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 3-7장 후기

노을
2025-12-11 16:34
134

주디스 버틀러,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 3-7장

 

“젠더의 중요성을 옹호하는 일은 검열과 파시즘의 두려움에 맞선 투쟁과의 연대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의 띠지에 적힌 말이다. 이번 3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젠더 이데올로기 운동을 이끄는 자들이 위험시하는 세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어떻게 검열과 파시즘이 나타나는지를 밝혔다.

 

1) 트랜스인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2) 트랜스인 여성이 여성 스포츠에 참가할 자격에 관한 건.

3) 트랜스 아동이 성전환을 위해 의료서비스와 자원을 제공 받는 건.

 

특히, 의료서비스 박탈과 성교육 내용 검열은 자신의 운명과, 배울 권리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적 요소가 다분하다. 혐오의 정념을 청소년 각성(Work)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기 위함이라며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숨쉬고 사랑하며 움직이고자 모든 사람의 가치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함께’(162쪽) 살아가야 하는 복잡한 과제 앞에서 단순한 이념의 문제로 박탈과 검열이 자행되는 것이다. 버틀러가 분석했듯 이는 분명 혐오에 기반한 도덕적 불안과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버틀러는 몇 차례에 걸쳐서 ‘비판' critiqu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비난,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들을 ’중층결정‘하는 의미들이 어떤 조건 속에서 가능해졌는지를 탐구하는 일이라 했다. 세미나 중에 중층결정의 뜻을 겸목이 설명해주셨는데, 이 개념은 알튀세르가 막시즘을 비판-수정하는 과정에서 도입한 개념이라고 하셨다. 막시즘은 하부구조인 토대에 따라 상부구조의 의식이 결정된다는 말인데, 알튀세르는 이 하부-상부의 구조가 하나로 단일화되지 않는다는 점, 의식을 이루는 다층의 독립되고, 연루된 원인들의 결과를 중층결정이라고 첨언해주셨다.

 

이분법적 판단, 단순한 옳고 그름의 잣대 판단하지 않는 것, 비판(critique)이 혐오가 팽배한 시대, 도덕적 사디즘에 빠진 이 시대에 대한 처방전처럼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4장은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의 영향으로 2020년 차별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생물학적 생식기와 평이한 말하기(plain speaking)를 중심에 둔 일을 가지고 펼쳐진다. 이번 장에서 인상깊었던 대목은 버틀러가 성별 문제를 해결될 수도 부정될 수도 없는 ‘통약 불가능성’의 범주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성별에 대한 공통의 정의가 없더라고 성별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이해에서 차별적 행동이 나온다면 차별이라고 판결한 사건(보스토크 대 클레이턴 카운티 사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또, 임신중단권을 지지하는 모든 자유권에 대한 주장 따위를 거짓 자유로 판시한 대법관 판결을 통해 국가의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려는 자들이 진짜 자유투쟁을 파괴하고 신흥 권위주의임을 명확히 말한다. 이들 우파 세력들이 진짜 자유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혐오의 정념으로 불러 일으키는 정치적 작동을 하고 있다면, 좌파는 무엇으로 연대할 것인가가 버틀러의 질문이다. 그러기 위해 투쟁의 대상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 연대를 위해 적대 세력과의 공존, 해소 불가능한 것과의 공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과 자유를 부정하고 우리의 언어, 욕망, 살아 숨쉬고 움직일 능력을 박탈하려는 권력들(자본주의적, 인종주의적, 가부장제적, 트랜스혐오적)에 맞서는 투쟁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야말로 열정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욕망이라며 말이다. 자유! 함부로 갖다 쓰지 말란 말이다.

 

5장은 여전히 핫한 주제인 ‘트랜스혐오’에 대한 장이었다. 터프TERF (Trans-Exculsionary Radical Feminist)는 말 그대로 트랜스인 사람들을 배제하는 래디컬 패미니트스들을 말한다. 버틀러는 영국의 터프주의가 생물학적 실재에 집착하면서 결국은 이성애 규범성, 식민지적 지배 목적에까지 봉사한다면서 다시 한 번 비판critique이란 용어의 의미를 살려 젠더 이분법에서 벗어난 다르게 살아가기를 상상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터프가 지금의 방식으로 신흥 파시즘의 반젠더 이데올로기와 공모하지 말라고 말이다. 물론 성폭력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남성성이 지배와 침해라는 틀에 메일 필요가 없으며, 더불어 여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묻는 것이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질문이란 말이다. 젠더를 개인의 소유물로 두지 않고, 통제 범위 바깥에서 사유하는 것에 대한 말이 설득력 있게 와닿았다.

