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결혼 25주년 그리고 열 번의 이사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우선으로 보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수납박스에 계절 옷들을 보관한다. 박스에 옷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어서 큰 불편은 없다. 새 옷을 사고 싶어도 박스 사정을 고려하다 보면 지갑을 열지 않고 계절이 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방에는 자주 입는 옷들을 걸어둘 행거, 한쪽 구석엔 옷 박스가 있기 마련이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침대 생활은 포기했다. 침대는 없어도 잠을 자려면 요와 이불은 필요한 법. 장롱이 없으니 이불을 보관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부피를 차지하는 침구류는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다.

고기동에서 이사한 동천동 아파트의 주방 사진. 지금 이 집에는 참쌤 식구가 살고 있다. 놀라운 인연이다~
한동안 나는 요가 매트 위에서 잠을 잤다. 등이 배기지 않게 이불을 접어 등에 대고 누우면 편안했다. 겨울에는 두꺼운 이불 대신 차렵이불을 겹쳐서 덮었다. 마침 불교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수행정진에 딱 맞는 소박한 잠자리가 연기적으로 갖춰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자의식에 취해 수년간 잠을 잔 덕에 지금은 딱딱하든 푹신하든 꿀잠 자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쇼파에서 주로 잡니다~)
가전제품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장만한 대형TV 외에는 늘리지 않았다. 살림살이들은 당시 상시로 있던 이어가게 득을 많이 봤다. 그리고 동천동 아파트 단지 몇 군데를 돌면 멀쩡한데 버려진 집기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짐을 줄이고 구입하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에 이번 이사 견적은 역대급으로 적은 양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견적서에는 5톤이라는 숫자가 낙제 점수처럼 적혀있었다.

파지사유 맞은 편에 있는 '카에스테틱' 자리가 예전에는 이어가게였다. 지금 양양집에 있는 주방 살림은 이어가게 출신이 많다.
십 년 동안 겨우 3톤 줄었다. 이사업체 사장님한테 5톤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사장님은 이사 견적은 속짐이 차지하는 양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5톤 견적도 이사 전까지 짐을 최대한 줄여야 장담할 수 있다고 하셨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집은 없어도 그만인 물건과 있어도 안 쓰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고기동 이사 이후 소비를 최소로 한다고 자신했건만 물건들은 요요현상으로 비운만큼 채워졌고, 장롱과 침대와 식탁만 없었지 그밖에 살림과 잡동사니들은 웬만한 잡화점을 하나 차리고도 남을 만큼 불어있었다.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남편과 성인인 아들들의 물건을 내 마음대로 정리할 수는 없으니, 내가 사 모은 것들을 정리할 수밖에. ‘아! 나는 공부도 많이 안 하면서 책이 왜 이렇게 많을까?’를 시작으로 책 정리를 했다. 책은 사서 최대한 깨끗이 보고 중고매장에서 되파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정리 대상은 소장 중이었던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애장 도서였지만 정작 소설과 시집은 필요하면 언제든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기에 정리가 생각보다 쉬웠다. 민음사VS문학동네, 박상영VS김연수, 최은영VS황정은, 김선우VS진은영… 밸런스 게임하 듯 정리했다.
누구의 책은 남았고, 누구의 책은 헐값에 팔렸다. 책 팔아서 아들이랑 파스타도 먹고 남편이랑 회전 초밥도 먹었다. 중고매장에 팔 수 없는 오래돼서 바래고, 밑줄이 많이 쳐진 책들은 버려야 했다. 분리수거장에 책을 내다 버리던 나에게 경비 아저씨는 말씀하셨다. “책은 머릿속에 다 넣으셨나요?” 그 말은 살면서 들은 뼈 때리는 말 중에 단연코 1등이다. 책장은 여덟 개에서 다섯 개로 줄었고 이삿짐은 무사히 5톤 트럭으로 옮겨졌다.
알아차림을 통한 미니멀리스트 되기
십 년 전 나는 늘 부족한 것만 생각했다. 그건 여분의 냉장고일 때도 있었고, 엔틱한 쇼파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손에 넣는 기쁨은 잠시였다. 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내게 부족한 것들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면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많이 물을 필요도 없다. 이미 필요한 건 거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를 앞두고 미니멀리즘을 다룬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미니멀한 소비를 부추기는 풀소유 미니멀리스트도 있었고, 텅 빈 집에 사는 극한의 미니멀리스트도 있었다. 나의 관심을 끄는 유투버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최소의 삶을 지향하는 경험이 깊어지면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나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비우고 미니멀한 소비를 즐기고 있었다. 즐겨 입지도 않는 코트를 당근으로 싸게 샀으니 소비 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나의 소비를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근을 삭제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게 있다. 하루에 세 가지 물건 정리하기! 가끔 남편도 동참하여 간헐적 정리를 한다. 별로 어렵지도 않다. 하루에 하나의 공간을 정해서 정리하면 된다. 싱크대 서랍, 베란다 선반, 화장실 수납장 등.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를 살피고 세 개를 정리한다. ‘정리한다’고 했지만 ‘버린다’일 때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물건에 미련을 두는지 알 수 있다(나는 빵끈과 유리병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실수로 다시 사는 일도 줄고, 필요할 때 잘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바빠서 정리할 시간이 없는 날은 지갑 속 영수증이나 필통에 안 쓰는 볼펜 등 무엇이라도 세 가지를 정리한다.
물건을 없애는 것도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도 내 삶의 맥락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알아차림의 과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소유해야 할 물건이나 해야 하는 일도 따라서 줄어들고 물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스트의 대열 맨 끝에 서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혼 50주년에는 여행 가방 하나에 나의 모든 짐을 다 담을 수 있기를.

산 속에 살면서 사는 데 필요한 게 별로 없다는 걸 자주 느낀다.
먹을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생각일 것이다.

도라지
현재 일리치약국 자매 브랜드인 '로이, 기쁨이되는차' 직원.
일주일의 반은 경기도, 반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란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자랑이다.

도라지샘의 글을 읽으면서 엊그제 읽었던 르귄의 단편집 <세상의 생일> 중 '고독'이란 작품의 주인공 '평온'이 떠올랐어요. 물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길 일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알아차림과 평온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ㅋ
우와 저의 이번달 글과 닿아 있네요.
전 정리보단 더 이상 물건 들이지 않기에 방점을....
일상을 찬찬히 살피고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들 잘 쓰며 살아야겠어요~~~
저도 결혼 21년 동안 7번 이사해서 많이 했다 생각했는데 도라지쌤에 비하니 약과네요..ㅎ
하루에 세 가지 물건 정리하기
저도 따라 해봐야겠어요. 전 뭘 잘 안 버려요ㅠㅠ
저도 항상 용달차를 목표삼고 있습니다.
ㅎㅎ
빵끈집착ᆢ 찌뽕
ㅠㅠ 맥시멀리스트인 저를 뜨끔하게 만느는 글이네요...집에 자잘한 소품들이 진짜 너무너무너무 많은데.. 너무 귀여운데 또.. 없앨수가 없는데요.. 저도 이제 진짜 정리를!! ㅋㅋㅋ 내년엔 저도 하루에 3개 버리기 도전해 보겠습니돠ㅎㅎㅎ
남편이 빵끈에 집착함....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