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블루스> (3회) - 사물과의 동맹

관리자
2020-04-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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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들어 하셨고, 저 가볍고 따뜻한 아이보리 가디건은 셋째 딸이 사왔는데 아끼느라 막상 한 번도 못 입으셨던 것이고, 저 갈색점퍼는 내가 사다드린 것인데 주로 산책 때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패션으로 즐겨 입으셨던 것이고,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저 보라색 페도라는 며느리 선물인데 늘 자주색 원피스와 함께 매칭하셨던 것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신평화시장을 애용하던 수십 년 전부터 패션 감각이 좋았다. 믹스앤매치도 능숙했고 깔맞춤도 어색하지 않았고 심지어 원색도 잘 소화하셨다. 나이가 드신 후에는 막내딸과 며느리가 어머니의 스타일링을 도왔고 덕분에 어디를 가나 ‘곱다’라거나 ‘멋쟁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셨다. 문제는 그렇게 차려입고 갈 때라고는 고작 교회밖에 없다는데 있었지만 말이다.(적어도 최근 십여 년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은 어머니의 즐거움이자 자부심이었다.

 

이제 어머니는 더 이상 그 옷들을 입지 못한다. 작년 1년 동안 절반은 병원 환자복으로 나셨고 나머지 절반은 잠옷과 다름없는 실내복으로 지내셨다. 어쩌다 외출을 할 때도 옷을 선택하는 기준은 화장실에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것인지, 옷을 갈아입지 않고도 x-ray를 찍을 수 있는 것인지에 있다.

 

옷만이 아니다. 신발, 모자, 화장품, 장신구, 지갑, 성경책, 서랍 안에 몇 개씩 쌓아놓은 헌금봉투, 음식점에 갈 때마다 한웅큼 가져다 쟁여놓으신 이쑤시개, 돋보기, 확대경, 서예용품,매일 무엇인가를 적던 노트 ... 그 모든 것을 더 이상 어머니는 사용하지 못하신다. 그것들은, 이제 어머니 삶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들은 부재의 기호이다. 더 이상 어머니가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그것들을 입고 쓰던 어머니는 더 이상 없다는.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2. 요양보호 3등급, 보호용구 1년 치 한도 160만원

 

작년 9월 어머니가 퇴원을 하실 때 가장 큰 고민은 2차 부상 방지 대책이었다. 병원이야 침대에도 화장실에도 각종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만 집에서는 어떡하지? 물론 집에도 벽을 따라 핸드레일을 부착할 수 있고 화장실에도 안전 손잡이를 설치할 수 있다. 그런데 전세집에서는 사실 못 하나 박는 것도 쉽지 않다. 집주인한테 양해를 구할까? 나중에 원상복귀해준다고 할까? 만약 설치한다고 하면 어디에 연락을 해서 시공을 부탁해야 하나? 지원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을까? 만약 집주인이 난색을 표명하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나는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을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발주내고 내가 돈을 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일단 하드웨어는 제쳐놓고 어머니에게 필요한 용품들부터 장만하기 시작했다. 휠체어가 가장 시급했는데 다행히 아램샘이 선물로 주셨다. 이동형 변기는 이미 있었고 재활운동을 위한 보행기도 어딘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누굴 주셨는지 찾을 수 없어 또 다시 구입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요양보호등급을 받았고 나는 노인요양보호 3등급을 받으면 주5일 매일 3시간의 요양보호사 서비스뿐만 아니라 1년 160만원 한도 내에서 각종 ‘요양보호용품’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우리나라, 이제 복지국가구나!!

 

난 신중히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을 체크해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구조적 손상을 주지 않는 천정형 탈부착 봉 안전손잡이 3개,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 3개, 화장실 핸드레일 1개, 목욕의자 1개...

