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장애가 만날 때  / 무사

문탁
2023-12-31 10:57
227

 

 

 

2학기 공부는 유독 일상과 교차되었다. 길을 걷다 장애를 가진 동물과 마주친다든가 갑자기 호떡이 먹고 싶어져 농인인 상인과 소통을 해야하는 일 등으로 말이다.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수십 년 동안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다’는 것과 장애를 나와 관련된 이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차별이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공부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없어 보였던 군대와 장애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군에서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많지 않아 헛발질을 일삼고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의 스포츠 경기를 일컫어 ‘장애인 00’이라고 불렀다. 병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장병들은 “장애인이냐? 고문관이냐?”는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다. 군대야말로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 정책’의 생생한 현장으로 보였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한국의 징병제도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만을 전쟁에 필요한 자원으로 호명해왔다. 군에서 장애인은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었지만, 비하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소환되었다. ‘군인되기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 누구도 장애인되기를 원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에이블리즘의 원형, 군대

 

 군에는 장애인이 ‘없다’. ‘신체의 정상성’으로 대표되는 조직인 군은 입영단계에서 법령(국방부령 병역판정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근거하여 ‘그냥 인간’을 ‘등급내 인간’과 ‘등급외 인간’으로 분류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군내 진입은 ‘원천’ 차단된다. 장애인이 없으니 장애인 편의시설도 필요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고사하고 휠체어 픽토그램조차 보지 못했다. 군 복무 중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 장애의 원인이 작전 중의 사유가 아닌 이상 심의를 거쳐 전역 조치 된다. 前 보훈청장 방우진 예비역 중령은 현역시절 유방암이 발병하여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의병 전역을 해야만 했고, 故 변희수 하사는 트랜지션 과정에서 고환을 절제했다고 강제 전역을 당했다. ‘군인에 적합한 신체’라는 기준에 따라 군인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군대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유방과 고환이 전투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오랜 기간 복무한 나로서도 도무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축구 잘하는 군인은 무조건 군 생활 잘 해.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어.” 라던 어느 지휘관의 말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유방과 고환이 축구를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장애/동물운동가 수나우라 테일러는 <짐을 끄는 짐승들>에서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강제적 비장애 신체성 체계란, 비장애중심주의가 작동하는 하나의 기제로 사람들의 육체적 기능이나 외관을 표준화하는 규범이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비장애 신체에 들어맞지 않는 신체를 모두 ‘장애’로 낙인찍는 시스템이다”(246) 국가는 ‘정상 신체’를 가진 대한민국 남성의 군 복무를 신성시하며 여성, 장애인, ‘혼혈’ 남성의 신체를 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로 낙인찍고, 이들을 ‘구성적 외부’로 동원해왔다. ‘병역을 필한 대한민국 남성’의 입장에서도 긍정하기 어려운 징집의 상태를 윤색해 줄 대상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들 또한 기득권의 자장 안에서 ‘구성적 외부’와 위계적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마치 보상받은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온 셈이니 말이다. 1999년 ‘제대군인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 결정을 받기 전까지 그 기득권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 유명한 결정은 남성 vs 여성 간 젠더 갈등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지체장애인 3급 3호(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舊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른 것) 남성 장애인도 있었다.

 

 

 

 

