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생 명랑분투기
<어떻게 앉은 것인가>   개학을 앞두고 생각할 일들이 많다.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다름 아닌 ‘자리 바꾸기’이다. 좌석 배치는 정해진 기간 동안 누구와 같은 모둠이 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이다. 1학기에는 아이들 성향과 교우 관계 등을 고려하여 담임인 내가 달마다 자리를 정해주었다. 하지만 2학기에는 방법을 좀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7월 자리 바꿈을 할 때 한 여학생이 울었기 때문이다. 수업 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니 옆 자리에 앉게 된 아이와 한 달을 지낼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자리는 어떻게 정해도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모두가 좀 더 견딜만한(?) 방법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자고 달랬다.   사실 우리 반에는 흔히 생각하는 짝이 없다. 2명씩 책상을 붙여 앉는 전형적인 짝을 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짝과 나란히 앉던 교실 풍경은 코로나 19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개별 좌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에는 혼자 앉기도 하도 짝과 책상을 붙여 앉기도 하는 등 반마다 좌석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나는 학기 초에 짝 자리를 정해주려 했지만, 개별 자리를 선호하는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5분단 5줄 형태로 좌석을 배치하게 되었다. 남녀 각각 12명 씩 24명인 우리 반은 옆자리와 앞 뒤 자리 아이들 4명이 한 모둠이 된다. 모둠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누구와 한 모둠이...
<어떻게 앉은 것인가>   개학을 앞두고 생각할 일들이 많다.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다름 아닌 ‘자리 바꾸기’이다. 좌석 배치는 정해진 기간 동안 누구와 같은 모둠이 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이다. 1학기에는 아이들 성향과 교우 관계 등을 고려하여 담임인 내가 달마다 자리를 정해주었다. 하지만 2학기에는 방법을 좀 다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7월 자리 바꿈을 할 때 한 여학생이 울었기 때문이다. 수업 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니 옆 자리에 앉게 된 아이와 한 달을 지낼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자리는 어떻게 정해도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모두가 좀 더 견딜만한(?) 방법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자고 달랬다.   사실 우리 반에는 흔히 생각하는 짝이 없다. 2명씩 책상을 붙여 앉는 전형적인 짝을 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짝과 나란히 앉던 교실 풍경은 코로나 19 시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개별 좌석으로 바뀌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에는 혼자 앉기도 하도 짝과 책상을 붙여 앉기도 하는 등 반마다 좌석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나는 학기 초에 짝 자리를 정해주려 했지만, 개별 자리를 선호하는 아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5분단 5줄 형태로 좌석을 배치하게 되었다. 남녀 각각 12명 씩 24명인 우리 반은 옆자리와 앞 뒤 자리 아이들 4명이 한 모둠이 된다. 모둠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누구와 한 모둠이...
산책
2025.09.05 | 조회 286
스프링의 실화극장
지켜보고 있다   나는 동생 직장에서 나름 유명인이다. 괴짜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캐릭터쯤 된다. 심심할 때 가끔, 안부가 궁금해지는. “느그 아부지 뭐하시나?”가 아니라, “느그 언니 요즈음 뭐하나?” 정도?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까지는 아니어도, 매일매일 그날이 그날인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금 결이 다른, 그러나 무섭거나 위협이 되지는 않는, 그런 종류의 흥미로운 사람이다. 조금 있으면 공중부양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날 그렇게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일상의 루틴에서 도인의 풍모를 느끼기 때문이다. ‘음양탕, 침뜸, 태극권, 108배, 명상’. 음양탕과 108배는 오래된 인연이다. 명상은 명절에만 찐하게 만나는 친척처럼 연례행사 정도로만 치른다. 침뜸은 예전에 1년 정도 배웠는데 놓는 법만 알 뿐, 혈 자리를 잘 모른다. 매번 혈 자리를 인터넷으로 찾아, 장님 문고리 찾듯 조심조심 눌러보고 만져보며 더듬더듬 뜸을 뜨고 침을 놓는다. 아침마다 열심히 108배하고 뜸을 뜨고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거의 손절 수준이다.   최근에 알게 된 게 태극권인데 현재는 가장 주력하고 있는 종목이다. 나의 아침 루틴은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섞은 음양탕으로 시작한다. 작년 5월부터 온라인으로 태극권을 접하게 되었다. 몸이 유연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을수록 동작이 잘 나온다. 태극권 동작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으로 구성된 양생체조를 30~40분 하고, 투로와 기본 보법, 참장 등을 간단히 한 다음, 철봉 매달리기로 마무리를 하면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108배나 명상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동생 직장에서 나름 유명인이다. 괴짜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캐릭터쯤 된다. 심심할 때 가끔, 안부가 궁금해지는. “느그 아부지 뭐하시나?”가 아니라, “느그 언니 요즈음 뭐하나?” 정도?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까지는 아니어도, 매일매일 그날이 그날인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조금 결이 다른, 그러나 무섭거나 위협이 되지는 않는, 그런 종류의 흥미로운 사람이다. 조금 있으면 공중부양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날 그렇게 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일상의 루틴에서 도인의 풍모를 느끼기 때문이다. ‘음양탕, 침뜸, 태극권, 108배, 명상’. 음양탕과 108배는 오래된 인연이다. 명상은 명절에만 찐하게 만나는 친척처럼 연례행사 정도로만 치른다. 침뜸은 예전에 1년 정도 배웠는데 놓는 법만 알 뿐, 혈 자리를 잘 모른다. 매번 혈 자리를 인터넷으로 찾아, 장님 문고리 찾듯 조심조심 눌러보고 만져보며 더듬더듬 뜸을 뜨고 침을 놓는다. 아침마다 열심히 108배하고 뜸을 뜨고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거의 손절 수준이다.   최근에 알게 된 게 태극권인데 현재는 가장 주력하고 있는 종목이다. 나의 아침 루틴은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섞은 음양탕으로 시작한다. 작년 5월부터 온라인으로 태극권을 접하게 되었다. 몸이 유연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을수록 동작이 잘 나온다. 태극권 동작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으로 구성된 양생체조를 30~40분 하고, 투로와 기본 보법, 참장 등을 간단히 한 다음, 철봉 매달리기로 마무리를 하면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108배나 명상을...