 

 

 

그런데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안전용품만은 아니었다. 머리를 계속 감지 못해 떡 진 머리를 보다 못해 동생이 ‘드라이 샴푸’라는 것을 사가지고 왔다. 다들 알겠지만 소변을 보다가 오줌 한 방울이라도 방에 떨어뜨리면 온 방안에 냄새가 진동을 친다. 그러니 자누리표 빼버리지는 필수적이고 그것도 부족해 둥글레에게 향을 얻어다 수시로 향을 피운다. 허리통증이 계속 심하시니 온 집안을 뒤져 찜질기란 찜질기는 크기와 모양에 관계없이 몽땅 출동시켰다. 무엇보다 이제 새로운 필수품이 생겼으니, 바로 기저귀! 일본에서는 이미 유야용 판매량을 훌쩍 상회했다고 알려진 성인용 기저귀, 말이다. 이제 나는 성인용 기저귀의 종류와 가격과 브랜드별 장, 단점에 대해 빠삭해졌다. 나는 속 기저귀는 ‘디펜드’ 제품을, 겉 기저귀는 ‘금비’ 제품을 선호한다.

 

 

 

가장 최근에는 이미 갖고 있는 얇고 가벼운 보행기가 어머니에게는 너무 불안하다는 간병인의 조언을 받들어 튼튼한 보행기로, 그러니까 정형외과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가슴 높이의 묵직한 놈으로 교체했다. 이것으로 요양보호3등급, 보호용구 일 년 한도 160만원어치를 꽉꽉 채우게 되었다.

 

이제 어머니가 서예를 하던 책상 위에는 서예교본 대신 손가락 운동을 위한 성인용 컬러링 북이 놓여있고, 어머니의 화장대는 스킨, 로션, 루즈, 향수 대신에 각종 약들이 진열되어 있다. 어머니의 침대는 안전 손잡이로 둘러싸여 있고, 방에는 이동용 변기와 보행기와 휠체어가 가득하다. 집은 바야흐로 요양병원처럼 변모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흉물스러운 것들이 집안의 점령군처럼 있지 않도록 눈에 띌 때마다 그것들을 최대한 구석으로 몰아넣곤 한다.

 

 

 

 

3. 늙는다는 것의 수치심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오래 전 아이들을 키울 때 집안은 아이들의 장난감과 동화책으로 늘 가득 차 있었다. 딸랑이나 모빌처럼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커다란 곰돌이 인형, 뿡뿡이 자동차, 방문에 매다는 그네처럼 덩치가 큰 것들로 바뀌어갔지만.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심지어 집의 ‘어린이집화’가 좋은 엄마의 상징인 것처럼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나는 노인용품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집안이 채워질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을까? 왜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어머니의 옷에서 벌써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고 있을까?

 

노베르트 엘리아스에 따르면 늙음이나 죽음에 관한 불쾌감 등은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기보다는 ‘문명화과정’에 따라 형성된 역사적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필립 아리에스에는 아이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감정 – 천진난만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 역시 근대에 생긴 역사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죽음’의 경우, 그것은 중세 때만해도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어내야 하는 친숙하고 공공연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누구나 낯설고 기피하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사정이 다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은 사회생활의 배후로 밀려났고, 위생적으로 제거되었다.  역사상 그 어떤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체는 악취 없이 신속하게, 죽음의 병상에서 무덤으로  너무나 완벽하게 기술적으로 처리되게 되었다.”(노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문학동네, p35)

 

 

 

그 변곡점은 서구의 역사에서는 절대주의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이었다. 예를 들어 중세사회에서는 농민 뿐 아니라 귀족들도 손으로 고기를 뜯고 또 그 손으로 코를 풀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먹으면서 쩝쩝 소리를 냈고, 몸을 긁었으며, 한 구석에서 소변을 봤으며, 침을 자주 뱉었다. 그러나 절대주의 국가에서는 새로운 행동규칙, 새로운 매너가 형성되었다. 고기는 반드시 포크나 나이프를 사용하여 먹어야 하고, 코는 반드시 손수건에 풀어야 하고, 식사 중에는 쩝쩝거리는 소리를 내서도 몸을 긁어서도 안 되며, 침은 눈에 안 띄게 조용히 뱉어야 한다. 이른바 부르주아 사회의 ‘뉴 노멀’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한 마디로 인간생활의 모든 동물적 측면들을 철저히 삶의 전경에서 배후로 몰아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노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한길사)

 

