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의 실화극장
    숨에 대하여   돈 버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연금을 받으려면 8년 5개월이 남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버텨야 했다. 나중에 받을 연금에 맞춰 생활비를 책정했다. 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엄마였다. 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불편함은 내가 감당할 몫이지만, 엄마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엄마에게 드리던 생활비는 그대로 드리기로 했다. 대신 내 용돈은 그저 숨만 쉬고 살 정도로 최소한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쉬게 된 첫해부터 친구 약국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PC 앞에 앉아서 결제와 약봉지 출력을 하는 일이었다. 약국 전산 알바를 시작으로 행사 기획사 사무 보조, 학원 채점, 도서관 사서, 귤 따기 등의 기나긴 알바 인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밥벌이의 가장 큰 부분이 사서 관련 일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첫 직장인 도서관을 그만두면서 도서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다시 도서관에서 일한다면 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곳에서 일하고, 벌지 않겠다던 돈을 버는 나는 허언증 환자인가? 사실, 퇴직 후 나는 수시로 알바 일거리를 검색했다. 수입 없이 이대로 쭉 간다면 정말 숨만 쉬고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 불안이 줄어들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응시를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일할 수 있어....
    숨에 대하여   돈 버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연금을 받으려면 8년 5개월이 남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버텨야 했다. 나중에 받을 연금에 맞춰 생활비를 책정했다. 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엄마였다. 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불편함은 내가 감당할 몫이지만, 엄마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엄마에게 드리던 생활비는 그대로 드리기로 했다. 대신 내 용돈은 그저 숨만 쉬고 살 정도로 최소한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쉬게 된 첫해부터 친구 약국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PC 앞에 앉아서 결제와 약봉지 출력을 하는 일이었다. 약국 전산 알바를 시작으로 행사 기획사 사무 보조, 학원 채점, 도서관 사서, 귤 따기 등의 기나긴 알바 인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밥벌이의 가장 큰 부분이 사서 관련 일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첫 직장인 도서관을 그만두면서 도서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다시 도서관에서 일한다면 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곳에서 일하고, 벌지 않겠다던 돈을 버는 나는 허언증 환자인가? 사실, 퇴직 후 나는 수시로 알바 일거리를 검색했다. 수입 없이 이대로 쭉 간다면 정말 숨만 쉬고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가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 불안이 줄어들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내가 응시를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일할 수 있어....
스프링
2025.03.30 | 조회 555
아스퍼거는 귀여워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일요일 오후 2시. 혹시나 잊어버릴까 알람까지 맞춰놨다. 감자가 처음으로 친구 집에 혼자 놀러 가는 날! 미리 빵집에 가서 친구와 같이 먹을 빵을 몇 가지 샀다. 이걸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옆에 있던 남편은 “가서 인사는 제대로 할까?” 라며 걱정한다. 그래 방문예절을 가르쳐야겠네.   “감자야, 집에 들어가면 먼저 친구 부모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려. 그리고 이 빵을 건네주면서 ‘엄마가 전해주라고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할 수 있지? 가서 뛰지 말고, 말씀 잘 듣고, 맛있는 거도 많이 먹고 와.”   하, 불안하다. 엄마 없이 찾아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감자는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감자를 보내놓고는 딱 생각을 끊었다. 문제가 있으면 전화가 오겠지 뭐. 그리곤 2시간 30분이 지나 친구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감자는 잘 놀고 있나요?” “넹 보내주신 빵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고, 노래도 하고 잘 놀고 있어요. 다섯 시 정도까지 놀고 보낼게요.”   그리곤 정말로 5시가 조금 지나자 돌아왔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신발을 벗자마자 재잘댄다.   “엄마, 00이랑 노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다음에 또 그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나요?”     