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명상에 빠지다
오영
2024-02-11 05:22
400
덕밍아웃
명상에 빠졌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이든 이렇게 대놓고 덕심을 드러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은밀하게 빠졌다가 시들해져서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곤 했다. 무언가를 오래 꾸준히 좋아하기에는 열정이나 에너지가 늘 부족했다. 그런 내가 명상에 대한 덕심을 표출하며 더 많은 친구들을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연 혹은 필연
문탁에서 주로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불교는 관심 밖이었다. 명상도 요가를 마무리하는 한 과정이나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요가 니드라 정도를 해봤을 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 ‘불교와 명상’이 어느 순간 덕질의 대상이 될 줄이야. 그것도 이 둘이 별개가 아닌,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완전체로 말이다.
처음 불교 명상을 만난 날의 기억이 2021년 1월 4일자 일기에 남아 있다. 바로 그 전날 문탁네트워크의 마지막 운영회의가 있었다. 그날, 2 년 여에 걸친 분리 논의가 마침내 종결됐다. 몇 달간 그 최종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난 그 논의 과정에 집중하지 못한 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빨리 벗어 나고만 싶었다. 다들 공동체의 분리를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전환점이자 출발점으로 삼아 애쓰고 있는데 난 여전히 쿠키무이 사업을 정리한 후 그 감정적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바라던 후련함보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이 더해져서 당혹스러웠다.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때때로 템플스테이를 떠올리곤 했다. 고즈넉한 산사에 머무는 동안 저절로 머릿속은 말끔히 비워지고 헛헛한 마음은 채워질 것만 같았다. 그날도 템플스테이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문득 ‘초기불교 명상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땐 배경 지식이 없어서 ‘초기 불교’와 ‘명상법’, 이 둘의 조합이 무척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초기 불교가 어떤 것인지, 기존 불교와는 어떻게 다른지, 초기 불교의 명상은 선(禪)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호기심에 이끌려 둘러보다가 한 법문 영상에 딱 꽂히고 말았다.
그 법문에 따르면 아무리 멋진 여행지에, 좋은 경치라도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하물며 복잡한 거리를 이리저리 쉬지 않고 돌아다닌다면 당연히 지치고 괴롭지 않겠는가. 근데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그건 원하는 것을 잡으려 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싫은 것을 피해 도망가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무료한 느낌에서 벗어나 더 강한 느낌을 찾느라 그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그러고 있는 줄도, 그래서 지치고 힘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멈추고 쉴 줄도 모른다. 그래서 더 괴롭다. 그 순간 양동이 가득 얼음 물이, 머리 위로 쏟아진 것 같았다. 아, 지금 내가 그러고 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쿠키무이 사업이 끝난 후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했지만 매일 매일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지치고 힘들었다. 그건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미 지난 일들을 끊임없이 복기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사업 정리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았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원망과 자책,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생겨난 망상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직시하는 순간, 캄캄한 어둠 속에서 EXIT→이라는 선명한 불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숨통이 좀 트였다. 그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명상이 주는 선물
드디어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 없던 출구를 찾았다는 희망, 기쁨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이제 시작일 뿐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명상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15분, 20분 그저 눈을 감고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때 명상은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고 편안한 좋은 친구와도 같았다. 하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가야 할 방향은 알지만 먼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지도도, 나침반도, 변변한 장비도 갖추지 못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이드도, 동료도 없으니 종종 길을 잃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2023년 불교 학교에서 초기 불교와 명상에 대해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선뜻 용기 내기가 어려웠다. 시간도, 돈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다 딱 일 년만 무진장*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공부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괜한 욕심에 여러 친구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자의식이 일어나곤 했다. 도움은 도움대로 받으면서 이 불편한 마음까지 피하려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떨쳐버렸다. 그래도 때때로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다 여름 학기부터 세미나 회원들과 명상 수행을 함께 하고 일지를 공유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3년을 보내고 돌아보니, 작년 이맘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무진장에 대한 마음의 변화, 태도의 변화는 그 모든 변화들을 함축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민폐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았다.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 덕분에 배우고 경험한 것들에 온전히 감사하고 기뻐하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로 가장 행복해진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 모두 붓다의 가르침과 명상 덕분이다. 명상을 통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습관적인 생각, 그리고 망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명상이 특별한 신비 체험이라서가 아니다. 일상에서는 수많은 자극들에 가려 알아차리기 힘든 마음의 움직임, 그 변화의 흐름이 명상 중에는 고스란히,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나는 마음을 단지 알아차리고 관찰하기만 할 뿐이지만 일상에도 차츰 스며들어 저절로 마음의 태도가 달라진다. 명상을 통해 달라진 이런 변화들을 일상에서 알아차릴 때마다 그저 놀랍다.
