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7분은 어떤 시간인가? -탈정치 vs 정치 / 겸목

문탁
2023-12-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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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문제시하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동시에 기획하고 있다. 고정관념과 의심되지 않는 전제들에는 권력의 역학과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교차하는 수나우라의 주제가 아니라 수나우라의 관점에 따라 장애를 ‘정치’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며, 현재 한국에서 진행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이후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장애는 질문한다

 

치료의 문제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자긍심 대 의료적 개입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중략)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뜻하는 바가 장애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감정들만이 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아주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우리가 보았듯 장애는 실제로 사람이 살며 겪는 체험일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맞서야 할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문제다. (『짐을 끄는 짐승들』, 247~248쪽)

 

수나우라는 『동물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한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피터 싱어는 장애인들의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가정한 다음, 단돈 2달러로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그 약을 먹고 장애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라 추론한다. 이를 통해 피터 싱어는 장애에 수반되는 고통이 삶의 질을 낮게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장애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삶의 질이 낮은 것으로 규정된다. 진짜 그럴까? 수나우라는 피터 싱어가 장애를 알지 못하며 ‘모든 조건이 똑같다고 가정한다면’이라는 불가능한 가정을 통해 논리의 비약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모든 장애인의 현실은 동일하지 않다. 그 조건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가정 속에 장애의 치료 욕망을 장애에 대한 부정으로 등치시킴으로써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고정시킨다. 장애에는 고통이 뒤따르지만, 그 고통이 장애로 비롯된 모든 경험을 부정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고통이 삶의 질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도 아니다.

 

수나우라의 관절굽음증은 미군이 무단 방류한 폐기물 때문이다. 그의 장애는 불의의 결과이고 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나 수나우라는 장애가 자신의 정체성의 중요한 특질이며 그것이 가져다준 새로운 감각과 경험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는 장애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현재의 불평등에 저항하지만, 장애인의 삶이 사회 구조적 피해자이며 사회적 약자로 한정되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내 친구들이 스스로를 불의를 나타내는 표상으로밖에 여기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더욱 공허해질 것이다. 대안적인 존재 방식, 소통하고 공간을 이동하는 대안적인 방식,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대안적 방식 그리고 특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지금도 끼치고 있는 그런 불의에 저항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의 가능성이 더욱 사라져버린 그런 공허한 세계 말이다. 단순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에 장애는 너무나 복잡하다. (『짐을 끄는 짐승들』, 321쪽)

 

우리에게 익숙한 장애 서사는 슈퍼장애인의 극복 서사다. 이는 자본주의 신화인, 자신의 조건을 극복하고 성취를 이룬 자수성가 서사와 동일한 패턴이다. 이런 주류 서사 문법에서 성공하지 못한 장애 서사는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된다. 수나우라는 슈퍼장애인 대 나약한 장애인의 이분법을,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을 부인하고 가리는 정치적 수법이라고 비판한다. 수나우라는 장애가 환기하는 구조적 불의에 저항하며 동시에 장애가 가져오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가능성으로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장애는 문제이며 동시에 해법이 될 수 있다. 장애는 인간의 이성, 고통, 삶의 질, 이동방식,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 같은 것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 질문하게 한다.

 

 

 

3.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전장연은 두 달간 멈추었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했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 3일부터 현재까지 2년에 걸쳐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펼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출근 방해는 사회적 테러”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이후 있을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언론은 “‘전장연 지하철 시위’ 발목 잡힌 시민, 2년간 1060만명”(뉴시스, 2023. 11. 21), 손실비용 4450억원(국민일보, 2023. 11. 22) 등 서울시가 계산한 손실비용과,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시간 총 86시간 33분, 서울교통공사가 입은 손실액 약 7억8000만원(매경이코노미, 2023. 11. 23)으로 공사가 계산한 손실비용을 기사화했다. 조선일보는 서울교통공사 MZ노조 올바른 노조의 “법 제정을 요구할 거면 당신들부터 정당하게 법을 준수하라”, “무고한 자들의 소중한 하루를 멋대로 짓밟지 마라”는 전장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게재했다(2023. 11. 27). 반면 한겨레신문은 공사가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원천 봉쇄한다며 지하철 역사 출구 진입부터 막겠다는 방침에 대해 집시법 위반임을 밝히는 기사(2023. 11. 24)와 주간경향에서는 현재 저상버스 달성률이 32.8%에 불과하고, 내년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은 1674억 9500만원으로 올해보다 11.6% 줄어 “이동할 자유를 무시한 예산”(2023. 11. 27)이라는 전장연의 주장을 지지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몇 가지 쟁점을 갖고 있다. 전장연의 시위로 그간 한국사회가 간과하고 있던 장애인의 이동의 권리가 정치의 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동권은 교육권과 노동권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동권 투쟁은 이동권의 제한을 받은 장애인의 기본권이 지금까지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도 드러내고 있다.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통해 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한 장애인에게 시민권이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서울시와 공사의 대응은 무고한 시민들의 교통권을 침해하고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는 범죄행위임을 강조하며, 전장연을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가해자로 몰아가고 있다.