감자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아!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오랜 시간 동안 감자의 사회성은 더디게 자라왔다. 유치원 땐 다른 친구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말을 걸지도,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도 않았다. 혼자 어딘가에 빠져있거나, 어른들...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일요일 오후 2시. 혹시나 잊어버릴까 알람까지 맞춰놨다. 감자가 처음으로 친구 집에 혼자 놀러 가는 날! 미리 빵집에 가서 친구와 같이 먹을 빵을 몇 가지 샀다. 이걸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옆에 있던 남편은 “가서 인사는 제대로 할까?” 라며 걱정한다. 그래 방문예절을 가르쳐야겠네.   “감자야, 집에 들어가면 먼저 친구 부모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려. 그리고 이 빵을 건네주면서 ‘엄마가 전해주라고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할 수 있지? 가서 뛰지 말고, 말씀 잘 듣고, 맛있는 거도 많이 먹고 와.”   하, 불안하다. 엄마 없이 찾아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감자는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감자를 보내놓고는 딱 생각을 끊었다. 문제가 있으면 전화가 오겠지 뭐. 그리곤 2시간 30분이 지나 친구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감자는 잘 놀고 있나요?” “넹 보내주신 빵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고, 노래도 하고 잘 놀고 있어요. 다섯 시 정도까지 놀고 보낼게요.”   그리곤 정말로 5시가 조금 지나자 돌아왔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신발을 벗자마자 재잘댄다.   “엄마, 00이랑 노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다음에 또 그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나요?”     감자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아!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오랜 시간 동안 감자의 사회성은 더디게 자라왔다. 유치원 땐 다른 친구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말을 걸지도,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도 않았다. 혼자 어딘가에 빠져있거나,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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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5 | 조회 40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교육연수위원장이 되어감(becoming)       작년 여름 민주당 금천구 지역위원회 교육연수위원장 자리를 수락한 후 벌써 7개월이 흘렀다. 일단 9월에 서둘러 진행했던 <강령 (그냥) 읽기> 모임은 우리구 국회의원님의 지원으로 ‘2026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이 이수해야 하는 교육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는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교육연수위원회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모임의 이름은 <금천 기상UP아카데미>로 정했다. (우리구 의원님의 이름이 최기상이라 계속 써오던 이름이다.^^) 강령에 이어 당헌·당규까지 그냥 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3월에는 봉하마을에 방문할 계획을 짰다. 그런데 ‘누구’의 석방으로 비상시국 사태가 발생하여 봉하마을 방문이 취소되었다. 나의 3월 글 주제가 봉하마을 방문기였는데, 급하게 주제를 변경하게 되었다. ‘누구’ 때문에.... (=_=)       교육연수위원회의 또 다른 축으로 할 당원 위주의 교육연수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 작년 10월에 금천구 전 당원에게 교육연수위원회 위원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난 별 기대가 없었는데, 문자 보낸 후에 문의가 많이 왔다. 그리고 교육연수위원으로 활동해보겠다는 당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기쁘고 반가웠다. 11월에 첫 모임을 갖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매달 한 번씩 만나 ‘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논의를 했음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교육연수위원들의 모임은 <금천 민주주의 학교>란 타이틀을 달고 진행하기로 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누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지, 어떻게 소수에 의해 다수가 지배되는지에 대한 책들을 선정하고 공부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금천 기상UP아카데미> 교육안과 신입 당원 교육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교육연수위원장이 되어감(becoming)       작년 여름 민주당 금천구 지역위원회 교육연수위원장 자리를 수락한 후 벌써 7개월이 흘렀다. 