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8월 <1234 읽고 쓰기>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 퀴어 동물의 섹스, 그리고 돌봄 - 하마노 지히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연립서가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그녀의 여성 반려견 미즈 카옌 페퍼와의 교감 장면을 다음과 같이 쓴다. “미즈 카옌 페퍼가 내 세포를 몽땅 식민화하고 있다. 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말하는 공생발생의 분명한 사례다. DNA 검사를 해보면 우리 둘 사이에 감염이 이루어졌다는 유력한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카옌의 침에는 당연히 바이러스 벡터가 있었을 것이다. 카옌이 거침 없이 들이미는 혓바닥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 우리는 서로를 살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역사적 일탈이자 자연문화의 유산이다.”[1] 개와 인간의 끈적한 만남을 '공생발생', '감염', '사랑', '역사적 일탈', '자연문화의 유산'으로 보는 해러웨이의 시선은 종의 경계를 교란하고, 그 범주를 되묻는다. 그럼 이건 어떨까. "서로를 살 속에 밀어 넣고, '달콤한' 체액을 교환하는 행위"를 일종의 "선 넘는 섹스"로 본다면? "동물성애", 또는 "개과 인간의 레즈비언 섹스"라고 말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곤란함, 또는 "금기"와 마주할까? 인류학자가 만난 동물성애자 문화인류학자 하마노 지히로는 '동물성애'를 연구하기 위해 '금기의 현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를 썼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먼저 고백한다. 연인으로부터...
8월 <1234 읽고 쓰기>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 퀴어 동물의 섹스, 그리고 돌봄 - 하마노 지히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연립서가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그녀의 여성 반려견 미즈 카옌 페퍼와의 교감 장면을 다음과 같이 쓴다. “미즈 카옌 페퍼가 내 세포를 몽땅 식민화하고 있다. 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말하는 공생발생의 분명한 사례다. DNA 검사를 해보면 우리 둘 사이에 감염이 이루어졌다는 유력한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카옌의 침에는 당연히 바이러스 벡터가 있었을 것이다. 카옌이 거침 없이 들이미는 혓바닥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 우리는 서로를 살 속에 만들어 넣는다. 서로 너무 다르면서도 그렇기에 소중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저분한 발달성 감염을 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역사적 일탈이자 자연문화의 유산이다.”[1] 개와 인간의 끈적한 만남을 '공생발생', '감염', '사랑', '역사적 일탈', '자연문화의 유산'으로 보는 해러웨이의 시선은 종의 경계를 교란하고, 그 범주를 되묻는다. 그럼 이건 어떨까. "서로를 살 속에 밀어 넣고, '달콤한' 체액을 교환하는 행위"를 일종의 "선 넘는 섹스"로 본다면? "동물성애", 또는 "개과 인간의 레즈비언 섹스"라고 말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떤 곤란함, 또는 "금기"와 마주할까? 인류학자가 만난 동물성애자 문화인류학자 하마노 지히로는 '동물성애'를 연구하기 위해 '금기의 현장'에 머물렀다. 그리고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를 썼다. 그녀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먼저 고백한다. 연인으로부터...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어머니가 입원하면서부터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는 의료법에 따라 진료와 요양에 대해 병원과 의사소통을 하고, 청구서를 받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법적 존재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관계에 있는 민법상 부양의무자 혹은 별도의 법적 절차에 의해 자격을 부여받은 대리인에 한한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오는 연락이 한가한 용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2년여 동안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기 전부터 이번엔 무슨 일일까 하는 걱정에 가슴이 떨려오곤 했다. 2년여 동안 어머니는 정신병원 입원, 종합병원에서 수술, 요양병원, 두 군데 2차병원에서 수술, 다시 요양병원, 이렇게 여러 병원을 두루 거쳤다. 2021년 한 해 동안 어머니는 무려 네 번의 수술을 받았다. 1월에는 고관절 수술, 8월에는 직장과 질 사이에 생긴 누공을 막는 두 번의 수술, 11월에는 괴사된 피부를 제거하는 욕창 수술. 모두 다치거나 문제가 생긴 몸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이었지만 어머니의 몸은 회복되지 않고 무너져 갔다. 그 시간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회한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아니, 가능하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내가 보호자로 살았던 시간이다.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날, 어머니는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수술할 병원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응급차를 타고 병원 세 군데를 전전한 뒤에야 네 번째 병원에서 수술을...