‘장애 수행’, ‘트랜스어빌리티’를 통한 에이블리즘 교란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한동안 화제였다. 좀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군의 현실을 대체로 잘 묘사했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을 피하고 싶어하는 입영 대상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사실 병역기피는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지는 ‘병역필 남성’ 기득권의 허상과 군대의 민낯에 대한 절망은 입영의 문 앞에서 병역을 면제받으려는 욕망과 만나 ‘장애인’ 되기를 희구하는 집단, ‘다른 장애인’으로 현신이 되어 출현한다. 이들은 병역법에 명시된 신체기준에 ‘살짝 어긋난’ 몸, 딱 그만큼의 ‘장애’를 얻기 위해 애쓴다. 병역법상 ‘신체의 정상성’ 기준이 ‘병역면제’ 기준으로 재전유되는 지점이다. 이로써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최상의 전투력 유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쓴 비장애중심주의, ‘군대적 다윈주의’는 비장애인 입영 대상자들의 ‘장애 수행’을 통해 교란된다. 장애를 의료적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중심주의와 ‘신체의 정상성’이 규범인 사회에서 ‘장애’가 ‘선망’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 현상은 신체 예술 연구활동가 베서니 스티븐스가 정의한 ‘트랜스어빌리티transability’를 떠올리게 한다. 트랜스어빌리티란 ‘이분화된 신체적 비장애 상태에서 신체적 장애 상태로 전환하려는 욕구나 열망’을 의미한다. 김은정 시러큐스대 여성/젠더학과 교수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트랜스어빌리티 개념을 소개하며, 치유란 의료적 치료를 넘어 “몸, 정동, 사회적/물질적 조건들에 의도적인, 또한 비의도적인 변화를 촉발하는 전환적 과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상성’이 바람직하다는 신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몸을 장애가 없는 몸으로 전환하는 것과 그 반대의 과정이 동일한 것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겠지만, 바로 그 ‘정상적인 몸’, ‘선호되는 미’라는 관점을 소거한다면, 성형수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몸을 깎아내고 찢고 꿰매는 의료적 ‘치료' 과정이 ‘몸’에 손상을 가하고 ‘장애’를 입히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입영을 기피하기 위해 선택한 ‘장애 수행’이 능동적인 ‘트랜스어빌리티’는 아니지만, 두 행위 모두 비장애와 장애라는 이분법 규범을 교란하며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볼 여지는 없을까?

 

 균열과 교란은 복무 중에도 발생한다. 분명 입영 단계에서 장애인의 징집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복무 중 ‘정신장애’ 등의 사유로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거쳐 병역처분이 변경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장애학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에서 ‘사회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31) 현역복무부적합심의와 병역처분변경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무기력감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군은 ‘등급내 인간’으로 호명한 이들 중 일부를 ‘정상성’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다시금 ‘등급외 인간’으로, ‘장애인’으로 선별하여 추방한다. 이 과정은 매주, 전군에서 계속된다. ‘장애’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반복 속에서 ‘트랜스에이블드’, ‘장애 수행자’들은 사회가, 제도가 ‘장애’를 만드는 요인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교란의 춤을 추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 젠더, 인종을 넘어 장애까지 닿을까?

 

 2005년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이후 군 인권보호 수준은 진일보했다. 금쪽이를 군에 보낸 부모들, 언론,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낸 결과, 인권보호제도가 마련되었고, 장병들의 의식수준은 조금씩 향상되었다. 동성애 장병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제한적으로나마 포함되었고, 병사들의 복무기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현재의 복무기간이 유지되고 저출산 흐름이 계속된다면 2040년 이후 입영 대상은 약 15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보다 50%정도 축소되는 공백을 과연 누가 메울까? 국방개혁으로 인한 병력감축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입영 대상자가 줄어들자 군은 현역 복무가 가능한 신체등급 기준을 2급에서 3급으로 조정했다. 여성 군인 선발비율도 늘려 작년 기준으로 여성 군인은 전체의 9%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 국적 다문화 장병의 입영을 허용했다. 인종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규정도 산입했다. 당시 글로벌시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특성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병력감축에 따른 안보 공백을 채우고 징병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군은 입대자원 부족과 그로 인한 전력 공백을 신체등급 기준 완화, 여성 군인 확대와 다문화 장병 입대로 채우려 하는 등 인원 수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공유된 가치, 신념, 행동, 배경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국가, 민족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개념과 달리 최근에는 인종, 성별, 나이, 신체적 장애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일이나 스위스군의 다양성 범주는 한국군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성, 민족, 인종, 성적 지향성, 연령, 장애, 교육배경, 성장배경, 출생지, 종교, 문화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각 국방부 예하에 다양성 관리 전담 부서가 설치 되어 있다. 특히 독일 국방부의 다양성 정책은 개개인의 경험과 가능성, 잠재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군내 구성원에 대한 가치판단, 역할, 직책부여에 있어서 편견을 없애고 존중하려는 변화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다양성 정책은 병력 공백을 채우기 위한 양적 보완 수단일 뿐 다양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립한 질적 정책은 아니다. 다양성 관리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양성평등’과 ‘다문화’ 정책도 명명에서부터 이미 협소한 범주 인식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장애 역량을 재사유하기