“인간생활의 모든 원초적 동물적 측면들은 문명화 과정 속에서 사회적 규칙들과 양심에 의해 이전 시기보다 안정되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세분화된 방식으로 통제된다. 권력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인간 삶의 동물적 측면은 수치, 혐오 혹은 당혹감 등과 연결되고, 이집트의 문명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무대 뒤로 사라지거나 공적인 사회생활에서 아예 제거되기도 한다” ”(노베르트 엘리아스, 『죽어가는 자의 고독』, 문학동네, p20)

 

기저귀와 이동형 변기는 어머니가 자주 ‘실수’를 한다는 것을, 뻬버리지나 향은 어머니의 삶이 이제 더 이상 악취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나는 늙음을 ‘틀딱충’이라 부르는 등의 노인혐오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무의식적으로 삶의 동물적 필연성을 환기시키는 그 모든 것들, 소멸과 죽음으로 다가가는 늙음을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4. 사물과의 동맹

 

근대사회에서는 젊은 시절만이 ‘화양연화花樣年華’이다. 반면에 노년은 보잘 것 없고 지루하며 무료하고 퇴행적이며 누군가에게 부담을 안기는 시기이다. 노인들은 동네에서 하릴없이 보행기를 밀고 다니거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때론 누군가를 계속 훈계한다.

 

 

 

 

어머니 역시 비슷했다. 늘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화를 냈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에도 귀가 어두워지는 것에도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지는 것에도 요실금이 생기는 것에도 비관하셨다. 이런 우울감의 이면에는 공격성도 있어서 음식이 조금만 늦게 나와도 종업원에게 화를 냈고, 은행업무가 조금만 지연이 되도 창구직원에게 짜증을 냈다. 언젠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에 간 적이 있는데 옆 사람이 물을 잠그지 않고 씻는다고 대놓고 타박을 하고 또 뒷사람이 물을 튀기면서 씻는다고 언성을 높이셨다. 그날 나는 벌거벗은 채로 연신 옆 사람에게도 뒷사람에게도 꾸벅거리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어머니에게 노년은 매순간이 결여와 비참함이었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억울하다며 짜증을 부려야 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에 노년은 그 자체로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맹자는 세상에 누구나 존중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작위, 나이, 덕이라고 하면서, 특히 동네, 그러니까 고대 동아시아의 향약공동체에서는 신분이나 학벌보다 연령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 공손추 하)

 

세네카 역시 노년의 삶은 청년들처럼 빠르게 뛰어다니거나 멀리 창을 던지거나 근접전투에 쓰이는 검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는 없지만 사려 깊음과 이성, 판단력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면서, 이런 사려와 판단력을 가진 노인들이 바로 사회의 ‘원로’가 된다고 말한다.

 

“큰일은 육체의 힘이나 재빠름이나 기민함이 아니라, 사려 깊음과 영향력과 판단력에 의해 행하여진다네. 노년이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빈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해진다네. (세네카, 『노년에 대하여』, 궁리, p40)

 

물론 세네카는 현실적으로 불평이 많은 노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각자의 성품에서 오는 문제이지 노년이라는 시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까다로움과 무례함은 인생의 어떤 시기에도 해가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스토아철학에서 말하는 ‘달려가야 할 노년’은 자기에 대한 집중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자아를 빚을 수 있는 시기이다. 그곳은 수련을 통해 완성해가는 원숙함이라는 삶의 어떤 정점이다.

 

 

 

최근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늙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 역사적인 것이라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늙음에 대한 사유이고 잘 늙어갈 수 있는 기술 아닐까? 추함, 결여, 불쾌와 연결되어 있는 ‘은유로서의 늙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육체적 쇠락과 연관된 의존의 능력은 더 키워져야 할 것이다.

 

집안에 가득한 보행기, 휠체어, 이동형 변기 등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물리쳐야 할 점령군은 더욱더 아니다. 여전히 나의 미감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은 이제 어머니의 든든한 동맹군이다. 어머니가 사물이든 사람이든 더 많은 것들과 동맹을 맺고 의존의 기술을 익혀갔으면 좋겠다.

