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1.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 전사들도 늙는다. 나약한 이들도 늙는다. 사실상 개연성으로 따지면 전사들보다 더 많은 나약한 이들이 늙어가게 된다. 노년은 건강하고, 강인하고, 거칠고, 용감무쌍하고, 병들고, 허약하고,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23쪽)   누구나 다 늙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어느 날 문득 몸도 마음도 생각처럼 안 따라주는 늙어감을 실감하는 날이 있다. 사회 문화적으로 노인,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저항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야지 하는 마음 준비를 무색하게 문득 찾아오는 늙음에 대한 표식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대어 있는 늙은 이, 노인, 노년의 인식을 고스란히 받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은 우울함까지 동반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나지 않는 단어로 흐름이 뚝 끊기거나 산으로 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버스 카드가 안 보이면 그때부턴 멘붕이다. 마을버스 배차 시간이 20분이어서 1~2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20분이 날아간다. 단서를 찾기 위해 되돌려 보는, 퇴근 후 일상에서 깜깜하게 증발해 버린 기억 앞에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온다. 늙어 가는 중임이 불쑥불쑥 경험되는, 이제 시작이다 싶은 자각은 애틋하다.   태어나고 나이 들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다 아는 사실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슬며시 늙는 게 어때서 하는 저항감도...
      1.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   “노년은 누구든 거기까지 이르는 자의 것이다. 전사들도 늙는다. 나약한 이들도 늙는다. 사실상 개연성으로 따지면 전사들보다 더 많은 나약한 이들이 늙어가게 된다. 노년은 건강하고, 강인하고, 거칠고, 용감무쌍하고, 병들고, 허약하고, 겁이 많고, 무능한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23쪽)   누구나 다 늙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어느 날 문득 몸도 마음도 생각처럼 안 따라주는 늙어감을 실감하는 날이 있다. 사회 문화적으로 노인,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저항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야지 하는 마음 준비를 무색하게 문득 찾아오는 늙음에 대한 표식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대어 있는 늙은 이, 노인, 노년의 인식을 고스란히 받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은 우울함까지 동반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나지 않는 단어로 흐름이 뚝 끊기거나 산으로 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출근해야 하는데 버스 카드가 안 보이면 그때부턴 멘붕이다. 마을버스 배차 시간이 20분이어서 1~2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면 20분이 날아간다. 단서를 찾기 위해 되돌려 보는, 퇴근 후 일상에서 깜깜하게 증발해 버린 기억 앞에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온다. 늙어 가는 중임이 불쑥불쑥 경험되는, 이제 시작이다 싶은 자각은 애틋하다.   태어나고 나이 들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다 아는 사실이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슬며시 늙는 게 어때서 하는 저항감도...
문탁
2023.11.28 | 조회 604
인문약방 에세이
    1. a=a, b=b   초등학교 수학시간에 우리는 ‘등식의 성질’에 관해 배운다. 주어진 등식에 있어서 좌변과 우변 양쪽에 사칙연산을 똑같이 수행해도 등식은 성립한다는 성질이다. 덧셈을 예로 들면 a=b라 전제할 때 a+c=b+c가 성립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눗셈의 연산을 수행하려들면 예외사항을 가르쳐준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임의의 수로 나누어도 등식은 보장하지만 0은 빼고 하란다. 이렇게 금지된 0을 고등과정에서는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어 판단을 보류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고민 없이 이 단순한 등식의 성질을 기반으로한 쪽이 0인 방정식도 장착하고 미적분(f’(x)=0)도 장착하며 나아가 더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을 장착해서 무엇이든 증명하고 안전하게 답에 도달한다. 이런 답들은 절대 섞이지 않는다. 도착지는 a이거나 b이지 a이면서 b일수는 없다.   이렇게 안전한 수학체계의 존재를 확신한 수학자가 있었다. 수학적 체계를 엄격하고 세심 히 설계하면 그 체계 내에서는 절대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힐베르트,   그는 1930년, 세상 모든 수학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학은 완전한가”. 즉 수학은 세상의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가이고 두 번째 “수학은 일관된가” 로 수학적 체계 내에서 수학은 모순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학은 결정가능한가”는 주어진 어떤 명제가 자명한 공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가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1931년, 쿠르트 괴델의 < 불완전성정리 >를 통해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는 증명도...
