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내 소원은 초(등학교)졸(업) 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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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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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러면서도 푸쉬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은근슬쩍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지막엔 ‘뭐 가기 싫으면 가지 마.’라며 퇴로도 만들어준다. 2주 전부터 이어온 물밑 작전에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감자의 모습이 심상찮다. 이제껏 떼쓰면서 드러눕는 행태가 아닌…. 뭐랄까 정말 낙심한 듯한 모습. “엄마 정말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안 생겨요….” 마음이 약해진다.

 

 

  어린 시절의 나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 했던 아이였다. 모범생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닌, 적당히 말 잘 듣고, 적당히 공부하다 졸고,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몰려가 간식을 사 먹던 그저 그런 평범하고도 평범한 아이. 공부하기 싫었지만 늘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아파도 학교를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다른 삶의 루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특한 아이를 키우면서, 유치원 때부터 한 번도 편하게 교육기관에 가지 못하는 감자를 보면서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학교, 정말로 가야 할까.

 

 

  어린이집 시절부터 겨우 출석 일수 만 채울 정도로 힘들게 기관을 다닌 감자는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늘 혼자 책을 읽거나, 중얼거리거나, 알 수 없는 문자를 만들어내는 아이. 그게 감자였다. 수업도 지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도 안 들어오고, 쉬는 시간에 같이 놀 친구도 없이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있는 게 과연 감자의 삶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학교를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학업도 친구 관계도 아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을 이 아이가 알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자기의 관심사 말고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감자는 어릴 때 그 흔한 명작동화 한 장 읽지 않았다. 신데렐라와 백설 공주를 과연 알까. 이솝 우화를 알기는 할까. 그런 것이 걱정이었다. 나는 감자가 분수를 소수 계산을 모르는 게 걱정인 게 아니라, 블랙핑크를, 유재석을 모를까 봐서 걱정이다.

 

 

  대망의 개학 첫날. 감자는 아침부터 학교 가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나는 오랜만에 같이 등교를 하기로 했다. 아직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핀으로 틀어 올리고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감자와 집을 나섰다. 5학년이지만 이미 내 키를 넘어서선 감자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이미 조금 늦은 시간이라 거리에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한 학교는 적막했다. 나는 다 큰 감자의 손을 잡고 1학년 학부모가 된 기분으로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까지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해서 5층까지 같이 올라갔다. 교실 앞. 한 발짝 떼고, 한 발짝을 주저하며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는 감자는 정말로 두려워 보였다. 벌벌 떠는 사이 5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오셨다. 얼떨결에 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천천히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자의 긴장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겨우 뒷문까지 갔는데, 문을 쾅쾅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나 여기 왔소. 그러나 들어가지는 못하겠소’를 전교에 알렸다. 아호. 부끄러웠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 지켜보고 기다려주자 마지못해 교실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려왔는데 띠링 문자가 온다. ‘저 학교에 있는데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엄마는 이제 저를 포기했나요?’

 

 

 

  아. 오늘은 실패다. 아직도 감자를 전혀 포기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그냥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 사이 1교시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 정말 힘들다. 이 많은 아이 사이에서 혼자가 된 기분. 저 멀리 담임 선생님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감자의 모습이 보였다. 막상 내려오자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감자. 하지만 이때는 단호해야 한다.

 “학교는 가야 하는 거고, 혹시 힘들면 안 갈 수도 있지만 네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야. 선생님도 수업 들어가셔야 하는데 이만 가자.”

  억지로 돌려보내면 다시 교실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감자를 데리고 나왔다. 감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묻는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나를 사랑하나요?”

 “어떤 일을 해도 감자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어. 그건 사실이야.”

  긴장해서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푸식 하고 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생님이 엄격해 보이지 않던데요? 내일은 학교를 한 번 가볼까요?”

