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명상에 빠지다

오영
2024-02-1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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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밍아웃

 

명상에 빠졌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이든 이렇게 대놓고 덕심을 드러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은밀하게 빠졌다가 시들해져서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곤 했다. 무언가를 오래 꾸준히 좋아하기에는 열정이나 에너지가 늘 부족했다. 그런 내가 명상에 대한 덕심을 표출하며 더 많은 친구들을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연 혹은 필연

 

문탁에서 주로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불교는 관심 밖이었다. 명상도 요가를 마무리하는 한 과정이나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요가 니드라 정도를 해봤을 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불교와 명상’이 어느 순간 덕질의 대상이 될 줄이야. 그것도 이 둘이 별개가 아닌,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완전체로 말이다.

 

처음 불교 명상을 만난 날의 기억이 2021년 1월 4일자 일기에 남아 있다. 바로 그 전날 문탁네트워크의 마지막 운영회의가 있었다. 그날, 2 년 여에 걸친 분리 논의가 마침내 종결됐다. 몇 달간 그 최종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난 그 논의 과정에 집중하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빨리 벗어 나고만 싶었다. 다들 공동체의 분리를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전환점이자 출발점으로 삼아 애쓰고 있는데 난 여전히 쿠키무이 사업을 정리한 후 그 감정적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바라던 후련함보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이 더해져서 당혹스러웠다.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때때로 템플스테이를 떠올리곤 했다. 고즈넉한 산사에 머무는 동안 저절로 머릿속은 말끔히 비워지고 헛헛한 마음은 채워질 것만 같았다. 그날도 템플스테이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문득 ‘초기불교 명상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땐 배경 지식이 없어서 ‘초기 불교’와 ‘명상법’, 이 둘의 조합이 무척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초기 불교가 어떤 것인지, 기존 불교와는 어떻게 다른지, 초기 불교의 명상은 선(禪)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둘러보다가 한 법문 영상에 딱 꽂히고 말았다.

 

그 법문에 따르면 아무리 멋진 여행지에, 좋은 경치라도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하물며 복잡한 거리를 이리저리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면 당연히 지치고 괴롭지 않겠는가. 근데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그건 원하는 것을 잡으려 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싫은 것을 피해 도망가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무료한 느낌에서 벗어나 더 강한 느낌을 찾느라 그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그러고 있는 줄도, 그래서 지치고 힘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멈추고 쉴 줄도 모른다. 그래서 더 괴롭다. 그 순간 양동이 가득 얼음 물이, 머리 위로 쏟아진 것 같았다. 아, 지금 내가 그러고 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쿠키무이 사업이 끝난 후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했지만 매일 매일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었다. 그건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미 지난 일들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사업 정리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았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원망과 자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생겨난 망상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직시하는 순간, 캄캄한 어둠 속에서 EXIT→이라는 선명한 불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숨통이 좀 트였다. 그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명상이 주는 선물

 

드디어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 없던 출구를 찾았다는 희망, 기쁨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이제 시작일 뿐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명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15분, 20분 그저 눈을 감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때 명상은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고 편안한 좋은 친구와도 같았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가야 할 방향은 알지만 먼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지도도, 나침반도, 변변한 장비도 갖추지 못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이드도, 동료도 없으니 종종 길을 잃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2023년 불교 학교에서 초기 불교와 명상에 대해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선뜻 용기 내기가 어려웠다. 시간도, 돈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다 딱 일 년만 무진장*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공부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괜한 욕심에 여러 친구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자의식이 일어나곤 했다. 도움은 도움대로 받으면서 이 불편한 마음까지 피하려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떨쳐버렸다. 그래도 때때로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다 여름 학기부터 세미나 회원들과 명상 수행을 함께 하고 일지를 공유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3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작년 이맘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무진장에 대한 마음의 변화, 태도의 변화는 그 모든 변화들을 함축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민폐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았다.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 덕분에 배우고 경험한 것들에 온전히 감사하고 기뻐하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로 가장 행복해진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 모두 붓다의 가르침과 명상 덕분이다. 명상을 통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습관적인 생각, 그리고 망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명상이 특별한 신비 체험이라서가 아니다. 일상에서는 수많은 자극들에 가려 알아차리기 힘든 마음의 움직임, 그 변화의 흐름이 명상 중에는 고스란히,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나는 마음을 단지 알아차리고 관찰하기만 할 뿐이지만 일상에도 차츰 스며들어 저절로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다. 명상을 통해 달라진 이런 변화들을 일상에서 알아차릴 때마다 그저 놀랍다.

