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현민
2023-11-21 02:07
37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첫 클럽은 베를린의 한 테크노 클럽이었다. 기나긴 줄을 기다려 겨우 입장한 그곳의 첫인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불이 반짝일 때마다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다들 생기 없는 좀비 같았다. 심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모두 양옆으로 몸을 뚝딱뚝딱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껴 어떻게 춤을 출 줄 몰라 당황하는 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춤을 추고 있으면서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케이팝의 나라에서 자란 인간으로서 춤을 춘다는 것은 항상 지나친 주목을 받는, 긴장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몸의 긴장을 느슨하게 했다.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입체적일 수 있었다. 사람들 신발 구경하기, 아름다운 사람들 관찰하기, 칭찬을 건네주기, 마음에 드는 디제이 발견하기, 너무 취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주기,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친구가 되기. 클럽에서는 무엇이든지 조금 더 과감해진다.

클럽은 비일상적인 과감함이 무언에 수용되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마음껏 무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종종 테크노 클럽에서 예상하지 못할 만큼 PC 한 규정을 발견하면, 그 규정들을 꼼꼼히 읽어보느라 그 앞에 늘 멈춰 한참을 서 있곤 했다.

 

 

No space for racism, sexism, homophobia, or any kind of discrimination.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의 차별을 위한 자리는 없다.

Being open towards all expressions of sexuality & gender. 모든 표현과 섹슈얼리티&젠더를 향해 열려있자.

No prejudice. More solidarity with others and special needs. 편견 없이, 다른 이들과 함께 더 연대하자.

Let’s take care of each other. 서로를 돌보자.

입장할 때는 핸드폰 앞뒤 카메라에 꼭 스티커를 붙인다. 그건 당신이 이 안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밖으로, 대놓고, 함부로 유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칙 한구석에는 이런 말도 있다. The awareness Team is here for you, if you find yourself in an uncomfortable situation. ‘성폭력을 당했으면 찾아오세요.’가 아니라, ‘네가 편안하지 않다면 우리 팀이 너를 위해 여기 있다’는 문장에서 이 문장을 쓰기 이전에 피해당사자들의 부담감을 앞서 헤아려 봤음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바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막 이 규정의 존재에 대해 감탄하는데, 나의 친구이자 깡마른 독일인 게이 다니엘은 규정이 있어도 문제는 많다며 까탈스럽게 클럽들을 욕한다. 이 남자가 이미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 잔뜩 까탈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그의 불만과 함께 이 사회에서 그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안전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본다.

 

오해받지 않는 몸

 

최근에는 특히나 잦은 파티에 갔다 왔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섹스 포지티브 Sex positive 테크노 파티였다. 집사람들과 단체로 갔는데 한 번도 섹스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인도인 플랫 메이트가 입구에서부터 경악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옷이라고 하기엔 천이 너무 부족한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유사 남성의 엉덩이나 성기를 볼 수 있었고, 거의 모든 유사 여성의 가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몸에 대한 오해와 왜곡의 경험이 잦았다. 중학생 때 빨간 립스틱을 발랐는데, 창녀가 될 거냐고 복도가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던 학생주임 선생님처럼. 어떤 이들은 빨간 입술에서 창녀의 삶까지 떠올린다.

그래서인가 클럽에도 잘 가지 않았다. 클럽에 가는 여자에게 씌워지는 걸레 이미지, 낯선 이들에게 외적 조건으로 평가당하는 몇 초, 아름답지 않은 남성들이 저지르는 무례함. 뉴스에서 지겹게 나오는 여성 대상 클럽 성폭행. 몸을 해석하는 모든 시선이 너무나 모욕적이었다.

이곳에서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몸은 삶을 경험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홀딱 벗고 있어도 아무도 서로를 함부로 만지거나 헛소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몸은 야한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내 춤을 추고, 그들은 그들의 즐거움을 누린다. 사람들은 본 것 이상을 넘겨짚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사람들의 외관이 기이할수록 아름다워 보였다. 수북한 가슴털 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디제잉 하는 게이. 남자친구와 같이 왔지만 귀여운 여자를 볼 때마다 번쩍 들고 딥키스를 갈기는 여자. 한껏 엉덩이를 까고 강하게 욕망하는 게이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커플처럼 서로를 단속하는 레즈들.

맨몸에 하네스만 차고 성기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며 과격한 춤을 추는 늙은 게이 아저씨. 그의 무아지경이 너무 인상 깊어서 이름을 물어봤더니 이름만 말해주고 이어지는 질문은 싹 다 무시당했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무아지경 독무에도, 게이 성생활에도 도움이 별로 안 되니 무시할 만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사실마저 즐거웠다.

 

더럽고, 야하고, 기이해서 금지되었던 이미지들이 눈앞에서 춤췄다. 이 사람들이 자유로운 만큼 나도 자유롭고, 내가 자유로운 만큼 이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우리의 자유가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이 벅찼다.

클럽에 입장하기 전, 문지기들은 관례처럼 질문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지, 어떤 디제이를 아는지, 어떤 옷을 준비했는지. 이것은 배제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질문이다. 잔뜩 미쳐 보이는 이들도 안전한 곳에서라야 미칠 수 있고, 미친 사람들에게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모두가 미친 곳일 테니 말이다.

언젠가 이런 것들에 대해 나의 플랫 메이트 독일인 니키와 이야기하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테크노 Techno라는 장르에 대해 감사해.

테크노에는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이 없다. 극단적인 반복 속에 몸과 정신이 구속된다. (테크노 파티에서 정신을 차리면 아침 해가 밝아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니키에 의하면 일렉트로닉 음악이 알려지기 전, 테크노는 레이브 Rave 문화와 함께 퀴어한 장르였다고 한다. 레이브라고 하면 숲속 혹은 공사장 같은 외진 곳에서 벌어지는 불허가의, 날 것의 파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60년대 히피문화와 함께 자유주의, 현실 도피, 쾌락주의의 장소가 되곤 했다. 그곳이 퀴어들에게는 사회적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탐닉하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자유롭기 위해 반쯤 미쳐버린 사람들. 기이하고, 입체적이고, 야생적이지만 무례하지 않은 변태들. 그 테크노 속에서 나는 기꺼이 논다. 

 

 

집 지하실에 있는 파티룸

내가 가장 좋아하는 히피가 디제잉 중

댓글 5
  • 2023-11-21 11:40

    그 유명한 '베를린 클럽'의 면면을 현민의 글을 통해서 접하니, 더 생생하고 신박하네요^^

    • 2023-11-21 18:17

      ㅋㅋ 비록 저는 독일 내에서 비교적 보수적이라 하는 뮌헨에 있긴하지만.. 언젠가 베를린 클럽에 대해 더 자세히 쓸 수 있길..

  • 2023-11-21 17:43

    와, 나도 안전하게 미치고 팔짝 뛰고 싶다!!!

    • 2023-11-21 18:15

      독일클럽 공짜 투어 해드립니다
      ㅋㅋ대신 독일까지 와야됨..

  • 2023-11-22 19:20

    이런 클럽에 가서 춤추고 싶군요.^^ 무조건 부럽다!!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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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49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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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37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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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64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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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06 | 조회 16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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