댓글 8
  • 2020-04-25 11:39

    잔잔하게, 늙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손끝에서 내가 조금씩 무뎌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슬픔보다는 짜증이 먼저 몰려오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그 순간 옆에 누가 있다면 그것은 곧장 어떤 분노로 변하기 쉬운 것 같아요. 아마 문탁샘이 같이 있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옆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겠지요. 어머니는 거기서 일종의 자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늙음의 전무후무한 경험을 관통하는 문탁샘에게 애정과 응원을 전합니다.

  • 2020-04-25 12:14

    멀리계신 부모님과 제 자신의 늙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떻게 잘 늙어가야 할까요? 문탁에서 제가 나이 어린 축에 속하지만 늙음은 나이순으로 오는 것 같지 않습니다^^

  • 2020-04-26 10:38

    나는 나의 삶을 그리고 노년을 풍부하게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한 깔끔하는 제가 아이들 용변에 손닿기를 꺼려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기저귀는 내 몫이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풍부한 노년을 맞는다는건 다른이의 늙음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기도 할텐데 저한테는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 2020-04-26 18:25

    의존에도 능력이 필요하네요.
    생각치 못했던 말입니다.

  • 2020-04-27 14:24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화이팅!!

  • 2020-04-28 22:43

    최근 몇년 친정아버지의 늙어감을 지켜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꼈어요. 왜 나이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까, 왜 점점 주위사람을 힘들게 할까..아빠는 나이드는게 싫으신것 같고, 본인의 육체가 제어 안되는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것 같아요. 읽으면서 아빠가 생각나서 울컥해집니다. ㅜ

  • 2020-04-29 04:56

    사물과의 동맹.... 늙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으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 2020-06-13 07:58

    요즘 CARE 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서 클라이먼)

    부인을 간병하며 10년간의 이야기를 정신의학, 의료인류학 교수인 남편이 적은 이야기책입니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나쁜 치매"를 앓고 있는 10년간의 기록을 의사에서 보호자가 되어 적은 체험기입니다.
    쌤의 간병블루스가 딸이고 여성이라 그런지 더 세세하고 섬세합니다.

    가정간병에서 요양원에서의 마지막까지 현실로 겪어낸 이야기가 먼 이야기가 아니고 누구나 환자로, 보호자로 그럴수 있기에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내가 할 일이었기 때문에 했다."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니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귀한 일들을 하면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 세상의 모든 돌보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까운 곳에서도 계속되고 있네요.

