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달] 53번째 11월호 보름달편 다시보기

일리치약국
2025-12-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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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53
‘건강 한달’은 일리치약국의 뉴스레터입니다. 한 달에 두 번 1일과 15일, 초승달편과 보름달편으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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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공부, 페미니즘
  일요일에도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이 떠진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신체시계는 일정한 시간에 자동적으로 ‘알람’을 작동한다. 빈둥거리기 좋은 시간, 습관적으로 OTT 화면에 영화제목을 검색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2002년)을 눌러 보지만, 뜨지 않는다. 그럼 다음 후보로 <로스트 도터>(2022년)를 입력해본다. 고민 없이 검색해야 할 영화리스트가 있는 까닭은 요즘 읽고 있는 사라 아메드의 『행복의 약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뿐 아니라 조지 엘리엇과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까지 검토해야 할 텍스트들은 차고 넘친다. 헉헉) 올해 페미니즘 세미나를 시작하고 달라진 습관이 있다면, 일요일이면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부스스한 얼굴로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영화들을 기계적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건 봐야 할 영화와 읽어야 할 책들의 레퍼런스가 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달라진 점은 자기검열이 강화됐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인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불평등과 불합리를 해소하고 ‘파워에너지’를 장착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페미니즘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는 가부장제적 사회각본에 너무나 충실한 공모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가부장제는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결혼과 가족제도에는 ‘남녀’ 한 세트가 있어야 한다. 나의 연애/결혼/가족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오만과 그걸 인지하지 못했던 무지가 부끄러웠다.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는데,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고 당황스러웠다. 공부할수록 자기모순과 자기분열과 자기검열이 강화되고 감정 소모가 컸다. 그래서 알게 된 건 ‘메타 인지’는 뼈아픈 배움이라는 사실이다. 알게 될수록 뜨끔하고, 찔리고, 부끄럽고, 아프다. 아마도 이런 감정들이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공부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알면 알수록 속 시끄럽지만, 눈이 번뜩 뜨이는 순간도 있다.
  "우리는 이 각본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은 흑인 여성에게 무엇을 뜻할까? 나를 정의할 권한은 나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엄마한테만 기대했던 그런 포용의 시작점, 즉 성장에 대한 깊은 관심과 기대를 스스로에게 쏟아 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나의 생존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내 안에 있는 그리고 다른 흑인 여성의 자아 안에 있는, 나 자신의 가치를 긍정한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내가 나의 가치와 진정한 가능성을 알게 됨에 따라 내 안에서 가능한 것을 철저히 추구하되, 다른 것에 안주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내가 가능한 것과 흑인 여성이 인간임을 증명하라고 바깥세상이 내게 강요하는 것을 분별하고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크고 작은 나의 성공을 인정할 수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실패할 때조차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수 있음을 뜻한다."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333쪽)
  오드리 로드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시인이며 아들을 기르는 엄마이기도 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념인 교차성과 정동정치의 출발점에 중첩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오드리 로드가 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고 의심하도록 가르친 언어는, 우리가 서로를 무시하고 의심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 동일하다”(327쪽)고 지적하며,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법, 자기답게 사는 것을 터득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라는 유혹적이고 위협적인 외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성장이다. 한편으로는 억압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민감함이기도 하다. 이런 성찰과 훈련은 내가 느끼는 ‘뜨끔하고, 찔리고, 부끄럽고, 아픈’ 감정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드리 로드는 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감정과 경험에 이름을 붙여주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겨질 수 있을 때,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오드리 로드의 글은 ‘시적’(詩的)이며, 시가 왜 필요한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페미니즘 공부 1년차, 각본을 바꾸려고 했던 ‘교과서’들을 읽고 있다. 오드리 로드, 벨 훅스, 수전 팔루디, 사라 아메드, 주디스 버틀러…… 페미니스트들은 ‘일보 전진, 이보 후퇴’ 하며 나선형의 진전을 만들어왔고, 나선의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과거의 싸움을 복기하는 일은 호신술과도 같다. 두려움 같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으며 자기감정을 즐기는 법을 익힐 수 있게 해준다. 빠른 선행학습을 희망하는 사람에겐 넷플릭스 시리즈 <미세스 아메리카>(2020년) 추천한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레이건의 집권 직전, 베티 프리단, 글로리아 스타이넘, 밸라 앱저그, 필리스 슐래플리 등 ‘제2의 물결’이 휘몰아쳤던 1970년대 미국 여성 인권 운동과 반격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정리해준다. 케이트 블란쳇, 로즈 번 등 명배우들의 ‘연기 차력쇼’에 9부 마지막 회차까지 ‘정주행’하다 보면, 페미니즘 입문서 한 권을 마스터한 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미세스 아메리카>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내려왔고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by 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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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네팔의 여신 '쿠마리'였던 소녀가 한국의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었다. 그녀의 법정 통역사인 도화는 허위 통역으로 법정 최고형을 받게 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개념탐구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소영 선생님의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알래스카 한의원> <슈퍼리그>에 이어 올해도 새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함께 읽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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