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걷는 게 어때서 !

가마솥
2023-10-22 15:05
397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휙~ 돌아 서려다가 거대한 몸집과 부딪혀 몸이 허공에 붕 떴는데, 어떤 자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순간 판단이 늦으니, 유도 초단 실력의 낙법을 사용하지 못하고 팔을 먼저 땅에 집고 떨어졌다. 뼈가 잘 붙지 않는 것인지 거의 두 달간을 깁스하였다. 부상보다도 힘든 것은 팀원 간의 갈등이었다. 젊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가끔은 다른 팀과의 경기도 하다 보니, 경기력 향상으로 분위기가 흐르면서 승부에 집착하는 게임이 늘어났다. 당연히 얼굴 붉히는 일도 자주 생긴다. 몸은 점차 느려지는데, 실력을 요구하면 어쩌라고! 조용히 그만 두는 수밖에.

 

 

 

 

등산, 산이 좋아서 전국의 산을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좋겠다. 나도 한때 아들 놈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르친다고 백두대간을 걸었다. 땀 흘린 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주는 기분, 발아래 탁 트인 가슴 시원한 풍경을 보는 것, 파릇파릇한 생명들의 꿈틀 거림을 느낄 수 있는 기회,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온갖 물감으로 치장하는 단풍들을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무릎이 아파서 등산을 포기했다. 올라 갈 때는 괜찮은데, 내려 오면서 무릎이 아팠다. 대청봉에서 1/3쯤 내려 왔는데, 무릎을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뒤로 걸으며 내려 온 적이 있다. 119를 불러야 하나를 고민하며 밤 11시쯤 하산한 뒤로는 등산을 포기했다. 가까운 청계산도 내려 올 때는 꼭 아프다. 군악병 시절에 뻣뻣 다리로 오랫동안 서 있던 시간들이 무릎연골을 굴곡지게 만들었고, 그 연골이 말썽을 피우는 것이란다. 의사의 처방은 무릎 옆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는 방법뿐이라는데, 그 근육키우는 운동을 하면 무릎이 아프다. 나는 산에 가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제는 공차는 것을 그만 두고 공을 친다. 골프. 현역 때에는 골프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첫 째는 일단 시간이 하루 종일 걸린다. 휴일에 다른 재미난 일을 골프 때문에 할 수가 없다. 또 토요일에 축구를 하거나 마당일을 하고 나면,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어 일요일 골프가 엉망이 된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 실력이 이럴 리가 없는데,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쌓인다. 두 번째는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다보니 접대를 하거나 접대를 받는 골프이다. 주말에, 그것도 시원한 필드에서 맘껏 놀지 못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업무의 연속인 것이다. 요즈음에 골프를 자주 나간다. 은퇴 후에 모인 친구들 덕분이다. 접대골프가 아니니 맘껏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소소한 내기를 하며 약간의 긴장감을 넣으니, ‘골친’들끼리 승부가 붙었다. 세상에. 귀찮다고 걷지도 않는 내가 골프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한다. 비거리가 좀 늘면 좋겠지만, 무리하게 휘두르다가 엘보우라도 생기게 되면 이 것도 접어야 하니, 운동삼아! 살살 정교한 거리를 보내는 ‘연습’을 한다.

 

 

 

 

운동해야 한다고 난리인데......

 

몸 움직임이 적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한다. 주로 헬스장을 이용한다. 나도 헬스장을 끊어 본적이 있다. 동천동에서 광화문의 사무실을 나갈 때이다. 남들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나가면, 편도로 2시간은 소비해야 한다. 부지런을 떨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헬스를 하는 것이다. 한 달만 해보려고 했는데, 한 달짜리 금액에 조금만 더하면 3개월,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태면 6개월을 이용할 수 있었다. 6개월짜리를 끊고, 한 10일 나갔다가 그만 두었다. 너무 너무 재미없었다. 벤치 프레스 등 기구들을 붙어있는 설명서대로 들어 보았다. 다음 날 뻐근할 뿐이지 근육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무릎옆 근육을 키우는 게 헬스하는 목적이니 주로 이용하는 것이 런닝머신이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일정하게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나를 걷게 하는 것이 싫었고, 땀이 비짓비짓 배어 날 때의 그 찝찝함을 씻어 줄 바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머신을 멈추고 내려오면 매우 어지러웠다. 헬스? 6개월짜리 회원비를 날린 나의 흑역사를 다시 깨우치고 싶지 않다.

 

 ‘나이 먹을수록 젊게 살자’는 말이 있다. 그 동안 이 말은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나이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게 살자며 나이 든 사람이 나와서 운동기구를 들며 복근 자랑하는 것이나 아직도 ‘팔팔’하다고 외치는 광고들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나이 먹은 사람도 ‘젊게 살자’는 것은 생각을 젊게 가지자는 말일텐데, ‘육체적인 젊음’에 방점이 찍힌 의미로 말하는 것 같아서이다. 내가 목적없이 걷기를 싫어하는 것은 ‘나이 들면 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용한 광고 속의 사회적 정언명령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혹은, 나의 내면에서 이제는 나의 몸도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내가 사회적 은퇴를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것처럼 나이 먹은 나의 몸의 변화를 부정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른다.

