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명상 친구 만들기

요요
2024-01-10 17:19
441

 

 

 

 

 

요요

문탁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화두다

 

 

<일상 명상> 연재를 시작하며

 

작년 1월에 ‘요요의 월간명상’을 시작했는데, 6개월을 쉬고,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셋이다. 지난해에 불교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새로 리뉴얼한 <일상명상>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요의 월간명상’ 3회차 글에서 나는 문탁에서 함께 명상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런데 정말로 명상 친구가 만들어졌다.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코너는 이제 요요, 오영, 도라지, 세 사람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쓴다. 아마 3인 3색의 명상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글은 우리가 어떻게 명상 친구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띠 수행을 공부하다

 

지난해 가을 불교학교에서 우리가 공부한 것은 사띠(sati) 수행이다. 팔정도 중 여섯 번째가 정념(正念)인데, 정념은 ‘바른 사띠’를 말한다. 그만큼 불교 수행에서 사띠가 중요한 개념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띠에는 ‘기억한다’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핀다’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순수한 주의집중(bare 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noting) 등을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최초로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전재성님은 사띠를 ‘새김’이라고 번역했다. 마음에 새긴다고 할 때의 새김이다. 새김은 사띠의 첫 번째 의미인 ‘기억한다’, ‘잊지 않는다’의 뉘앙스가 좀 더 강하다. 각묵스님은 ‘마음 챙김’으로 옮겼다. 새김 보다는 좀 더 직관적이다. 새김이나 마음 챙김이 사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마음 지킴, 주의집중, 알아차림 등으로 풀기도 한다.

 

그런데 사띠에 대해 가르치는 경전에서는 언제나 사띠 즉 정념(正念)은 언제나 정지(正知)와 함께 붙어있다. 정지는 팔리어 삼빠잔나(sampajāna)를 옮긴 것으로 분명하게 아는 것, 바르게 알아차리는 것을 뜻한다. 사띠가 확립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둔 대상에 대해 선입견이나 판단과 해석의 필터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앎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바로 삼빠잔나다. 그러므로 명상 수행을 할 때 정념과 정지, 사띠와 삼빠잔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이 되는 것이다.

 

사띠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마음을 두고 바르게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숨을 길게 내 쉴 때는 길게 내 쉰다는 것을 알고, 짧게 내 쉴 때는 짧게 내 쉰다는 것을 안다.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면 즐겁다고 알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싫어한다고 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대로 바라볼 뿐, 좋다고 붙들려고 해서도 안 되고, 싫다고 밀어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분명히 보이게 되면 저절로 습관적으로 작동하는 마음의 패턴도 보이거니와,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이 그저 흐름과 변화일 뿐이라는 것도 지적인 앎이 아니라 직접적 앎으로 깨닫게 된다.

 

 

 

50일간의 명상입문

 

불교학교에서는 사띠 수행을 가르치는 경전과 해설서를 읽어 나가면서 직접 명상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개념을 아는 것은 책으로도 가능하지만, 명상의 맛을 알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기 전에는 잠시 좌선 실습을 하고, 먹은 후에는 경행을 했다. 좌선은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경행은 걸으며 명상하는 것을 말한다. 좌선할 때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과 호흡을 관찰하는 명상법을 배웠다. 경행은 걸을 때 다리와 발의 움직임에 마음을 둔다. 발을 뗄 때는 발을 뗀다고 알아차리고, 발이 바닥에 닿을 때는 닿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텍스트 이해를 통해서는 명상의 개념과 원리를, 실습을 통해서는 방법을 익히는 한편, 매일 30분 명상을 과제로 삼고, 각자 명상일지를 올리며 어떻게 명상하고 있는지 공유했다. 처음에는 30분 동안의 좌선도 힘들어 못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다리가 아파 앉아있기가 힘들다, 앉아는 있는데 머리 속에서 정신적 수다가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하는게 망상인지 명상인지 잘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였다. 그러는 사이에 천천히 각자의 일상 속에 명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7주가 지난 뒤 명상센터에서 2박 3일의 집중 명상을 했다. 집중 명상에서는 묵언과 오후불식을 지키며, 지도 스님의 안내로 새벽부터 밤까지 1시간 좌선, 1시간 경행을 반복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각자 자신만의 느낌으로 명상의 맛을 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인터뷰를 통해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도 가졌다. 인터뷰 시간에 지도 스님은 그룹으로 온 우리를 격려하며 담마 사하야(법의 도반)이라는 모임명까지 지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50일의 명상 입문과정^^을 마쳤다.

