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터뷰하다 / 앙코르석공

문탁
2023-12-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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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1 -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2 - 네. 안녕하세요, 앙코르석공님.

 

석공1 - 저는 나이듦연구소의 일일기자 앙코르석공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주제로 에세이쓰기 시즌3를 진행하고 있으며, 앙코르석공님의 에세이쓰기를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앙코르석공님과 나이듦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대해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이제부터는 앙코르석공님을 그냥 석공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냥 석공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석공님, 거짓이나 왜곡만 없다면 과장이나 미화 정도는 인정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석공2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아무리 거짓이 없이 말하려고 하여도 본의 아니게 좋게만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었는데, 이제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석공1 - 우선 석공님께서는 언제쯤부터 나이듦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나요?

석공2 - 내가 그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좀 우습기는 하지만, 쉰아홉 살 때부터 나이듦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순 살이 되는 게 싫어서, 우스갯소리로 6학년이 되는 게 싫어서 그해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도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나이를 모르던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 나이를 물어보면, 몇 년간 계속 쉰아홉이라고 대답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플러스알파라고 덧붙였습니다. 아, 이제는 그것도 낯간지러워서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곳 나이듦연구소에서는 나이듦에 관해 특히 인문학을 중심으로 많이 사유하게 됩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인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석공2 - 저는 살아오는 동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양 수준 이상의 인문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습니다.그런데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기를 쓰고 나서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 내가 글을 좀 잘 쓰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년쯤 전 우연히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인문학을 다시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인문학의 재미를 느끼고, 또 늦바람이 난 듯 과할 정도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도 적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더더욱 적지만 공부하는 재미만큼은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지금 내가 지금 늙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더’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줍니다

 

 

 

 

 

석공1 - 석공님, 사람들은 모두가 나이듦을 대체로 어렵다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에 어려움은 어떤 게 있었나요.

석공2 - 늙어감을 글이나 책에서 볼 때 더 자주 쓰이는 한자어 ‘노화’라고 표현하면, 노화는 육체적 노화와 정신적 노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육체적 노화는 지금도 크게 느끼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스포츠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육체를 크게 쓸 일이 없어 육체적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이듦에서 육체적 노화는 당연하다고 생각되기에, 노화에 서서히 적응하여 노화를 의식하지 않고도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1년에 두세번 하게 되는 트레킹에서는, 젊을 때부터 스스로 인정하는 국민저질체력이라서 트레킹 시작할 때 처음부터 정신승리를 외치면서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어 트레킹을 하기에,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육체에 대해 느끼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정신적 노화는 달라요. 정신적 노화는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크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 이후 지금까지 정신적 노화를 계속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신적 노화말고도, 지금 이후의 정신적 노화의 빠른 진행까지 생각하면 조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석공1 - 정신적 노화, 알 듯 말 듯합니다. 석공님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석공2 - 예. 정신적 노화, 또는 정신기능의 저하로는 주의력 저하를 예로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가 들면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누구나가 얘기합니다. 주의력 저하는 치매 등과 달리 질환이라고 얘기할 수 없고,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아니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고 있는 노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도 이제 나이가 조금 드셨으니, 방금 말씀하신 주의력 저하를 직접 겪기도 하셨고 또 지금도 겪고 계실텐데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주의력 저하는 누구라도 겪는 일입니다만은, 제가 의료인이다보니 주의력저하는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아! 주의력이 떨어져 버렸구나 싶은 아찔한 순간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해결책은 반복검토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퇴근 30분 전부터 그날 치료했던 환자들의 챠트(의료기록부)를 전부 앞에 놓고서 오늘 하였던 진료 내용을 복기하고서 특별히 놓친 점이 없는 지 검토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치료하여야 할 환자들의 챠트도 전부 앞에 놓고서 내일 할 진료의 내용에 대해 미리 검토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 준비해야 할 내용 등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둡니다.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 출근은 무조건 진료 시작 한 시간 전입니다. 그날 치료해야 할 환자의 치료내용을 미리 시물레이션(모의실험)하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주의력 결핍에 대비할 수 있고, 또 마음이 여유로와지는 효과 또한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이제 절대 어기는 않는 삶의 한 방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 매일 하던 출근 시간 전 하루 1시간 걷기를 할 수가 없어서 육체적 노화(배가 나오는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 일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석공1 - 석공님, 이제 나이듦에서 특히 정신적 노화에서 노인성우울증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석공님은 우울증 때문에 고생하셨거나 지금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석공2 - 자, 제 자신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울증, 특히 노인성우울증에 대해 의학적 설명을 조금 해야할 것 같습니다. 노인성우울증이란 노인기에 발생하는 우울감,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장애를 말하며, 불안, 기억력 손상, 신체증상, 초조감, 체중감소, 변비, 건강염려증적 증상, 히스테리성 행동, 망상 등이 노인성우울증의 주된 증세입니다. 이러한 노인성우울증의 유병율은 4~8%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이러한 질병으로서의 노인성우울증과 나이들어 누구나 겪는다고 얘기하는 단순 우울증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우울증을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그냥 우울해서 또는 우울증 때문에 고생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그 증세가 심하다고 느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의학적 치료를 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대해 뒤늦게 의학적으로 혼자 공부해 보고, 아울러 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조금 얕게 그리고 폭넓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이라는 책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이 책에 의하면 우울한 감정은 우울증보다는 우울이라고 표현해야 하고, 우울이란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에 의해 앞으로 계속 부정적인 사건이 되풀이될 것으로 잘못된 예측을 하게 되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심화된,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즉 우울이란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 대부분에게 필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나이듦에 따라 누구라도 삶에서 부정적인 사건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쌓여 갈테고, 이는 나이가 들면 우울은 조금씩이라도 점점 많아질 수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은 노인이 되어서 특별히 더 많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고 누구라도 쉽게 또는 대부분 느끼게 되는 마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울 또는 우울증에 대해 파악하고 나니 우울 또는 우울증은 조금씩 시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석공1 - 그러면, 석공님은 불안증은 또 어떻게 겪으셨나요?