 

이런 주장이 사고실험의 영역을 벗어나서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지 묻는 겸목의 질문에 침묵이 일어나기도 했고, 지금 한국 사회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터프인 경우가 많다는 산두미의 말에서도 한국의 현실에 골똘해지기도 했다. 1학기 때 나눴던 숙대의 트랜스젠더 입학 불허 논쟁에 대해서 같이 언급하면서 말이다. JK롤링이 개인의 성폭력 트라우마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터프주의에 대해서도 버틀러는 심리적 투사와 전치를 통해 트랜스인 사람들을 강간에 연루시키는 일이 오히려 심리적 폭력일 수 있음을 다룬다. 이 부분에서는 참이 영화 ‘세계의 주인’을 언급했다. 영화에서 한 학생이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고 단언하는데, 그런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이 부분에서 떠올랐다고 하였다.

 

수많은 이들의 삶이 살만한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 ‘범주를 개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버틀러의 말을 들으며, 근래에 해성샘이  <몸의 일기> 북토크에서 게이로서의 자기 삶이 (동성)결혼과 더불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주변 친구에게로 퍼져 나갔던 연대의 정념으로부터 멀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 자기 정체와 관련하여 이제는 어떤 가능성에 어떤 제한을 두지 않는 퀴어함에 대해 사유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대목도 더불어 떠올랐다.

 

6장 ‘성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섹스를 자연, 젠더를 문화라는 이분법적 선상에 놓는 것을 비판하는 버틀러의 주장이 나온다. 이는 해러웨이의 자연/문화 이분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산에 있는 나무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문화-자연일 수 있듯이, 성별도 먼저 범주가 있기에 후에 인식이 형성되는 자연-문화로 봐야하는 것인다. 젠더도 생물학적인 것이고, 성별도 문화(젠더)의 틀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이제 Which gender?라는 질문의 영문법이 What gender?로 바뀌어야 하지 않냐는 발언이 신선했다. 성별의 수행적인 측면, 분류체계에 내포된 폭력성을 생각했을 때 제대로 와닿는 문제의식이다.

 

7장 당신의 젠더는 무엇인가에 대한 발제에서는 인터섹스에 대한 1940년대 머니의 논문을 보면서 머니가 성별을 규범적 이상향 속에 바라보면서 비규범적 몸을 치료, 교정하려 하고, 자기 결정권이 아니라 행복한 정상성에 기대하게 하게 하는데, 여기에도 성별 지정에 대한 관행에서 증폭된 두려움이 내포되었음을 꼬집는다. 한 마디로 규범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젠더라는 것이 몸과 범주 사이의 잠재적 통약 불가능성임을 다시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당연하게 자리잡을 것의 당연하게 된 조건들을 되짚어보는 비판critique이 필요하고, 여성이 무엇이고, 남성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야한다. 겸목은 여기서 수행성으로 나의 젠더를 수행할 수 있다는 말로 다시 요약하였는데, 여기서 수행성은 나라는 존재로 여러 개의 지정 연기를 하는 것, 복수적으로 창조한다는 뜻으로서의 수행성임으로 정리해주셔서 수행성 개념에 대해 헷갈렸던 지점이 개인적으로 좀 해소되었다. 

 

다음 주면 이 책의 결론까지 읽고, 함께 나누게 된다.

작년에도 이 계절에 버틀러를 읽고, 세미나 했었는데, 올해도 버틀러와 함께 정신이 느슨하고도, 단단하게 조여지는 느낌이다. 

댓글 2
  • 2025-12-12 02:07

    꼼꼼한 후기네요. 모든 논란에 하나 하나 대응해보겠다는 바틀러의 기세와 함께 사태의 난맥상을 풀어가는 지성에 놀라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전염시키고 확장해갈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 2025-12-12 11:44

    우아~~~~~ 강의노트같아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시험 전 벼락치기로 빌렸던 친구 노트를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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