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터뷰하다 / 앙코르석공

문탁
2023-12-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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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1 -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2 - 네.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1 - 저는 나이듦연구소의 일일기자 앙코르석공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주제로 에세이쓰기 시즌3를 진행하고 있으며, 앙코르석공님의 에세이쓰기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앙코르석공님과 나이듦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대해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이제부터는 앙코르석공님을 그냥 석공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냥 석공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석공님, 거짓이나 왜곡만 없다면 과장이나 미화 정도는 인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석공2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아무리 거짓이 없이 말하려고 하여도 본의 아니게 좋게만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었는데, 이제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석공1 - 우선 석공님께서는 언제쯤부터 나이듦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나요?

석공2 - 내가 그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쉰아홉 살 때부터 나이듦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순 살이 되는 게 싫어서, 우스갯소리로 6학년이 되는 게 싫어서 그해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도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나이를 모르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몇 년간 계속 쉰아홉이라고 대답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플러스알파라고 덧붙였습니다. 아, 이제는 그것도 낯간지러워서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곳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에 관해 특히 인문학을 중심으로 많이 사유하게 됩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석공2 - 저는 살아오는 동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양 수준 이상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습니다.그런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기를 쓰고 나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 내가 글을 좀 잘 쓰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년쯤 전 우연히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인문학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문학의 재미를 느끼고, 또 늦바람이 난 듯 과할 정도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도 적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더더욱 적지만 공부하는 재미만큼은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지금 내가 지금 늙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더’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줍니다

 

 

 

 

 

석공1 - 석공님,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듦을 대체로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나요.

석공2 - 늙어감을 글이나 책에서 볼 때 더 자주 쓰이는 한자어 ‘노화’라고 표현하면, 노화는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노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육체적 노화는 지금도 크게 느끼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스포츠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육체를 크게 쓸 일이 없어 육체적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이듦에서 육체적 노화는 당연하다고 생각되기에, 노화에 서서히 적응하여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1년에 두세번 하게 되는 트레킹에서는, 젊을 때부터 스스로 인정하는 국민저질체력이라서 트레킹 시작할 때 처음부터 정신승리를 외치면서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어 트레킹을 하기에,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육체에 대해 느끼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정신적 노화는 달라요. 정신적 노화는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크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정신적 노화를 계속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신적 노화말고도, 지금 이후의 정신적 노화의 빠른 진행까지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석공1 - 정신적 노화, 알 듯 말 듯합니다. 석공님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석공2 - 예. 정신적 노화, 또는 정신기능의 저하로는 주의력 저하를 예로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누구나가 얘기합니다. 주의력 저하는 치매 등과 달리 질환이라고 얘기할 수 없고,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아니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고 있는 노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도 이제 나이가 조금 드셨으니, 방금 말씀하신 주의력 저하를 직접 겪기도 하셨고 또 지금도 겪고 계실텐데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주의력 저하는 누구라도 겪는 일입니다만은, 제가 의료인이다보니 주의력저하는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아! 주의력이 떨어져 버렸구나 싶은 아찔한 순간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해결책은 반복검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퇴근 30분 전부터 그날 치료했던 환자들의 챠트(의료기록부)를 전부 앞에 놓고서 오늘 하였던 진료 내용을 복기하고서 특별히 놓친 점이 없는 지 검토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치료하여야 할 환자들의 챠트도 전부 앞에 놓고서 내일 할 진료의 내용에 대해 미리 검토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 준비해야 할 내용 등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둡니다.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출근은 무조건 진료 시작 한 시간 전입니다. 그날 치료해야 할 환자의 치료내용을 미리 시물레이션(모의실험)하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주의력 결핍에 대비할 수 있고, 또 마음이 여유로와지는 효과 또한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절대 어기는 않는 삶의 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매일 하던 출근 시간 전 하루 1시간 걷기를 할 수가 없어서 육체적 노화(배가 나오는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 일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석공1 - 석공님, 이제 나이듦에서 특히 정신적 노화에서 노인성우울증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우울증 때문에 고생하셨거나 지금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석공2 - 자, 제 자신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울증, 특히 노인성우울증에 대해 의학적 설명을 조금 해야할 것 같습니다. 노인성우울증이란 노인기에 발생하는 우울감,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말하며, 불안, 기억력 손상, 신체증상, 초조감, 체중감소, 변비, 건강염려증적 증상, 히스테리성 행동, 망상 등이 노인성우울증의 주된 증세입니다. 이러한 노인성우울증의 유병율은 4~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이러한 질병으로서의 노인성우울증과 나이들어 누구나 겪는다고 얘기하는 단순 우울증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우울증을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그냥 우울해서 또는 우울증 때문에 고생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그 증세가 심하다고 느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의학적 치료를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대해 뒤늦게 의학적으로 혼자 공부해 보고, 아울러 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조금 얕게 그리고 폭넓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이라는 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이 책에 의하면 우울한 감정은 우울증보다는 우울이라고 표현해야 하고, 우울이란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에 의해 앞으로 계속 부정적인 사건이 되풀이될 것으로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되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심화된,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즉 우울이란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에게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나이듦에 따라 누구라도 삶에서 부정적인 사건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쌓여 갈테고, 이는 나이가 들면 우울은 조금씩이라도 점점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은 노인이 되어서 특별히 더 많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고 누구라도 쉽게 또는 대부분 느끼게 되는 마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울 또는 우울증에 대해 파악하고 나니 우울 또는 우울증은 조금씩 시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불안증은 또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말이 나온 김에 불안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이 많아져서 생기는 잘못된 예측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불편한 감정 상태를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이 되고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살면 부정적 사건이 많아져 우울과 불안이 많아지겠지요.단지 무엇을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어느 만큼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등 마음상태가 사람마다 달라 우울과 불안의 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석공1 - 석공님은 석공님의 우울과 불안이 석공님의 직업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석공2 - 당연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의사,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모든 환자의 불편한 점을 파악하면서 불평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니 스트레스가 당연히 많을 터이고,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부정적인 사건은 당연히 많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사건이 계속 쌓이면 우울과 불안도 당연히 쌓여 갈 겁니다. 특히 하루에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 사람들과는 생각의 차이에 의해 서로가 원치 않는 갈등을 느끼기도 하고, 또 이 때문에 부정적인 사건은 더욱 더 많아 지겠지요.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특별한 마음의 병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쌓이는 삶의 노폐물처럼 느껴지니 때때로 잘 버리면 되지 않나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라는 게 이론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니 정말 어려울 때도 있지요. 그때는 계속 되뇌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석공1 -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이 좋았던 적은 없었나요?