 

 

 

담마 사하야, 법의 도반

 

공부도 수행도 좋은 벗(善友)이 있어야 서로에게 의지하며 갈 수 있다. 명상 커리큘럼은 마쳤지만 불교학교의 겨울 시즌에도 명상 일지는 계속 공유되었다. 명상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친구가 올리는 명상 일지를 읽으면 다시 마음을 내게 된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친구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 힘이 된다.

 

만일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새김(사띠)을 확립하여 그와 함께 가라.(『숫타니파나』 「무소의 뿔의 경」)

 

우리는 왜 어려운 텍스트를 읽고 쓰는 공부를 하는가? 앎의 기쁨과 자신의 습속을 깨는 깨달음의 순간이 우리를 계속 공부하게 한다. 명상도 그렇다. 명상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까지 신체적인 고통도 피할 수 없고, 진전을 가로막는 정신적 장애물들도 적지 않다. 몸과 마음을 가라앉게 만드는 혼침과 해태, 반대로 몸과 마음을 동요시키는 탐심과 성냄, 들뜸과 산만함과 같은 것이 정신적 장애물이다. 그런데 신체적 고통을 비롯한 정신적 장애물들은 의지만으로 제압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띠를 하며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희한하게도  애쓰지 않아도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기쁨과 희열, 고요와 평화를 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요와 평화가 명상 수행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명상에서 키운 집중과 통찰의 힘은 일상의 삶을 변화시킨다. 내 마음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를 향한 자비심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공부와 수행을 함께 하는 좋은 벗의 지지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상 명상> 릴레이 연재를 통해,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는 사띠와 알아차림의 장에 더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

 

 

댓글 11
  • 2024-01-10 21:33

    샘 글을 읽으며 지난 일 년간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조금씩 알게 모르게 우리 각자에게 새겨진 것들- 몸과 마음을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들-이 잘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기를...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잘 가꾸어갈 수 있기를 ~ ^^

  • 2024-01-10 23:38

    일상 명상 화이팅!!!

  • 2024-01-11 09:58

    마음에 새기고 마음을 챙기고 고요와 평화를 느끼고 습속을 깨닫고 일상을 바꾸고... 등등 몸소 체험하신 '명상의 맛'을 기꺼이 나누어 주신다니... 세 분의 명상 이야기 정말 기대됩니다.^^

  • 2024-01-11 11:07

    명상 친구! 새로운 공부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 2024-01-13 11:08

    요즘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를 읽고 있는데, (참고로 이 책 강추입니다. 비교적 최근 정보가 잘 업데이트되어있고, 재밌고, 쉽고 아주 유용함. 생물책 사실 아주 싫어하는데 이 책은 매우매우 재밌었음) 그 책을 보니 '좋은 경험'은 필요한 단백질 생성을 위한 DNA 발현 과정에 거의 약물(?)과 동등한 수준의 효능을 발휘한다더군요. 근데 그 '좋은 경험'으로 저는 왠지 명상을 가장 먼저 떠올렸었거든요. 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명상, 혹은 명상에 관한 이야기에 좀 관심이 가네요...

    • 2024-01-18 09:29

      오! 추천한 책 보고 싶군요. 명상이 제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좋은 경험인 거 확실합니다! 명상모임 만들면 세션님도 오세요~

      • 2024-02-14 00:02

        명상모임 만드시면 저에게도 꼭 알려주세요!

    • 2024-01-26 01:14

      퍼가요.

  • 2024-01-22 13:42

    릴레이 연재라기에 얼결에 해보겠노라 했지만,
    어쩐지 올 해 지구가 여느 때보다 빨리 돌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
    그러나 쌤들 뒤꽁무니에서 함께 명상하다 보면 나자빠지지는 않겠지요.

  • 2024-01-26 01:15

    저도 은근 명상에 소질이 있지는 않을까 짐작하는 일인입니다. 조만간 혹은 조금 먼 미래를 기약하겠습니다. 그때 가르침 부탁드려요.

  • 2024-01-27 00:00

    방학기간동안 살짝 느슨하게 보냈더니 세미나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이 어렴풋 해지더라고요, 요요샘의 글을 읽으니 기억이 하나둘 올라옵니다^^ 매일같이 명상일지 올려주시는 일상명상 샘들 덕분에 저도 느리게 따라가고 있어요.
    올한해도 일상명상 화이튕이에요!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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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20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09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252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59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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