스프링
2025.08.30 | 조회 369
아스퍼거는 귀여워
느티나무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 가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면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입구에 있는 게시판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혹시 나 빼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한 장의 안내문을 발견한 건 우연이 아니란 말이다.         동천동에 자폐 자조 모임이라니! 게다가 QR 코드를 찍고 들어가니, 대상이 초등 3~6학년이었다. 데스티니! 이건 운명이었다. 딱 감자 나이다. 게다가 모임은 바로 내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나는 운명처럼 ‘사이에서 부는 바람’과 접속했다. 첫 모임 이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가끔 빠질 때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더 행사가 있기도 하지만, 달에 한 번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자폐 아동들의 자조 모임은 다른 발달장애에 비해 쉽지 않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통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화가 뚝뚝 끊어진다. 어떤 아이는 자동차 이야기만 하는데, 옆에서 감자는 듀오링고 이야기만 한다. 어떤 아이는 운동을 좋아해서 만나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먼저 한다. 어떤 아이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고, 어떤 아이는 그림만 그린다. 친해지기가 영 쉽지 않다. 어른들이 끼어 중재하면 그나마 연결되지만, 흥미가 떨어지면 금방 4단, 5단 분리다. 특히 감자의 경우 자기주장이 강하고...
느티나무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 가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면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입구에 있는 게시판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혹시 나 빼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한 장의 안내문을 발견한 건 우연이 아니란 말이다.         동천동에 자폐 자조 모임이라니! 게다가 QR 코드를 찍고 들어가니, 대상이 초등 3~6학년이었다. 데스티니! 이건 운명이었다. 딱 감자 나이다. 게다가 모임은 바로 내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나는 운명처럼 ‘사이에서 부는 바람’과 접속했다. 첫 모임 이후,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가끔 빠질 때도 있고, 비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두 번 더 행사가 있기도 하지만, 달에 한 번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자폐 아동들의 자조 모임은 다른 발달장애에 비해 쉽지 않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통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대화가 뚝뚝 끊어진다. 어떤 아이는 자동차 이야기만 하는데, 옆에서 감자는 듀오링고 이야기만 한다. 어떤 아이는 운동을 좋아해서 만나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먼저 한다. 어떤 아이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고, 어떤 아이는 그림만 그린다. 친해지기가 영 쉽지 않다. 어른들이 끼어 중재하면 그나마 연결되지만, 흥미가 떨어지면 금방 4단, 5단 분리다. 특히 감자의 경우 자기주장이 강하고...
모로
2025.08.25 | 조회 362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Special thanks to: 지난달 댓글로 아이디어를 주신 도라지 쌤, 『제철 행복』을 추천해주신 금천의 수 쌤)         입추 매직     올해의 입추(立秋)는 8월 7일이었다. 불볕더위 한가운데에 입추가 있다. “오늘이 입추야~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면 돼”라고 말하니, 남편은 “입추? 이렇게 더운데?”라며 무슨 헛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나는 느낀다. 여전히 덥지만, 여전히 습하지만, 바람이 하늘이 달라졌다는 걸. 요즘 읽고 있는 책 작가는 이런 걸 ‘입추 매직’,‘입추 사이언스’라고 불렀다. 신기하게 올해에도 입추 매직은 일어났다. 기후 위기로 지구가 달궈지고,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경고해도 아직은 절기 매직이 작동되고 있다. 다행이다. 또한 겁난다. 절기 매직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날이 갑자기 다가올까 싶어서.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금을 산다. 걱정은 넣어두고 지금의 입추 매직을 즐기고 싶다. 높다란 푸른 하늘을, 시원한 입추 바람을~             ‘철들다’라는 말의 ‘철’은 ‘절기’에서 파생된 말로 특정 활동과 관련된 시기를 더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을 뜻했다. 한마디로 때를 알고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으니 사계절에 딱 맞는 행동양식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가짐 양식이라도 지녀야 계절을 지혜롭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지혜와 성숙함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때에 맞게’ 사는 것에서 나오는...
