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개념탐구학교 파이널 에세이 데이 후기_우리는 택배하는 종이에요.
다음 주 월요일에 떠날 미국 여행 준비를 하면서 택배를 몇 개 시켰다. 택배를 뜯는데 어디선가 “우리 종은 택배하는 종이에요”라는 겸목 샘(맞으시죠? 그분이 겸목 샘, 조이음악학원 수강생)의 말이 울려왔다. 아마 2025 개념탐구학교 파이널 에세이 데이, 문탁 네트워크 세미나실에 계셨던 분들이라면 택배를 시키거나 뜯을 때마다 이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을까. 에세이 데이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꿀꿀한 기분이 들어서 에세이 데이 후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차크라바르티의 <행성시대, 역사의 기후>는 이론으로는 나에게 <라인스>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다. 에세이를 쓰면서 더 잘 알고 싶거나 더 정리하고 싶은 책을 고르려고 했다면 <행성시대, 역사의 기후>를 골랐을 것이다. 2025 개념탐구학교 1학기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나는 ‘신유물론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에 대항하고 인류세 시대에 물질적인 것을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이 중요해진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을 강조한 근대사회의 실패 정도로만 생각하고 구체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행성시대, 역사의 기후>는 나에게 인류세가 어떻게 물질을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오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준 책이었다. 기후위기는 인간을 지구에서 거주적합하게 만드는 조건들을 보게 했고, 따라서 생명다양성 속에서의 인간 종, 생명을 가진 다른 종과 다를 바 없고 다른 종에 생존을 의존하는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간을 보게 만들었다. 이 설명을 통해서 내 속에서 인류세와 신유물론이 비로소 서로 엮일 수 있었고 신유물론이 저 멀리에 있는 ‘최신’ 이론이 아니라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차크라바르티에 대한 에세이를 쓴 다섯 분의 선생님 글 모두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산책 샘은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내용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인류세를 지질학적으로 정의’하는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해주셔서 한 번 더 그 내용을 곱씹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문탁 샘은 차크라바르티 세미나를 열 때 ‘왜 기후의 역사가 아니고 역사의 기후인지 생각해보라’는 숙제를 던지셨는데 세 번의 세미나 내내 답변이 아리송했다. 심지어 책 제목 조차 ‘기후 시대, 행성의 역사’처럼 기후, 행성, 역사가 마구 뒤섞여 나오곤 했다. 은영 샘은 마지막까지 아리송했던 ‘역사의 기후’ 그리고 ‘행성 시대’를 이해하기 쉽도록 잘 정리해주셨다. 이제 제목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세이날 혜근 샘께 차크라바르티가 공란으로 남겨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부분을 왜(혹은 어떻게) 쓰셨냐고 당돌하게 질문했다. ‘그냥 그걸 쓰고 싶었다’는 것이 혜근 샘의 답변이었다. 차크라바르티가 던지는, 개인이 아닌 ‘종’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아니 그 전에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모두는 답답함을 느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혜근 샘의 답변에서, 그러한 막막함이 조금 사라졌다. 혜근 샘의 따뜻함과 같은 것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 아닐까. 경덕 샘은 에세이에서 <소와 흙>에서 나온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야기를 에세이에 녹여내셨다. 방사선으로 피폭되어 ‘거주 불가능’하게 된 땅. 지구가 거주 적합하지 않게 될 미래가 아닌, 이미 일어난 현재를 보여주는 그 땅에서도 여전히 생명은 살아간다. 그 곳을 사는 소의 시간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볼 것 같다. 지영 샘 글은, 놀라움이다. 단 며칠 만에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글을 쓸 수 있다니! 술술 읽히는 이 가독성을 갖추는 방법은 어떻게 해야 배울 수 있을까. 그리고 바쁜 와중에 휴가를 내고 밤을 새신 지영 샘의 열정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가 아니라 <라인스>를 에세이 책으로 정한 건, 내 마음이다. 뭔 말인가 싶겠지만, <라인스>에 더 마음이 끌렸다는 말이다. 두 책을 놓고 잠시 고민했는데, 이렇게 생각과 고민을 한다고 해서 글감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나에게 에세이는 작업을 시작해야 써지는 거라서 그냥 생각을 안 했더니 <라인스>에 계속 마음이 갔다. <라인스> 에세이를 준비한 다른 선생님들의 글에서도 비슷한 것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선생님들의 에세이는 마음의 선을 따라 가고 있었다. 