    1. a=a, b=b   초등학교 수학시간에 우리는 ‘등식의 성질’에 관해 배운다. 주어진 등식에 있어서 좌변과 우변 양쪽에 사칙연산을 똑같이 수행해도 등식은 성립한다는 성질이다. 덧셈을 예로 들면 a=b라 전제할 때 a+c=b+c가 성립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눗셈의 연산을 수행하려들면 예외사항을 가르쳐준다. 0으로는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임의의 수로 나누어도 등식은 보장하지만 0은 빼고 하란다. 이렇게 금지된 0을 고등과정에서는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어 판단을 보류시킨다. 덕분에 우리는 고민 없이 이 단순한 등식의 성질을 기반으로한 쪽이 0인 방정식도 장착하고 미적분(f’(x)=0)도 장착하며 나아가 더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을 장착해서 무엇이든 증명하고 안전하게 답에 도달한다. 이런 답들은 절대 섞이지 않는다. 도착지는 a이거나 b이지 a이면서 b일수는 없다.   이렇게 안전한 수학체계의 존재를 확신한 수학자가 있었다. 수학적 체계를 엄격하고 세심 히 설계하면 그 체계 내에서는 절대 모순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힐베르트,   그는 1930년, 세상 모든 수학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학은 완전한가”. 즉 수학은 세상의 모든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가이고 두 번째 “수학은 일관된가” 로 수학적 체계 내에서 수학은 모순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수학은 결정가능한가”는 주어진 어떤 명제가 자명한 공리를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가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은 1931년, 쿠르트 괴델의 < 불완전성정리 >를 통해 아님이 증명되었다. 그는 증명도...
문탁
2023.11.28 | 조회 494
문탁의 나이듦 리뷰
*이 글은 <녹색평론> 182호 (2023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여기에 다시 게재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각자도사 사회>(송병기, 어크로스, 2023)-               9년 전 혼자 살던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 계속 혼자 사시게 하는 건 위험하구나. 결국 난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다소간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편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깨달았다. 아, 망했구나. 그러니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은 MZ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같은 소위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도 부모 돌봄이 닥치면, ‘이생망’ 소리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온다. 왜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기 삶을 망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야 하나?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오래 사느니 그냥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바로 그런 현실을 낳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나이듦과 질병, 죽음의 맥락을 세심하게 들춰낸다.     1. 왜 노인은 애물단지가 되었을까?   책의 앞부분, 아주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서울 한 요양원의 오후 4시, 팥죽이 간식으로 제공되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가장 먼저 거실에 도착해서 신속하게 음식을 먹고 자리를 떴다. 저자는 그분을 좇아가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할머니가 팥죽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을. 할머니는 매번 간식으로 나오는 팥죽을 먹는게 고역인 분이다. 그런데도 “일하는 분들과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이 글은 <녹색평론> 182호 (2023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여기에 다시 게재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각자도사 사회>(송병기, 어크로스, 2023)-               9년 전 혼자 살던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 계속 혼자 사시게 하는 건 위험하구나. 결국 난 어머니와 살림을 합쳤다. 다소간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편이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깨달았다. 아, 망했구나. 그러니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은 MZ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같은 소위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도 부모 돌봄이 닥치면, ‘이생망’ 소리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온다. 왜 우리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기 삶을 망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야 하나?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오래 사느니 그냥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의료인류학자인 저자는 바로 그런 현실을 낳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나이듦과 질병, 죽음의 맥락을 세심하게 들춰낸다.     1. 왜 노인은 애물단지가 되었을까?   책의 앞부분, 아주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서울 한 요양원의 오후 4시, 팥죽이 간식으로 제공되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가장 먼저 거실에 도착해서 신속하게 음식을 먹고 자리를 떴다. 저자는 그분을 좇아가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할머니가 팥죽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을. 할머니는 매번 간식으로 나오는 팥죽을 먹는게 고역인 분이다. 그런데도 “일하는 분들과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문탁
