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음에서 삶의 의미 찾기 / 박정은

문탁
2023-12-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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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

 

나이듦과 자기서사의 세 번째 시즌, 마지막 교재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 여섯 살의 신경외과 7년차 레지던트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22개월 후인 2015년 3월 9일에 죽기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릴 때 뉴욕 북동부에 살다가 열 살에 사막도시인 애리조나의 킹맨으로 이사를 간다. 폴은 사막의 자유를 사랑했고 친구들과 사막을 탐험했다. 의사인 아버지가 늘 바쁜걸 보고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을 문학으로 여겼다. 폴은 문학을 전공하면서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월트 휘트먼의 작품을 연구했다. 하지만 학위논문을 마치면서 문학공부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고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을 찾게 되었다. 폴은 의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의과 대학원에 입학한다.

 

폴은 의과 대학원에서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한다. 신경외과의 특성상 완벽을 추구하고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준다는 것이 폴이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였다. 이후에 폴은 암 진단을 받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죽음을 탐구하고 싶었던 청년이 죽음을 맞았으니 선물이 아닌가라고.

 

 

2. 사명감으로 신경외과의로 복직

 

신경외과의는 폴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다. 병으로 레지던트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폴은 정체성을 잃었다. 환자복을 입은 폴은 주어에서 직접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폴은 죽음을 이해하고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다시 문학을 읽기 시작한다. 문학을 읽으면서 자기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글쓰기를 필요로 했다. 폴이 자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였다.

 

폴은 신경외과의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경외과의 일에 대해 누구보다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암 치료를 위해 일을 쉬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복직을 못 할거라고 생각하며 정체성을 잃고 혼란스러웠지만 어느 날 아침 마음 속에 할 수 없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 떠오른다. 폴은 복직을 하겠다는 의지로 6주 동안 수술에 필요한 체력을 만드는 물리 치료 프로그램을 받는다. 그러고는 암 진단을 받고 18주 만에 복직을 한다. 폴은 이런 변화를 개종이라고 할 만한 변화라고 말한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해냈다.

 

복직을 한 직후에는 수술실에서만 근무하던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수술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수술실 밖에서까지 환자를 대하는 업무를 하면서 하루 근무시간이 16시간까지 늘어났다. 폴의 몸은 혹사되면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암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수술실로 복귀하고 7개월이 지나고 CT촬영기로 찍은 폐 사진은 예전에 찍은 사진에서 희미하게 있던 것이 “마치 지평선을 막 벗어난 보름달같이”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이미 그런 결과를 예상했는지 폴은 화가 나지도 겁먹지도 않았다. 그냥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일을 하면서 진통제를 한 움큼씩 먹으면서 폴도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폴은 이 때 문득 엘리엇의 <황무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등 뒤에서 찬바람이 몰아치는 중에도 나는 듣는다/ 뼈들이 덜거덕거리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는 소리를” 폴은 이 순간에 절망에 빠지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마치 할 일을 다 하고 집에 가는 사람처럼.

 

1차 약물치료가 실패임을 알고 레지던트로서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 폴은 7년 동안 병원을 다니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정원에 있는 소나무를 알아보고 마지막 수술에서 손과 팔을 씻는 순간에도 장대함을 느낀다. 폴은 신경외과의로 마지막 출근 날임을 짐작하고 수술이 끝나는 순간까지 소명을 다한다.

 

 

 

3. 편안한 죽음이 최고의 죽음은 아니다

 

“아기가 생기면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아기와 헤어져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 암 진단을 받고 폴과 아내 루시는 보통의 부부처럼 이런 대화를 나눈다. 폴은 그럼에도 아기를 멋진 선물로 여기고 가지기로 한다. 폴이 신경외과의로 복직하는 모습과 겹친다. 죽음이 눈 앞에 있어도 아직 주어진, 살아있는 시간에 더 집중한다. 폴이 1차 약물요법이 실패하고 2차 화학치료도 실패로 끝나는 즈음에 루시는 딸을 출산한다. 이 때 폴의 상태는 독서를 하기도 힘들었다.

 

폴은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수많은 죽음을 봐왔고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폴 부부가 폴이 죽어가는 것보다 아직 살아있고 남아 있는 시간이 있는 것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죽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부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죽음 앞에서 용기를 낸 부부는 딸 케이디를 얻었다. 딸이 태어나고 8개월을 더 살다간 폴에게 케이디는 기쁨과 충만함 그 자체였다. 딸 케이디에게 남긴 메시지를 보면 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케이디로 인해 폴이 받았을 위안과 평안함이 느껴진다. 폴은 임종 순간에 딸을 찾는다. 루시는 폴이 가는 마지막 순간에 딸과 같이 누워있는 폴에게 늘 하던대로 자장가를 불러준다.

 

딸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고통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편안한 죽음이라는 건 당사자가 아닌 주변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눈에 보이는 조건으로 판단되어 진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사람이 보았을 때 폴의 죽음이 편안한 죽음이 아닐 수 있다. 안 편안한 죽음이지만 최고의 죽음이 될 수 있는 걸 폴은 보여주었다.

 

 

4. 폴과 함께 죽음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

 

암을 겪어 나가면서 신경외과의 겸 신경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폴의 계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폴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라고 했던 담당의 에마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인생의 삼분의 일을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지만 병으로 좌절되었을 때 폴은 절망에 빠진다. 절망에 빠진 폴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한 건 담당의 에마였다.

 

폴은 에마로 인해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는 때까지 돕는 것”임을 깨닫는다. “최대한의 책임감과 권한으로 환자를 돌보려 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책임이고 덧없는 권한”이었다는 것이다. 폴은 병원 밖에서 환자가 겪을 실존적 삶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신체적으로 병의 진행 상태를 보고 최선의 치료과정을 생각해내고 수술은 했지만 환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병원 밖의 실제 삶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의사의 역할이 환자복을 벗고 병원 밖으로 나간 환자가 마주할 일상까지도 돕는 것임을 알고 지난 시절 의사로서 오만했음을 느낀다.

 

아내 루시로 인해 폴은 죽음 앞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순간이 왔을 때도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받지 않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경외과의로 일하면서 신경계의 손상으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폴에게 중요한건 생존이 아닌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루시는 폴이 투병했던 기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로 회상한다. 죽음이 바로 앞에까지 왔을 때 오히려 가장 아름답고 충만할 수 있었던 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즐거움과 고통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했던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병으로 인해 달라지는 신체로 실존적 삶이 계속해서 변하는 가운데 정신을 잃지 않고 새로운 정체성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려고 애썼던 폴의 모습과 닮았다.

 

 

 

 

 

5. 출판으로 죽음까지 의미로 남긴 폴

 

완벽을 추구하는 신경외과를 선택했던 폴은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며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는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존재임을 말한다.

 

폴의 말처럼 <숨결이 바람이 될 때>는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맑은 정신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서 “난 준비됐어.”라며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폴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출판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은 우리 앞에 당연히 있는 것이고 누구라도 죽음이 온다면 이런 과정들을 겪게 될 거라는 것을 알려준다. 마치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병원 밖에서 환자가 마주할 실존적 상황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숙제를 다 마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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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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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7
일상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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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51
K장녀_돌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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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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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06 | 조회 17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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