어머니가 입원하면서부터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었다. 보호자는 의료법에 따라 진료와 요양에 대해 병원과 의사소통을 하고, 청구서를 받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법적 존재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관계에 있는 민법상 부양의무자 혹은 별도의 법적 절차에 의해 자격을 부여받은 대리인에 한한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오는 연락이 한가한 용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2년여 동안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기 전부터 이번엔 무슨 일일까 하는 걱정에 가슴이 떨려오곤 했다. 2년여 동안 어머니는 정신병원 입원, 종합병원에서 수술, 요양병원, 두 군데 2차병원에서 수술, 다시 요양병원, 이렇게 여러 병원을 두루 거쳤다. 2021년 한 해 동안 어머니는 무려 네 번의 수술을 받았다. 1월에는 고관절 수술, 8월에는 직장과 질 사이에 생긴 누공을 막는 두 번의 수술, 11월에는 괴사된 피부를 제거하는 욕창 수술. 모두 다치거나 문제가 생긴 몸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이었지만 어머니의 몸은 회복되지 않고 무너져 갔다. 그 시간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회한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아니, 가능하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내가 보호자로 살았던 시간이다.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날, 어머니는 넘어져서 골절상을 입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수술할 병원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응급차를 타고 병원 세 군데를 전전한 뒤에야 네 번째 병원에서 수술을...
아스퍼거는 귀여워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에피소드를 먼저 말해볼까 한다. 몇 년 전 진지하게 감자의 대안학교를 알아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생활을 코로나로 시작해 무려 3년을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올라가 버린 감자는, 또래 관계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고기동에 있는 수지꿈학교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입학설명회를 신청하고 온 가족이 방문했었다. 학교도 둘러보고, 같이 사는(?) 야생 닭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이만하면 보내도 되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고, 전학을 가는 게 어떨지 감자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감자 왈. “꿈학교를 가도 그렇게 재미있을 거 같지 않고, 손곡초를 그대로 다녀도 재미없을 거 같은데, 그럴 거면 가까운 데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다니는 학교는 걸어서 5분, 꿈학교는 차로 2~30분은 가야 하는 거리. 아…. 맞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 나는 더 이상의 반박을 하지 못하고 알았노라고 답했다. 감자를 키우면서 이런 상황은 수시로 일어난다. 감자는 때때로 굉장히 직관적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감자가 언어 천재라고 생각하던, 7살 무렵이었다. 그때는 러시아어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오호라 이런 식이라면 영어를 시작해도 되겠는데? 하고 욕심이 들었다. 학원은 무리일 거 같고, 간단한 시작으로 방문 영어 선생님을 불렀는데 딱 한 번 듣더니 감자 왈. “엄마, 저는 배워서 하는 영어는 싫어요.” 흠.. 그래. 너는 누가 시키는 건 곧 죽어도 못하는 아이였지?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에피소드를 먼저 말해볼까 한다. 몇 년 전 진지하게 감자의 대안학교를 알아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생활을 코로나로 시작해 무려 3년을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올라가 버린 감자는, 또래 관계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고기동에 있는 수지꿈학교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입학설명회를 신청하고 온 가족이 방문했었다. 학교도 둘러보고, 같이 사는(?) 야생 닭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이만하면 보내도 되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고, 전학을 가는 게 어떨지 감자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감자 왈. “꿈학교를 가도 그렇게 재미있을 거 같지 않고, 손곡초를 그대로 다녀도 재미없을 거 같은데, 그럴 거면 가까운 데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다니는 학교는 걸어서 5분, 꿈학교는 차로 2~30분은 가야 하는 거리. 아…. 