석공2 - 말이 나온 김에 불안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이 많아져서 생기는 잘못된 예측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불편한 감정 상태를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우울이 되고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불안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살면 부정적 사건이 많아져 우울과 불안이 많아지겠지요.단지 무엇을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어느 만큼 부정적 사건으로 볼지 등 마음상태가 사람마다 달라 우울과 불안의 양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석공1 - 석공님은 석공님의 우울과 불안이 석공님의 직업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석공2 - 당연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의사,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모든 환자의 불편한 점을 파악하면서 불평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니 스트레스가 당연히 많을 터이고,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부정적인 사건은 당연히 많겠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사건이 계속 쌓이면 우울과 불안도 당연히 쌓여 갈 겁니다. 특히 하루에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그 사람들과는 생각의 차이에 의해 서로가 원치 않는 갈등을 느끼기도 하고, 또 이 때문에 부정적인 사건은 더욱 더 많아 지겠지요.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특별한 마음의 병이 아니고 살아가면서 쌓이는 삶의 노폐물처럼 느껴지니 때때로 잘 버리면 되지 않나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라는 게 이론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니 정말 어려울 때도 있지요. 그때는 계속 되뇌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

 

석공1 - 아, 그러셨군요.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이 좋았던 적은 없었나요?

석공2 - 내가 나의 나이듦이 좋았다고 한다면 착각이거나 필요에 의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도 나이듦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꾸미기 위한 말이거나 격려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이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나이탓이야, 기죽지 마’라고 격려할 때는 나이듦이 좋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편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나이듦을 관대함의 증가, 또는 이해의 지평이 넓어짐으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겨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의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나이든 사람을 대할 때 가끔 느끼는 생각이니까요.

 

석공1 - 아, 그러면 석공님은 석공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실만한 삶의 형식 또는 양식을 갖고 계신 가요?

석공2 - 예. 내가 나의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사는 시간들은, 여행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을 살아갈 때는 나이듦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젊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하여 여행에 관심, 시간과 돈 등 많은 것을 투자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해외여행허가제’라는 것이 있던 그 시절, 일천구백팔십일년부터 해외의료봉사활동의 기회가 있어서 의료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그나라에서 짧게나마 여행을 즐길 수가 있어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 이후 여행은 삶의 일부가 되었고, 여행은 삶이 주는 의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지금도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 여행하는 순간, 여행을 반추하는 순간에는 삶의 희열을 느끼기에 나이듦이라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 중에는 서로가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문화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여행에 맞추어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선 은퇴하면 선정해 두고 있는 세계 24개 곳으로 가서 한달살기를 2년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당분간 그곳에 정착해 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그 2년동안 새로운 삶의 형태도 열심히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 찾아 진다면 제 2의 인생도 살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이 봉사 등 아웃풋이 있는 것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바램이겠지요. 이렇게 은퇴계획을 해외 위주로 짜다 보니 좀 사치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물가가 보통이 아니기에, 이런 은퇴계획에서 어차피 필요한 생활비에 특별하게 더 필요한 비용을 걱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석공1 - 석공님, 이렇게 공개적으로 쉽게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얘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늙어감의 끝인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석공2 -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죽음이 정말 가까워져야 그때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그 실체가 아직 느껴지지 않고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냥 헛돌 뿐입니다. 예를 들어 장 아메리의 죽음에 대한 글들은 참 재미있게 읽었지만, 자신의 죽음은 현실감은 없어 보입니다. 대신 자신의 죽음보다 타인, 또는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단 하나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음보다 못한 삶 또는 무의미한 삶이 닥칠 때에 대비하여 자유죽음에 대해 생각만은 많이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적으로 자유죽음을 더 길게 얘기하는 것은 사회관습적으로 아직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석공1 - 석공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석공2 -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난 뒤에 붙이는 말들은 화룡점정보다 화사첨족이기 십상이지요. 자, 다음에 언젠가 어디에선가 또 뵙도록 하지요. 저도 석공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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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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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2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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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48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293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7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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