 

 

  하지만 다음날. 분명 기분좋게 등교했는데, 학교가 마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감자를 어느 정도로 제어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감자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려서 집에 들어왔다. 씩씩거리면서 이 겨울에 땀까지 흘리면서 분노했다. 그리고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고, 나쁜 아이가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내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고. 조그만 일이었는데 너무 크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물러서 감자를 더 힘들게 했을까. 감자는 컸는데 내가 보는 눈은 유치원생에 머물러 있는 걸까. 하면 안 되는 것을 좀 더 단호하게 해야 했나. 선생님께 연락해서 3일은 학교를 안 보내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제껏 학교를 빠지는 날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때는 감자가 힘들어해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감자가 쉬는 게 아니라 학교가 못 오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3일을 아주 심심하게 아무런 놀이감도 던져주지 않고, 혼자 집에 두었다. 일하다가 집에 가서 점심만 차려주고 왔다. 퇴근해서 보니 책을 산더미 같이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찬장을 뒤져서 과자를 먹고, 김을 까먹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흔적들이 보였다. 잘 있었구나. 학교에 안 가는 감자는 편안해 보였다. 그래, 학교를 정말 다니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먹고 물어봤다.

 

 “그래서 학교를 때려칠꺼야? 정말 혼자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겠어?”

 “아니요. 엄마. 월요일에는 학교에 갈래요. 혼자 있으니까 심심한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는 감자를 보니,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자란걸까 싶었다. 키만 큰 어린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껏 나는 감자를 자라지 못한 아이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건 똑같지만 들여다보니, 그건 자라난 사회성에 대한 부대낌이었다. 관심이 없어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이제야 조금 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힘든것. 하고 싶은 데 잘 되지 않아서 분노하는 마음이 그것이었다. 이제는 내 눈치도 보고, 선생님 눈치도 보고, 친구들의 눈치도 보는 아이. 그러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아이. 이건 좋은 부대낌이야.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감자가 학교에서 제일 힘든 3가지, 수업시간에 의미없는 말을 계속 내뱉고, 양말을 벗고 발을 만지작 거리며, 식사를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것. 정말 정말 오랫동안 배우고 있는 부분인데도 잘 안된다. 그럼 어떡해. 또 해야지.

 

 “감자야 손가락과 발가락은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금지된 만남이야. 이제부터 손과 발이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서로 만나는 건 없는거다?”

 

  ‘빰빠라 빠빠 빰빠빠빠’ 그 옛날 주얼리의 노래에 맞춰 발가락에 손가락을 끼우는 모습을 재연했다. ‘노 베이비 원모어 타임’ 예쓰! 이해했다. 이제 손과 발은 만날 수 없어! 밥 먹고 난 후 뒷처리 부분은 미흡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김치를 워낙 좋아해서 산더미 같이 김치를 먹다보니 입술 주변이 벌겋다. 밥 먹고는 무조건 거울보고 입 닦기. 이건 지속적으로 지적하면 가능할 거 같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난관인데... 수업시간에 소리지르지 않기. 이건 정말 무의식의 치원이여서 어렵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생각에만 그치는데 반해, 감자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밖으로 나온다. 계속 지적하면 더 불안해서 소리가 더 많아지는 악순환. 약물 복용도 해보고, 인지, 언어 치료도 하고 있지만 다들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불교공부가 생각났다.

 

 “엄마가 요새 불교 공부를 하거든, 거기서 명상을 함께 하는데, 명상의 기본이 알아차림이래. 감자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그 마음이 들 때마다 한 번 멈춰보는 건 어떨까? 당연히 소리가 또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멈춰보는거야. 그러다보면 소리를 내기도 전에 멈추는 마음이 든대.”

 

  이게 될까. 나도 어려운데. 하지만 나 역시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서 생각이 한정되니까 이게 최선이다. 걱정과는 달리 바로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감자가 4교시까지 정말 소리도 안내고 수업 참여도 잘 했어요(희) 그런데 5교시가 되자 진단평가 채점지를 받았는데... (비) ”

 

  아. 그랬구나.. (알아차림) 감자가 잘 했다가(알아차림), 또 흐트러졌구나.(알아차림) 역시 감자는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다! 이렇게까지 일상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다니. 우리 같이 잘 해보자!

