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결혼 25주년 그리고 열 번의 이사

도라지
2024-12-22 11:45
559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우선으로 보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수납박스에 계절 옷들을 보관한다. 박스에 옷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어서 큰 불편은 없다. 새 옷을 사고 싶어도 박스 사정을 고려하다 보면 지갑을 열지 않고 계절이 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방에는 자주 입는 옷들을 걸어둘 행거, 한쪽 구석엔 옷 박스가 있기 마련이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침대 생활은 포기했다. 침대는 없어도 잠을 자려면 요와 이불은 필요한 법. 장롱이 없으니 이불을 보관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부피를 차지하는 침구류는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다.

 

 

고기동에서 이사한 동천동 아파트의 주방 사진. 지금 이 집에는 참쌤 식구가 살고 있다. 놀라운 인연이다~

 

 

 

한동안 나는 요가 매트 위에서 잠을 잤다. 등이 배기지 않게 이불을 접어 등에 대고 누우면 편안했다.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 대신 차렵이불을 겹쳐서 덮었다. 마침 불교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수행정진에 딱 맞는 소박한 잠자리가 연기적으로 갖춰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자의식에 취해 수년간 잠을 잔 덕에 지금은 딱딱하든 푹신하든 꿀잠 자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쇼파에서 주로 잡니다~) 

 

 

가전제품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장만한 대형TV 외에는 늘리지 않았다. 살림살이들은 당시 상시로 있던 이어가게 득을 많이 봤다. 그리고 동천동 아파트 단지 몇 군데를 돌면 멀쩡한데 버려진 집기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짐을 줄이고 구입하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에 이번 이사 견적은 역대급으로 적은 양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견적서에는 5톤이라는 숫자가 낙제 점수처럼 적혀있었다.

 

 

 

파지사유 맞은 편에 있는 '카에스테틱' 자리가 예전에는 이어가게였다. 지금 양양집에 있는 주방 살림은 이어가게 출신이 많다. 

 

 

 

십 년 동안 겨우 3톤 줄었다. 이사업체 사장님한테 5톤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사장님은 이사 견적은 속짐이 차지하는 양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5톤 견적도 이사 전까지 짐을 최대한 줄여야 장담할 수 있다고 하셨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집은 없어도 그만인 물건과 있어도 안 쓰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고기동 이사 이후 소비를 최소로 한다고 자신했건만 물건들은 요요현상으로 비운만큼 채워졌고, 장롱과 침대와 식탁만 없었지 그밖에 살림과 잡동사니들은 웬만한 잡화점을 하나 차리고도 남을 만큼 불어있었다.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남편과 성인인 아들들의 물건을 내 마음대로 정리할 수는 없으니, 내가 사 모은 것들을 정리할 수밖에. ‘아! 나는 공부도 많이 안 하면서 책이 왜 이렇게 많을까?’를 시작으로 책 정리를 했다. 책은 사서 최대한 깨끗이 보고 중고매장에서 되파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정리 대상은 소장 중이었던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애장 도서였지만 정작 소설과 시집은 필요하면 언제든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기에 정리가 생각보다 쉬웠다. 민음사VS문학동네, 박상영VS김연수, 최은영VS황정은, 김선우VS진은영… 밸런스 게임하 듯 정리했다.

 

 

누구의 책은 남았고, 누구의 책은 헐값에 팔렸다. 책 팔아서 아들이랑 파스타도 먹고 남편이랑 회전 초밥도 먹었다. 중고매장에 팔 수 없는 오래돼서 바래고, 밑줄이 많이 쳐진 책들은 버려야 했다. 분리수거장에 책을 내다 버리던 나에게 경비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책은 머릿속에 다 넣으셨나요?” 그 말은 살면서 들은 뼈 때리는 말 중에 단연코 1등이다. 책장은 여덟 개에서 다섯 개로 줄었고 이삿짐은 무사히 5톤 트럭으로 옮겨졌다.

 

 

 

알아차림을 통한 미니멀리스트 되기

 

 