2023.11.23 | 조회 68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삶은 처분될 수 없다       9월 26일 저녁, 활동가 S는 어느 동물권 단톡방에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살처분 관련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요."   강원 화천군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다음 날이었다. 그날 언론에는 100건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다.   '강원 화천서 야생맷돼지 ASF 발생…농장 주변 차단방역 총력'(데일리안) '강원 화천 양돈장서 ASF 발생…긴급 살처분 실시'(농민신문) '강원 화천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1500여마리 살처분'(news1).     언론에서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밀검사에선 하남면 원천리에 소재한 A 발생농장(사육규모 1569마리) 21마리의 검사 시료 중 4마리에서 양성 개체가 발견됐다...(농민신문). 중수본은 “ASF가 확산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신속한 살처분, 정밀검사, 집중소독 등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양돈농가는 농장 내·외부 소독, 방역복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데일리안)"   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언급한 지시사항은 '신속한 살처분'이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지침이 신속한 '죽임'와 '처분'인 것이다. S는 이어서 말했다.   "(살처분 관련) 여러 소식으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집회든 아웃리치든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계획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그리고 활동가 H가 응답했다.   "저요!! 뭔가 할 수 있으면 참여할 마음 있어요!"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활동가들은 살처분을 공론화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살처분에 대해...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삶은 처분될 수 없다       9월 26일 저녁, 활동가 S는 어느 동물권 단톡방에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살처분 관련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요."   강원 화천군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다음 날이었다. 그날 언론에는 100건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다.   '강원 화천서 야생맷돼지 ASF 발생…농장 주변 차단방역 총력'(데일리안) '강원 화천 양돈장서 ASF 발생…긴급 살처분 실시'(농민신문) '강원 화천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1500여마리 살처분'(news1).     언론에서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밀검사에선 하남면 원천리에 소재한 A 발생농장(사육규모 1569마리) 21마리의 검사 시료 중 4마리에서 양성 개체가 발견됐다...(농민신문). 중수본은 “ASF가 확산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신속한 살처분, 정밀검사, 집중소독 등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양돈농가는 농장 내·외부 소독, 방역복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데일리안)"   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언급한 지시사항은 '신속한 살처분'이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지침이 신속한 '죽임'와 '처분'인 것이다. S는 이어서 말했다.   "(살처분 관련) 여러 소식으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집회든 아웃리치든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계획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그리고 활동가 H가 응답했다.   "저요!! 뭔가 할 수 있으면 참여할 마음 있어요!"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활동가들은 살처분을 공론화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살처분에 대해...
경덕
2023.11.23 | 조회 905
몸의 일기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생활에서 성정체성으로 인해 무시 당하거나 차별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의 소수자들이 정착하는 대도시들에서만 살았고, 내가 이주한 이후  동성애자의 법적 권리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는 성지향성으로 인한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일터와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일자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성지향성 뿐 아니라 나이, 출신국, 시민권 여부를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퀴어 공동체에서 나의 인종, 국적, 이민자로서의 지위 등이  쉽게 수용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남들과 ‘다름’으로 인해 배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묘한 배제를 경험했다. 당시 게이 남성들은  LGBT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친구를 만들거나  데이트 상대를 만났다. 난 연애 상대를 찾는 상당수의 게시물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 글들은 본인이 찾는 이상적 상대의 조건들을 열거한 후, 마지막에 “흑인과 동양인은 제외”라는 문구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이 끝 문장의 모든 글자들은 대문자로 강조되어 있었다. 왜 카스트로에서 흑인들을 보기 어려운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어떤 이는 내게 시민권자인지 물었다. 만일 시민권이 없다면 골치 아프니 친구나 연애 상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의 피부색과 이방인으로서의 위치로 인한 배제를 경험하면서 내상을 입었다. 머리 속에선 내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공동체 내 소수자 소외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우선 상대의 무지와 배려심 부족에 화가 났다. 실망스러웠다. 특정하기 힘든 감정이 일어났다. 당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수치심이었다. 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나의 성정체성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샌프란 시스코가 여전히 좋았다. 