일단 9월에 서둘러 진행했던 <강령 (그냥) 읽기> 모임은 우리구 국회의원님의 지원으로 ‘2026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이 이수해야 하는 교육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는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교육연수위원회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다. 모임의 이름은 <금천 기상UP아카데미>로 정했다. (우리구 의원님의 이름이 최기상이라 계속 써오던 이름이다.^^) 강령에 이어 당헌·당규까지 그냥 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3월에는 봉하마을에 방문할 계획을 짰다. 그런데 ‘누구’의 석방으로 비상시국 사태가 발생하여 봉하마을 방문이 취소되었다. 나의 3월 글 주제가 봉하마을 방문기였는데, 급하게 주제를 변경하게 되었다. ‘누구’ 때문에.... (=_=)       교육연수위원회의 또 다른 축으로 할 당원 위주의 교육연수 프로그램 기획을 위해 작년 10월에 금천구 전 당원에게 교육연수위원회 위원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난 별 기대가 없었는데, 문자 보낸 후에 문의가 많이 왔다. 그리고 교육연수위원으로 활동해보겠다는 당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기쁘고 반가웠다. 11월에 첫 모임을 갖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매달 한 번씩 만나 ‘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논의를 했음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교육연수위원들의 모임은 <금천 민주주의 학교>란 타이틀을 달고 진행하기로 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누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지, 어떻게 소수에 의해 다수가 지배되는지에 대한 책들을 선정하고 공부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금천 기상UP아카데미> 교육안과 신입 당원 교육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김윤경~단순삶
2025.03.20 | 조회 499
스프링의 실화극장
  다시, 모여 살다   생활력 강한 여자 셋이 사는 우리 집의 암묵적인 모토는 ‘내 손에 물 안 묻히면, 웬만하면 다 좋아’다. 싫어도 좋아야 내 손에 물을 안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에 맞게 몸을 개조했다. 아니 저절로 개조됐다. 맛에 유연해지고 먼지와 소음에 관대해졌다. 적당히 게으른 세 명의 김씨는 20여 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모여 살게 되었다. 머리 굵은 성인들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사별 싱글 1명, 비혼 싱글 2명 / 60대 1명, 30대 2명 / 자영업자 1명, 직장인 2명 / 왼손잡이 1명, 오른손잡이 2명 /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 1명,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 2명 / 개에 무관심한 사람 1명, 무서워하는 사람 2명 / 요리를 거의 못하는 사람 1명, 그럭저럭 하는 사람 2명 / 냄새에 민감한 사람 1명, 소리에 민감한 사람 2명   30대는 50대가 되었고, 60대는 80대가 되었다. 주5일 직장을 다니던 나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자영업자는 백수가 되었다. 개를 무서워하던 한 명은 개 친화적으로 변했고, 다른 한 명은 여전히 그런 변화를 부러워한다. 요리를 거의 못하는 사람은 이제 그럭저럭 하게 되었고, 그럭저럭 하던 사람 중 한 명은 노화로 음식을 거의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얼마나 편리한가? 노화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까방권을 준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공동생활(잔소리와 지랄)을 통해 소리에도 제법 민감해졌다. 소리에...
  다시, 모여 살다   생활력 강한 여자 셋이 사는 우리 집의 암묵적인 모토는 ‘내 손에 물 안 묻히면, 웬만하면 다 좋아’다. 싫어도 좋아야 내 손에 물을 안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건에 맞게 몸을 개조했다. 아니 저절로 개조됐다. 맛에 유연해지고 먼지와 소음에 관대해졌다. 적당히 게으른 세 명의 김씨는 20여 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모여 살게 되었다. 머리 굵은 성인들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사별 싱글 1명, 비혼 싱글 2명 / 60대 1명, 30대 2명 / 자영업자 1명, 직장인 2명 / 왼손잡이 1명, 오른손잡이 2명 /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 1명,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 2명 / 개에 무관심한 사람 1명, 무서워하는 사람 2명 / 요리를 거의 못하는 사람 1명, 그럭저럭 하는 사람 2명 / 냄새에 민감한 사람 1명, 소리에 민감한 사람 2명   30대는 50대가 되었고, 60대는 80대가 되었다. 주5일 직장을 다니던 나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자영업자는 백수가 되었다. 개를 무서워하던 한 명은 개 친화적으로 변했고, 다른 한 명은 여전히 그런 변화를 부러워한다. 요리를 거의 못하는 사람은 이제 그럭저럭 하게 되었고, 그럭저럭 하던 사람 중 한 명은 노화로 음식을 거의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얼마나 편리한가? 노화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까방권을 준다.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공동생활(잔소리와 지랄)을 통해 소리에도 제법 민감해졌다. 소리에...
