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바램이 삶이 되려면

현민
2023-06-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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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에게 표 비싸더라 궁시렁대니 무료 티켓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알론소가 댄서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 번도 그가 제대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입구를 못 찾아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머리가 아름답게 센 할머니를 만났다.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할머니도 입구를 못 찾는 중이었다. 같이 입구를 찾고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는 시야에서 없어졌다. 부랴부랴 좌석에 앉아 놓여있던 공연 순서표를 눈으로 읽다 보니 불빛이 어두워졌다. 공연이 시작한다는 뜻이었다.

 

첫 번째 공연은 1학년의 ‘imagine’ 이었다. 연습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음악 없이,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음성이 시작되었다. 그건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니고 짐작하기론 이탈리아어 같았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목소리에 목소리가 겹치며 여러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같은 의미의 텍스트가 여러 개의 언어로 말해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태어난 곳을 떠나 춤을 추러 온 이 댄서들의 목소리였을 것 같다. 한국어도 나와 들어보니 다양성의 대한 권리를 읊고 있었다. 소리가 끝난 뒤 어느 지점에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존 레논의 ‘imagine’ 이었다. 그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적에 그 노래에 가슴이 웅장해지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주가 나오며 이 노래가 ‘imagine’이라는 걸 알아채자마자 얼굴을 구겨버렸다. 너무 지루한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Imagine에는 이런 가사들이 나온다.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발 아래 지옥도 없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살인도, 희생도, 종교조차 없는 곳이 있다면. 그래서 모든 이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40년 전 발매된 이 노래는 오래됐지만, 아직도 나는 의미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는 이 가사가 뜻하는 장소를 상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없는 것보다 있는 걸 더 잘 상상할 수 있다.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수없이 전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가가 없는 세상을, 종교와 살인이 없는 세상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지금 내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1971년에 발매된 이 노래가 아직까지 인권운동 레파토리로 쓰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그때와 지금이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서 색깔 놀이를 자처한 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전혀 포기하지 않은 채로, 그래서 세상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채로 이런 감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어지는 공연을 보며, 나는 눈으로 계속 흑인이나 동양인들을 찾았다. 이주민이 많다는 독일의 이 국제 무용학교에 흑인 한 명 없던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어떻게 해석해봐도 되는 걸까? 나에게는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와 같이 자기검열도 시작되었다. 어차피 백인 나라에 백인 많은 건 당연한 게 아닌가. 피부가 하얀 그들 중에도 누군가는 퀴어거나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서 왔을 수도 있고, 난민일 수도 있으며 가정폭력 당사자, 성폭력 당사자 일수도 있고, 자살을 시도해본 사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가 저 몸들에게 담겨 있을텐데, 이런 생각하는 내가 나쁜걸까 번뇌에 빠지던 중 쉬는 시간이 되었다.

 

공연 전체가 마냥 답답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다양했다.

몸으로 이렇게까지 전해질 수 있구나 점점 깨달아지며 현대무용의 장점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고 북적한 사람들 틈에서 어색하게 담배를 물었다. 그때 입구에서 만난 우아한 할머니가 내가 있던 곳으로 와서 담배를 꺼냈다. 그분도 혼자 오신 모양이었다. 담뱃불을 빌려드리며 대화가 시작이 되었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플랫메이트들이 오늘 공연을 한다고 했다. 나도 내 플랫메이트가 초대를 해줬다고 하며 우리는 그들이 같은 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 플랫메이트들이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그럼 당신도 이탈리아에서 오셨냐 물으니 본인은 미국인이며 독일에서 30년을 살며 의사로 일하신다고 했다. 그는 내게 첫 번째 공연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가장 불편한 공연이었는데 말이다. 나와 우아한 할머니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째서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고, 어째서 그는 커다란 아름다움을 느낀 걸까? 할머니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영영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느낀 불편함의 기원을 헤아려볼 수는 있다.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별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니다. 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이 차별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양성이 좋은 말처럼은 보이지만 어떻게 다양함을 존중하는지 모르는 시대에 종종 이 문장의 효력이 약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이 이 문장만으로 그들의 삶을 바꾸기에는 너무 무뎌졌다는 느낌 말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 중 가장 극단적 차별주의자인 나의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그는 목사 사모님으로서 종교에 어긋나는 이들을 열심히 배척하시지만, 내가 당신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하실 테다. 하지만 할머니와 나의 결과적 행동은 다르다. 그는 추석날 쇼파 위에 동성애 반대 플랜카드를 올려놓지만 나는 동성결혼 합법화 플랜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그것은 그와 나의 당연함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모두’에는 동성애 하는 사람들이 없고, 내가 ‘모두’를 말할 때는 동성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잘 알고도 미워할 수 있을까? 잘 알아서 미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모른 채로 미워하는 건 항상 더 쉽고, 세상에 많은 혐오들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안다.