어딜 가든 세상은 완벽할 수 없으니 어쩌다 겪는 부당함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가능한 최선을 다해 피하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이 공동체에서 소수자인 내가, 집단 내 주류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동화되고 싶은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미디어와 책으로 접한 미국의 퀴어 공동체는 연대, 상호 부조, 성적인 자유, 저항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2000년 대 후반 이후 내가 목격한 것은 이와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집, 안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 성공적인 커리어,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의 몸 등을 욕망했다. 중산층 출신의 젊은 백인들, 그 중에서도 전문직이나 안정적 직장을 가진 이들이 접근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성취했거나 바라는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에 민감하고 진보 정치를 옹호하는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이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욕망이 주류 이성애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진 것은, 동성애자 인권의 향상과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확산 등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난 퀴어 공동체 내 이런 주류 문화가 불편했다. 소비주의적 욕망이 과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 또한 거기에 합류하고 싶었다.  양쪽 발이 안되면 한 발이라도 걸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중산층 게이 시민이 되기엔 자격 미달이었다. ‘표준’(?) 신체에 비해 왜소한 몸, 한국식 억양이 들어간 영어,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스펙, (초기) 임시 영주권자로서의 지위. 난 가능한 것들은 노력으로 극복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방법을 모색했다. 미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사회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상태라 힘에 부쳤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학교를 다녔고 일터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나의 한국식 액센트가 의사소통에 별 지장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정하려 했다. 어수룩한 이민자로 보일까 염려되어서였다.        왼쪽은 실화를 바탕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환기했던 영화 <필라델피아> (1994), 오른쪽은 두 커플의 남성이 서로 사랑해서 원래의 부인과 이혼하고 동성결혼하여 제2의 인생을 사는 내용이 담긴,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 그런데 둘 다 주인공 직업이 변호사이다. 그리고 모두 백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2인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평생 유지하고 싶었다.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관계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가 여러 다양한 관계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퀴어 공동체에는 아직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 주위의 친구들도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들을 쿨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인정 받은 커플이나 장기간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다 ‘도덕적’이라고 여긴다. 나 또한 이러한 암묵적인 도덕 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깊이 생각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의   소수자로서의 조건들에 대해 강한 수치심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왜 그동안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했을까. 수치심을 인정하면 내가 초라하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류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에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난 그것들을 욕망했다. 소수자 공동체 내에서 다시금 소수자가 되도록 하는 나의 정체성들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감추려 했다. 실제로는 내 배경에 부끄러움을 느낀 셈이다. 수치심을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모순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성애 규범이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잔인함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제2언어 구사자, 이민자, 시간제 노동자 등이 겪는 (나도 일부 경험한) 차별이나 어려움들엔 고개를 돌리거나 무감각해졌다. 게이 공동체 내부의 주류적 규범과 생활방식이 그 안의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결국 나 또한 퀴어 공동체의 정상성 규범이 강화되는 데 기여한 셈이다.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해야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국을 탈주한 퀴어다. 판에 박힌 일상과 화폐 증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생활에서 성정체성으로 인해 무시 당하거나 차별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의 소수자들이 정착하는 대도시들에서만 살았고, 내가 이주한 이후  동성애자의 법적 권리가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는 성지향성으로 인한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일터와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일자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성지향성 뿐 아니라 나이, 출신국, 시민권 여부를 밝히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퀴어 공동체에서 나의 인종, 국적, 이민자로서의 지위 등이  쉽게 수용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남들과 ‘다름’으로 인해 배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묘한 배제를 경험했다. 당시 게이 남성들은  LGBT 포털 사이트나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친구를 만들거나  데이트 상대를 만났다. 