 

노쇠와 노화

 

 그런데, 요즈음 몸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마당일하고 나면 다음 날 손가락 마디가 관절염 걸린 사람처럼 뻣뻣해 진다. 한참을 쥐락펴락해야 쓸 수 있게 된다. 손가락만이 아니다. 마당에서 땀 흘리고 일하다가 어질어질한 순간을 맞이한 적도 있다. 무조건 한참을 쉬어야 수습이 된다. 저혈압이라서 그렇단다. 다른 방법은 없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단다. 참나...... 움직이지 말고, 숨만 쉬라고?

 

몇 십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의 얼굴은 살아온 이력이 묻어나는 모습일텐데, 너무도 나이 먹은 티가 난다. 나는 ‘하나도 안 변했다’는 소리도 듣는다. 고등학교 때 내가 그렇게 늙어 보였나? 그럴 리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의 몸의 변화와 나의 몸의 변화가 별반 다르지 않다. 관절, 노안, 야뇨증, 달리기, 어지러움, 약간의 당뇨, 콜레스트롤 등등.

 

똑같은 ‘노화’를 겪고 있지만 그의 얼굴에서 ‘노쇠’함이 보인다. 사전에서 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학적 기능 쇠퇴인데, 노쇠는 개체의 노화로 조직이나 기관의 퇴행이란다. 노화는 막을 수는 없지만, 노쇠함을 막아 보자는 방법으로 운동을 권한다. 운동으로 조직이나 기관의 퇴행을 막아 보자는 것이다. 늦춰 보자는 말일게다. 그나마 이 정도 얼굴모습을 가진 것도 숨을 헐떡이며 뛰는 축구를 최근까지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는 힘들지만......

 

 

 

 

 

 

격한 스포츠 대신에 걸어 볼까?

 

친한 친구들 중에 두엇 친구가 걷기를 즐겨 한다. 그날 그날의 달성도를 보여주는 앱 정보를 캡쳐해서 그룹 카톡에 경쟁하듯이 올린다. 하루에 일만 보를 걷는 게 그들의 목표이다. 만보기 회사를 광고하는 것도 아닐텐데, 꼭 만보를 채우느라 늦은 밤에도 나가서 걸었노라고 후기까지 올린다.  그 들은 노년건강을 위해서 노쇠를 막는 자기관리를 하는 중일게다.

 

그렇게 걸음 수에 목숨 걸고 걸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격한 스포츠를 통해서 운동하던 몸은 지난 것은 분명하다. 또, 은퇴 뒤에 목적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한 물간 사람의 행동같이 느껴져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인위적인 운동을 무작정 거부하였다. 이제 그럴 때가 아닌 듯하다. 내 몸의 세포들이 자기 수명동안 제 기능을 다하도록 하려면 일부러라도 움직여 주어야 할 나이임을 인정하는 것이 솔직한  일이다.

 

사실, 그 동안 Door to Door를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걷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어려운 수학문제를 생각하며 뚝방 길을 걸었고 곧잘 풀린 기억을 꺼내 보면, 꼭 건강을 위해서만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난해한 철학서 한 문장을 들고 걸어 봐도 좋을 듯하다. 책상에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불현 듯 ‘번쩍’할 수도 있는 일이지 않는가.  좋아하는 음악을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걸어도 좋겠지.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직립보행이 인간다움의 시작이라고 말하는데, 내 안에 고개 숙이고 있는 DNA가 깨어날 지도 모른다. 요즘 거의 스스로 걷지 못하여 삶의 질의 형편없어진 장모님을 보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엄청난 행복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스스로 걷지 못할 때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에, 무엇에 서두를 필요없이 아무런 구속도 받지 말고 마음껏 걸어 보자.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댓글 4
  • 2023-10-25 20:47

    와우 ~~가마솥님 미남이시군요~~ 각잡고 걸으러 나가면 3만보쯤 걸어야 후련한 저로서는 ㅋㅋㅋ 샘의 걷기를 응원합니다~~

  • 2023-10-27 21:10

    운동, 건강, 뭐 이런 것과 상관없이.. 걸으면.. 정말 좋은데!!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까요?ㅎㅎㅎ

  • 2023-11-11 20:45

    앗! 아침 손가락 뻗뻗 증상과 저혈압 증상ᆢ 마솥샘 저랑 같은 증상 ^^
    웃을 일이 아니네요. 전 손주도 없는데ᆢ ㅜ

    하여 저도 걸어보겠습니다! 즐기며~~~~

  • 2023-12-12 00:43

    이제서야 읽네요^^ 넘 좋은 글~감사해요~~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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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82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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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71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인디언
2024.05.07 | 조회 317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8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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