최근에 콩고에서 온 사람과 길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그 사람의 말을 너무 못 알아들어서 어서 헤어지고 싶었다. 그도 대화 중간 나에게 왜 자꾸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냐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지난 뒤 생각해보니, 가장 큰 이유는 흑인 영어가 내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였다. 그의 말하기 방식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그보다 더 영어를 못해도 유럽인들과 이야기하는 게 더 이해하기가 쉬웠던 걸 생각해보면 그랬다. 모르는 새에 나에게 익숙한 어느 지역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언어, 돌이켜보면 무섭기도 하다. 어느 날은 살날이 너무 많이 남은 것 같다가도, 이런 순간을 마주하면 살날이 남아서 다행이었다. 배울 수 있는 시간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보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자주 생겨야 한다. 우리는 예쁘지 않은 몸을 더 많이 접해야 하고, 비슷하게 생기지 않은 사람들도 만나보아야 하고, 마냥 귀엽지만 않은 동물과의 관계도 경험해 보아야 한다. 흘깃 보았을 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이 더 자연스러워져서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지금 기괴해 보이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얼마나 기쁠까?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존중이 신체화가 되려면 내가 스스로에게도 더 너그러울 줄 알아야 된다고 쓰고 싶다. 나를 무의식의 틀에 가두는 것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연결된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글 쓸 때마다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냐며 자격을 의심하는 것도, 한국을 떠나 전범 국가였던 부자 백인 나라 온 것에 종종 죄책감 가지는 것도. 사람이 갈등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슬픈 일일 테지만, 사람이 늘 갈등하고, 고민하며 사는 것도 너무 괴로우니 말이다. 나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내 친구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를 조금 더 용서해야겠다고 말하는 게 내가 다른 이를 사랑해 보이겠다는 최선의 마음이다. 누구 또 좋은 생각 있으면 내게 꼭 말해줬으면 좋겠다.

 

바램이 바램으로 남아있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바라던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싶다

댓글 5
  • 2023-06-18 09:46

    오늘 아침에 어제 신문을 펼쳐서 읽은 것 중의 하나가 '김남희의 걷다보면' 코스타리카 편.
    그 글을 읽으면서 코스타리카, 음.. 코스타리카, 뭔가 친숙한데.. 라고 생각했는데, 알론소의 고향이었어요!!
    스쳐지나가듯 현민의 글에 단 한 번 등장한 그 나라의 이름이 일으키는 진동과 그 효과가 멋지네요.
    이렇게 이야기들이 연결될 때 뭔가 짜릿한 느낌이 있어요.
    "푸라 비다(Pura vida, 순수한 삶)!"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래요.
    지금 현민이에게 그 말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푸라 비다!!

  • 2023-06-19 09:43

    헐...나도 이 글을 읽으면서 코스타리카...김남희의 코스타리카?! 신기하군...이랫었는데....이번엔 콩고를 찾아봤어요. 아프리카 콩고가 어디쯤에 있었지? 하면서요.

    이매진...맞아요. 한 때는 전주만 나와도 가슴 뛰었는데
    어느새 클리세가 된 듯한 느낌도.

    이방인으로서, 1세대 백인나라에 잠시 머무는 이방인으로써
    현민은 '차이'와 '정의'에 대해 더 예리한 질문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네요.

    부럽습니다. 하하

  • 2023-06-19 10:05

    바라던 일이 일어나는 세상 진짜 기쁘겠네요 ㅎ
    모두 라고 하면서도 모두가 아닌
    다양성이라지만 별로 다양하지않은
    좁고좁은 세상에 갇혀사는 느낌인 나로서는
    현민의 경험들이 참 의미있어 보이네요
    이제 부러워하는건 안할라는데 ㅋㅋ

  • 2023-06-19 18:52

    남을 차별하는 마음이 나를 차별하는 마음이기도 하더라구요.
    나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을 고민하는 현민의 마음이 지금 나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 2023-06-22 09:29