난 연애 상대를 찾는 상당수의 게시물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 글들은 본인이 찾는 이상적 상대의 조건들을 열거한 후, 마지막에 “흑인과 동양인은 제외”라는 문구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이 끝 문장의 모든 글자들은 대문자로 강조되어 있었다. 왜 카스트로에서 흑인들을 보기 어려운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어떤 이는 내게 시민권자인지 물었다. 만일 시민권이 없다면 골치 아프니 친구나 연애 상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의 피부색과 이방인으로서의 위치로 인한 배제를 경험하면서 내상을 입었다. 머리 속에선 내가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공동체 내 소수자 소외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우선 상대의 무지와 배려심 부족에 화가 났다. 실망스러웠다. 특정하기 힘든 감정이 일어났다. 당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수치심이었다. 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나의 성정체성을 애써 감추지 않아도 되는 샌프란 시스코가 여전히 좋았다. 어딜 가든 세상은 완벽할 수 없으니 어쩌다 겪는 부당함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을 가능한 최선을 다해 피하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이 공동체에서 소수자인 내가, 집단 내 주류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동화되고 싶은 욕망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미디어와 책으로 접한 미국의 퀴어 공동체는 연대, 상호 부조, 성적인 자유, 저항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것이었다. 2000년 대 후반 이후 내가 목격한 것은 이와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집, 안정적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 성공적인 커리어,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의 몸 등을 욕망했다. 중산층 출신의 젊은 백인들, 그 중에서도 전문직이나 안정적 직장을 가진 이들이 접근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성취했거나 바라는 이들은 동성애자 인권에 민감하고 진보 정치를 옹호하는 이들과 동일한 사람들이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욕망이 주류 이성애자들과 별 차이가 없어진 것은, 동성애자 인권의 향상과 신자유주의의 영향력 확산 등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난 퀴어 공동체 내 이런 주류 문화가 불편했다. 소비주의적 욕망이 과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 또한 거기에 합류하고 싶었다.  양쪽 발이 안되면 한 발이라도 걸치고 싶었다.    당시 나는 중산층 게이 시민이 되기엔 자격 미달이었다. ‘표준’(?) 신체에 비해 왜소한 몸, 한국식 억양이 들어간 영어,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스펙, (초기) 임시 영주권자로서의 지위. 난 가능한 것들은 노력으로 극복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방법을 모색했다. 미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사회 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상태라 힘에 부쳤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학교를 다녔고 일터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나의 한국식 액센트가 의사소통에 별 지장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정하려 했다. 어수룩한 이민자로 보일까 염려되어서였다.        왼쪽은 실화를 바탕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환기했던 영화 <필라델피아> (1994), 오른쪽은 두 커플의 남성이 서로 사랑해서 원래의 부인과 이혼하고 동성결혼하여 제2의 인생을 사는 내용이 담긴, 넷플릭스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 그런데 둘 다 주인공 직업이 변호사이다. 그리고 모두 백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2인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평생 유지하고 싶었다.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관계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관계가 여러 다양한 관계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받아들였다 (퀴어 공동체에는 아직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 주위의 친구들도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들을 쿨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 인정 받은 커플이나 장기간의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다 ‘도덕적’이라고 여긴다. 나 또한 이러한 암묵적인 도덕 규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깊이 생각하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과  마주해야 했다. 나의   소수자로서의 조건들에 대해 강한 수치심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왜 그동안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했을까. 수치심을 인정하면 내가 초라하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류의 가치관과 생활 양식에 한편으로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난 그것들을 욕망했다. 소수자 공동체 내에서 다시금 소수자가 되도록 하는 나의 정체성들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감추려 했다. 실제로는 내 배경에 부끄러움을 느낀 셈이다. 수치심을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모순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이성애 규범이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잔인함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제2언어 구사자, 이민자, 시간제 노동자 등이 겪는 (나도 일부 경험한) 차별이나 어려움들엔 고개를 돌리거나 무감각해졌다. 게이 공동체 내부의 주류적 규범과 생활방식이 그 안의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결국 나 또한 퀴어 공동체의 정상성 규범이 강화되는 데 기여한 셈이다.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                            
문탁
2023.11.22 | 조회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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