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성에 대한 인생의 새로운 의미 / 김미정

문탁
2023-12-04 10:31
71

 

 

 

1. 나의 방황이 시작되다

 

2020년 여름이 찾아올 무렵, 나는 번아웃에 빠졌다. 2007년 입사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회사는 그동안의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이 내가 일을 열심히 하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자발적인 야근도 모자라 집에 가서도 다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오곤 했다. 일이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재미있기만 했고, 하나씩 업무를 완수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달콤했으며, 직장동료들로부터 나의 업무능력을 인정받기라도 하면 난 지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회사 내 대표적인 워커홀릭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일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꼈던 보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게 조직에 대해 내가 느끼는 회의감은 점차 커져 갔다.

 

 

 

 

조직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는 것은 나의 지난 삶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일만 열심히 했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조직에 충성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삶은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이라 애써 위안했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성공, 능력, 인정, 승진과 같은 것들이 더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삶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타인이 정한 기준과 평가에 맞춰서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내 인생의 주체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인생의 방향은커녕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여정을 가야할 지 갈피를 못 잡던 차에 <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나는 노년을 생각하는 것이 깊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2년 동안 6개의 시즌을 거치면서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2.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방황

 

2년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텍스트는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한 젊은 의사가 죽음을 마주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스탠퍼드 대학병원 신경외과의 레지던트 6년 차였던 그는, 레지던트 과정 수료를 일 년 정도 남겨두고 폐암 진단을 받게 된다. 의과 대학원 학생에서 신경외과 교수로 가는 여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상도 받고, 여러 일류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을 만큼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은 이후 그는 의사에서 환자로, 주체에서 객체로 바뀌었다.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169)

나는 내 삶의 모든 문장에서 주어가 아닌 직접 목적어가 된 기분이었다.” (171)

 

폴의 몸은 갈수록 쇠약해졌고, 그가 꿈꿨던 미래와 자신이 쌓아온 정체성은 무너져버렸다. 일에서 손을 놓았기 때문에 신경외과 의사이자 과학자이며 전도유망한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그는 이제 느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예전의 자신으로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참석했던 스탠퍼드 신경외과 동문 모임은 과거에 대한 현재의 괴리감만 더 실감나게 할 뿐이었다. 남은 삶이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쓰고,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확신할 수 없어 이런 계획은 결국 허상과도 같았다.

 

 

3.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

 

폴의 방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까닭도 한몫 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투병을 하면서 그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뀌는 걸 체감하며 그 일련의 과정을 담담하게 글로 풀어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그를 무력하게 만들고, 죽음의 기운이 짙어서 일상의 모든 행동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순간들이 많았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 (180)

 

그날 아침 그는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수술실에서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레지던트 근무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에 몰두한다. 그는 이전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잠재력과 커리어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를 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그에게 미래는 더이상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렸다.

폴은 신경외과에서의 일을 신성한 일로 여겼고, 직업이라기 보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복귀했다. 그가 혼자의 힘만으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아내인 루시와 담당의사인 에마는 그가 계속해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아갈 길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었다. 자신의 예후와 생존 가능 기간을 궁금해하는 폴에게 에마는 답을 거절하는 대신, 폴에게 늘 되묻는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꼭 생각해 보세요.’ 또 아내 루시는 폴이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복귀를 정한 순간에도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 남편이 앞으로 2년을 살지 5년을 살지 미래를 알 수 없는데도 아기를 갖기로 결심한다. 이 부부는 죽음에 따른 고통보다 아기의 탄생이 주는 축복에 더 의미를 둔다. 이들은 이대로 스러져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함께 다짐한다.

 

 

 

 

 

4.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적이지 않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야?’라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질문이었다. 폴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찾았다. 담당의사인 에마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가치를 찾는데 끝없이 고뇌했고, 루시와는 어렵게 고민한 끝에 아기를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폴의 삶에서 그가 주체이긴 하지만, 새롭게 형성하는 그의 정체성과 인생에서 그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그가 맺는 관계적인 측면과 관련이 깊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이 과정에는 나와 관계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필요에 의해서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관계를 이어 왔지만,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았다. 때로는 인간관계에서 파생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에게는 은근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했고, 그들의 존재로 인해 나에게 부여되는 어떤 역할들은 나의 활동에 대한 제약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들과 내가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에 무감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은 사회적으로 지금의 내 나이에 요구되는 지위나 권한, 부의 달성 정도를 생각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나는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까?’를 고민할 때, 은연중에 어떤 일을 직업으로 할지를 생각하곤 했다. 일과 직업적인 측면으로만 나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것 같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문득 나도 폴과 같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나에게 중요한 것

 

폴과 같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 않아도 우리 역시 일 년, 한 달, 하루 앞의 미래조차도 알 수 없는 존재다. 평상시에는 이런 삶의 유한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늘 먼 미래에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나 또한 그랬다.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문제의식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그 일을 하게 되면 어떤 미래가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걸 알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르는 삶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중요할까? 정작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나의 가족들과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이 떠오른다. 새삼스럽게 내 주변에서 나의 평화로운 일상을 응원하는 가족과 지인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행동이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듯, 나 역시도 그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떤 나의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 폴과 같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 나의 인생을 나에게 국한해서만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인간관계를 포함해서 폭넓게 바라보고 싶다. 그들과의 어떤 구체적인 인생계획이나 엄청난 결정을 한 건 아니지만,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의미있는 존재들로 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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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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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1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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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46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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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90
기린의 걷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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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06 | 조회 17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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