    저는 나와 다르게 생긴 생명체에 대해서 유달리 신체가 반응할때가 있는데요, 현민의 글을 보니 "지금 기괴해 보이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얼마나 기쁠까? " 저도 그 순간이 기대되네요. 피하지말고 계속 봐야겠네요~~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나와 당신의 책임   10년 전,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쓰인 멋진 슬로건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만든 이를 찾아가 박수를 쳐 주고 싶어지곤 한다.전기를 소비하는 곳에는 책임이 있다. 전기를 생산하고 송전하는 곳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슬로건이 있었다 .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또,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였던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데에 기여했던 슬로건도 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누군가가 당사자이고, 누군가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에너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말이다. 이 슬로건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끝없이 확장되는 사회 운동을 경험했다. 설령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밀양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밀양은 졌다. 높이 100m짜리 송전탑은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 밭일을 할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마을 길을 걸을 때도, 캄캄한 밤 안방 창문에서도 쇳덩어리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낮 쇳덩어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저 철탑에는 핵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흐른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아도, 마주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송전탑에는 돈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을 공동체의 상처가 묻어 있다. 38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사람을 짓밟았던 폭력의 상처, 함께 싸우다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 2014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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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진
2024.05.10 | 조회 156
일상명상
덕밍 아웃, 그 후   지난 글에서 호기롭게 덕밍 아웃을 했지만 명상에 빠져든 이유를 명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명상에 빠진 것은 결과지 이유는 아니니까. 하여 명상이 처음부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친구와 같다고 했지만 정작 누군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면 제대로 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냥 좋으니까 좋았다는 식의 동어 반복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에 꽂힐 때 그 이유를 다 알아서는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어떤 것에 마음이 불꽃처럼 호응할 때 그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게 아닐까. 처음엔 빠져든 이유를 잘 모르는 터라 경우에 따라 ‘입덕 부정기’를 겪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개는 빠져든 다음에야 그 이유를,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이유 덕분에 다시 그 대상을 더 깊이 애정하게 되는, 다이내믹한 순환이야말로 덕질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지.     나도 명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른바 덕질의 묘미를 맛보고 있다. 명상이 뭔지도 모르고 매달리듯 빠져들었다가 이제야 차츰 명상이 뭔지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나 많은 쓸데없는 생각들에, 그렇거나 많이 휘둘리고 있는 줄 몰랐다. 그 때문에 명상을 통해 처음 경험했던 침묵과 평온이 그토록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는지도. 만약 명상이 아니었다면 일 년 365일,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처럼 소란스런 정신적 수다 때문에 괴롭다는 걸 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그 순전한 무지에서 벗어난 순간, 마치 세상의 비밀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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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
2024.05.09 | 조회 145
K장녀_돌봄을 말하다
          언젠가 엄마의 구술 생애사를 써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엄마의 삶을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인터뷰를 시작하긴 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진행을 못해서 좀 아쉽다. 이렇게 빨리 엄마가 기억을 잃고 이야기를 못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산업화세대 워킹맘   10년 전쯤 아버지가 대장암 재발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실 때 엄마는 병원간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혈관이 잘 안 나오는 아버지에게 혈관 주사를 놓으려면 꽤나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곧잘 혈관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1935년생인 엄마는 간호사이자 조산사였다. 엄마가 간호사 면허번호를 말하면(0000번 대) 간호사들(면허번호 000000번 대)은 깜짝 놀라며 ‘선배님’이라 불렀다. 엄마는 은근히 그걸 즐기는 듯했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결혼하면서 그만두었고, 시골학교 교사인 아빠의 고향에서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걸 도왔다고 했다.   엄마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중학생 때 친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엄마가 의대 가는 걸 반대해서 간호학교에 갔다. 동생인 삼촌 두 분은 의사다. 엄마 세대, 즉 산업화 세대에 많은 딸들은 아들들을 위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누나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딸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의대에 갈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 또래는 대부분 형제가 4~5명 정도 된다. 유독 우리집은 형제가 오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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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4.05.07 | 조회 277
기린의 걷다보면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지난 1월에 마포 난지생명길 1코스를 걸었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 공원을 숲으로 만든 이야기 『씨앗부터 키워서 천이숲 만들기』를 읽고 찾아가 본 둘레길이었다. 그 때 노을 공원에 자리한 ‘나무자람터’에서 키운 묘목을 공원의 경사지에 심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숲과 숲을 개미집처럼 이어주는 ‘1천명의 나무 심는 개미들’ 활동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고 싶어서 활동 신청을 했고 905번 개미로 신청되었다는 연락도 받았다. 무리개미, 개별개미, 수시개미 등으로 분류해서 가능한 날짜에 신청하라고 매달 초에 문자로 공지가 왔다. 5월 공지에서 토요일 오후 2시 개별개미 활동 신청을 받는 것을 확인했다. 마침 세미나 방학이라 5월 4일 토요일 활동에 참가 신청을 했다.    토요일 오후에 난지공원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헤맬 것을 예상하고 일찌감치 나섰다. 9호선 당산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는 네이버 지도의 안내를 믿었다. 당산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반, 근데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이 북적였다. 난지 공원 주변으로 상암 올림픽 경기장, 하늘 공원, 노을 공원까지 여러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30분이면 된다던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도록 막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 지나있었다.      회사에서 신청해서 왔다는 일가족 세 명, 개별로 신청한 네 명, 교회청년회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는 청년들 다수가 오늘의 참가자였다. 나처럼 개별로 왔다는 분은 노을 공원에 이렇게 아카시아가 많은 줄 몰랐다고 감탄을 했다. 약속 시간에 늦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던 나도 그제야...
기린
2024.05.06 | 조회 168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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