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는 귀여워
      루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루는 패턴을 읽고, 파악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정직하다. 루는 매일 매일 정해진 일과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 엘리자베스 문의 sf소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인 루는 자폐인이다. 소설의 배경은 어릴 때 초기 개입으로 대부분의 유전병을 없앨 수 있는 시대다. 태어났거나, 아니면 뱃속에 있을 때 발견된 질병들은 적절한 개입을 통해 ‘정상화’된다. 물론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 루가 태어나고 자폐에 대한 치료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폐인 마지막 세대다.      하지만 루는 불행하지 않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 간다. 대기업에서 적절한 배려를 받으며 _ 개인 사무실, 운동 공간, 주차 공간 _ 프로그램의 패턴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루가 속한 팀에는 다른 자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회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조금은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며, 가끔 모여서 피자를 먹고, 헤어질 때는 (물론)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피자를 먹고 싶지 않을 땐, 그저 ‘오늘 모임은 가지 않을게’라는 말로 대신한다.      루는 펜싱도 배운다. 패턴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펜싱 경기에서도 사람들의 습관과 패턴을 파악해서 경기한다....
      루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루는 패턴을 읽고, 파악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정직하다. 루는 매일 매일 정해진 일과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 엘리자베스 문의 sf소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인 루는 자폐인이다. 소설의 배경은 어릴 때 초기 개입으로 대부분의 유전병을 없앨 수 있는 시대다. 태어났거나, 아니면 뱃속에 있을 때 발견된 질병들은 적절한 개입을 통해 ‘정상화’된다. 물론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 루가 태어나고 자폐에 대한 치료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폐인 마지막 세대다.      하지만 루는 불행하지 않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 간다. 대기업에서 적절한 배려를 받으며 _ 개인 사무실, 운동 공간, 주차 공간 _ 프로그램의 패턴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루가 속한 팀에는 다른 자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회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조금은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며, 가끔 모여서 피자를 먹고, 헤어질 때는 (물론)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피자를 먹고 싶지 않을 땐, 그저 ‘오늘 모임은 가지 않을게’라는 말로 대신한다.      루는 펜싱도 배운다. 패턴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펜싱 경기에서도 사람들의 습관과 패턴을 파악해서 경기한다....
moro
2024.12.25 | 조회 518
일상명상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도라지
2024.12.22 | 조회 52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남편이 사표를 냈다     며칠 전 저녁 밥상에서 남편이 회사 일을 이야기했다. 센터장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한 보따리 펼쳐 놓으면서 한마디 했다. “나도 백수 할래~” 속으론 식겁했지만, 겉으로는 호기롭게 “그래, 그만둬 설마 굶어 죽겠어, 입에 풀칠은 하겠지”라고 말하며 남편의 기분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날을 보내고 저녁에 퇴근해 오는 남편을 맞았다. 그런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돌아와서는 “나 사표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니, 위로해주려고 한 말인데 진짜 사표를 내고 와?!”라고 말했다. 남편이 진짜 사표를 내고 오다니, 이제 어떻게 살지 걱정부터 되었다.         나는 2019년 11월 일하던 아파트 건설 현장이 준공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백수가 되었다. 가기로 약속된 현장이 있었기에 임시-부담 없는 백수였다. 댄스 수업도 듣고 공공 도서관 투어도 다니고 발리로 한 달 여행도 다녀왔다. 2020년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해 받았고, 그 돈으로 2019년에 이어 2년 차, 학인으로 감이당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를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 나가는 일상이 좋았다. 2012년 처음 백수를 도전할 때 방탕(?)하게 보냈던 경험이 있어서 시간 계획을 잘 짜 일상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보람을 느끼며 마무리했다.         그러다 7월에 가기로 한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고민 없이 재취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2년 차, 학인이 아닌가! 공부로, 나의 기호-의지로 실뜨개하는 일상을...
      남편이 사표를 냈다     며칠 전 저녁 밥상에서 남편이 회사 일을 이야기했다. 센터장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한 보따리 펼쳐 놓으면서 한마디 했다. “나도 백수 할래~” 속으론 식겁했지만, 겉으로는 호기롭게 “그래, 그만둬 설마 굶어 죽겠어, 입에 풀칠은 하겠지”라고 말하며 남편의 기분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음 날을 보내고 저녁에 퇴근해 오는 남편을 맞았다. 그런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돌아와서는 “나 사표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니, 위로해주려고 한 말인데 진짜 사표를 내고 와?!”라고 말했다. 남편이 진짜 사표를 내고 오다니, 이제 어떻게 살지 걱정부터 되었다.         나는 2019년 11월 일하던 아파트 건설 현장이 준공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백수가 되었다. 가기로 약속된 현장이 있었기에 임시-부담 없는 백수였다. 댄스 수업도 듣고 공공 도서관 투어도 다니고 발리로 한 달 여행도 다녀왔다. 2020년에는 실업급여를 신청해 받았고, 그 돈으로 2019년에 이어 2년 차, 학인으로 감이당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루를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 나가는 일상이 좋았다. 2012년 처음 백수를 도전할 때 방탕(?)하게 보냈던 경험이 있어서 시간 계획을 잘 짜 일상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보람을 느끼며 마무리했다.         그러다 7월에 가기로 한 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고민 없이 재취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2년 차, 학인이 아닌가! 공부로, 나의 기호-의지로 실뜨개하는 일상을...