(Special thanks to: 지난달 댓글로 아이디어를 주신 도라지 쌤, 『제철 행복』을 추천해주신 금천의 수 쌤)         입추 매직     올해의 입추(立秋)는 8월 7일이었다. 불볕더위 한가운데에 입추가 있다. “오늘이 입추야~ 그러니 조금만 더 견디면 돼”라고 말하니, 남편은 “입추? 이렇게 더운데?”라며 무슨 헛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나는 느낀다. 여전히 덥지만, 여전히 습하지만, 바람이 하늘이 달라졌다는 걸. 요즘 읽고 있는 책 작가는 이런 걸 ‘입추 매직’,‘입추 사이언스’라고 불렀다. 신기하게 올해에도 입추 매직은 일어났다. 기후 위기로 지구가 달궈지고,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경고해도 아직은 절기 매직이 작동되고 있다. 다행이다. 또한 겁난다. 절기 매직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날이 갑자기 다가올까 싶어서.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금을 산다. 걱정은 넣어두고 지금의 입추 매직을 즐기고 싶다. 높다란 푸른 하늘을, 시원한 입추 바람을~             ‘철들다’라는 말의 ‘철’은 ‘절기’에서 파생된 말로 특정 활동과 관련된 시기를 더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을 뜻했다. 한마디로 때를 알고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으니 사계절에 딱 맞는 행동양식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가짐 양식이라도 지녀야 계절을 지혜롭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지혜와 성숙함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때에 맞게’ 사는 것에서 나오는...
김윤경~단순삶
2025.08.20 | 조회 345
산골짝에 도라지
    오늘은 뭐 먹지?     여름 텃밭의 주인은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당근, 깻잎이다. 텃밭 셔틀 몇 번이면 밥상은 풍성해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것 같은 도시생활에 비해 여름철 시골 살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월등하다. 근처에 구멍가게 하나 없고, 배달 음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돈은 쓸래야 쓸 데가 없어 좋다. 하지만 애환은 어디에나 있는 법. 문득 밥하기 귀찮고, 더위에 입맛도 없는 것 같고, 특별한 뭔가 먹고 싶어지는 날은 난감하다.       “오늘 뭐 먹지?” 가지, 호박, 오이로 매 끼니 돌려먹다 지겨워지면 남편에게 묻는다. 남편은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고 할 때가 많은데, 국수가 후루룩 먹기에나 그렇지 어떤 국수도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좋건 싫건 산속에서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쉬운 게 국수 일테니, 나와 입지조건이 비슷한 곳에 사시는 스님들이 국수를 왜 ‘승소(僧笑)'라고 부르셨는지 알 것 같다.          여름이면 양양에 도착해서 마트 들러 계란만 사면 된다. 장바구니는 가벼워도 텃밭에 먹을 것들이 넘친다. 이 날은 아침 상을 차리고 색감이 예뻐 사진 찍기 바빴다. 전날 구운 통밀빵에 커피를 더해 아침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육수 내고 면을 삶아야 하는 잔치국수는 벌써 냄비만 두 개가 필요하다. 고명으로 호박이라도 볶아내려면 여기에 프라이팬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쯤 되면 있는 반찬 해서 밥해 먹을 걸 슬슬 후회가...
    오늘은 뭐 먹지?     여름 텃밭의 주인은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당근, 깻잎이다. 텃밭 셔틀 몇 번이면 밥상은 풍성해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것 같은 도시생활에 비해 여름철 시골 살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월등하다. 근처에 구멍가게 하나 없고, 배달 음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돈은 쓸래야 쓸 데가 없어 좋다. 하지만 애환은 어디에나 있는 법. 문득 밥하기 귀찮고, 더위에 입맛도 없는 것 같고, 특별한 뭔가 먹고 싶어지는 날은 난감하다.       “오늘 뭐 먹지?” 가지, 호박, 오이로 매 끼니 돌려먹다 지겨워지면 남편에게 묻는다. 남편은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고 할 때가 많은데, 국수가 후루룩 먹기에나 그렇지 어떤 국수도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좋건 싫건 산속에서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쉬운 게 국수 일테니, 나와 입지조건이 비슷한 곳에 사시는 스님들이 국수를 왜 ‘승소(僧笑)'라고 부르셨는지 알 것 같다.          여름이면 양양에 도착해서 마트 들러 계란만 사면 된다. 장바구니는 가벼워도 텃밭에 먹을 것들이 넘친다. 이 날은 아침 상을 차리고 색감이 예뻐 사진 찍기 바빴다. 전날 구운 통밀빵에 커피를 더해 아침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육수 내고 면을 삶아야 하는 잔치국수는 벌써 냄비만 두 개가 필요하다. 고명으로 호박이라도 볶아내려면 여기에 프라이팬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쯤 되면 있는 반찬 해서 밥해 먹을 걸 슬슬 후회가...
도라지
2025.08.10 | 조회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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