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홈스쿨링? 대안학교? 중학교 선택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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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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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 했던 거다. 물론 감자는 어릴 때부터 내가 의도한 바를 절대로 한 번에 따라주지 않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나와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제까지 감자와 둘이 지내는 시간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둘 다 집돌이, 집순이라서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잘 지내고, 둘 다 수다스러워서 자기 전에 한 두 시간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파에 앉아서 같이 책을 읽기도 하고,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다. 같이 애니를 보면 좋은 이유가, 기억력이 좋은 감자가 나 대신에 히어로 이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걔 이름 뭐였지? 네모나고, 학교 선생님인데, 막 시멘트를 만들어내는…. 그런?” “시멘터스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얼마나 좋았었다고!

당연히 학교에 가는 날이 더 좋다. 말해 뭐해. 하지만 학교를 보내기 전의 입씨름과 중간중간 걸려오는 선생님들의 연락과 기타 모든 것들이 버거워질 때면 차라리 방학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기 전에는 방학 때면 길게 한 달쯤 둘이서 해외여행을 갔다. 아니면 짧게는 몇 주씩 작은 소도시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게 별로 어렵지 않았고, 둘만으로도 편안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예감은 올해에 들어서 확실해졌는데, 이제는 정말 ‘타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낳고, 내가 기르던 꼬마가 어느 순간 나보다 훨씬 커지고 힘이 세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때의 눈빛까지 변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전에 없이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성이 끊어지기 전까지 절대로 누워있지 않는 아이였다. 24개월이 되자 딱 낮잠을 끊은 감자 아니었던가. 이런 모습들을 발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감자랑 분리가 되는 걸까? 그건 너무 좋은 일이다.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스쿨링은 불가능하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열외가 되는 순간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근처에 있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원서만 넣으면 되니까. 게다가 올해부터는 특수반에 들어갔기 때문에, 중학교에서도 특수반에 진학할 수 있다. 작년에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새로 특수반이 생기니 들어올 거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민했다. 특수반에서 감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현행 수학이나 국어, 영어 정도는 따라가기 때문에 따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감자에게 무엇이 더 득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했다. 감자에게 특수반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며칠을 더 고민했다. 여러 지인이나 선생님들께도 여쭤봤었는데, 일단은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사실, 전 학년 통틀어서 특수반 학생이 6명이다. 고작 6명. 신설되는 학교여서 그렇지, 특수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사를 하거나 먼 거리를 통학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그만큼 들어가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일단 들어갔고, 지금 몇 달이 지났는데, 막상 들어가니 다시 고민이 생겼다. 특수교사와 담임교사, 그리고 위클래스 교사까지 감자를 도와주는 교사가 늘어난다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다. 체육 시간에 힘들어하는 운동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특수교사가 함께 참여해서 운동을 도와주었다. 급식시간에 ‘김치를 너무 많이 먹는다’라며 연락이 오고 난 후, 특수교사가 점심 내내 같이 밥을 먹어주시기도 했다.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연락을 오는 게 조금 웃기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하지만 급식판 가득 산더미같이 김치‘만’ 받아오는 감자의 모습을 보면 전화가 올 만하다 싶다) 보육의 부분에서는 확실히 나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안 해도 되는 아이’가 되는 일이었다. 이거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특수반에 배정되자 감자는 모든 일에서 열외가 되었다. 교실에서 감자의 자리는 선생님 바로 앞자리로 고정되었고, 수업시간에 ‘감자 빼고 다른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자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자랑스레 이야기하기를, 수업시간에 자기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안 해도 자기는 혼나지 않는다고. 그걸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갔다.

 

실제로 6학년에 들어서서는 수업시간에 그저 앉아만 있다가 오는 것 같다. 개학한 지 두 달이나 되었지만, 이제껏 가져온 것이라고는 수학 1단원 시험지 2장뿐이었다. 알림장을 써오지도, 숙제를 받아오지도, 무언가가 쓰여 있는 교과서를 가져온 적도 없다.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수업시간의 많은 활동에도 열외가 되고, 숙제도 안 해도 되는 아이가 되었다. 이건 우리 아이만 단독으로 무언가를 더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학교에서의 위치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아이’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학교에 보내면야 어찌 되었든 오전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점심도 먹고 오고, 기본적인 수학, 영어, 국어 등을 배우고 오니 편하지 아니한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6학년 공부를 따라가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감자가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그 무료하고 긴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이게 맞는 걸까.