김윤경~단순삶
2024.12.20 | 조회 649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누공 수술 후 더 쇠약해진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아야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루 관리도 욕창 관리도 우리는 할 수 없는 일 같아서 병원의 의료진과 간병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가 발동되어 면회마저 중단되는 사태를 겪게 되니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격리가 풀리고서도 집단시설에서 흔히 걸리는 옴 치료를 마쳤는데도 쉬지 않고 온 몸을 긁어대는 가려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맡겨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하루 하루 생의 불꽃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이렇게 손놓고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가고 정신은 흐려져 갔다. 2주일에 한 번 3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면회 시간이 터무니없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제라도 어머니를 직접 만지고 씻기고 먹이면서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도 혼자서 돌볼 수 없으니 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요양등급 1등급의 와상환자로 집중케어가 필요한 어머니, 관리하기 힘든 장루와 욕창 이슈가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겠다는 것이 정말로 어머니를 위한 결정일지 잘 생각해보자는 신중론도 있었다.   동생들을 안심시키는 대안을 찾았다. 먼저 집근처 병원 중에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참여병원 리스트를 뽑아서 가정간호가 가능한지 상담을 시작했다. 다행히 의사의 왕진과 욕창 관리를 위한 간호사의...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누공 수술 후 더 쇠약해진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아야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루 관리도 욕창 관리도 우리는 할 수 없는 일 같아서 병원의 의료진과 간병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가 발동되어 면회마저 중단되는 사태를 겪게 되니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격리가 풀리고서도 집단시설에서 흔히 걸리는 옴 치료를 마쳤는데도 쉬지 않고 온 몸을 긁어대는 가려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맡겨두어도 괜찮은 것일까, 하루 하루 생의 불꽃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이렇게 손놓고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가고 정신은 흐려져 갔다. 2주일에 한 번 3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면회 시간이 터무니없이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제라도 어머니를 직접 만지고 씻기고 먹이면서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도 혼자서 돌볼 수 없으니 동생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요양등급 1등급의 와상환자로 집중케어가 필요한 어머니, 관리하기 힘든 장루와 욕창 이슈가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겠다는 것이 정말로 어머니를 위한 결정일지 잘 생각해보자는 신중론도 있었다.   동생들을 안심시키는 대안을 찾았다. 먼저 집근처 병원 중에서 201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 참여병원 리스트를 뽑아서 가정간호가 가능한지 상담을 시작했다. 다행히 의사의 왕진과 욕창 관리를 위한 간호사의...
요요
2024.12.17 | 조회 556
기린의 걷다보면
1. 걷기의 장면들     5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걷기로 먹은 마음을 접기는 싫었다. 어디로 걸을까 하다 성남에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전해 줄 물건을 담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죽전을 지나 성남으로 이어지는 탄천으로 접어들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집을 절반 쯤 남긴 이매교를 지나서부터는 점점 더 굵어졌다. 모란을 지날 때는 비옷 안으로 물이 들이쳐 옷이 젖고 넘치는 탄천의 물로 신발은 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그저 물길을 첨벙첨벙 걸어서 친구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했다. 친구는 집에 없었다. 미리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빗속을 네 시간, 2만 8천보를 넘긴 걸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창밖으로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매주 일요일 걷기를 이어갔던 2021년 봄의 한 장면이다. 일요일마다 집을 나서서 걸었던 몸이 자꾸 부추겨서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했던 시절, 그 날의 고행은 잊을 수 없는 걷기의 추억이 되었다.                                                                <빗 속을 걷는 고행을 기억하며>     이 해의 걷기는 네이버 까페에도 매주 기록을 했었다. 까페를 열어보니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거의...
1. 걷기의 장면들     5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걷기로 먹은 마음을 접기는 싫었다. 어디로 걸을까 하다 성남에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에게 전해 줄 물건을 담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죽전을 지나 성남으로 이어지는 탄천으로 접어들었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집을 절반 쯤 남긴 이매교를 지나서부터는 점점 더 굵어졌다. 모란을 지날 때는 비옷 안으로 물이 들이쳐 옷이 젖고 넘치는 탄천의 물로 신발은 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그저 물길을 첨벙첨벙 걸어서 친구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했다. 친구는 집에 없었다. 미리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빗속을 네 시간, 2만 8천보를 넘긴 걸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창밖으로 보니 비는 그쳐 있었다. 매주 일요일 걷기를 이어갔던 2021년 봄의 한 장면이다. 일요일마다 집을 나서서 걸었던 몸이 자꾸 부추겨서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했던 시절, 그 날의 고행은 잊을 수 없는 걷기의 추억이 되었다.                                                                <빗 속을 걷는 고행을 기억하며>     이 해의 걷기는 네이버 까페에도 매주 기록을 했었다. 까페를 열어보니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거의...
기린
2024.12.08 | 조회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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