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방석에 앉아 호흡할 수만 있다면

도라지
2024-03-10 23:01
327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앉아 대략 한 시간 정도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매일 명상하지는 못한다. 지난 여름에는 제법 매일 했는데 겨울이 되면서 날이 늦게 밝으니 눈 뜨는 시간도 덩달아 늦어졌다. 하루 일정에 따라 일찍 집에서 나서야 하는 날은 명상을 못하거나 하더라도 30~40분 정도로 짧게 한다. ‘꼭 해야 한다!’라는 강박은 없지만 마음 같아서는 명상을 매일 하고싶다. 명상을 매일 하고 싶지만 매일 하지 못하는 나의 명상 생활은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명상에 대해 한동안 냉담자로 지낸 시절이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으로 잘 알려진 ‘위빠사나’는 명상자가 명상 중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을 알아차리도록 한다. 주의할 점은 알아차린 것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것. 아무 생각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산만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지켜보는 것만 가능해도 평온을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쉽지 않다는 것을.

 

눈을 감고 앉아서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감각들에 가드를 치는 순간 가라앉아 잘 의식되지 않던 무의식 속의 이미지들은 개연성 없이 튀어 오르기 시작한다.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내던 친구의 얼굴이 불쑥 보여 어이가 없는가 하면, 전날 본 드라마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속으로만 몰래 곱씹던 부끄러운 망상들은 시끄럽게 귀를 때리고, 써야 할 글의 명문장은 때마침 떠올라 마음을 안달나게 한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던 때 명상이 무슨 비의적인 행위도 아니건만 명상을 통해 금방이라도 피안을 경험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만큼 명상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참을성도 집중력도 약한 나는 눈을 감으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이미지와 소리들 때문에 금방 혼란에 빠졌다. 지각되는 이미지들에 판단이 들러붙어 맥락 없는 망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호흡에 숫자를 붙여보았지만 서넛까지만 세어도 마음은 자꾸 딴 데로 달아났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릎관절에도 안 좋을 것 같은 이 명상이란 것을 계속해야 하나? 그래야지만 불교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걸까? 알아차림을 하고 못 하고는 나중 문제. 한마디로 ‘명상 부정기’를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요요쌤께 용기 내어 물었다. “쌤~ 저는 명상이 너무 힘들어요. 눈만 감으면 시끄럽게 나타나는 망상들도, 그걸 지켜보는 것도 힘들어요. 이렇게 힘든 걸 계속해야 하나요? 그리고 무릎도 많이 아파요.” 요요쌤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하지마!”

 

이것은 요요쌤의 공부 공력이 낳은 대답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서 일어나는 연기(緣起)를 보셨나? 확신컨대 쌤은 본인이 그런 대답을 하신 것도 기억 못 하실 거다. 이날의 선문답 같은 대화 이후 나는 명상을 속 시원하게 그만두었다. 명상에 미련 두고 명상 방석에 앉아 몸을 뒤트는 것보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운동화를 신고 나가 탄천을 걸었다. 하루에 만 보는 기본으로 걸었다. 걷는 것으로 부족하면 돌아와 적당량의 술을 마셨다. 그때는 그걸로 충분했다.

 

 

 

 

 

 

방석의 힘?

 

친정 엄마의 유방암 수술, 뇌경색을 앓던 아빠의 알츠하이머, 작은 아이의 공황 증세와 고등학교 자퇴. 줄줄이 한 해에 일어나고 악화되었다. 나와 내 가족이 운이 없다거나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생긴 일도 아니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질만해서 벌어졌다. 하지만 아픈 엄마 아빠를 돌봐 드릴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은 억울함과 원망에 시달렸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내 잘못 같아 미안하면서 두려웠다. 매일 만 보, 만 오천 보 닥치는 대로 걸었다. 덩달아 술도 점점 늘었다. 그러나 걷는 순간과 잠깐 취해 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돌아와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 즈음 봉옥쌤이 정토회에서 쓰시던 절 방석을 문탁에서 나눔 하셨는데 나는 그 방석을 네 개 얻어왔다. 방석을 동천동 집에 하나 나머지는 양양 집에 가져다 놓았다. 방석이 날 부른 것인지 내가 방석을 부른 것인지 봉옥쌤의 공덕이신지. 푹신한 절 방석에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면서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지켜보았다. 이후로 방석이 눈에 크게 들어오는 날이면 명상을 했다. 그렇게 명상 횟수를 점점 늘려갔다.