 

양쪽 모두 권리 침해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정의로운 해법은 무엇인가? 서울시와 공사가 들고 있는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념으로 하는 공리주의다. 하루 평균 700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의 운행을 소수의 장애인들이 방해하는 것은 부정의하다는 것이다. 이때 부정의의 근거는 모두의 행복이 동일하고 측정 가능하다는 전제에 의해서만 제시 가능하다. 모두의 행복의 질과 양이 동일하고 측정 가능해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서울시와 공사가 피해의 증거로 들고 있는 손실액에 대한 평가가 어렵다. 2년 동안 시위로 인한 열차 지연시간 총 86시간 33분을 1일로 계산해보면 하루 7분 남짓의 시간이다. 장애인의 권리 투쟁을 위해 지연된 7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이것의 정도를 누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동료 시민의 부당함을 들어주기 위해 감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절대로 손해 볼 수 없는 ‘금쪽같은 내 시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법/불법’, ‘안전/위험’, ‘피해자/가해자’의 구분이 아니라, 이 시간(지연된 7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토론하고 협의하는 일이다. 서울교통공사 백호 사장은 “지각으로 비정규직들이 해고당하고 있”(이데일리, 2023. 11. 27)다고 호소하며 전장연의 시위 중단을 요구했다. 시위로 인해 지각한 비정규직들을 해고하는 기업의 처분은 상식적인가? 장애인의 이동권/교육권/노동권을 주장한 전장연의 시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제멋대로 해고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시대의 노동이 갖는 불안정성 또한 드러냈다.

 

사회의 모순을 직시한 누군가의 용기를 통해 권리의 개념이 탄생하고, 적당한 이름이 붙고, 모습을 갖추고, 기준 질서와 갈등이 발생할 때 비로소 중재안으로서 법률이 세워진다. 권리가 법률에 앞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법에 구속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 법체계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한 합법은 지배자가 구성한 불평등한 조화의 모습일 뿐이다. (『장애시민 불복종』, 227쪽)

 

변재원은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합법과 불법은 ‘법률 근거’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 같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합법과 불법은 ‘긴장의 여부’를 담아내는 말에 가깝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실정법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목소리는 불법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의 모순을 지각한 누군가의 목소리는 기존 질서에 긴장감을 불러온다. 합법이란 이 긴장이 없는 상황이고 기득권 세력에서 유리한 상황을 탈정치화 하는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4.다른 상상을 하는 사람들

 

11월 20일 이후 전장연은 탑승시위가 아니라 승강장에서 선전전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인데, 공사는 전장연의 역사 진입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 12월 1일 금요일 전장연은 개찰구에서 경찰의 제지로 승강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선전전을 이어갔다. 12월 4일 월요일 전장연은 혜화역 개찰구가 아니라 다른 역에서 승차한 후 혜화역에서 하차하는 방식으로 승강장 선전전을 시도했다. 이때부터는 공권력감시대응팀, 민변, 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등 20여 시민단체와 함께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는 형식을 갖췄다. 그러나 지하철 승강장 릴레이 기자회견은 이뤄지지 않았다. 12월 4일부터 12월 8일까지 5일간 짧게는 10분, 길게는 40여분 ‘퇴거’를 종용하는 공권력과 그에 저항하는 전장연 참여자들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어떤 발언도 ‘고성방가’와 ‘소란’으로 간주돼 역사 밖으로 나와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전장연은 이 과정을 매일 라이브방송으로 공개했다. ‘라방’이 진행되는 동안 올라가는 ‘화나요’ 이모티콘의 무리와 “병신들 또 저러네” “한가할 때 다녀라” “장애인 이미지만 안좋아진다” 라는 반감과 혐오표현이 난무한다. 그 사이 ‘좋아요’, ‘힘내요’ 이모티콘과 “전장연 지지합니다” “장애인 욕하면 안 된다”는 댓글이 올라오지만, ‘악플’의 기세와 비교하면 미미하다. 실제로 전장연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많을까? 그건 알 수 없다. SNS 사용자들은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사안에 대해 팩트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다’ ‘전장연의 불법집회로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프레임’ 안에서 찬반 또는 호불호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지금 전장연은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비용인 특별교통수단 예산 271억 증액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금액은 원래 요청된 3350억에서 턱없이 깎인 금액임에도 이마저도 증액되지 못할까, 내년 예산이 결정될 때까지 지하철 탑승이 아니라 선전전을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패턴 또한 장애인의 이동권과 시민의 이동권, 정책 비판과 장애인 시위 비난, 시위 예고와 서울시 불허 등의 대립각을 반복하며 핵심주제는 사라지고 갈등만 부각된다. 더욱이 단신 위주의 기사처리로 이 내용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공론의 장 안에서 확산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지금은 뉴스도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다.

 

영화 <베테랑>(류승완, 2015년)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분)은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분)에게 “그냥 사과 한 번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냐?”고 호통 친다. 12월 4일 월요일 오전 혜화역에서 전장연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동원된 경찰력을 보며 문득 이 장면이 떠올랐다. “그동안 장애인의 이동권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서울시와 공사는 사과해야 할 일을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고 한다. 문제화하려는 사람들과 무화해버리려는 사람들의 힘겨루기가 진행중이다. <베테랑>에서 ‘아트박스 사장’으로 나오고, <범죄도시>에서 ‘마블리’로 등극한 마동석의 ‘괴력’을 상상하는 것만큼,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천천히 이동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장애인에게도 출근길이 필요함을 기습적으로 보여줬다. 기습적이라고 느낌은 우리가 그간 장애인에게 출근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이제 다른 방식의 이동권이 상상되어야 하고, 그 방식은 효율과 생산성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두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지연되는 시간을 ‘짜증’ 내지 않고 기다려줄 수도 있다. 지연된 시간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돈이고, 성과고, 능력’이라는 생각이 내면화되어 있는 무의식의 발로다. 장애를 가진 동료시민의 탑승을 위해 일정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못하는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각박하다.

 

“자신이 겪을 장애를 환영하고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수 있는가?” 이러한 정서는 우리가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대안적인 방식들에 깃든 관능성,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아름다운 잠재력을 보도록 자극한다.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지속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 (『짐을 끄는 짐승들』, 239쪽)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대로 전장연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수차례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키고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두가 의심 없이 뛰어가고 있는 속도경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전장연은 판타지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다른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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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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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2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오영
2024.05.09 | 조회 148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291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7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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