 

 

 

 

모로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댓글 13
  • 2024-03-25 11:03

    좋은 부대낌!! 이걸 알아차리기까지 모로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좋은 부대낌이니 또 기대해봅시다~

  • 2024-03-25 11:16

    나는 엄마 때문에 득도할 지도 모르고 그대는 감자 때문에 깨달을지도 몰라^^

  • 2024-03-25 11:56

    모로, 모로님, 감자, 감자님...
    그대들이 나의 스승입니다,진정!

  • 2024-03-25 15:52

    와 알아차림을 바로 실천하는 감자라니요! 감자 너무 기특한데요!
    알아차림이 그렇지요. 알아차렸다가도 순간 방심한 사이 놓치고... 그러다 다시 생각이 나 알아차리고...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로바로 실천해보는 감자~~
    감자가 저보다 낫군용ㅋㅋㅋㅋ

  • 2024-03-25 17:07

    학교 가기 싫어 현관 앞에 드러누운 감자는 반항하는 감자인가요?
    저희 작은 아들 사진인 줄... 저도 저런 사진 여러 장... 모로네 감자보다 아주 왕감자! ㅎㅎ
    곧 지나갈 시간들입니다.
    같이 공부와 알아차림 속에서 죽도 밥도 지으며 지나가봅시다!
    도처에 우리를 공부시키는 부처님들이 어찌나 많은지요! 공부가 끝이 없습니다요~^^ 우리 같이 화이팅!

  • 2024-03-26 08:12

    나를 공부시키려고 태어난 존재..좋네요.
    전생의 인연이 깊고깊어 이생에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서로 배움을 주는 관계라..자식을 가져본 경험이 없어 어떤 감정인지 상상과 이입만으로 다 알수가 없지만 좀 부럽네요. ㅎㅎ
    앞으로도 둘의 지지고 볶고 또 맛나게 먹는 관계의 이야기가 기대되요~~~^^

  • 2024-03-26 09:23

    자식은 늘 나를 공부시키죠
    감자가 사회인이 되느라 부대끼고 있는 중이네요
    감자의 알아차림
    모로의 알아차림
    모두 화이팅!!!

  • 2024-03-26 09:27

    유재석. 블핑. 뉴진스. 게임 용어. 축구팀. 선수들.
    이런거에 전혀 관심없는 애들 은근 꽤 있어요.

    꼭 알려주고 싶어서리....

    • 2024-03-26 14:55

      맞아요! 울집에도 있어요^^ 이런거 몰라도 생각보다 그렇게 큰일은 없는듯

  • 2024-03-26 12:01

    언젠가는 감자의 취향을 이해하는 친구도 선생님도 생기겠죠? 감자에게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질테니!

  • 2024-03-31 00:10

    감자 홧팅!!! 이번주 감자랑 한 듀오링고 프렌즈퀘스트 성공!

  • 2024-04-01 12:50

    감자도 모로도 홧팅~!!
    알아차림을 바로 쓸 줄이야~~!!

  • 2024-04-18 02:10

    샘 글 너무 좋아유 ㅠㅠ 감자 생각하면서 저도 초등학교 때 애들끼리 기싸움, 서열싸움 때문에 학교 다니는 거 진짜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이제는 학교를 안가도 되서 너무 기뻐요.