석공2 - 내가 나의 나이듦이 좋았다고 한다면 착각이거나 필요에 의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도 나이듦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꾸미기 위한 말이거나 격려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이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나이탓이야, 기죽지 마’라고 격려할 때는 나이듦이 좋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나이듦을 관대함의 증가, 또는 이해의 지평이 넓어짐으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겨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의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나이든 사람을 대할 때 가끔 느끼는 생각이니까요.

 

석공1 - 아,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실만한 삶의 형식 또는 양식을 갖고 계신 가요?

석공2 - 예. 내가 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는 시간들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을 살아갈 때는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젊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여 여행에 관심, 시간과 돈 등 많은 것을 투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해외여행허가제’라는 것이 있던 그 시절, 일천구백팔십일년부터 해외의료봉사활동의 기회가 있어서 의료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그나라에서 짧게나마 여행을 즐길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이후 여행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여행은 삶이 주는 의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지금도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 여행하는 순간, 여행을 반추하는 순간에는 삶의 희열을 느끼기에 나이듦이라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 중에는 서로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문화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여행에 맞추어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은퇴하면 선정해 두고 있는 세계 24개 곳으로 가서 한달살기를 2년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당분간 그곳에 정착해 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그 2년동안 새로운 삶의 형태도 열심히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찾아 진다면 제 2의 인생도 살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이 봉사 등 아웃풋이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바램이겠지요. 이렇게 은퇴계획을 해외 위주로 짜다 보니 좀 사치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물가가 보통이 아니기에, 이런 은퇴계획에서 어차피 필요한 생활비에 특별하게 더 필요한 비용을 걱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렇게 공개적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얘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어감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 정말 가까워져야 그때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그 실체가 아직 느껴지지 않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냥 헛돌 뿐입니다. 예를 들어 장 아메리의 죽음에 대한 글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자신의 죽음은 현실감은 없어 보입니다. 대신 자신의 죽음보다 타인, 또는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단 하나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보다 못한 삶 또는 무의미한 삶이 닥칠 때에 대비하여 자유죽음에 대해 생각만은 많이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적으로 자유죽음을 더 길게 얘기하는 것은 사회관습적으로 아직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석공1 - 석공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석공2 -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난 뒤에 붙이는 말들은 화룡점정보다 화사첨족이기 십상이지요. 자, 다음에 언젠가 어디에선가 또 뵙도록 하지요. 저도 석공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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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가마솥
2024.05.25 | 조회 153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현민
2024.05.24 | 조회 140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낮 최고 기온이 27.3℃와 29.4℃였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 기온은 한여름이다. 작년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햇빛의 강도가 작년과 또 다르게 더 강렬했다. (올해는 새로운 패턴이 생긴 것도 같다. 너무 일찍 더워졌다가 또 급하게 온도가 내려가 평년보다 더 쌀쌀해진 느낌이다) 그런 햇빛을 받으며 걷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정말 지구가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해서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엄청 더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미안해지고 안쓰러웠다. 기후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제 기후위기라고 한다. 이런 지구를 물려주는 어른으로서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야 노~올자     2024년 5월 5일 제102회 어린이날, 우리 동네에서는 제17회 금천어린이큰잔치 ‘친구야 노~올자’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된 마을 행사이다. 우리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된 후 ‘금천구’라는 정체성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동안 없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은 신도림 가로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까지 다녀와야 했단다. 그런 상황을 보고 ‘나서는 어른들’이 있었다. 우리 동네 어린이들도 우리 동네에서 놀게 하자고. 그런 어른들의 제안으로 2007년 처음 금천구에도 어린이날 행사가 생긴 것이다. 전교조, 노동조합, 청년회, 진보정당 등 지역의 여러 단체가 첫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김윤경~단순삶
2024.05.20 | 조회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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