미란 샘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그곳들에서 내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곳 사람들과 얽혀 만들어진 매듭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람 샘의 글을 통해서,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는 선을 따라 가는 것이 생명의 기본 양상이라면 그것은 생명은 ‘어쩔 수 없이’ 상상력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일 수 있겠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소영샘의 에세이에서 네모와 네모 사이, 점과 점 사이를 채워주는 ‘조응’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배웠다. 처음 나의 에세이를 준비할 때, 나는 달리기를 팀 잉골드 이론과의 매개체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지점을 찍고, 정해진 구간을 반복하는 나의 달리기가 과연 ‘산책’하는 달리기인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느낌으로는 ‘분명히 이건 직선이 아니야, 나는 달리면서 자연과 나의 신체를 매번 새롭게 느끼잖아. 이게 어떻게 행로가 아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이걸 느낌이 아닌 이론으로 풀어내야 했다. 며칠 동안 <라인스>를 뒤졌지만 그럴만한 이론을 찾아낼 수 없었고, 나는 약삭빠르게 금방 노선을 바꾸어 버렸다. 자신의 시나리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던 소영샘은 팀 잉골드의 최신 저작인 <조응>을 통해 시나리오의 네모들 ‘사이’에 대한 이론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삶에 대한 고민과 끈기는 글을 만들어내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믿지 않겠지만, <기학>과 <정몽>을 정리해주신 다섯 분의 선생님의 발표에 집중하려고 나는 정말로 애썼다. 에세이 데이를 통해서 개념어 하나라도 이해해보겠노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게 내 정신이 어디론가 계속 달아났다. 선생님들 글 하나하나에 감상을 달 능력이 안 된다는 뜻이다. 발표를 들으면서 했던 다짐 하나로 그냥 퉁치려고 한다. 앞으로 동양 고전을 공부할 때는 절대로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동양고전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선을 따라가는 문제일 지도 모른다. 선 앞에서 나에게 필요한 건 이해가 아니라 상상력과 용기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늘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말이나 막 내뱉게 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참 부끄럽다. 나는 왜 순발력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본 실력은 그런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야만’이라니! 도대체 왜 그런 단어를....질문하신 갤러리 분께 송구하다. 그때 하신 질문을 되살려보면 인간이 관리하는 정원은 야생과는 차이가 있는데 내 글에서는 정원이 야생이나 자연에 가까운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 해명해달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뒤늦게 답변을 좀 정리해본다. 잉골드의 선은 자연과 문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근대 사회는 직선을 문화에, 곡선을 자연에 배속시키지만, 잉골드가 말하는 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구불구불한 선을 뜻한다. 나는 정원이란 곳을 그런 생명의 행로가 서로 얽힌 장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초도 이 장소에서 함께 얽힐 수 있을까? 잡초는 관리의 대상이지 않은가? 잡초를 정원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려고 하는 행로의 선이라고 생각하면 정원이 정말 장소인건지, 테두리를 치고 안에 식물의 행로를 가두어 놓은 점인건지 헷갈린다. 정원을 장소라고 부를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는, 정원 안에서 선을 따라 자유롭게 뻗는 식물이 아니라, 외부에서 자유롭게 뻗어 들어오는 잡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정원을 장소로 만들고 정원의 질감에 기여하는 잡초라니...이제 잡초를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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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개념탐구 2학기 에세이 데이 후기-어려운 공부를 마무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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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 2-14 후기] 행성이 나, 내가 곧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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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 2-14 공지] 차크라바르티 (3) - 근대적 인간 개념의 해체 이후, 행성적 인간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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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 2-10 공지] - 최한기의 氣에는 理와 陰陽五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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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2-9 