맞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 나는 더 이상의 반박을 하지 못하고 알았노라고 답했다. 감자를 키우면서 이런 상황은 수시로 일어난다. 감자는 때때로 굉장히 직관적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감자가 언어 천재라고 생각하던, 7살 무렵이었다. 그때는 러시아어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오호라 이런 식이라면 영어를 시작해도 되겠는데? 하고 욕심이 들었다. 학원은 무리일 거 같고, 간단한 시작으로 방문 영어 선생님을 불렀는데 딱 한 번 듣더니 감자 왈. “엄마, 저는 배워서 하는 영어는 싫어요.” 흠.. 그래. 너는 누가 시키는 건 곧 죽어도 못하는 아이였지? 그...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세상이 하수선한가 보다. 친구들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제법 뜨겁게 자리 잡는 시간이 많아 졌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니 정치 성향이 대부분 비슷한데, 사안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는 친구가 등장하고 토론이 뜨거워진다. 토론이 아니라 논쟁으로 바로 번진다.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은 대략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조금 좁혀보면 직업과 관련되어 보인다. 특히 고위 공직자로 은퇴한 친구들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서곤 한다. 그럴테지..... 그런데, 그 방식이 좀 의아하다. 예를 들면, 연전에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이다. 외교부 출신 동창생은 지금 주변의 외교가 얼마나 심각하고 힘든가를 말하면서, 애국하는 심정으로 주변국인 일본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한다며, “그 오염수를 내가 마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욱이 IAEA 사무총장이 방한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믿지 않는다고 혀를 찬다. 해수부 출신 동창생은 피해유무가 명확히 판명되지 않았는데,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여 우리 어민들의 피해를 주는 무분별한 여론몰이는 안된다며 자중하기를 요구한다. 질문을 했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또 일반인보다 (외무)공무원이 더 애국자라는 전제는 어디에 근거된 것인가? 근거없는 일방적 일반화의 허점에 물음표를 던졌다. 또 피해자를 어민으로 한정하면 그럴 수 있지만, 문제를 우리 국민 전체의 안전으로 범위를 넓히면 문제 설정이 달라짐을 상기시켰다. 몇 번의 이야기가 오간 뒤에, 내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40여년의 터전이었던 직장을 대변하는 마음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사태를...
세상이 하수선한가 보다. 친구들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가 제법 뜨겁게 자리 잡는 시간이 많아 졌다.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니 정치 성향이 대부분 비슷한데, 사안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내는 친구가 등장하고 토론이 뜨거워진다. 토론이 아니라 논쟁으로 바로 번진다.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은 대략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조금 좁혀보면 직업과 관련되어 보인다. 특히 고위 공직자로 은퇴한 친구들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서곤 한다. 그럴테지..... 그런데, 그 방식이 좀 의아하다. 예를 들면, 연전에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이다. 외교부 출신 동창생은 지금 주변의 외교가 얼마나 심각하고 힘든가를 말하면서, 애국하는 심정으로 주변국인 일본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한다며, “그 오염수를 내가 마실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욱이 IAEA 사무총장이 방한하여 과학적인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믿지 않는다고 혀를 찬다. 해수부 출신 동창생은 피해유무가 명확히 판명되지 않았는데,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여 우리 어민들의 피해를 주는 무분별한 여론몰이는 안된다며 자중하기를 요구한다. 질문을 했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또 일반인보다 (외무)공무원이 더 애국자라는 전제는 어디에 근거된 것인가? 근거없는 일방적 일반화의 허점에 물음표를 던졌다. 또 피해자를 어민으로 한정하면 그럴 수 있지만, 문제를 우리 국민 전체의 안전으로 범위를 넓히면 문제 설정이 달라짐을 상기시켰다. 몇 번의 이야기가 오간 뒤에, 내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40여년의 터전이었던 직장을 대변하는 마음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사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