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2023.07.26 | 조회 998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흡혈귀가 나타났다!     낮은 자세   "내일 아침돌봄 때 잔디 배 안쪽 상처를 가볍게 소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태가 어떤지 사진으로 찍어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날 올라온 무모 님의 지시 사항을 읽으며 아침 돌봄을 갔다. '상처를 소독하려면 잔디가 잘 누워줘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새벽이생추어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따라 잔디는 활기가 넘쳤고 돌봄이 끝날 때까지 드러누울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봄 기운이 넘실대는 5월이었다. 잔디는 여기 저기 올라오는 풀을 뜯거나 부드러운 흙을 코로 탐색하며 봄내음을 맡느라 분주했다.   잔디가 눕지 않으니, 내가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잔디가 움직이지 않는 틈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잔디가 멈추는 순간 가까이 다가가 몸을 납짝 엎드려 배에 소독약을 뿌렸다. 잔디는 자신이 내키지 않을 때 자기 몸을 누가 만지거나 몸에 차가운 액체를 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럴 때 잔디는 몸을 부르르 떨고 꾸웅 꾸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식사 중에 어딜 만지거나 약을 바르려고 하면 코로 음식을 마구 헤집고 그릇을 퍽퍽 친다. 그러다 밥그릇이 엎어져 음식을 전부 쏟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하잖아? 밥 먹을 때 누구라도 건드리면 짜증나잖아?) 어쨌든 전달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나는...
경덕
2023.07.22 | 조회 685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문탁
2023.07.20 | 조회 505
인문약방 에세이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좋은 삶을 위한 ‘정치’가 바로 ‘정의’이다   둥글레     인문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공동체적 삶을 도모하고 가끔이지만 연대하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안이하게 느껴진다. 나의 ‘그럭저럭 좋은 삶’은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구성이 되었을까? 나는 전문직을 가진 이성애 비혼 여성 한국인이다. 중산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니다. 비노인이며 비장애인이다.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비혼 여성으로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문직 이성애 비장애인 비노인 한국인으로 차별을 하는 쪽에도 서 있다. 차별을 받는 쪽에만 있었다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반대쪽의 삶의 지분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생각은 『동자동 사람들』(2021, 빨간소금)을 읽고 뼈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사회 전체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는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자동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버려졌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는 그들에게 개입된 돌봄들(주로 복지나 자원봉사 형태)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적 버려짐’에서 찾는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모티브북)에서 천착한 정의(justice)와 정치의 문제도 『동자동 사람들』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결이 같다. 그녀는 분배적 패러다임에 묶인 정의를 그 너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정의의 조건이자 요소로 민주주의(정치)의 쇄신을 제안한다.     동자동 쪽방촌         분배 패러다임이 놓치고 있는 구조적 부정의   기존의 정의 담론을...
문탁
2023.07.20 | 조회 366
인문약방 에세이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나의 곤경노트 - 법이 폭력이라고?   무사     법이 무사 폭력이우까?!   폭력을 응징하는 법이 폭력이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폭력을 휘둘러 왔다는 말이야? 나는 강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18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2005년 가을이었고, 입대한 지 3년차였다. 관할 지역 남성 지휘관이 여성 장교를 강제추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입회 임무를 맡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해주려 전전긍긍하던 나에게 그 후배는 물었다. “선배가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날돕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냐” 고. 나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피해를 막고 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처벌되었고, 후배는 전역했다. 그리고 다른 유사한 사건들에 치어 나는 곧 이 일을 잊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타인에 대하여 부당하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법에 따른 힘의 행사(체포, 구속, 사형 등)나 법이 허용한 힘의 행사(정당방위 등)는 법질서를 위반하는 폭력에 대한 합법적인 억압에 해당한다.(<법률학 사전>, ‘폭력’ 편) 이처럼 법과 폭력은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법과 폭력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버틀러의 주장 앞에 멈칫했다. 내가 수 십 년간 공부하고 다뤄 왔던 법에는 나름 양심이 있고, 일부 감정도 있다고 믿어 왔다. 피해 전부를 보상 받거나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법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경우도 많았다. 법은 단순히 법전 안의 글자만은 아니다.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판사가...
문탁
2023.07.20 | 조회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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