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

김윤경~단순삶
2024-01-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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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다

 

 

나는 현재 백수이다. ‘자발적 백수’!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쓰는 용어이다. 더 이상 임금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담기 위해서 선택한 말이다. 풀타임잡은 안정된 월급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의 자유도 저당 잡혀야 한다. 온종일 직장에 매여있는 일상이 아닌 다르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소개한다.

 

 

 

금천구 호암산 칼바위 밑 달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나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부자를 꿈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몸뿐이어서 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을 구하고 월급을 저축했다. 모은 돈을 뻥튀기하고 싶었기에 투자처를 찾으며 30대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이자가 높다는 말에 속아 사기도 당하고, 재개발 구역의 부동산 계약은 하루 전날 취소되고, 강변뷰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남편의 만류로 내 것이 되지 못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빌라는 수리할 곳 천지인 깡통 매물이어서 손해를 보고 다시 되팔아야 했다. 30대 마지막 해에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나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는 않으니 거기에 만족하고 부자를 좇는 일은 그만두자고 결정했다.

 

 

 

다르게 살아보자 결정하고 일단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을’,‘시민’을 검색하면서 은평 시민 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다. 다양한 단체에 얼굴을 비추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에너지협동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자본에 노동을 파는 방식이 아닌 공익을 위한 노동은 값진 경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정들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임금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사주에 ‘식신’(食神)이 세 개여서 그런지 직장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시 예전 했던 일로 직장을 구했다. 월급을 받고 돈이나 벌면서 그냥 적당히 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한동안 병명도 모른 채 아픈 몸으로 지내다가 ‘류머티스 관절염’이라고 진단받았다. 병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나는 우연히 알게 된 감이당 대중지성 1년 과정에 과감히 등록하게 되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청소와 공부를 통해 달라지기

 

 

감이당 대중지성 2년 차에 나는 다시 직장을 그만두었다. 달콤한 월급이라는 꿀통을 발로 찼으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기에 하루 2~3시간 일하는 알바를 검색하던 중 청소어플을 발견했다. 의뢰인의 집에 가서 하루 몇 시간 청소를 제공해주는 식이었다. 일단 신청하고 첫 집에 가보았다. 남자 대학생들이 사는 쉐어하우스 아파트였다.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쓰레기에 놀랐고, 어린 남학생들 사이에서 청소하는 행위 자체도 살짝 굴욕적인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청소를 진행할수록 점점 깨끗해지는 집안을 보며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앗 이게 뭐지? 이것이 청소의 힘인가?’ 청소하는 일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수행의 수단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래서 출가하면 청소부터 시키는구나.^^)

 

 

 

얼마 후 공부하던 스터디카페에서 청소하는 일을 구하게 되었다. 하루 한 시간이지만 매일 하는 거라 용돈도 되고 무엇보다 스터디카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특전이 있어서 공부를 이어 나갈 나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다. 책상 위아래, 바닥 청소 그리고 휴게실 정리, 비품 채워 넣기,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까지가 나의 업무였다. 처음에는 남자 화장실에서 어린 학생들과 부딪힐 때 역시나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당당하게, 자유롭게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년 8개월을 수행하듯 청소를 이어 나갔다.

 

 

청소와 더불어 공부는 나의 삶을 변화시킨 도구였다. 갑자기 찾아온 병 덕분에 공부의 길에 들어섰던 나에게 공부란 삶의 문제를 푼 열쇠였다. 세미나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며 나의 문제들을 풀어갔다. 특히나 글쓰기는 나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면 엉뚱한 글이 나오곤 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그동안 보지 않았던(못했던) 내 안의 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못된) 모습을 파헤치며 글을 써 나가야 하는 과정은 조금은 괴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서 학인들과 함께 나누면 이상스레 커다란 문제들이 쪼그라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글쓰기로 난 나의 문제들을 청소했고, 군더더기를 덜어낸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나의 주변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볼 힘을 가지게 되었다. 글쓰기와 청소는 나에게 다르게 살아갈 신체를 선물했다.

 

 

 

 

 

 

 

마을활동가를 꿈꾸다

 

 

그렇게 달라진 신체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스스로 질문해 보았다. 결론은 내가 체득하고 배워가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주변과 나누는 삶이었다. 그래서 작년(2023년) 1월, 지금 사는 금천마을의 문을 두드렸다. 주춤주춤 여기저기의 문을 두드리며, 조심히 들어가 많은 모임과 사람들을 만났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고,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응모해 ‘금천, 나만의 사적인 지도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백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 사업으로 마을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미나게 놀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동네에서 만나, 동네에서 놀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참여자들도 모임을 기획한 나에게 만족함의 표시를 많이 해왔었다.^^

 

 

 