 

많은 경우 내가 경험하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내 것, 내 느낌,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의지나 노력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친구라고 명상을 소개하는 순간, 그 특별함이 오히려 빛을 잃고 초라해질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두려움 역시 소중한 내 것,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착각과 집착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순간 사라진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변화이므로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을 알지만 그렇다 해도 똑같은 경험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다. 모든 변화는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언제나 전혀 새로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번 명상을 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되고 설렌다. 그리고 매일 매일 그런 변화의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몸과 마음에 온전히 새겨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명상은 늘 내게 그 어떤 조건에서도 마음을 멈추고 고요함과 평온, 그로 인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앞으로도 그 기쁨이 에너지가 되는 한 이 덕심이 사그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무진장 : 문탁 회원들이 출자해 만든 한 통장의 공동 창고로 상호 부조와 재분배의 원리로 운영된다. 어려움에 처한 회원들을 필요에 따라 긴급한 생활 자금이나 기본 소득의 개념인 마중물로 지원하고 있다.

 

     

 

  오영 

  작년에 불교공부와 명상을 시작하면서 서두르지 않는 삶, 천천히 읽고 쓰며 명상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더불어 올 한해 명상동아리 활동으로 조금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명상하기를 소망한다.

댓글 8
  • 2024-02-12 08:43

    덕심 ㅋ
    난 덕질을 평생 못할줄 알았는데 오영샘 글을 읽으니 이것도 덕질일수 있군요 ㅎ
    명상에 대한 저의 변화도 참 어마어마하네요 지난1년간 ^^
    친구들과 함께 명상하기 올해도 좋은 한해가 될듯요~

  • 2024-02-12 18:37

    오영쌤이 다른 데 안 빠지고 명상에 빠져서 얼마나 다행인지요!ㅎㅎ

    어떤 장비도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숨쉴 줄만 알면 할 수 있는 명상은 참 신기하고 매력이 넘쳐요. ^^
    오영쌤이랑 오래오래 함께 명상하고 싶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2024-02-13 09:35

    명상으로 일상을 보살피는 힘을 키울 수 있군요~명상 멋지네요~

  • 2024-02-13 10:21

    오영님의 글 읽으니 좋네요~~

  • 2024-02-13 10:23

    오영샘과 명상이라.
    이건 요요샘과 명상, 도라지와 명상...과는 좀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요요샘과 도라지는 본투비 명상러일것 같은디, 오영샘은 뭐랄까...결이 좀 다르다랄까...ㅋㅋ
    요요샘이나 도라지과가 아닌 저는, 그래서 오영샘의 명상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잘 읽었고 앞으로도 잘 읽을게유^^

  • 2024-02-13 10:53

    명상을 덕질하다니요! 신선한 조합입니다.
    저도 올해 같이.. 빠질 수 있기를요!!

  • 2024-02-21 08:07

    덕밍아웃 좋아요~
    근데 덕질이 명상이라뉘 더할나위 없이 좋네요.
    전 무릎이 시원치않아 명상은 패슈...ㅎㅎㅎㅎㅎ

  • 2024-02-27 23:01

    매일 매일 명상하고 일지쓰고, 명상에세이까지 쓰는 오영샘 옆에서 많이 배워야지..
    올해도 함께 공부할 수 있어 기쁩니다^^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남어진
2024.05.10 | 조회 177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64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310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8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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