많은 경우 내가 경험하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자아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내 것, 내 느낌, 내 생각’에 대한 집착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의지나 노력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특별한 친구라고 명상을 소개하는 순간, 그 특별함이 오히려 빛을 잃고 초라해질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두려움 역시 소중한 내 것,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라는 착각과 집착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순간 사라진다. 물론 이는 일시적인 변화이므로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을 알지만 그렇다 해도 똑같은 경험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다. 모든 변화는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언제나 전혀 새로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번 명상을 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되고 설렌다. 그리고 매일 매일 그런 변화의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몸과 마음에 온전히 새겨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명상은 늘 내게 그 어떤 조건에서도 마음을 멈추고 고요함과 평온, 그로 인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따라서 앞으로도 그 기쁨이 에너지가 되는 한 이 덕심이 사그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무진장 : 문탁 회원들이 출자해 만든 한 통장의 공동 창고로 상호 부조와 재분배의 원리로 운영된다. 어려움에 처한 회원들을 필요에 따라 긴급한 생활 자금이나 기본 소득의 개념인 마중물로 지원하고 있다.
오영
작년에 불교공부와 명상을 시작하면서 서두르지 않는 삶, 천천히 읽고 쓰며 명상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더불어 올 한해 명상동아리 활동으로 조금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명상하기를 소망한다.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남어진
2024.05.10 |
조회
177
일상명상
오영
2024.05.09 |
조회
164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인디언
2024.05.07 |
조회
310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2024.05.06 |
조회
18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2024.05.01 |
조회
246
덕심 ㅋ
난 덕질을 평생 못할줄 알았는데 오영샘 글을 읽으니 이것도 덕질일수 있군요 ㅎ
명상에 대한 저의 변화도 참 어마어마하네요 지난1년간 ^^
친구들과 함께 명상하기 올해도 좋은 한해가 될듯요~
오영쌤이 다른 데 안 빠지고 명상에 빠져서 얼마나 다행인지요!ㅎㅎ
어떤 장비도 없이 언제 어디에서든 숨쉴 줄만 알면 할 수 있는 명상은 참 신기하고 매력이 넘쳐요. ^^
오영쌤이랑 오래오래 함께 명상하고 싶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명상으로 일상을 보살피는 힘을 키울 수 있군요~명상 멋지네요~
오영님의 글 읽으니 좋네요~~
오영샘과 명상이라.
이건 요요샘과 명상, 도라지와 명상...과는 좀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요요샘과 도라지는 본투비 명상러일것 같은디, 오영샘은 뭐랄까...결이 좀 다르다랄까...ㅋㅋ
요요샘이나 도라지과가 아닌 저는, 그래서 오영샘의 명상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잘 읽었고 앞으로도 잘 읽을게유^^
명상을 덕질하다니요! 신선한 조합입니다.
저도 올해 같이.. 빠질 수 있기를요!!
덕밍아웃 좋아요~
근데 덕질이 명상이라뉘 더할나위 없이 좋네요.
전 무릎이 시원치않아 명상은 패슈...ㅎㅎㅎㅎㅎ
매일 매일 명상하고 일지쓰고, 명상에세이까지 쓰는 오영샘 옆에서 많이 배워야지..
올해도 함께 공부할 수 있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