스프링의 실화극장
  글, 다시 읽다   한 해가 다 갔다.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지만, 그 시간들을 나누어 이름 붙이고 의미 부여를 한다. 1년 365일을 기준으로 한 이정표는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을 반추하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배려의 글쓰기 연재도 어느새 끝에 다다라 벌써 마지막 글이다. 연재의 마지막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으면 했다. 얼마쯤은 예상되는 뻔함과 살짝쿵 서프라이즈.   마지막 글 하면 예상되는 그 뻔함이 있지 않는가? 그간의 소회를 적당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밝은 내일을 희망하는. 살짝쿵 서프라이즈로는 댓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댓글 남겨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의리로 단 댓글들도 고맙다. 행간에서 댓글러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쉽게 써지지 않는 댓글로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들이 꽤 있었으리라. 간혹 오다가다 마주치는 분들이 면전에서 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다. 잘 봤다고. 재밌었다고. 하긴 뭐 코앞에서 나쁜 말을 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일부러 해줄 때는, 역시 고맙다. 읽어봐 주고, 계속 쓰라고 힘을 주니까.   글을 올린 직후에는 예상 밖의 댓글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때는 ’글이 곧 나‘라는 강한 이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줄기와는 다른 부분에서 반응을 하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예상 밖의 댓글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해서 코멘트하려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글도 거기 달린 댓글처럼 거리감이 생긴 시점에 다시 읽어보니, 예상 밖의 댓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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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2025.12.30 | 조회 278
아스퍼거는 귀여워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엄마, 제 생각에는 자폐 때문에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감자는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뭔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왜 그래? 뭐가 잘 안 돼?” “엄마, 안 하고 싶은데 자꾸 행동이 조절이 안 돼요.”   몇 개월 전에 감자에게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지행동치료를 마무리하기 전에 전문가 선생님과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 등 눈에 보이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안경을 쓰고, 키가 크고 작은 것처럼 여타 ‘다른’ 점 중 하나임을,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틀린 것’은 아님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특징으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된 흥미와 관심사, 반복적인 행동 패턴 등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내용을 적은 종이를 감자에게 보여줬다.   “감자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네, 좀 비슷한 거 같은데요?”   글을 읽어보던 감자는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감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감자가 그리는 ‘독특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자는 상처받지 않았을까.   “오늘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했어?” “선생님이 제가 자폐가 있어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래요.”   응? 이렇게 단순화해서 받아들일 내용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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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5 | 조회 365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그들은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지난달 영화 두 편을 연이어 보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서울 남부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가 주최한 열린 영화제에서 상영한 <3학년 2학기>였고, 다른 하나는 주변 선생님들의 좋다는 후일담이 넘쳐나서, 또 자주 보는 유튜브에서 칭찬 일색이어서 ‘영화 보고 싶다는 아주 드문 욕구’를 들게 한 <세계의 주인>이었다. 두 영화 모두 긴 여운을 남겼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달 오프닝으로까지 남기게 되었다.       두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들은 성민과 해인이었다. 둘 다 주인공이 아니다. 심지어 둘은 대사도 분량도 얼마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 때문이다. <3학년 2학기>에서 성민은 주인공 창우와 동갑이지만 먼저 현장실습을 해오던 선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현장실습을 해오며 세상을 배우고 기술도 배워 병역특례에 전문대 입학까지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노력의 결실을 따기 직전에 동료의 죽음과 동료의 사고에 대해 노무사에게 말했다. 성민의 ‘참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영화를 다 본 후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의 GV, 주인공 창우역의 유이하배우와 한 컷~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의 동생인 해인이는 그냥 밝고 명랑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마술사 공연을 하는 날, 가족들의 응원과 칭찬을 받고 싶은 그런 아이. 하지만, 해인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가족들이 각자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
김윤경~단순삶
2025.12.20 | 조회 324
산골짝에 도라지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도라지
2025.12.09 | 조회 271
스프링의 실화극장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도서관과의 인연   도서관과 관련된 나의 인연의 경로는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깊지만, 도서관학과를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고3때 반장의 언니가 도서관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마디에 혹해서 지원을 했다. 진학하고 나서는 섣부른 선택을 많이 후회했다. 공부가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도 졸업하면 나오는 자격증으로 지금까지 먹고 사니 고맙긴 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진출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냥 돈만 벌 것인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의 지리산 종주를 계기로 서울의 한 지역에 주민 도서실을 만들었다. 전공자들이 만든 최초의 도서관이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과 지리산을 가지 않았더라면, 하산 길을 다른 곳으로 잡았다면 주민 도서실은 나와 인연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야학의 방 한 칸으로 시작한 ‘도서실’이 규모가 커지면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동네는 이제 옛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서관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아직 지역에 남아 있다. 운영비 마련의 어려움으로 오늘내일 하면서도 근 4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1년 후에 공공 도서관 사서가 됐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다. 정독 도서관이나 남산, 종로, 용산 도서관 등 시립 도서관 몇 곳이 있었고, 그나마도 학생들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을 다니는 정규직이 대부분일 때였다. 낮에는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스프링
2025.11.30 |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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