스프링
2025.02.28 | 조회 604
아스퍼거는 귀여워
  나른하게 앉아서 털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본다. 혀로 천천히 오른쪽 팔을 핥는다. 이어서 왼쪽 팔을 핥고, 왼쪽 다리로, 오른쪽 다리로 옮긴다. 길고 유연한, 꺼끌꺼끌한 고양이의 혀는 등 뒤쪽까지 닿는다. 유일하게 직접 닿지 않는 곳은 이마나 얼굴 위쪽. 고양이는 손을 핥고 그 손으로 꼼꼼히 얼굴을 닦고, 다시 핥기를 반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쟤가 우리 집에서 제일 깨끗한 거 같아.’ 목욕하지 않아도,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털에는 햇볕 냄새가 난다.       올해로 11살인 우리 집 고양이 ‘마리’는 검정, 갈색, 흰색이 고르섞인 길고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다. 3살 때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서 줄곧 이 집에서 함께 산다. 몇 년 전부터 노묘 사료를 먹이고 있지만, 이 할머니 고양이의 털은 아직도 윤기가 흐르고, 코는 촉촉하고, 눈은 맑다. 고양이 눈을 본 적이 있을까?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금빛이면서 또는 오로라 빛 같은 다채로운 색을 가졌다. 그 안에는 길고 까만 동공이 세로로 그은 듯 벌어진다. 햇빛을 받으면 좁은 틈처럼 줄어드는 신기한 눈.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집사를 따라다니고, 몸을 단장한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빛을 따라서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쭉 켜고, 곧 몸을 돌돌 말아서 움츠린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면 따라온다. 자다가 일어나 눈을 끔뻑거리며 화장실을 가는 나를 지켜준다. ‘앙~ 집사, 내가 지켜줄 테니...
  나른하게 앉아서 털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본다. 혀로 천천히 오른쪽 팔을 핥는다. 이어서 왼쪽 팔을 핥고, 왼쪽 다리로, 오른쪽 다리로 옮긴다. 길고 유연한, 꺼끌꺼끌한 고양이의 혀는 등 뒤쪽까지 닿는다. 유일하게 직접 닿지 않는 곳은 이마나 얼굴 위쪽. 고양이는 손을 핥고 그 손으로 꼼꼼히 얼굴을 닦고, 다시 핥기를 반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쟤가 우리 집에서 제일 깨끗한 거 같아.’ 목욕하지 않아도,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털에는 햇볕 냄새가 난다.       올해로 11살인 우리 집 고양이 ‘마리’는 검정, 갈색, 흰색이 고르섞인 길고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다. 3살 때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서 줄곧 이 집에서 함께 산다. 몇 년 전부터 노묘 사료를 먹이고 있지만, 이 할머니 고양이의 털은 아직도 윤기가 흐르고, 코는 촉촉하고, 눈은 맑다. 고양이 눈을 본 적이 있을까?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금빛이면서 또는 오로라 빛 같은 다채로운 색을 가졌다. 그 안에는 길고 까만 동공이 세로로 그은 듯 벌어진다. 햇빛을 받으면 좁은 틈처럼 줄어드는 신기한 눈.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집사를 따라다니고, 몸을 단장한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빛을 따라서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쭉 켜고, 곧 몸을 돌돌 말아서 움츠린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면 따라온다. 자다가 일어나 눈을 끔뻑거리며 화장실을 가는 나를 지켜준다. ‘앙~ 집사, 내가 지켜줄 테니...
모로
2025.02.25 |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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