    어머님의 손글씨와 일기장이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해서 눈물이 핑 도네요.
    쌤도 잘 드시고 힘내세요~
    오늘이 바로 눈이 부시게 좋은 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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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_돌봄을 말하다
    아버지의 미수연   지난달에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아버지의 88세 미수연을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뵌 후 2년 만에 만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 인사 후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말씀하실 때는 청산유수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80이 되면 무덤 속에 누운 이나 살아있는 이나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내년이면 90이니 오래 살았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때때로 아버지의 심경을 적어 놓은 메모가 들어있다.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사는 낙이 없다. 빨리 죽고 싶다.”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이 좋아 보일 때도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아버지의 평소 정조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에는 우울감도 포함된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큰아들이 옆에 살아서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아침에 오고 저녁에도 와서 챙긴다.”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자식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버지 집에서 지내온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 큰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는 것은 그래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허세일까, 아니면 자식들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렇다고...
    아버지의 미수연   지난달에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아버지의 88세 미수연을 했다. 다들 나이가 들어 왕래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뵌 후 2년 만에 만나는 분이 대부분이었다. 홀로 된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듯해서 겸사겸사 식사 대접을 했다. 축하 인사 후 아버지 차례가 되었다. 말씀하실 때는 청산유수다. “예전에 어른들이 나이 80이 되면 무덤 속에 누운 이나 살아있는 이나 똑같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내년이면 90이니 오래 살았습니다.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니,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데이케어센터에 갈 때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때때로 아버지의 심경을 적어 놓은 메모가 들어있다. “날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내가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사는 낙이 없다. 빨리 죽고 싶다.” 밥도 잘 드시고 컨디션이 좋아 보일 때도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 아버지의 평소 정조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증상에는 우울감도 포함된다. 정말 오랜만에 아버지로부터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궁금해했다. “큰아들이 옆에 살아서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아침에 오고 저녁에도 와서 챙긴다.” 아버지의 대답을 듣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자식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아버지 집에서 지내온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 큰아들과 며느리를 앞세우는 것은 그래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허세일까, 아니면 자식들 넷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온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그렇다고...
요요
2024.05.27 | 조회 212
아스퍼거는 귀여워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서로 딱 마주친 그때.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그날부터 감자 입덕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한다. “호옥시... 우리 아이가 천재?” 누구나 에겐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아이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첫 뒤집기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싶다. 태어나서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꼬물거리고, 울고, 웃었다. 그때는 손가락만 쥐었다 펴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뒤집기라니!! 혼자서 뒤집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가 없다. “우리가 아이가 뒤집었어요.” 동네방네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1~2개월이 뭐라고, 인터넷에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 왜 뒤집기를 안 할까요’부터 ‘6개월인데 벌써 일어나 앉았어요’까지....
  그 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감자가 한 50일쯤이었을까. 분유 냄새가 폴폴 나는 뽀시래기 시절,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감자랑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 위에 앉아 다리 위에 아이를 끼워놓고는,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었다. 배부른 아이는 나른하게 누워있고, 모처럼의 평화로운 분위기. 그때 감자는 내 눈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등줄기부터 짜르르 행복감이 느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감자를 낳고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회복이 늦어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나날들이었다. 내 배에서 나왔지만,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었고, 씻지도 먹지도 못해 사랑스러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처음 눈이 서로 딱 마주친 그때. 나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그날부터 감자 입덕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생각한다. “호옥시... 우리 아이가 천재?” 누구나 에겐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신의 아이만 보이는 시절이 있었더랬다. 첫 뒤집기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싶다. 태어나서 한 줌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꼬물거리고, 울고, 웃었다. 그때는 손가락만 쥐었다 펴도 대단해 보인다. 그런 아이가 뒤집기라니!! 혼자서 뒤집다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가 없다. “우리가 아이가 뒤집었어요.” 동네방네 플래카드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1~2개월이 뭐라고, 인터넷에는 질문들이 가득하다. ‘6개월이 지났는데…. 우리 아이 왜 뒤집기를 안 할까요’부터 ‘6개월인데 벌써 일어나 앉았어요’까지....
모로
2024.05.25 | 조회 206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동창회 모임은 딱 한군데 나간다. 고등학교 3학년 반모임이다. 사회에 첫발을 디딜 즈음에 시작한 모임이니 얼추 한 사십년은 되었다. 모이면 하등 의미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 다닐 때 성적, 물론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던 수학점수 등으로 이야기를 출발해서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손주들 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마무리 시간이 된다. 요즘은 내게 은퇴후 생활에 대해서 묻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10여년 전 고기리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가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또 평창 집을 가꾸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한 지 서너 해가 되었는데, 미리 생각했던 전원주택 혹은 텃밭정도 가꾸는 시골살이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고 꿈만 꾸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 녀석이 대뜸 목소리 톤을 높인다. “니들, 농사 지어봤냐? 니들처럼 시골 출신이면서 공부 잘 해서 손에 흙 묻히지 않은 놈들이 꼭 귀농한다고 설치더라. 난 농사라면 징글징글해서 때려 죽여도 안한다. 그 돈으로 그냥 사먹는 게 훨씬 싸다!” 녀석 참, 성질 급한 것은 여전하다. 내가 겪은 경험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회사 대리 시절에 직속 과장이었던 선배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당시 사장은 좀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학벌도 좋고 인품도 바른 그 선배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심하게 대했다. 임원회의 때마다 업무 성과를 핑계로 그 선배에게 이야기하는 톤은 옆자리의 우리들도 견디기 어려운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 내곤 하였다. 급기야 그 선배가 원형 탈모 증세를...
가마솥
2024.05.25 | 조회 180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WG투어 터키편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현민
2024.05.24 | 조회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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