 

 

아무리 걷고 술을 퍼마셔도 잘 풀리지 않던 복잡한 마음들이 방석 위에서 호흡을 지켜보고 널뛰는 마음을 관찰하는 동안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억울함에 화나 있고 두려움에 우울해지곤 하던 마음을 나로 동일시하던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알아차림’하면서 내가 그 감정들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끔씩은 방석에 앉아 명상을 핑계로 편히 혼침을 즐길 때도 있었는데 그 시간도 지나고 보니 소중한 휴식이었다. 명상을 한다고 고민이 해결되거나 처한 상황이 달라지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잠시 은둔하여 나를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변화하고 있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유방암 수술 후 절제한 한쪽 가슴 때문에 왼팔을 못 쓰시던 엄마는 세월을 약으로 많이 나아지고 계시다.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작은 아이는 약을 한 보따리 챙겨 군에 갔어도 군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어제의 괴로움이 오늘은 덜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은 밉던 이가 내일은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간절히 바라던 지난날의 소망이 지금은 기억에도 없을 수 있다는 걸. 이렇게 한순간도 변화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자주 알아차린다. 알아차리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무상한 것들에 대한 바램과 집착이 줄어드니 괴로움의 원인들 또한 조금씩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가끔 ‘나 좀 잘 살고 있는 듯!’ 이런 망상도 알아차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만족스러운 삶은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명상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훈련법. 살아있는 한 나를 떠나지 않는 호흡과 방석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도라지

 

현재 일리치약국 자매 브랜드인  '로이, 기쁨이되는차' 직원.

일주일의 반은 경기도, 반은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란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자랑이다.

차 마시기, 요리하기, 빵 굽기, 텃밭 가꾸기, 걷기, 바느질하기, 명상하기, 술 마시기,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가끔 책도 읽는다.

 

댓글 15
  • 2024-03-11 08:45

    "일상에서 잠시 은둔하여 나를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변화하고 있음을 경험"
    : 요 문장이 눈에 쏙^^ 일상의 은둔일 수 있겠습니다요 명상이^^

  • 2024-03-11 08:46

    나마스떼!

    나마스떼소.jpg

  • 2024-03-11 09:00

    초등학생때 명상의 시간~재미있네요.
    그때 뭔지는 몰랐어도 왠지 혈기왕성한 어린친구들에게 멈춤의 시간이었을듯요~ㅎ

  • 2024-03-11 09:01

    저도 봉옥샘의 나눔으로 절방석 하나 얻어왔었는데 명상을 하려면 두 개가 필요했던 것이군요. 우째 자세가 불안정하더니만… ㅋ
    덕분에 저도 절방석에 앉아 명상하고 있습니다. 잘 되진 않지만요. ^^

  • 2024-03-11 09:05

    라지쌤의 명상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명상을 시작해야하는데 워낙 많이 좌절(?)하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한 터라 이번엔 쉽게 앉아지지가 않네요. 도라지쌤 처럼 일상의 루틴을 명상을 통해 가져가고 싶네요.
    그나저나 양양 명상방인가요? 뷰가 너무 좋아요!!

  • 2024-03-11 09:10

    양양의 저 방에 -게다가 '그' 방석에 앉으면 앉아만 있어도 풍성한 명상의 시간이 될 듯...
    "일상명상, 어렵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도라지님의 목소리와 미소가 담긴 글이네요^^

  • 2024-03-11 09:28

    방석깔고 앉아봐야겠어요~ㅎㅎ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3-11 09:41

    도라지샘의 명상경력이 ㅎ 어쩐지 ㅋ
    저도 봉옥샘방석덕을 많이 보고있답니다
    저는 아마도 방석이 저를 부른것같아요^^

  • 2024-03-11 09:44

    저 창문에, 그 방석에, 따뜻한 햇살이란. .
    잠자기. . 아니, 명상하기 좋은. .
    가서 앉아보고 싶게 만드네요!!! 방에 방석 하나 뒀을 뿐인데~ㅎㅎ

  • 2024-03-11 10:04

    '써야할 글의 명문장은 때마침 떠올라 나를 안달나게 한다' ㅎㅎㅎ

    저는 잠을 자려고 명상(?)을 이용한 적은 많지만 '정식' 명상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ᆢ 도라지님의 글을 보니, 아! 마음이 뭔가 꿈틀!했어요.
    명상일지, 좋아요^^

  • 2024-03-11 10:37

    조용조용한 도라지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네..... 다들 그렇겠지? 어마어마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네.

  • 2024-03-11 21:54

    아... 저도 봉옥샘 방석을 두개나
    거기에 요요샘 방석까지 탐을 내었으니,
    저도 방석의 불음에 응해야하나 보네요....

  • 2024-03-13 15:24

    농경영체 등록을 한 양양군 농민이셨군요! 넘 멋져요!!^^
    명상 글로 만나는 도라지샘이 반갑고 새롭고 뭉클하고...
    어제 오랜만에 방석 위에 앉으니까 좋더라고요.
    꾸벅 꾸벅 졸았지만.. 혼침이 밀려왔지만.. 샘들 사이에 껴있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2024-03-16 11:08

    우리 언제 명상말고 한잔 합시다.
    방석깔고. 서로 위로 하면서.
    콜?

  • 2024-03-17 11:02

    앗 저랑 비슷한 시기에 거의 근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셌군요.
    저도 국민학교 시절 오전 오후반 거의 70명은 됐던거 같은데.. 73 74 75가 진정한 베이비부머세대라니까요.

    "만족스러운 삶은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명상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훈련법. 살아있는 한 나를 떠나지 않는 호흡과 방석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마지막 글이 좋아요.
    전 공부로 만족스런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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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190
기린의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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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 조회 218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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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21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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