후기> (내게는 너무나) 문제적 인간 최한기, 그리고 그의 활동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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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 2-9 공지] - "활동운화는 기의 본성으로서, 기학의 종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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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탐구 2-8]후기-'운화기'를 지금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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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발표날도 살짜쿵 말씀드렸듯이, 해정쌤의 글이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선생님이, 잉골드의 어떤 이야기들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흙을 생각하니 그것이 담박 받아들여지더라는 대목이 부럽고 신기하고 저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글 전체에서 정원에서의 작업과 해정쌤이 그곳에서 어떤 기운을 받고 덕분에 잉골드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흐르며 오가는 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여전히 저에게는 잉골드이 사유도, 정원에서의 작업도 어떤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그것들을 떠올릴 수 있을 때 선생님의 글이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해정쌤이 책읽기나 질문들을 열심히, 구체적으로, 논리적으로 매번 꼼꼼하게 해오시는 모습이 자극이 되고, 그것에 기대어 다시 정신차리는 계기가 되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닐 테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함께 공부하게 되어서 좋았고,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발적으로' 후기도 꼼꼼하게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에 함께 공부하게 될 때 저도 제 몫을 다하는 학인이 되어보겠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닐 테지만'... 은영샘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자면..
"네 맞습니다. 맞고요" 저도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저 또한 해정샘 공부하시는 모습에 자극은 되었지만,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습니다 .ㅋㅋ
해정샘 쌉T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소문자 f 되시는 듯.(자발적 후기를 으면서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 했습니다.^^)
함께 공부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또 만나요~^^
저도 해정샘 에세이 너무 좋았어요.
해정샘 뿐만 아니라 잉골드랑 차크라바르티로 에세이 써 주신 샘들 덕분에 책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문탁 이사 끝나고 여유 있을 때 다시 한 번 샘들 에세이 쫙 읽어보려구요. 찬찬히요.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고, 또 같이 공부할 때를 기다릴게요.
여행 준비하며 받은 택배상자들을 보다가 후기를 쓰게 됐다니… 해정샘은 마지막까지 훌륭하시네요 ^^
해정샘을 비롯해 <라인스>>로 에세이 쓰신 분들의 글을 읽으며, 행성시대에서 받은 뇌손상을 치유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따뜻한 글들 감사했어요.
힘겹게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나면, 에세이 데이 때 말이 없어도 느껴지는 전우애 비슷한 것에 참 애틋해지는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공부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올해 공부가 힘들었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에세이데이 전원 오프라인 참석이라는 기록에 누가 되지 않았네요.
어려운 공부를 하려면, 꾸준함과 때론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집요함이 필요하다는 걸 해정샘에게서 저는 배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어디서든 다른 공부로 또 만나요. 여러분 모두요~~
다음에는 혜정샘이 이해하실 수 있는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더 공부를 해야겠네요^^;;
라인스가 어려웠는데, 샘들 덕분에 좀 이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공부로 또 뵙겠죠? 개념탐구 세미나를 못하게 된 건 안 아쉬운데, 샘들을 못 뵙게 된 건 많이 아쉽습니다.
혜정 샘 여행 잘 다녀오시고,
샘들 모두 올 겨울 감기 조심하세요~
해정샘~ 지금 미국 어딘가를 여행 중이시겠죠? 궁금하네요. 어떤 여행을 하고 계실지...
조원 피드백에 나온 다양한 의견을 놓치지 않고 에세이에 녹이시는 모습, 텍스트를 꼼꼼하게 파고 들어 던지시는 질문과 후기... 어려운 개념들을 잘 안내해주는 선물같은 에세이까지. 샘을 통해 공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또 공부하는 곳에서 반갑게 만나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