그러던 중 소셜다이닝 프로젝트, ‘노랑식탁’이라는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노랑식탁은 1인 가구 청년들에게 ‘동네 이모’ 세 명이 장보고 요리하여 ‘집밥’처럼 밥상을 차려주는 컨셉이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화력이 약한 화기, 집구류의 부족, 익숙하지 않은 장소 등 요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또 서로 다른 세 명이 합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참여하는 청년들의 만족한 모습을 보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정성을 다해 준비했던 밥상은 만족도가 매우 높아 올해(2024년)에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나는 주방일이 너무 힘들고 시간을 많이 빼앗겨 계속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동안 참여했던 청년들과 새롭게 독서 모임을 제안해 같이 해보기로 했다. 내가 그 청년들과 함께, 어떻게 엮어나갈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보통 활동가하면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전형적인 어떤 상(像)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굳이 소속을 말하자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한 문탁네트워크 인문약방팀? ^^;) 누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마을활동가를 붙인다면, 내가 공부로 깨달았던 것들을 나의 생활 현장에서 실험해 가는 무소속 마을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인문약방팀의 스텝으로도 참여하기로 했다. 또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은 성장형으로 공모를 할 예정이다. 청년들과의 독서 모임도 꾸려 나가야 하고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마음충전소’사업의 매칭매니저로도 활동한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일 년 일정이 이렇게 미리 정해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복작복작, 시끌벅적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런 마을 활동들을 이렇게 연재까지 하게 되어 정말로 올해는, 나에게 특별하고도 중요한 인생의 또 다른 변곡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발적 백수에서 소속 없는 마을활동가로 변신하려는 여정의 시작이 바로 이 글이다.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부족하고 성마른 저에게 부디 많은 사랑 주세요~)

 

 

댓글 23
  • 2024-01-20 11:01

    마을활동가 윤경님의 활기찬 출발과 변신을 응원합니다.
    열정적인 활동으로 확장해가는 윤경님의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 지 흥미롭게 지켜볼게요~

    • 2024-01-20 11:41

      첫글의 첫댓글 감사합니다 ~~
      오영님의 응원 잊지않을께요.

  • 2024-01-20 11:56

    어떤 변곡점이 될까 무지 궁금해지네요~~ 멋진 변곡점이 되길!

    • 2024-01-20 12:01

      응원합니다~~~^^

  • 2024-01-20 12:12

    2024년 1월에 보는 윤경샘의 일상이 소박한건가요? 단단히 재미와 흥미가 장착되어 있는데요. 글로 소개해주신다니 기대됩니다. 올해도 행복하시길.

  • 2024-01-20 13:32

    소중한 인연 윤경님의 기대되는 마을활동가로서의 올 한해를 응원합니다!!

  • 2024-01-20 16:38

    마을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윤경 마을활동가님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

  • 2024-01-20 16:53

    고전읽기로 처음 만난 단순삶님.
    변신을 응원힙니다!

  • 2024-01-20 17:47

    앗! 윤경님 팬들이 댓글을 많이 다셨네요!
    저도 빨리 달었어야 했는데. ^^

    금천에는 저도 살짝 인연이 있어요.
    앞으로 윤경님 글 기대할게요.
    성실한 애독자가 되겠습니다~~~~

  • 2024-01-20 18:05

    우왕 넘 좋네요! 프로필 사진부터 빵 터지고 시작했습니다ㅋㅋㅋ
    올 한 해 '윤경이'의 '조증적 열광' 아낌없이 보여주세요!!!

  • 2024-01-20 20:15

    처음 법가를 같이 공부한 이후로 한번도 못뵈었네요^^ 건강과 분투를 기원합니다!

  • 2024-01-22 09:30

    와~ 멋지셔요!
    오며 가며 뵈었던 윤경님. 이렇게 멋진 분인 걸 알게 되서 기쁘고요.
    단순하지만 강력한 삶을 응원합니다~

  • 2024-01-22 09:37

    1년전 인문약방엠티에서 만나고 같이 양생프로젝트도 했는데, 윤경샘의 삶의 궤적을 이렇게 읽게 되니 또 새롭게 느껴지네요~^^
    무소속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이야기 기대됩니다~^^

  • 2024-01-22 10:22

    쌤의 첫글 응원합니다! 함께 일 년 재미나게 연재해봐요! 😁

  • 2024-01-24 19:01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에너지는 다 어디서 오는지.... 존경합니다.

  • 2024-01-25 14:29

    윤경님의 조증적 열광적 사랑에 감염되고 싶습니다.^^

  • 2024-01-25 22:59

    홧팅!!! ^^

  • 2024-01-27 00:10

    프로필 사진의 매력만큼이나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대단하세요^^ 마을활동가 윤경샘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 2024-01-30 11:01

    자발적 백수..부러습니다. ㅎ 윤경샘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2024-01-30 14:33

    무소속 마을활동기 윤경샘 응원해요~ 앞으로 나눠주실 흥미로운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2024-01-30 17:57

    에너자이저 윤경샘. 저도 노랑식탁 후속모임이 어떻게 진행될지 몹시 궁금하네요. 우당탕탕 좌충우돌일 것 같지만 은근 세심한 윤경샘의 마을 이야기 기다려집니다.

  • 2024-01-30 19:03

    윤경샘
    화이팅!!!
    첫글에서부터 활발발 기운이 느껴져요.
    연재 기대됩니다^^

  • 2024-02-14 17:50

    고모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삶을 새로이 채워줄 수 있는 훌륭한 변곡점이 되기를 기도해!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에 존경을 담아♥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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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15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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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04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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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48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5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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