십 년 전 나는 늘 부족한 것만 생각했다. 그건 여분의 냉장고일 때도 있었고, 엔틱한 쇼파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손에 넣는 기쁨은 잠시였다. 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내게 부족한 것들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면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많이 물을 필요도 없다. 이미 필요한 건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를 앞두고 미니멀리즘을 다룬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미니멀한 소비를 부추기는 풀소유 미니멀리스트도 있었고, 텅 빈 집에 사는 극한의 미니멀리스트도 있었다. 나의 관심을 끄는 유투버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최소의 삶을 지향하는 경험이 깊어지면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나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비우고 미니멀한 소비를 즐기고 있었다. 즐겨 입지도 않는 코트를 당근으로 싸게 샀으니 소비 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나의 소비를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근을 삭제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게 있다. 하루에 세 가지 물건 정리하기! 가끔 남편도 동참하여 간헐적 정리를 한다. 별로 어렵지도 않다. 하루에 하나의 공간을 정해서 정리하면 된다. 싱크대 서랍, 베란다 선반, 화장실 수납장 등.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세 개를 정리한다. ‘정리한다’고 했지만 ‘버린다’일 때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물건에 미련을 두는지 알 수 있다(나는 빵끈과 유리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실수로 다시 사는 일도 줄고, 필요할 때 잘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는 날은 지갑 속 영수증이나 필통에 안 쓰는 볼펜 등 무엇이라도 세 가지를 정리한다.

 

 

물건을 없애는 것도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도 내 삶의 맥락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알아차림의 과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소유해야 할 물건이나 해야 하는 일도 따라서 줄어들고 물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스트의 대열 맨 끝에 서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혼 50주년에는 여행 가방 하나에 나의 모든 짐을 다 담을 수 있기를.

 

 

 

 

산 속에 살면서 사는 데 필요한 게 별로 없다는 걸 자주 느낀다. 

먹을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생각일 것이다. 

 

 

 

 

 

 

 

 

 

 

 

 

 

 

 

 

 

 

 

 

도라지

 

현재 일리치약국 자매 브랜드인  '로이, 기쁨이되는차' 직원.

일주일의 반은 경기도, 반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란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자랑이다.

 

 

 

 

 

댓글 6
  • 2024-12-22 12:03

    도라지샘의 글을 읽으면서 엊그제 읽었던 르귄의 단편집 <세상의 생일> 중 '고독'이란 작품의 주인공 '평온'이 떠올랐어요. 물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길 일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알아차림과 평온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ㅋ

  • 2024-12-22 13:21

    우와 저의 이번달 글과 닿아 있네요.
    전 정리보단 더 이상 물건 들이지 않기에 방점을....
    일상을 찬찬히 살피고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 잘 쓰며 살아야겠어요~~~

    저도 결혼 21년 동안 7번 이사해서 많이 했다 생각했는데 도라지쌤에 비하니 약과네요..ㅎ

  • 2024-12-23 00:36

    하루에 세 가지 물건 정리하기
    저도 따라 해봐야겠어요. 전 뭘 잘 안 버려요ㅠㅠ

  • 2024-12-23 10:52

    저도 항상 용달차를 목표삼고 있습니다.
    ㅎㅎ

    빵끈집착ᆢ 찌뽕

  • 2024-12-24 07:28

    ㅠㅠ 맥시멀리스트인 저를 뜨끔하게 만느는 글이네요...집에 자잘한 소품들이 진짜 너무너무너무 많은데.. 너무 귀여운데 또.. 없앨수가 없는데요.. 저도 이제 진짜 정리를!! ㅋㅋㅋ 내년엔 저도 하루에 3개 버리기 도전해 보겠습니돠ㅎㅎㅎ

  • 2025-03-13 23:06

    남편이 빵끈에 집착함....ㅋㅋ

스프링의 실화극장
  글, 다시 읽다   한 해가 다 갔다.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나누어 이름 붙이고 의미 부여를 한다. 1년 365일을 기준으로 한 이정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반추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배려의 글쓰기 연재도 어느새 끝에 다다라 벌써 마지막 글이다. 연재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으면 했다. 얼마쯤은 예상되는 뻔함과 살짝쿵 서프라이즈.   마지막 글 하면 예상되는 그 뻔함이 있지 않는가? 그간의 소회를 적당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는. 살짝쿵 서프라이즈로는 댓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리로 단 댓글들도 고맙다. 행간에서 댓글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쉽게 써지지 않는 댓글로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들이 꽤 있었으리라. 간혹 오다가다 마주치는 분들이 면전에서 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다. 잘 봤다고. 재밌었다고. 하긴 뭐 코앞에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해줄 때는, 역시 고맙다. 읽어봐 주고, 계속 쓰라고 힘을 주니까.   글을 올린 직후에는 예상 밖의 댓글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때는 ’글이 곧 나‘라는 강한 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줄기와는 다른 부분에서 반응을 하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예상 밖의 댓글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코멘트하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글도 거기 달린 댓글처럼 거리감이 생긴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예상 밖의 댓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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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2025.12.30 | 조회 273
아스퍼거는 귀여워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모로
2025.12.25 | 조회 348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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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5.12.20 | 조회 318
산골짝에 도라지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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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5.12.09 | 조회 267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프링
2025.11.30 |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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