 

“장애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역량에 주목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를 상호의존과 공생의 원리에 따라 재구축하며 사회질서를 평등과 협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새로이 구성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의 실마리를 장애인의 사회적 존재로부터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다.”( 「문화과학」 115호 “장애와 역량” 발간사 )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0조에는 “군인은…(중략)…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여”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 군인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에이블리즘 군대가 ‘장애’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동권과 탈시설은 장애인 운동의 오랜 화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는 ‘비장애인’만을 선별하여 ‘시설’에 가두고 이들의 이동권을 제한함으로써 탈시설의 욕망을 키우고 있다. 군대는 ‘장애를 만든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90년대 이후 국제질서는 복잡해졌고 안보위협은 다양해졌다. 안보의 개념이 군사안보에서 인간안보로 바뀌고 있으며, 군의 활동 역시 국가방어만이 아니라 환경보호, 재난 구조, 지역분쟁 해결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전통적 요소로 구성된 물리적 전투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목도하고 있듯이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군의 전투력에는 물리적 유형력 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사기, 연대감, 갈등관리와 같은 무형전력도 포함된다. ‘죽이는’ 실력만이 전투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살리는 것,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한 전력이다. 만일 군대에도 미덕이 있다면, 낯설고 다른 존재(자)와 섞이는 일이 유일하지 않을까? 출신도 자라온 환경도 매우 다른 이들이 비자발적으로 섞이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블라인드blind 게시판에 “요즘 병사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쳐도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자조섞인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들이 휴대전화 대신 낯설고 다른, 그래서 불편한, 그러나 서로에게 생명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동료를 바라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용환 육사 교수는 “군에서 다양성 관리를 경험한 장병은 조직 내에서의 성과는 물론 제대 이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의 증가는 조직의 경쟁력, 응집성, 전문성과 같은 실제적인 성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윤리적 민감성, 적극적 행동과 같은 규범적 성과가 증대되는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군 여성 군인(조직)은 1950년 500명의 육군 여자의용군으로 창설된 이래 남성 군인의 참전을 각성하게 하는 존재(자)로(1949-1954), 국가총력안보시대의 애국 상징으로(1955-1989), 지식정보화시대 전문직업군인으로(1990 이후) 활용되어 왔다. 전쟁 양상의 변화와 군 활동의 다변화 흐름 속에서 유연함과 잠재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군사적 폭력성을 다소나마 약화시키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젠더화된 역할 수행을 요구받는 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여성 군인의 위치성과 관련한 문제적 지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군인은 그동안 군인의 전형으로 상정되어온 ‘남성 군인’과는 ‘다른’ 군인으로 출현하여 군의 전통적인 젠더질서에 교란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던져온 질문들이 그나마 지금의 변화를 견인해왔다.(고 말하고 싶다.) 다문화 장병의 출현을 통해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0년부터 장병 임관(입영) 선서문에는 “민족” 이라는 표현이 “국민”으로 변경되었다. 다문화 장병들은 4대 종교에 치우쳐 있는 군내 종교 활동 자유의 폭을 넓히고 식습관, 언어, 역사적 배경과 편견 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해야할 필요성을 존재 자체로 증명하고 있다. 

 

저출산이 쏘아올린 공은 의도치않게 군대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다급해진 군은 부족한 입영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여성 군인 비율을 2027년까지 15%로 높이고 다문화 장병의 입대를 적극 장려하고 신체등급 3급으로 한차례 범위를 넓힌 현역 복무 기준을 이제는 4급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그동안 군이 내세웠던 ‘신체의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낸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는 칼럼에서 “한국의 저출산은 가족중심주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영향으로 보이며, 한국이 유능한 야전군을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한다면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안보’를 ‘숫자’에만 맡길 것인가? 

댓글 1
  • 2024-01-09 11:33

    본문의 글은 편집 및 게시 편의상의 이유로 레퍼런스를 밝힌 각주가 생략되어 있음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혹 레퍼런스가 궁금한 분이 있으시다면 공지/후기>양생프로젝트 게시판의 에세이 발표 공지 댓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202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4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19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모로
2024.04.25 | 조회 219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33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