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남산을 걷다

기린
2023-11-06 23:49
420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나는 남산 밑에 자리했던(지금은 안산으로 옮긴)예술대학을 다녔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퍼시픽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나와서 경사진 골목을 올라가면 강의를 듣던 건물이 있었다. 그 골목을 끝까지 올라가면 남산자락으로 통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를 다닐 때 한 번도 골목 끝까지 올라 남산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도 했고, 주말에는 2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 집만 오가며 보냈던 것 같다. 10월에 날씨 좋을 때 남산 둘레길을 걷자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학교를 졸업한지 25년이 흘러갔는데 그 골목은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10월 15일 일요일, 서울 시청까지 가는 광역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뭔지 모르게 설레었다.

 

약속장소인 덕수궁 앞에서 먼저 와있던 두 친구를 만났다. 공동체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고 밥 먹고 활동하다 보니 따로  보면 각각 다르지만, 뭉쳐 있으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닮아 보이는 사이가 된 친구들이다. 안으로 들어가 국립현대 미술관 덕수궁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을 관람했다. 이름은 처음 듣는 화가였는데, 그림은 달력에서 본 기억이 나는 그림도 있었다. 한 친구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대하는 폼이 참으로 진지해서 전시회의 제목에 걸맞은 관람객이었다. 반면, 다른 친구와 나는 설렁설렁 돌아보고 나와서 휴게실 의자에서 노닥거렸다. 단순하게 그려진 화풍이 따라 그려볼만 하다던가, 노년기 작품에서 보이는 밝은 색조가 인상적이라는 둥. 그림 자체에서 달관한 기풍이 느껴져서 60여년 그림을 그리며 산 화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전시회였다.

 

 

덕수궁을 나서서 도심가 인도를 따라 건널목을 몇 번이나 건너 명동 한복판을 통과해서 명동역 지하도를 건넜더니 예전에 학교로 통했던 골목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보다 2년 앞서 역시 이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다닌 친구는 골목에 즐비했던 가게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어떤 이름은 기억이 났고 또 어떤 이름은 생경했다. 그 중에서 나란히 붙어있던 두 서점의 상호를 듣자, 빽빽이 책이 꽂혀있던 좁은 서가가 떠올랐다. 전공서적이 주로 꽂혀 있던 그 서가 한 쪽에 꽂힌 시집을 사곤 했다. 기형도의 <잎 속의 검은 잎> 같은 시집 말이다. 알 수 없는 내용들을 꾸역꾸역 읽으며 다 글 쓰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었다. 그렇게 사 모은 시집이 책꽂이 한 칸을 꽉 채웠다. 그러는 동안 글은 한 줄도 안 늘었지만, 예술 대학 다닌다며 부린 유일한 사치였던 것 같다. 지금은 학교도 이전했고 내가 자주 갔던 가게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강의동 건물 맞은편에 있던 편의점 정도만 남아있었다.

 

 경사진 골목을 끝까지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남산 둘레길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걸었다. 나보다 먼저 학교를 다녔던 친구는 둘레길을 들어서면서 여기저기 그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학교 강의동 위로는 올라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추억담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올라 다녔던 남산과는 너무나 달라졌다고도 했다. 같이 걸은 다른 친구는 한남동에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을 훤하게 꿰뚫고 있어서 걷기 좋은 코스로 안내해 주었다. 사계절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어서 굳이 다른 데 갈 필요가 없다는 그 길에는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쪽으로 인공으로 조성된 실개천이라지만 울창한 나무숲과도 잘 어울렸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산 둘레길은 총 7.3키로로 두 시간 삼십분 정도 걸리는 길로 완만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두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혼자 앞서나갔던 모양이다. 나를 불러 세운 친구들은 얘기 좀 하면서 걸으란다. 워낙 혼자 싸돌아 다니다보니 이정표만 좇아서 하염없이 걷는 습관이 같이 걷는데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속도를 늦추고 어제 본 드라마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설이 길고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나의 스타일을 아는 친구들은 어디서 치고 들어올지 가늠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말하는 속도를 높여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공동체에서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라 작정하고 수다 떠는 나를 받아주는데 능숙하다. 그런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혼자서 걷는 고요함과는 다른 떠들썩하게 걷는 재미도 좋았다.

 

 

 오랜 만에 친구들과 함께 걸은 길이었다. 다 잊고 있었던 20대 후반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서점은 사라졌지만, 그 때 산 시집들은 내 책꽂이에 여전히 꽂혀있다. 그 시절에 이루고 싶었던 꿈에서는 한참 멀어졌지만, 또 다른 꿈을 찾으며 나는 여전하게 지낸다. 이 시절에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로 한 칸 한 칸 채워가면서.

댓글 5
  • 2023-11-08 20:04

    저는 가을에 충무로역에서 올라가서 필동으로 내려오는 코스 갔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시집이랑 꿈 이야기 궁금해요ㅎㅎ

  • 2023-11-08 22:32

    나는 쌤이랑 걷자 걷자 하면서 왜 못 걷는지...
    언젠가 같이 해파랑길을 걷고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긴 하여요~~~ ^^

  • 2023-11-09 17:44

    봄에 벚꽃 필 때 남산 둘레길 같이 걷고 싶네요.^^

  • 2023-11-09 18:39

    그 시절 기린샘이 궁금하네요~~ㅎㅎ

  • 2023-11-11 09:37

    숭의서점과 문학당 사이~
    그 길에 각자의 어떤 기억들이 스며있겠죠!
    여전히 책장에 꽂혀있는 시의 흔적처럼..
    남산이 참 좋아요ㅎㅎ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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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67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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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51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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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300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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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5.06 | 조회 175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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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4.05.01 | 조회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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