, 학급 법원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한의 분산을 경험한다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심찬 기획 교실 속 민주주의 프로젝트   사회 시간과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침 사회 1단원 주제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이다. 이 단원은 4.19혁명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의 근대사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지, 헌법에 명시된 민주정치의 원리는 무엇인지를 배운다. 대통령의 친위 쿠테타가 일어난 현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정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사회 교과서에는 정치란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정치가 이루어지고...
6학년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2월에 6학년만 연속으로 14년을 담임하신 선생님의 연수를 듣게 되었다. 와! 교사가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경지구나 하는 감탄과 존경이 일어났다. 어떻게 아이들을 바라볼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그리고 왜 이것을 가르치는지에 대한 14년간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교육과정은 예술작품 같았다.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교사로서 겪는 고민을 정면으로 뚫어내 자신만의 독보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선생님은 자신이 새롭게 구성한 교육과정과 수업자료를 공개하셨다. 그중 수업에 가장 접목해보고 싶은 부분은 민주적인 교실 만들기 프로젝트로 교실 안에서 실현하는 삼권분립이었다. 어떤 교실을 만들어가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학급 의회, 학급 자치회, 학급 법원을 구성하고 이를 통해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한의 분산을 경험한다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야심찬 기획 교실 속 민주주의 프로젝트   사회 시간과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침 사회 1단원 주제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이다. 이 단원은 4.19혁명부터 6월 민주항쟁까지의 근대사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지, 헌법에 명시된 민주정치의 원리는 무엇인지를 배운다. 대통령의 친위 쿠테타가 일어난 현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라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정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사회 교과서에는 정치란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정치가 이루어지고...
산책
2025.05.04 | 조회 357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 ‘침묵’이 아닐까 싶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날 것처럼 조용한 공간 같지만, 도서관은 의외로 시끄럽다. 실제로 일본 기후에 있는 시립도서관 ‘모두의 숲 미디어 코스모스’는 시민들이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도서관이 시끄럽다고 말한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다. 민원 제기나 이용자들 간의 불화와 다툼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이용자들 덕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여기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코믹, 액션, 범죄 등 장르도 다양하다. 오늘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가볼까 한다.     책을 감추다   도서관에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창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상호대차 도서 목록을 뽑는다. 전날 신청된 상호대차 도서들을 찾아, 이용자가 수령을 요청한 도서관으로 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들을 순회하는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가방을 꾸리려면 서둘러야 한다. 신청한 도서를 찾지 못하면 마음이 몹시 급해진다. 책을 못 찾는 건 대부분 둘 중 하나의 경우다. 책이 조금 잘 못 꽂혔거나, 아주 잘 못 꽂혔거나. 전날 눈이 빠지도록 배열을 맞췄는데, 도대체 누가 이 따위로 책을 꽂아놓은 거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서관의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이용자들. 배가 규칙을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직원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용자들은 본인이 잠시 뽑아서 본 책은...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도 ‘침묵’이 아닐까 싶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안 날 것처럼 조용한 공간 같지만, 도서관은 의외로 시끄럽다. 실제로 일본 기후에 있는 시립도서관 ‘모두의 숲 미디어 코스모스’는 시민들이 왁자지껄 떠들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도서관이 시끄럽다고 말한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다. 민원 제기나 이용자들 간의 불화와 다툼 때문에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하는 이용자들 덕분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이 만나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여기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코믹, 액션, 범죄 등 장르도 다양하다. 오늘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가볼까 한다.     책을 감추다   도서관에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창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상호대차 도서 목록을 뽑는다. 전날 신청된 상호대차 도서들을 찾아, 이용자가 수령을 요청한 도서관으로 보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들을 순회하는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가방을 꾸리려면 서둘러야 한다. 신청한 도서를 찾지 못하면 마음이 몹시 급해진다. 책을 못 찾는 건 대부분 둘 중 하나의 경우다. 책이 조금 잘 못 꽂혔거나, 아주 잘 못 꽂혔거나. 전날 눈이 빠지도록 배열을 맞췄는데, 도대체 누가 이 따위로 책을 꽂아놓은 거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서관의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데. 직원들, 자원봉사자들, 이용자들. 배가 규칙을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직원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이용자들은 본인이 잠시 뽑아서 본 책은...
스프링
2025.04.30 | 조회 281
아스퍼거는 귀여워
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
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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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 조회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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