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담담하게 통과하기 / 혜근

문탁
2023-12-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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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않았다. 남은 삶을 재정립하고 아이를 갖고 의학과 문학에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 답을 찾았다.

 

삶에서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는 폴 부부의 생각은 감동적이다. 아기와 헤어질 고통, 숨 쉬고 치료받는 데서 오는 고통, 시시각각 자기 죽음을 대면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고통을 기꺼이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죽음 후 혼자 남을 루시에게 아기는 힘이 될 것인가, 짐이 될 것인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용기와 책임을 갖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연구했던 신경 외과의로서의 일을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였고 ‘생사가 걸린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다시 수술실로 끌어당(182쪽)’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사 앞에서 타인의 생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소명 의식은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무력감은 문학을 통해 극복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을 써 나갔다.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상으로 채워나갔다.

 

죽음의 전날, 폴 칼라니티는 마스크와 모니터를 다 치우게 하고 모르핀 정맥 주사를 맞았다. 아내는 자작시를 읊고, 병실에 모인 친지 가족들은 사랑스러운 일화들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다가, 또 모두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면서 폴과 서로를 걱정했다. 9시간 동안 폴 곁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지켰고, 폴의 마지막 깊은 숨을 함께 했다.

 

 

 

 

 

2. 아버지: 단정한 죽음

 

폴 칼라니티는 폐암 진단을 받고 상대적으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반면, 나의 아버지는 황망한 죽음 뒤에 돌아보니 평생을 준비한 것 같은 단정한 삶이 있었다.

 

작년 4월, 아버지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려다가 종양을 발견했다. 5월 말 최종적으로 담도암 진단을 받고 아직은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수술만 하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추가 검사에서 신장도 한 쪽이 좋지 않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암 판정에서부터 수술까지, 아니 수술 후까지 전 과정을 함께 이야기해 줄 컨설턴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술 전 갖가지 서명들 앞에 서기까지 결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6월 말, 아버지는 담도암 수술과 신장 제거 수술을 순차적으로 받았다. 9시간의 대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보름쯤 후부터 겨우 유동식이 시작되자마자 출혈과 혈변, 황달 등으로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져 급기야 중환자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에는 보호자조차 출입이 제한되었다. 마지막 11일간을 아버지는 혼자 중환자실에 있다가 끝내 눈을 뜨지 못하셨다.

 

운명하시기 직전, 병원에서 직계 가족들만 다 들어오라고 했다. 호흡기에 의존해 누워 계신 아버지. 손과 얼굴은 차가웠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 감고 계신 아버지의 눈가에는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나처럼 “왔나, 괜찮다.” 하고 계셨을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두 발로 걸어 들어가셨는데 암 진단 두 달 만에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생각하면 좀 더 미루고 말렸어야 했나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아버지다운 결정이었다.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미루지 않고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집에 못을 박을 일이 있거나, 정리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마음 맞으면 언제든 다녀오셨는데, 돌아오시자마자 사진 정리를 하고 아버지의 온라인 사진 카페에 올려놓으셨다. 1년에 두어 번, 자식들, 손주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꼭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공유해 주셨다. 심지어 딸네 와서 고쳐야 할 소형 가전제품이 있으면 그날로 바로 들고 가, 자주 가시는 전파상 같은 곳에서 고쳐 오셨다. 퇴직 이후 집 안의 청소와 정리 등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몫이었다. 그런 분이시라 몸속에 암 종양이 있는데 그대로 두고 본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른 몸을 회복한 후 촌에 심어 놓은 농작물도 보러 가고 팔순 여행 계획도 짜야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일상에 충실한 분이셨다. 가신 후 이것저것 정리하는 과정에서, 뭐 하나 복잡한 것이 없었다. 금전 문제는 물론이고, 입원하기 일주일 전 동생과 나들이 갔을 때의 사진까지 노트북에, 당신의 사진 카페에 잘 정리해서 올려놓으셨다. 각종 비밀번호 및 필요한 정보는 수첩에 꼼꼼히 정리되어 있었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병에 대한 정보들을 혼자 찾고 준비하고 계셨음이 노트북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음에도 일상의 흔적들은 너무나 단정했다. 매일 할 일이 있었고, 다음의 계획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다.

 

 

 

3. 나: 지성을 나누는 죽음

 

폴 칼라니티와 아버지의 죽음은 남은 내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라는 당연한 가르침.

 

부모님은 내게 아직도 그렇게 책이 좋냐고 하셨다. 이제야 책이 진짜 좋습니다. 감이당을 시작으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이제 공부는 내 일상이 되었다. 그간 읽었던 책들이 꼬물꼬물 연결되기 시작했다. 철학과 불교, 과학의 교차점이 흥미로웠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가족은 잠시 뒷전에 두고 책을 들고 종종 바깥으로 나간다. 내 아이들에게는 나의 정보가 들어 있을 테니, 어떻게든 알아서 잘하리라 믿으면서. 그리고 문탁에 문을 두드렸는데, 강도가 세다. 첫 에세이가 죽음을 다루는 것이 되다니, 감정적으로도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숨결이 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바람이 배롱나무 아래로, 반야심경 글귀 사이로 불어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나 당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장례식에 그냥 인사치레로 오시는 분들은 없어 보였다. 많은 분이 최근 몇 달 이내 함께 즐겁게 만났던 분들이라 충격이 컸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젠체하지 않았고, 먼저 연락하는 분이었다고 말씀들 해주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친구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지성을 매개로 하는 우정이 가능함을 배운다.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공부에는 사람이 있다. 공부에의 열정이 남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고 그들에게서 배운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헛헛할 때, 옆 사람과 미친 듯이 이야기했는데, 나 혼자 떠들고 나서 오는 공허함에 공감하는가. 공부 공동체는 지적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좋다. 듣기만 해도 좋다. 지루한 일상을 견인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무쌍한 관계다.

 

오늘 할 일이 있으면 된다. 내일 할 공부가 있으면 된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산책길에 지인과 잠시 걷고, 공동체에 접속해서 지성을 나누는 하루. 내게는 이런 휴일이 소중하다. 책이 달라지고, 지인과 나누는 대화가 달라지고, 공부하는 내용이 다르지 않나. 주중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재밌게 지내고 있다. 폴 칼라니티처럼 소명으로 가득하진 않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의 일이 좋다. 이런 역동적인 충만함이면 됐다. 때때로 광풍이 불어 나를 흔들지라도 그로 인해 다시 일상을 재정립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것이 명료하게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폴처럼, 아버지처럼, 내 뒷자리를 정리하는 게 어렵지 않도록 그리 살고 싶다. 매일매일 단정하게 주변과 나를 정리하고, 내 역할에 충실하며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연암 박지원처럼 말년에 병이 극도로 심해지면, 약을 끊고, 곡기를 끊을지언정, 내 가까운 벗들과 전날 읽은 책 이야기를 하다가 그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리고 훗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하루하루를 참 재밌게 살다 간 사람.”

 

 

댓글 1
  • 2023-12-13 00:06

    그 해 여름, 뜨겁고도 차가웠던 여름, 떠나가는 당신을 잡아도 보고 보내기도 했던 여름..
    아빠에 대한 누나의 회고와 죽음을 지혜롭게 인용(認容)했던 폴의 이야기로부터 그 해 여름 아빠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마지막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바로 이 순간, 우리 남매의 나이테가 한 줄 한 줄 더해져 아름드리 한 그루가 되어가는 바로 이 순간이 가장 빛나고 소중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다 가거라” 하며..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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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1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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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47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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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 조회 291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7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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