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강원도라고? 2009년 3월 어느날. 운영위원장인 ‘박장’이 강원도 평창의 임야를 계약 하겠다고 소식을 올렸다. 약 10,000 평 정도에 평당 5만원으로 가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귀촌해서 살려면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살 수 있는지, 무슨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그곳의 주민들은 외지인에 대한 의식이 어떤지 면밀히 따져보고 토지를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려고 했으나 그만 두었다. 모두들 예산상의 가격과 규모이니, “잘 되었다. 고생했다”는 댓글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함께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 하기도 그렇고, 또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결국, 그 곳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우리 땅’을 보러 갔다. 큰 도로에서 꺾어져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한두 번 걷는 것은 좋겠지만 매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아득하다. 남쪽 사면이니 햇볕은 잘 들어 올 듯하다. 뒤쪽은 보섭봉이라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평창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자리라며 땅을 찾은 ‘된장’이 설명한다. 하이구 이 친구야, 사고를 제대로 쳤다. 서울에서 3시간 반, 고속도로 I/C에서 30여분 떨어진 해발 450m의 이런...
인문약방 에세이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노을 “요양원에서 무연고 노인들의 ‘생물학적 생명’은 법적으로 철저한 보호를 받지만, 이들의 ‘서사적 삶’은 시설의 관리체계 속에서 탈각된다. 즉 입소자들 생의 끝자락과 죽음은 인간적 존엄이 증발하고 법적 틀거리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각자도사 사회』, 164쪽 1. 파고다 공원, 홈리스, 무연고자와 나 지난 달에 파고다 공원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인사동, 낙원상가 앞 횡단보도를 지나 파고다 공원 뒤쪽으로 가보면 많은 노인 분들을 계심을 알게 된다. 한 쪽에서는 바둑을, 윷놀이를, 가게 앞에서 새하얀 가부키 화장을 하고 앉아 계신 분, 두 개의 정차된 리어카에는 폐박스가 가득, 반짝이는 옷과 진한 화장으로 한 채로 트로트 음악에 맞춰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독거노인을 위한 모금을 모으는 노인 분들, 떼를 지어 위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종로 한복판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언젠가 한 번은 서울역에서 노숙자 분들을 마주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김목화 씨) 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한겨레신문,2023.5.13.)를 읽었다. 살아생전에 말해지지 않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그녀의 죽음 이후, 이제라도 세상에 말하겠다는 서문과 함께, 기자 분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길게 써내려간 기사였다. 기사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종의 부고였다. 눈에 들어온 기사 내용은 그녀를 평소 알고 지내던 동료 홈리스들이 사망의 원인도 알고 애도도 제대로 싶어 하지만,...
인문약방 에세이
김지영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각자도사 사회』 217쪽) 1. 결국은 마주해야 할 ‘사회’ 불현듯 찾아온 갱년기를 따라 ‘잘 늙고 싶다’라는 소망도 함께 왔다. 처음 그 소망이 가져다 준 감정은 조급함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 날의 고민이 호기로움이었다면, 나이듦과 함께 찾아온 고민에는 ‘내 나이가 벌써?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당혹감과 초조함 같은 것들이 배어있었다. 젊은 시절, 그 호기로움에 힘입어 나는 공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운 좋게도 직장생활 대부분을 정부, 지자체 등 공공조직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가끔은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데 나도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한편으로, 사소한 것 하나 바꾸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넘쳐나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선출된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은 더 자주 일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담당 부서와 대화하다 보면, 기준과 형평성, 재정 문제로 무장한 반대논리에 숨이 막혔다. 이해관계자나 정책대상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요구에서 느껴지는 이기심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협상과 타협은 절대 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제 나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다고 여겼던 그 곳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현장이 주었던 기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의 양극화와 정체를 알...
김지영 “좋은 죽음은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분리될 수 없다.” (『각자도사 사회』 217쪽) 1. 결국은 마주해야 할 ‘사회’ 불현듯 찾아온 갱년기를 따라 ‘잘 늙고 싶다’라는 소망도 함께 왔다. 처음 그 소망이 가져다 준 감정은 조급함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 날의 고민이 호기로움이었다면, 나이듦과 함께 찾아온 고민에는 ‘내 나이가 벌써? 앞으로 어떻게 살지?’라는 당혹감과 초조함 같은 것들이 배어있었다. 젊은 시절, 그 호기로움에 힘입어 나는 공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운 좋게도 직장생활 대부분을 정부, 지자체 등 공공조직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면서 가끔은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데 나도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꼈다. 한편으로, 사소한 것 하나 바꾸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넘쳐나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선출된 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은 더 자주 일었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담당 부서와 대화하다 보면, 기준과 형평성, 재정 문제로 무장한 반대논리에 숨이 막혔다. 이해관계자나 정책대상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요구에서 느껴지는 이기심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협상과 타협은 절대 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이제 나는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다고 여겼던 그 곳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현장이 주었던 기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의 양극화와 정체를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