 

 

 

어떤 중학교를 '선택'해야 할까

이게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학교를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할지가 막막하다. 내가 활동하는 공간에는 이우학교 학부모들이 많다. 괜찮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우학교 온라인 입시 설명회도 들어가 보았다. 물론 추첨에서 당첨되어야 보낼 수가 있는 거지만, 좋아 보이는 그 커리큘럼도 감자에게는 맞지 않아 보였다. 자기 주도적이고, 사회참여가 많은 학교인데 그 부분이 감자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도 발도르프니 공동육아니 이런 델 보내고 싶어서 노력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감자는 책 읽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삽으로 땅 파고 놀라고 했더니 경기를 일으키면서 싫어했다. 풀밭에 던져놓으면 도무지 어디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며 방황했다. 도대체 자기가 좋아하지 않은 그것들에 관한 관심을 늘려가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곱절은 더 어렵다. 감자를 그런 식의 수업이 있는 대다수의 대안학교에는 보내진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감자를 장애에 특화된 대안학교를 보내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거기에 보내면 정서적 안정은 가질 수 있겠지만, 수업 편차가 너무 심했다. 한글 읽기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감자를 국제학교에 보내자니, 이미 아이들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영유를 다니고, 오케스트라를 배우고, 공부로 달려온 아이들 사이에서 과연 적응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 감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고민 속에서 충북 괴산에 있는 기숙사 학교까지 알아보고 있다. 수학, 과학 위주의 개인 프로젝트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학교인데, 학년 구분도 없단다. 자기 진도대로 학습을 한다는 거다. 오히려 감자에게 이런 학교가 맞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먼 거리의 기숙 학교라는 점이 가장 걸린다. 내가 가까이에 없이 과연 생활할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더 괜찮은 걸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일단 5월에 예정된 입시 설명회에 가보기로 했다. 가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겠지.

 

우리는 사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아등바등 살아간다. 지금의 나도 무엇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이 좁혀지지 않아서 초조하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 이게 과연 맞는가에 대한 고민. 그 와중에 이런 혼란한 글을 쓴다. 이러다 결국 보낼 학교가 없어서 홈스쿨링을 택할 수도 있겠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반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겠지 싶다. 일단, 어떻게든 결론이 나기를 바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학교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결정이 되면,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믿고 잘해갈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 다들 작은 힌트라도 떠오르면 나에게 말해주기를.

 

 

 

 

 

모로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댓글 6
  • 2025-04-26 12:17

    아...모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
    하지만 감자 옆에, 그대가, 그대 옆에 우리가 있잖아.

    좋은 선택이 뭔지는 몰라도
    벌어진 일들을 함께 감당할 수는 있을거야.

    글 써줘서 너무 고마와.

  • 2025-04-28 12:23

    고민하고 알아보고 한 선택들로 감자가 6학년이 된 것 같으오. 또 선택을 위한 지난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하네요. 옆에서 이말 저말 조언은 하지만 모로의 짐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그래도 언제든 그때그때 얘기합시다~ 감자가 잘 맞는 중학교에 가길 비는 기도를 시작했다우!

  • 2025-04-30 19:29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네요.
    지금까지 숱한 어려움을 헤쳐온 모로의 힘을 믿어요!
    그래도 힘겨울 땐 그게 뭐든 같이 나누어요.

  • 2025-05-05 09:46

    모로님 글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오고 가네요. 지금까지도 감라와 함께 잘 해오셨듯 앞으로도 어떤 선택을 하시던 최선의 선택을 하실거예요. 글 나눠주셔사 감사합니다.

  • 2025-05-06 07:46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항상 남더라고요.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모로쌤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시길. 그 안에서 답이 찾아질 거라고 믿어요.
    모로와 감자는 잘 할 거예요!^^

    • 2025-05-06 13:35

      나도 도라지와 같은 생각. 어떤 선택도 후회를 가져오더군. 그러니까 좋은 선택이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택의 과정을 재량껏 해보는 게 아닐까 싶네.

스프링의 실화극장
  글, 다시 읽다   한 해가 다 갔다.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나누어 이름 붙이고 의미 부여를 한다. 1년 365일을 기준으로 한 이정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반추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배려의 글쓰기 연재도 어느새 끝에 다다라 벌써 마지막 글이다. 연재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으면 했다. 얼마쯤은 예상되는 뻔함과 살짝쿵 서프라이즈.   마지막 글 하면 예상되는 그 뻔함이 있지 않는가? 그간의 소회를 적당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는. 살짝쿵 서프라이즈로는 댓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리로 단 댓글들도 고맙다. 행간에서 댓글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쉽게 써지지 않는 댓글로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들이 꽤 있었으리라. 간혹 오다가다 마주치는 분들이 면전에서 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다. 잘 봤다고. 재밌었다고. 하긴 뭐 코앞에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해줄 때는, 역시 고맙다. 읽어봐 주고, 계속 쓰라고 힘을 주니까.   글을 올린 직후에는 예상 밖의 댓글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때는 ’글이 곧 나‘라는 강한 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줄기와는 다른 부분에서 반응을 하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예상 밖의 댓글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코멘트하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글도 거기 달린 댓글처럼 거리감이 생긴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예상 밖의 댓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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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2025.12.30 | 조회 273
아스퍼거는 귀여워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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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5 | 조회 35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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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5.12.20 | 조회 320
산골짝에 도라지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도라지
2025.12.09 | 조회 267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프링
2025.11.30 |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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